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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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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라과이는 남아메리카 내륙 국가로, 국명은 파라과이강에서 유래했다. 과라니족이 스페인 제국보다 1,000년 이상 먼저 이 지역에 거주했으며, 16세기 초 유럽인들이 라플라타 강을 거슬러 들어오면서 식민 시대가 시작되었다. 181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독재 체제를 거쳐 삼국동맹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20세기에는 차코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군사 독재와 민주화를 겪었다. 현재는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국이며, 메르코수르 회원국으로서 주변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스페인어와 과라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가톨릭교가 지배적인 종교이다. 경제는 농업에 크게 의존하며, 대두, 옥수수, 쇠고기 등을 생산한다. 축구가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며,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은 FIFA 월드컵에 여러 차례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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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이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파라과이 지도
파라과이 위치 (남아메리카)
기본 정보
공식 국명스페인어: República del Paraguay
과라니어: Paraguái Tavakuairetã
일반 국명파라과이
파라과이 국기
국기
파라과이 국장
국장
표어Paz y justicia (평화와 정의)
국가파라과이 국가
공용어스페인어, 과라니어
수도아순시온
최대 도시아순시온
시간대PYT
UTC 오프셋–3
시간대 (일광 절약 시간)(해당 없음)
UTC 오프셋 (일광 절약 시간)(해당 없음)
날짜 형식dd/mm/yyyy
운전 방향오른쪽
국제 전화 코드+595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py
정치
정부 형태단일 대통령 중심제 공화국
대통령산티아고 페냐
부통령페드로 알리아나
상원 의장실비오 오벨라르
하원 의장라울 라토레
대법원장세사르 디젤
의회의회
상원상원
하원하원
역사
독립스페인으로부터 독립
독립 선언1811년 5월 14일
독립 승인1842년 11월 25일
현재 헌법1992년 헌법
현재 헌법 제정일1992년 6월 20일
지리
면적 순위59위
총 면적406,752 km²
수면 비율2.6%
인구
2022년 인구 조사6,109,903명
2024년 추정 인구6,218,879명
인구 순위113위
인구 밀도39명/km²
인구 밀도 순위223위
종교
종교 (2020년)기독교: 95.5%
가톨릭교: 87.4%
기타 기독교: 8.1%
무종교: 4.1%
기타 종교: 0.4%
경제
구매력 평가 기준 GDP$1,247.26억
구매력 평가 기준 GDP 순위96위
구매력 평가 기준 GDP (2024년)2024년
1인당 구매력 평가 기준 GDP$20,058
1인당 구매력 평가 기준 GDP 순위84위
명목 GDP$458.17억
명목 GDP 순위96위
명목 GDP (2024년)2024년
1인당 명목 GDP$7,368
1인당 명목 GDP 순위93위
지니 계수 (2022년)45.1
인간 개발 지수 (2022년)0.731
인간 개발 지수 순위105위
통화과라니
통화 코드PYG
기타 정보
ISO 3166-1PY
ISO 3166-2PRY
국가 도메인.py

2. 국호 유래

"파라과이"라는 국호는 북에서 남으로 이 나라의 중심을 지나는 파라과이강에서 나온 것이다. 이 강 이름의 기원에 대해서는 넷 이상의 설이 있다. 과라니어로 말그대로 번역하자면 ''Para''는 '여러 색깔의', ''Gua''는 '~에서, ~에 속하는, 장소', ''Y''는 '물, 강 혹은 호수'를 뜻한다. 즉 '강물의 여러 색깔'(가령 햇빛이 수면에 비친 색이나 물가의 앵무새 따위)이란 뜻이 된다.

파라과이의 어원은 불확실하다. 과라니어(Guaraní language)의 '파라구아'(paraguá, "깃털 왕관")와 '이'(y, "물")에서 유래하여 '파라구아이'(paraguaí, "물의 깃털 왕관")를 의미한다는 주장이 있다.[14] 파라과이라는 이름이 파야구아 족(Payaguá people)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91] 과라니 족(Guaraní people)은 파라과이 강(Paraguay River)을 '파야구아-이'(Payaguá-y, "파야구아 족의 강")라고 불렀고, 이로부터 국가의 이름이 유래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또는 과라니어에서 '파라'(para)는 바다를, '구아'(gua)는 기원을, '이'(y)는 강을 의미하므로, 파라과이는 "바다를 낳는 강"을 의미한다는 설도 있다.[15]

파라과이(Paraguay)는 원래 과라니어로 "큰 강에서"를 의미하는 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큰 강은 파라나 강을 가리킨다. 그 외에도 "새의 관을 쓴 사람들"을 의미한다는 설도 있다.

3. 역사

과라니족은 스페인 제국이 도착하기 최소 1000년 전부터 파라과이 동부에 거주했다. 파라과이 서부 그란 차코에는 과이쿠루족이 가장 두드러진 유목민들이 살았다. 파라과이 강은 동쪽의 농경 사회인 과라니족과 서쪽 그란 차코의 유목민 및 반유목민 사이의 경계선 역할을 했다. 과이쿠루 유목민들은 그들의 전사 전통으로 알려져 있으며, 19세기 후반까지 완전히 평정되지 않았다. 이러한 원주민 부족들은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언어 가족에 속했고, 이것이 그들의 주요 분류의 기준이 되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들은 일반적으로 자원과 영토를 두고 경쟁했다. 그들은 이들 언어 가족의 여러 갈래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부족으로 더 세분되었다. 오늘날 17개의 별개의 민족언어학적 집단이 남아 있다.

원래 이 지역에는 과라니족을 비롯한 투피-과라니계 원주민 여러 집단이 살고 있었다. 타완틴수유 (잉카 제국)의 권력은 이 지역까지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원시적인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그러나 16세기 초 이후, 세바스티안 카보토를 비롯한 유럽 사람들이 라플라타 강을 거슬러 올라와 이 지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3. 1. 식민지배 이전

과라니족(Guaraní people)은 스페인 제국(Spanish Empire)이 도착하기 최소 1000년 전부터 파라과이 동부에 거주해 왔다. 파라과이 서부 그란 차코(Gran Chaco)에는 과이쿠루족(Guaycuru peoples)이 가장 두드러진 유목민들이 살았다. 파라과이 강(Paraguay River)은 동쪽의 농경 사회인 과라니족과 서쪽 그란 차코의 유목민 및 반유목민 사이의 경계선 역할을 했다. 과이쿠루 유목민들은 그들의 전사 전통으로 알려져 있으며, 19세기 후반까지 완전히 평정되지 않았다. 이러한 원주민 부족들은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언어 가족에 속했고, 이것이 그들의 주요 분류의 기준이 되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들은 일반적으로 자원과 영토를 두고 경쟁했다. 그들은 이들 언어 가족의 여러 갈래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부족으로 더 세분되었다. 오늘날 17개의 별개의 민족언어학적(ethnolinguistic) 집단이 남아 있다.

원래 이 지역에는 과라니족을 비롯한 투피-과라니계 원주민 여러 집단이 살고 있었다. 타완틴수유 (잉카 제국)의 권력은 이 지역까지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원시적인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그러나 16세기 초 이후, 세바스티안 카보토를 비롯한 유럽 사람들이 라플라타 강을 거슬러 올라와 이 지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3. 2. 스페인 식민 시대

콜럼버스 이전 시대의 파라과이는 숲이 우거지고 비옥한 땅이었다. 그곳에서 반유목 생활을 하며 과라니어를 쓰는 부족들이 살았으며, 용맹한 전사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16] 1525년 에스파냐의 A.가르시아가 파라과이에 처음 발을 들인 이래로 1536년부터 식민지화가 시작되었다. 1537년 8월 15일 아순시온에 에스파냐 탐험가 후안 데 살라사르 이 에스피노사가 정착지를 건설했다. 이 도시는 18세기 남아메리카에 정착한 예수회의 선교지였으며, 에스파냐 식민지의 지방 중심지가 되었다.

찰루아인과 같은 라플라타 지역의 수렵 인디헤나와는 달리, 농업을 경영하던 과라니인들은 문화 수준이 높았고, 스페인인과의 동맹을 통해 적대하던 다른 인디헤나와 대결하기로 결정했으며, 스페인인들도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양자 간에 교류가 생겨나고, 혼혈인(메스티소)도 발생하게 되었다.[16]

1617년에 아순시온을 중심으로 하는 총독령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하는 라플라타 총독령, 산미구엘 데 투쿠만을 중심으로 하는 투쿠만 총독령이 분리되었다. 17세기 이후로는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한 원주민 전교 활동이 농업 활동 등을 포함하여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예수회 선교소 터는 이때 건설된 것이 대부분이다. 예수회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온 반데이란테스(Bandeirantes)라 불리는 노예 상인들에게 저항하기 위해 과라니인들에게 무기를 지급했다. 이 군대는 종종 포르투갈인들을 물리치고 스페인 식민지의 변방을 방어하는 역할을 담당했다.[17]

동부 파라과이에 예수회 공회도소가 설치되어 150여년간 번성했으나 1767년에 에스파냐 왕가가 예수회를 추방했다.

로마 교황에 직속하고, 이후 스페인 왕실이나 부왕의 관리들도 쉽게 간섭할 수 없게 된 예수회의 선교지는 원시 공산주의적인 양상을 띠고, 자주 자립하는 독립 국가와 같은 존재로서, 이후 다른 지역의 인디헤나들이 겪었던 고난에는 이르지 않고 100년 가까이 평화롭게 존재했다.

1750년대 이후 과라니 전쟁에 의해 반다 오리엔탈(현재 우루과이에 해당)에서 과라니인들이 철수했다. 그 직후 1768년 스페인 왕실의 결정에 따른 예수회의 추방에 의해 예수회는 남아메리카에서 철수하기로 결정되었고, 현지의 과라니인들은 스페인·포르투갈의 직할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17]

1776년에 리오데라플라타 부왕령이 페루 부왕령에서 분리되지만, 그 후에도 파라과이는 별다른 발전 없이 세월이 흘러갔다. 파라과이 서부에서는 16세기부터 유목민인 과이쿠루족과 다른 유목민들이 스페인의 정착과 기독교에 강력하게 저항했다. 이들 대부분은 18세기와 19세기에 메스티소 인구에 흡수되었다.

3. 3. 독립과 독재

호세 가스파르 로드리게스 데 프란시아를 중심으로 한 독립 후 파라과이는 독재 체제를 유지하며 경제 발전에 힘썼다.[18] 그의 아들 C.A.로베스 또한 외국 자본을 유치하여 경제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파라과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와 삼국동맹전쟁을 벌여 1870년에 패배, 국토가 파괴되고 인구가 크게 감소했다.[21][22] 이 전쟁에서 파라과이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가 전사하고, 파라과이 남성 인구의 90%가 사망하여 수많은 전쟁 미망인이 발생했다.[24] 파라과이는 이구아수 폭포를 포함한 영토를 브라질아르헨티나에 빼앗겼다. 이후 친아르헨티나, 친브라질 세력 간 대립이 있었고, 1930년대 차코 전쟁에서 볼리비아를 격파하여 차코 지역 영유권을 되찾고 영토를 확장했다.

파라과이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


파라과이 역사, 특히 전쟁에 대한 공식적인 서술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25] 콜로라도당과 자유당은 각기 다른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1869년 아순시온 점령 당시 브라질 제국군이 파라과이 국립 문서기록소 자료를 히우 지 자네이루로 가져가 비밀로 보관했기 때문에, 파라과이의 식민 시대와 초기 역사 연구는 어려운 상황이다.

호세 가스파르 로드리게스 데 프란시아, 파라과이의 초대 독재자


파라과이는 1811년 5월 14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19] 초대 독재자 호세 가스파르 로드리게스 데 프란시아는 1814년부터 1840년 사망할 때까지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통치했다. 그는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기반한 유토피아 사회 건설을 시도했다.[18] 그는 ''엘 수프레모(El Supremo)''로 불렸다.

로드리게스 데 프란시아는 가톨릭 교회와 내각의 권력을 축소하고, 식민지 엘리트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혼혈(mixed-race) 정책을 추진, 식민지 시민 간 결혼을 금지하고 흑인, 물라토, 원주민하고만 결혼을 허용했다.[19] 그는 파라과이와 남아메리카 다른 지역과의 관계를 단절했다. 훌헨시오 예그로스 등 독립 지도자들은 쿠데타를 계획했으나 발각되어 처형되거나 종신형을 선고받았다.[20]

1864년 당시 지역 정치 지도


1840년 프란시아 사후, 군 장교들이 통치하다 1841년 카를로스 안토니오 로페스(프란시아의 조카)가 권력을 잡았다. 로페스는 파라과이를 현대화하고 외국 무역을 개방했다. 1842년 파라과이 독립을 공식 선포하고, 아르헨티나와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다. 1862년 로페스 사망 후, 그의 장남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가 권력을 승계했다.

로페스 가문은 중앙 집권적 통치를 통해 국가를 대규모 토지처럼 운영했다.[21] 정부는 모든 수출을 통제하고, 마테와 목재 제품 수출로 무역 균형을 유지했다.[22] 보호무역주의 정책으로 사회는 자급자족했고,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부채를 피할 수 있었다. 1844년 노예 제도가 폐지되었으나, 그 수는 많지 않았다.[23]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는 1862년 대통령 독재자가 되어 아버지의 정책을 계승했다. 두 사람 모두 파라과이를 "민주적이고 공화적인" 국가로 만들고자 했으나, 실제로는 교회와 대학을 포함한 국가의 모든 공공 생활을 통제했다.[23]

카를로스 안토니오 로페스는 군사, 산업을 현대화하고 우마이타 요새를 건설하여 방어를 강화했다.[24] 외국 기술자를 고용하여 철강, 섬유, 조선, 무기 산업을 발전시켰고, 전신선과 철도를 설치했다. 이비쿠이 주조 공장은 대포, 박격포, 탄환을 제조했고, 아순시온 조선소에서는 군함을 건조했다. 아파 강과 그란 차코를 따라 요새가 건설되었다.[25] 이러한 프로젝트는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 치하에서 계속되었다.

로버트 필리모어 경은 파라과이를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발전된 공화국"으로 칭했다.[26]

조지 톰슨(George Thompson)에 따르면, 로페스 정부는 비교적 좋은 정부였다. 생명과 재산이 안전했고, 범죄는 드물었으며, 대다수 사람들은 행복했다. 각 가정은 자기 땅에 집과 오두막이 있었고, 며칠 만에 충분한 담배, 옥수수, 카사바를 심었다. 모든 오두막에는 오렌지 나무 숲과 소 몇 마리가 있어, 일년 내내 필요성이 거의 없었다.[27]

1810년 5월 25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5월 혁명이 일어나자, 파라과이는 우루과이 등과 함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1811년, 파라과이는 라틴 아메리카 최초로 공식 독립을 선언했다. 1814년 호세 가스파르 로드리게스 데 프란시아가 집정관에 취임, 1816년 종신 집정관이 되었다.

프란시아는 농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장기 독재를 하며 정치적, 경제적 폐쇄와 토지 공유화를 추진했다. 스페인계 백인(크리오요)의 반란을 우려하여 과라니족과 크리오요의 집단 결혼을 장려했다. 반대파는 추방, 처형당했고, 과라니족과의 혼혈을 거부한 크리오요 계층은 망명했다. 이 시기 남미 국가들이 내전을 겪은 것과 달리 파라과이는 정치적 안정을 유지했고, 의무 교육이 시행되어 "도둑도 굶주린 사람도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 1838년 미시오네스주를 병합했다. 1840년 프란시아 사망 후 혼란이 있었으나, 1844년 카를로스 안토니오 로페스가 대통령에 취임하며 안정되었다. 그는 개방 정책으로 전환하여 근대화를 추진했다.

카를로스 로페스 시대 국토의 98%가 공유지였고, 이를 이용해 마테차와 담배를 재배, 보호 무역으로 흑자를 올렸다. 이 흑자로 공장을 건설하고, 유럽 유학생을 보내고, 1861년 철도를 개통했다. 영국 기술자를 고용, 파라과이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대외 채무가 없는 국가로서 자립적 발전을 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브라질의 압력과 내정 간섭이 심해졌고, 우루과이의 대전쟁 중 라플라타 강 봉쇄 문제로 후안 마누엘 데 로사스 군대와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외부 압력을 위협으로 여겨 강력한 군대를 조직했다.

3. 4. 20세기 이후

독립 후, 호세 가스파르 로드리게스 데 프란시아를 중심으로 독재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그의 아들 C.A.로베스 시대에도 외국 자본을 도입하여 경제를 발전시켰지만, 삼국동맹전쟁(1865~1870)에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연합군에 패배하여 국토가 파괴되고 인구가 크게 감소했다. 특히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가 이 전쟁에서 전사하였고, 파라과이 남성 인구의 90%가 목숨을 잃었다. 파라과이는 이구아수 폭포를 비롯한 영토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빼앗겼다.

1930년대 차코 전쟁에서 파라과이는 볼리비아를 꺾고 차코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되찾았다.

파라과이 역사, 특히 전쟁에 대한 공식적인 서술은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다. 콜로라도당과 자유당은 각기 다른 역사적 서술을 유지했다. 1869년 아순시온 점령 당시 브라질 제국군은 파라과이 국립 문서기록소 자료를 리우 지 자네이루로 가져가 비밀로 보관하여, 식민 시대와 초기 역사 연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1949년 콜로라도당의 페데리코 차베스(Federico Chaves)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1954년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장군의 쿠데타로 실각했다. 스트로에스네르는 군사 독재 정치를 실시하며 반대파를 탄압하고 부정선거를 통해 7번이나 재선되었다. 1980년대 후반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하려다 안드레스 로드리게스(Andrés Rodríguez) 장군의 쿠데타로 축출되었다. 로드리게스는 민주화 정책을 실시했으나, 1992년 대선에서 부정을 저질렀다. 자신이 지지한 와스모시 몬띠(Wasmosy Monti)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39년 만에 민정이 복귀되었다.

와스모시는 혼란을 수습하려 했으나 군부의 방해와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1998년 라울 꾸바스(Raúl Cubas) 대통령은 부통령 암살 등의 책임으로 7개월 만에 파면당했다. 1999년 곤살레스 마끼(González Macchi)가 권력을 승계했지만 뇌물 수수 등으로 지지율을 잃었다. 2003년 니까노르 두아르떼(Nicanor Duarte)는 부패 추방으로 높은 지지율을 얻었으나 경제 문제로 지지율이 하락했다. 2008년 페르난도 루고가 대통령이 되어 61년 만에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2012년 루고 대통령은 탄핵되고 페데리코 프랑코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2013년 오라시오 카르테스가 당선되어 5년 만에 콜로라도당 정권이 복귀했다.

1864년 파라과이는 블랑코당 정부(로페스의 동맹)를 지원하기 위해[28] 브라질이 우루과이를 침공하자 파라과이 전쟁이 발발했다.[29] 공화국 원수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Francisco Solano López)가 이끄는 파라과이군은 1864년 마토 그로소 공격으로 보복했고, 1865년 아르헨티나에 선전포고했다.[30] 아르헨티나 공화국(Argentine Republic), 브라질 제국(Empire of Brazil), 우루과이는 1865년 비밀 삼국 동맹 조약을 체결했다.[30]

1866년 투유티 전투(Battle of Tuyutí)에서 파라과이군은 큰 피해를 입었다.[31] 파라과이군은 맹렬히 저항했지만, 1870년 세로 코라 전투(Battle of Cerro Corá)에서 패배하고 솔라노 로페스는 전사했다.[31] 전쟁 원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31]

1866년 5월 투유티 전투(Battle of Tuyutí)


파라과이는 영토의 25~33%를 잃고 막대한 전쟁 부채를 졌다.[32] 파라과이 인구의 최소 50%가 전쟁 중 사망했다.[32] 1869년 브라질 제국군은 파라과이 국립문서보관소를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로 옮겼고,[33] 브라질의 전쟁 기록은 기밀로 유지되어 파라과이 역사 연구를 어렵게 만들었다.[34]

차코 전쟁(1932~1935)에서 볼리비아는 분쟁 지역 대부분을 파라과이에 빼앗겼다.


1904년 자유당 혁명이 일어나 자유당 통치가 시작되었으나, 1954년까지 31명의 대통령이 무력으로 축출되는 등 정치적 불안정이 이어졌다.[35] 1922년에는 파라과이 내전이 발발했다.[35]

1930년대 초 차코 전쟁에서 파라과이는 볼리비아를 물리치고 분쟁 지역 대부분에 대한 주권을 확립했다.[36] 1936년 2월 혁명으로 라파엘 프랑코(Rafael Franco) 대령이 집권했다.[36] 1940년부터 1948년까지는 히기니오 모리니고(Higinio Morínigo) 장군이 통치했으며, 1947년 파라과이 내전이 일어났다.[36]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너(Alfredo Stroessner)는 1954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36]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파라과이는 나치 잔당들의 은신처가 되었다.[36]

1954년부터 1989년까지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너 독재 정권이 이어졌다.[37] 스트로에스너 정권은 경제 발전을 이루었지만, 인권 침해가 심각했다.[37] 파라과이는 콘도르 작전에 참여했고,[38]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고문과 사망이 빈번했다.[38]

1980년대 콜로라도당 내 분열, 스트로에스너의 고령화, 경기 침체, 국제적 고립 등으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39] PLRA 지도자 도밍고 라이노(Domingo Laíno)는 야당의 중심 인물이었고, 정부는 라이노의 귀국을 폭력적으로 막았다.[39] 1987년 스트로에스너 정권은 라이노의 귀환을 허용했고, 라이노는 시위를 조직하고 야당 내 내분을 줄이는 데 앞장섰다.[40] 스트로에스너는 시위를 해산하기 위해 경찰과 자경단을 이용했고, 많은 야당 지도자들이 투옥되거나 괴롭힘을 당했다.[40] 1988년 총선에서 스트로에스너는 89% 득표율로 재선되었지만, 야당은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했다.[40]

3. 5. 민주화 이후

1949년 콜로라도당의 페데리코 차베스(Federico Chaves)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5년 후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Alfredo Stroessner) 장군의 쿠데타로 물러났다. 스트로에스네르는 군사독재정치를 실시하며 반대자를 탄압하고 파라과이에서 쫓아내는 등 가혹한 통치를 하였으며, 부정선거를 통해 7번이나 재선되었다. 1980년대 후반 아들 구스타보에게 세습을 시도하다가 안드레스 로드리게스(Andrés Rodríguez) 장군의 쿠데타로 추방되었다.

로드리게스 대통령은 정치, 법률, 경제 개혁을 실시하고 국제 사회와의 관계 개선을 추진했다.[41] 1992년 6월 헌법은 민주적인 정부 시스템을 수립하고 기본적인 인권 보호를 크게 개선했다.[41] 1993년 5월, 후안 카를로스 바스모시(Juan Carlos Wasmosy)가 파라과이 최초의 민간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거의 40년 만에 민정 이양이 이루어졌다.[41]

와스모시는 당시 혼란스러웠던 이미지를 완화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지만, 군의 방해와 경제 사정 악화 등으로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1996년 4월, 와스모시 대통령은 군부 실세 리노 오비에도(Lino Oviedo)를 해임했고, 오비에도는 체포되었다. 1998년 라울 쿠바스(Raúl Cubas)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아르가냐 부통령 암살과 오비에도 장군의 권력 남용 등에 대한 책임으로 7개월 만에 파면당하고 말았다. 1999년 곤살레스 마키(González Macchi)가 대통령직을 승계받았지만, 뇌물 수수와 국가 이미지 실추 등으로 지지율을 잃었다.

2003년 니카노르 두아르테(Nicanor Duarte)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부패 추방으로 높은 지지율을 얻었으나, 경제 상황을 해결하지 못해 지지율이 떨어졌다.

2008년 페르난도 루고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61년 만에 좌파 정권 복귀를 이루었고, 역사적 승리를 거두었다.[42] 루고는 41%에 가까운 득표율로, 콜로라도당의 블랑카 오벨라르(Blanca Ovelar)는 약 31%에 그쳤다.[42] 퇴임하는 니카노르 두아르테(Nicanor Duarte Frutos) 대통령은 이 순간을 국가 역사상 처음으로 정부가 야당에 권력을 합헌적이고 평화적으로 이양한 시점으로 칭찬했다. 루고 정부는 부패 감소와 경제 불평등 해소를 두 가지 주요 목표로 설정했다.[43]

|thumb|오라시오 카르테스(Horacio Cartes) 전 대통령 취임식, 2013년 8월 15일]]

2012년 6월, 의회는 루고 대통령 탄핵을 의결하여 페르난도 루고 탄핵(Impeachment of Fernando Lugo)이 발생하였다. 루고의 라이벌들은 경찰과 농민 간 무장 충돌에서 17명이 사망한 것에 대해 그를 비난했다.[46] 루고 지지자들은 이 결정을 "정치적으로 동기가 부여된 쿠데타"라고 항의했다.[45] UNASUR(UNASUR)와 다른 이웃 국가들은 루고의 파면을 쿠데타로 간주했다.[47] 그러나 미주기구(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는 탄핵 절차가 파라과이 헌법(Constitution of Paraguay)에 따라 진행되었기 때문에 쿠데타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48]

2013년 8월 15일 오라시오 카르테스가 당선되어, 5년 만에 콜로라도당 정권 교체를 따라 복귀하게 되었다.[49] 2018년 8월 15일부터는 마리오 압도 베니테스가 파라과이 대통령을 역임하고 있다.[50] 두 사람 모두 보수 성향의 콜로라도당 출신이다.[50] 2023년 5월, 오랫동안 집권해 온 콜로라도당의 산티아고 페냐가 대선에서 승리하여 마리오 압도의 뒤를 이어 차기 파라과이 대통령이 되었다.[53] 2023년 8월 15일, 산티아고 페냐가 파라과이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했다.[54]

4. 정치

1811년에 첫 헌법이 제정되었으며 1992년 6월 20일에 현행 신헌법이 발효되었다. 정치 체제는 대통령제로,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며 5년 단임제이다. 의회는 양원제로, 상원 45석, 하원 80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회 선거는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실시되며, 상원은 전국구 비례대표제, 하원은 지방별 비례대표제로 선출되고, 임기는 5년이다. 주요 정당으로 현 여당인 홍당(PC: Partido Colorado)과 야당인 급진정통자유당(PLRA: Partido Liberal Radical Autentico) 등이 있다. 현 대통령은 2013년 8월 15일에 취임한 오라시오 카르테스이며, 총체적 국가개혁을 천명하고, 최우선 국정과제로 경제성장과 빈곤퇴치, 정치개혁을 선정하였다. 현재 파라과이는 무토지농민에 대한 토지분배문제와 빈곤심화에 따른 치안불안이 핵심이슈이다.

대외적으로 파라과이는 반공·자유주의 국가와의 제휴 강화를 기본방침으로 하며, 중남미 여러 나라, 특히 메르코수르(MERCOSUR) 국가와의 관계 강화를 중심으로 한다. 정치적으로는 친서방 반공국가였으나, 1989년 로드리게스(Rodriguez) 대통령 집권 이후 소련 해체 등의 여파로 공산권이었던 동구권과도 외교관계 수립하였다. 미주기구(OAS), 리오그룹 등 역내 기구와의 협력증진을 중시하고 있으며, 1991년 3월 남미공동시장(MERCOSUR)의 출범에 따라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등 역내 회원국과 제반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볼리비아, 칠레 등 인접국과 선린관계를 추구하고 있다.

파라과이는 대의 민주주의 공화국으로, 다당제와 삼권분립을 채택하고 있다. 행정부의 권력은 대통령이 행사하며,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자 정부 수반이다. 입법권은 국회의 양원이 행사한다. 사법부는 여러 법원과 민법 법원, 그리고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에 있으며, 이들은 모두 행정부와 입법부로부터 독립적이다.

1947년 내전 이후 파라과이 정치는 보수적인 콜로라도당이 일반적으로 지배해 왔다.

}}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으로 실권을 갖는다. 임기는 5년이며 중임은 금지된다. 2013년부터 대통령직에 있었던 오라시오 카르테스(Horacio Cartes)는 2018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재선을 가능하게 하는 헌법 개정 절차를 진행했지만[144] 대규모 반대 운동이 일어나 철회되었다.

선거는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가 각각 페어를 이루어 출마하며, 국민은 직접 선거를 통해 여러 후보 조합 중 하나를 선택한다. 대통령이 사망이나 탄핵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면 부통령이 대통령에 승격하여 잔여 임기를 수행한다. 총리직은 없으며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한다.

의회는 양원제이다. 상원은 전국구에서 45석을 선출하고, 하원은 18개 선거구로 나누어 80석을 선출한다. 양원 모두 의원 임기는 5년이며 대통령 선거와 같은 날 선거가 실시된다. 2023년 4월 30일 실시된 지난 투표 결과 정당별 의석수는 다음과 같다.

;상원


  • 국민공화협회(일명: 콜로라도당(Partido Colorado)): 23석
  • 좌파 연합: 12석
  • (PCN): 5석
  • : 2석
  • : 1석
  • 광범위 연합(구아수 전선): 1석
  • Yo Creo 운동: 1석

;하원

  • 국민공화협회(일명: 콜로라도당): 48석
  • 좌파 연합: 23석
  • 국민십자군당: 4석
  • 애국당: 1석
  • 국민연합당: 2석
  • Yo Creo 운동: 2석


전통적으로 파라과이 정치사의 대부분은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가 언급했듯이 독재 또는 무정부 상태 중 하나였다. 그러나 스트로에스네르(Stroessner)의 실각 이후로는 상황이 다소 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하며 문제가 되고 있다.

== 군사 ==

파라과이 군대육군, 해군(해군 항공대와 해병대 포함), 그리고 공군으로 구성되어 있다.[59] 파라과이 헌법은 파라과이 대통령을 군의 최고 사령관으로 규정하고 있다.[59] 파라과이는 징병제를 시행하며, 18세 남성과 18세가 되는 해의 17세 남성은 1년간 현역 복무를 해야 한다. 헌법은 양심적 병역 거부를 허용하지만, 아직 관련 법률은 제정되지 않았다.

앙콘 해병대 기지에 있는 파라과이 해병대


파라과이는 지역 테러 및 마약과의 전쟁에서 아르헨티나, 브라질, 미국과 협력하고 있다.[60] 2005년 7월, 미국의 특수부대가 합동 훈련 및 인도주의적 작전 지원을 위해 파라과이의 마르시알 에스티가리비아 공군 기지에 도착하기 시작했다.[61][62] 2019년, 아순시온에서는 "삼국 접경 지역"에서의 국제 범죄와 테러 대응을 위해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미국 간의 협력을 증진하는 지역 안보 메커니즘(RSM)의 첫 번째 회의가 개최되었다.[63]

2024년 세계 평화 지수에 따르면 파라과이는 세계에서 73번째로 평화로운 국가이다.[64]

4. 1. 군사

파라과이 군대육군, 해군(해군 항공대와 해병대 포함), 그리고 공군으로 구성되어 있다.[59] 파라과이 헌법은 파라과이 대통령을 군의 최고 사령관으로 규정하고 있다.[59] 파라과이는 징병제를 시행하며, 18세 남성과 18세가 되는 해의 17세 남성은 1년간 현역 복무를 해야 한다. 헌법은 양심적 병역 거부를 허용하지만, 아직 관련 법률은 제정되지 않았다.

파라과이는 지역 테러 및 마약과의 전쟁에서 아르헨티나, 브라질, 미국과 협력하고 있다.[60] 2005년 7월, 미국의 특수부대가 합동 훈련 및 인도주의적 작전 지원을 위해 파라과이의 마르시알 에스티가리비아 공군 기지에 도착하기 시작했다.[61][62] 2019년, 아순시온에서는 "삼국 접경 지역"에서의 국제 범죄와 테러 대응을 위해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미국 간의 협력을 증진하는 지역 안보 메커니즘(RSM)의 첫 번째 회의가 개최되었다.[63]

2024년 세계 평화 지수에 따르면 파라과이는 세계에서 73번째로 평화로운 국가이다.[64]

5. 대외 관계

메르코수르 회원국으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주변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세기 전반에는 영국 자본을 배경으로 한 아르헨티나의, 20세기 후반에는 미국 자본을 배경으로 한 브라질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2005년 5월부터 그랑 차코의 마리스칼 에스티가리비아/Mariscal Estigarribiaes미국 공군이 주둔하고 있는데, 이는 볼리비아 산타크루스 주의 자치 운동에 미국이 개입하기 위한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이 미국군 주둔은 주변국들과의 외교 문제가 되고 있다.

파라과이가 외교 사절을 파견하고 있는 국가 목록


==== 대한민국과의 관계 ====

파라과이는 1962년에 대한민국과 수교하였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수교하지 않았다. 대한민국과 문화협정(1973), 과학·기술협력협정(1975), 무역협정(1981), 사증면제협정(1982), 투자보장협정(1992), 범죄인 인도협정(1996) 등을 체결하였다. 전통적으로 대한민국에 대해 우호정책을 취하고 각급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입장을 적극 지지해왔으며, 자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기업의 투자진출 및 경제, 기술, 교육 등의 분야에서 대한민국과의 실질적인 협력관계 증진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 중화민국과의 관계 ====

파라과이는 현재 남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중화민국과 수교중인 나라이다. 수도 아순시온에 주 파라과이 중화민국 대사관이 설치되어 있다. 페르난도 루고 집권 시기에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는 방안을 검토하였으나, 중화인민공화국양안 관계 개선 상황에서 중화민국 측을 배려하여 제안을 우회적으로 거절하였다.[170]

스트로에스네르 정권 시대의 반공주의 정책이 체제 붕괴 후에도 계속되어 남미에서 유일하게 중화민국(대만)과 국교를 맺고 있지만, 최근에는 경제적 측면에서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국교 수립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화민국의 수교국 중에서는 면적이 가장 크다.[145][146] 주일 파라과이 대사관이 홍콩마카오 외교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146]

2020년 파라과이에 코로나19가 확산되었다. 2021년 3월, 중화인민공화국 관계자를 사칭하는 업자가 COVID-19 백신 제공 조건으로 중화민국(대만)과의 단교를 요구했지만, 이후 중화민국(대만)이 파라과이의 백신 확보에 협력하고 있다.[147]

2022년 9월 28일, 파이낸셜 타임스마리오 아브도 베니테스 파라과이 대통령이 대만에 대해 외교 관계 유지를 위해 10억 달러투자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148]

2023년 8월 15일 산티아고 페냐 대통령 취임식에는 중화민국의 부총통 라이칭더가 참석했다. 라이 부총통은 "파라과이와 대만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66년 이상 이어온 우정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SNS에 게시하며 앞으로도 양국 관계가 더욱 발전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143]

==== 일본과의 관계 ====

일본과 파라과이는 전통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12년 일본인 사코다 켄조(佐幸田兼蔵)가 푸에르토 카사도의 타닌 공장에 근무하면서 일본계 파라과이인 이주가 시작되었다.[149] 1953년 일파(日芭) 택치(拓殖) 조합은 일본인들의 파라과이 남부 이주를 지원했고,[149] 1959년부터 일본 해외이주진흥회사는 이타푸아 시에 농업 이주지를 개척했다.[149]

1959년 파라과이 정부와 일본 정부는 이민 협정을 맺어 1989년까지 8만 5천 명의 일본인 농부를 이민시키기로 합의했으나, 일본 경제 회복으로 실제 이민자는 7천 명에 그쳤다.[149] 1989년 이민 협정은 무기한 연장으로 개정되어 8만 5천 명의 일본인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150] 1976년 이후 일본은 파라과이의 주요 경제 원조국이다.(2004년, 2011년, 2014년 제외)[150]

1993년 파라과이인에 의해 설립된 NIHON GAKKO(일본학교)가 있다. 야자키 총업, 조에이 조선, 스미토모 전장 등 일본 제조업체들이 파라과이에 진출해 있으며, 메르코수르를 통한 무관세 수출 সুবিধা 등 경제적 이점을 활용하고 있다.[151]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계 파라과이인 농가들은 “100만 정 두부 프로젝트”를 통해 일본에 대두와 제조 가공비를 지원했다.[153]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파라과이로 이주하는 일본인이 증가하기도 했다.[154][155]

2016년 파라과이에서 일본인 이주 80주년 기념식이 열렸고, 일본에서는 마코 내친왕이 참석했다.[156] 2018년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 총리대신으로서 처음으로 파라과이를 방문하여 마리오 아브도 베니테스대통령과 회담하고, 의료기기 제공 등 인프라 협력에 합의했다.[157][158] 아베 신조 총리는 현지 일본계 파라과이인과의 면담에서 “일본과 파라과이는 지리적 거리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가까이 느낄 수 있다. 일본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157][158]

파라과이는 일본에서 가장 먼 나라 중 하나이지만, 가장 친일적인 나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152]

==== 미국과의 관계 ====

미국과의 관계는 매우 좋은 편이다. 무역 분야에서는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투자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5. 1. 대한민국과의 관계

파라과이는 1962년에 대한민국과 수교하였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수교하지 않았다. 대한민국과 문화협정(1973), 과학·기술협력협정(1975), 무역협정(1981), 사증면제협정(1982), 투자보장협정(1992), 범죄인 인도협정(1996) 등을 체결하였다. 전통적으로 대한민국에 대해 우호정책을 취하고 각급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입장을 적극 지지해왔으며, 자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기업의 투자진출 및 경제, 기술, 교육 등의 분야에서 대한민국과의 실질적인 협력관계 증진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5. 2. 중화민국과의 관계

파라과이는 현재 남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중화민국과 수교중인 나라이다. 수도 아순시온주파라과이 중화민국 대사관이 설치되어 있다. 페르난도 루고 집권 시기에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는 방안을 검토하였으나, 중화인민공화국양안 관계 개선 상황에서 중화민국 측을 배려하여 제안을 우회적으로 거절하였다.[170]

스트로에스네르 정권 시대의 반공주의 정책이 체제 붕괴 후에도 계속되어 남미에서 유일하게 중화민국(대만)과 국교를 맺고 있지만, 최근에는 경제적 측면에서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국교 수립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화민국의 수교국 중에서는 면적이 가장 크다.[145][146] 주일 파라과이 대사관이 홍콩마카오 외교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146]

2020년 파라과이에 코로나19가 확산되었다. 2021년 3월, 중화인민공화국 관계자를 사칭하는 업자가 COVID-19 백신 제공 조건으로 중화민국(대만)과의 단교를 요구했지만, 이후 중화민국(대만)이 파라과이의 백신 확보에 협력하고 있다.[147]

2022년 9월 28일, 파이낸셜 타임스마리오 아브도 베니테스 파라과이 대통령이 대만에 대해 외교 관계 유지를 위해 10억 달러투자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148]

2023년 8월 15일 산티아고 페냐 대통령 취임식에는 중화민국의 부총통 라이칭더가 참석했다. 라이 부총통은 "파라과이와 대만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66년 이상 이어온 우정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SNS에 게시하며 앞으로도 양국 관계가 더욱 발전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143]

5. 3. 일본과의 관계

일본과 파라과이는 전통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12년 일본인 사코다 켄조(佐幸田兼蔵)가 푸에르토 카사도의 타닌 공장에 근무하면서 일본계 파라과이인 이주가 시작되었다.[149] 1953년 일파(日芭) 택치(拓殖) 조합은 일본인들의 파라과이 남부 이주를 지원했고,[149] 1959년부터 일본 해외이주진흥회사는 이타푸아 시에 농업 이주지를 개척했다.[149]

1959년 파라과이 정부와 일본 정부는 이민 협정을 맺어 1989년까지 8만 5천 명의 일본인 농부를 이민시키기로 합의했으나, 일본 경제 회복으로 실제 이민자는 7천 명에 그쳤다.[149] 1989년 이민 협정은 무기한 연장으로 개정되어 8만 5천 명의 일본인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150] 1976년 이후 일본은 파라과이의 주요 경제 원조국이다.(2004년, 2011년, 2014년 제외)[150]

1993년 파라과이인에 의해 설립된 NIHON GAKKO(일본학교)가 있다. 야자키 총업, 조에이 조선, 스미토모 전장 등 일본 제조업체들이 파라과이에 진출해 있으며, 메르코수르를 통한 무관세 수출 সুবিধা 등 경제적 이점을 활용하고 있다.[151]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계 파라과이인 농가들은 “100만 정 두부 프로젝트”를 통해 일본에 대두와 제조 가공비를 지원했다.[153]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파라과이로 이주하는 일본인이 증가하기도 했다.[154][155]

2016년 파라과이에서 일본인 이주 80주년 기념식이 열렸고, 일본에서는 마코 내친왕이 참석했다.[156] 2018년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 총리대신으로서 처음으로 파라과이를 방문하여 마리오 아브도 베니테스대통령과 회담하고, 의료기기 제공 등 인프라 협력에 합의했다.[157][158] 아베 신조 총리는 현지 일본계 파라과이인과의 면담에서 “일본과 파라과이는 지리적 거리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가까이 느낄 수 있다. 일본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157][158]

파라과이는 일본에서 가장 먼 나라 중 하나이지만, 가장 친일적인 나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152]

5. 4. 미국과의 관계

미국과의 관계는 매우 좋은 편이다. 무역 분야에서는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투자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6. 지리

파라과이는 파라과이 강을 기준으로 동부 지역(공식적으로는 동부 파라과이''Paraguay Oriental''이며, 파라네냐''paraneña''라고도 한다)과 서부 지역(공식적으로는 서부 파라과이''Paraguay Occidental''이며 차코''Chaco''라고도 한다.)으로 나뉜다.[162] 동부는 국토의 40%, 인구의 약 97%를 차지하며, 구릉과 평원이 혼재하는 지형으로 과 비옥한 대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만바이 산맥이 브라질과의 국경을 형성한다.[162] 서부는 인구 밀도가 매우 낮으며, 건조한 희소림 지대와 아르헨티나와의 국경을 따라 흐르는 필코마요 강 유역의 습지대를 이룬다.[162] 강변에는 북유럽계나 러시아계 이민자와 원주민이 거주하며, 차코 지역 전체 인구는 약 10만 명 정도이다.[162]



파라과이 전도. 국토 남부에 범아메리카 고속도로(이중 적선)의 지선이 달린다


남동부 국경은 파라나 강이며, 브라질과 파라과이 사이에 이타이푸 발전소가 있다. 이 댐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수력 발전소로 파라과이에 필요한 모든 전력을 공급한다. 파라과이는 브라질과 이타이푸 댐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이 댐 전력에서 50%의 권리를 가진다. 파라과이는 여기서 생산되는 전력의 15% 정도만 소비하기 때문에[169] 나머지 전력은 브라질에 판매한다. 야시레타 댐은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가 공유하고 있다.

지형은 동쪽에는 초지와 숲이 울창한 언덕으로 되어 있고, 서쪽은 저지의 습지 평야이다.

이 지역의 기후는 온대 기후로, 동부 지역은 강수량이 상당하나 서쪽 끝으로는 반-건조 기후를 보인다. 파라과이는 알토 파라나 대서양 삼림, 차코, 세라도, 습윤 차코, 판타날, 파라나 범람 초원 등 여섯 개의 육상 생태 지역을 포함한다.[55] 2019년 산림 경관 무결성 지수 평균 점수는 172개국 중 74위인 6.39/10이이었다.[56] 과라니 대수층은 이 지역의 중요한 외류 분지이다.[57]

파라과이는 내륙국이지만, 주목할 만한 호숫가 해변이 여러 곳 있다.[58]

나순다이 국립공원, 파라과이 남부.

6. 1. 기후

파라과이의 전반적인 기후는 열대에서 아열대에 이른다. 이 지역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파라과이는 건기와 우기만 있다. 바람은 파라과이의 날씨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10월부터 3월까지는 북쪽 아마존 분지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고, 5월부터 8월까지는 안데스 산맥에서 차가운 바람이 분다.

자연적인 장벽 역할을 하는 산맥이 없기 때문에 바람은 161 km/h의 속도에 달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짧은 시간 안에 기온이 크게 변하는 원인이 된다. 4월부터 9월 사이에는 기온이 때때로 영하로 떨어진다. 1월은 가장 더운 여름 달이며, 일 평균 기온은 28.9°C이다.

강수량은 전국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며, 동부 지역은 강수량이 많고, 서쪽 끝은 반건조 조건을 보인다. 동쪽 숲 지역은 연평균 170cm의 강우량을 기록하는 반면, 서쪽 차코 지역은 일반적으로 연평균 50cm에 불과하다. 서쪽의 강우는 불규칙적이고 빠르게 증발하여 지역의 건조함에 기여한다.

남동부는 열대 우림이 울창하고 토양이 비옥한 데다 강수량이 풍부하고(연 1,700mm), 농목축업이 발달하여 전체 인구의 96%가 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그 반면, 북서부는 완전한 평원이지만 비가 불규칙하게 내릴 뿐만 아니라, 건조한 초원과 밀림으로 덮여 있고 투수성(透水性)이 강한 사력층(砂礫層)으로 이루어진 불모지대이다. 연평균기온은 24.5°C이다.

쾨펜 기후 구분

6. 2. 행정 구역

파라과이는 17개의 주와 1개의 수도구(아순시온)로 구성되어 있다.[4] 파라과이는 서부 지역(차코)과 동부 지역으로 나뉘며, 서부 지역은 보케론 주, 알토 파라과이 주, 프레시덴테 아예스 주를 포함하고, 동부 지역은 나머지 주들과 수도구를 포함한다.[4] 파라과이강 동쪽에 인구의 98%가 살고 있다.[4]

ISO 3166-2:PY주도인구 (2022년 인구조사)면적 (km2)
ASU수도구아순시온462,2411171
1콘셉시온콘셉시온206,18118,05714
2산 페드로산 페드로355,17520,00723
3코르디예라카아쿠페268,0374,95320
4과이라비야리카179,5553,99118
5카아구아수코로넬 오비에도431,51911,47922
6카아사파카아사파139,4799,50311
7이타푸아엔카르나시온449,64216,53630
8미시오네스산 후안 바우티스타111,1429,56810
9파라과리파라과리200,4728,71018
10알토 파라나시우다드 델 에스테763,70214,89822
11센트랄아레구아1,883,9272,66519
12녜엠부쿠필라르76,71912,15516
13아맘바이페드로 후안 카바예로179,41212,9356
14카닌데유살토 델 과이라191,11414,67716
15프레시덴테 아예스비야 아예스123,31372,91710
16알토 파라과이푸에르테 올림포17,19582,3944
17보케론필라델피아71,07891,6764
파라과이아순시온6,109,903406,796273



주요 도시로는 아순시온(수도), 시우다드 델 에스테가 있다.

7.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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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이는 불법 거래와 관련된 이미지가 강했지만, 2000년대 이후 대두, 옥수수, 쇠고기 생산 등 합법적인 사업 성장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파라과이 중앙은행(BCP)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중국-파라과이-브라질 삼각 무역(대부분 브라질이 밀수 및 횡령으로 간주) 관련 수출은 파라과이 GDP의 22%를 차지했으나, 2016년에는 12%로 감소했다. 합법적인 고용을 통한 세수 증가로 파라과이는 열악했던 인프라를 개선할 수 있었다. 파라과이는 수출 기반의 경제 개발 정책을 추진하며, 브라질 시장 의존도가 높다. 삼각 무역의 본질은 중국산 제품을 브라질을 주요 목적지로 수출하는 것이다. 수출되는 에너지는 주로 이타이푸 댐에서 생산되는 수력 발전 잉여 에너지이며, 브라질이 주요 구매국이다. 또한 주요 투자자가 브라질인인 마킬라(maquilas)는 브라질에서 제품에 대한 큰 소비 시장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파라과이 개발 전략의 이 세 가지 기둥에는 재수출이라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농산물의 경우 파라과이산 제품의 수출이다.[65]

2010년대 파라과이 경제는 대두 생산에 크게 의존하며 평균 4% 성장했다. 그러나 경제 성장은 빈곤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며, 2018년 공식 통계에 따르면 인구의 26% 이상이 빈곤층이었다. ''뉴욕 타임즈''는 파라과이가 "최근 몇 년 동안 부자와 빈자 간의 격차가 가장 크게 확대된 라틴 아메리카 국가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시골 지역에서는 농지의 85%가 2.6%의 소유주가 소유하고 있으며, 대두 회사를 위해 원주민들이 쫓겨나기도 했다.[66][67]

대두 수출 시장은 카길(Cargill), 아처 다니엘스 미들랜드(Archer Daniels Midland), 번지(Bunge Limited) 등 다국적 기업이 대부분 장악하고 있어 파라과이 국민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적다. 수출업체와 토지 소유주는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 2018년 ECLAC(유엔 기구) 연구에 따르면 파라과이는 기업이 국가 예산에 참여하는 비율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이다.[68]

대두밭에는 농약과 기타 화학 물질이 대량으로 사용된다. 기업들은 파라과이의 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며, 농약은 환경을 오염시킨다. 2019년 유엔 인권위원회는 파라과이에 대량의 농약 살포 및 주민 중독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사회학자 토마스 팔라우(Tomás Palau)는 "높은 수준의 정치 부패, 극도로 취약한 제도, 높은 수준의 사회적 취약성, 정치적 결정에 대한 경제적 이익의 전지전능함, 남부 콘(Southern Cone)의 지리적 중심부에 위치하고 풍부한 천연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파라과이를 제국주의적 지정학적 이익의 매력적인 표적이 되게 합니다"라고 말한다.[69] 학자 호세 루이스 인스프란(José Luis Insfrán) 또한 파라과이 정치인들이 "대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으며, 정책을 시행하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한다.

2005년 국제통화기금(IMF)은 파라과이 근로자 중 10% 미만만이 연금 제도에 참여한다고 밝혔으며, 그중 95%는 두 기관에서 관리한다. 두 기관 모두 근로자 기여금에 기반한 부과 방식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첫 번째 기관인 Instituto de Previsión Social (Paraguay)/Instituto de Previsión Social (Paraguay)es는 민간 부문 근로자를 위한 것이고, caja fiscales는 공무원(대학교수, 교사, 사법직원, 군인 및 경찰 포함)과 차코 전쟁 참전 용사(또는 그 후손)를 위한 것이다.[70]

19세기 독일 이민자들이 세운 파라과이에서 가장 중요한 휴양 도시 중 하나인 산 베르나르디노는 파라과이에서 가장 높은 구매력 평가를 자랑합니다.


파라과이의 시장 경제는 수입 소비재를 인접국에 재수출하는 것과 수천 개의 소규모 기업과 도시 노점상의 활동을 특징으로 하는 대규모 비공식 부문이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 동안 파라과이 경제는 에너지, 자동차 부품 및 의류 산업을 중심으로 극적으로 다양화되었다.[71]

파라과이의 가장 중요한 도시 지역은 아르헨티나-파라과이 국경을 따라 위치해 있다. 아순시온, 알베르디, 엔카르나시온, 필라르, 그리고 세계에서 세 번째로 중요한 자유 무역 지대인 시우다드 델 에스테(마이애미와 홍콩에 이어)[72][73]가 있다. 특히 농촌 지역의 상당수 인구는 농업 활동, 특히 자급자족 농업에 의존하여 생계를 유지한다. 비공식 부문의 중요성 때문에 정확한 경제 지표를 얻기가 어렵다. 세계적인 원자재 수요 증가와 고가격, 그리고 좋은 날씨가 파라과이의 원자재 수출 확대를 뒷받침하면서 2003년부터 2013년까지 파라과이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다.

2012년 파라과이 정부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메르코수르(FOCEM) 시스템을 도입했다.[74]

파라과이 중앙은행은 파라과이의 최고 통화 당국이자 재정 및 경제에 대한 국가 관리 기관이다. 본부는 아순시온의 카르멜리타스 지역에 있다.

메르코수르(Mercosur), 남미공동시장(남미공동체)(Mercado Común del Sur) 회원국이다. 2008년 경제성장률은 5.8%였으며, 농업 성장률은 10.5%로 높았다. 농업은 GDP의 27%, 수출의 84%를 차지한다. 그러나 날씨와 시장 상황에 좌우되는 농업 구조는 인구의 40%에 달하는 빈곤층을 양산하고 있다.

파라과이는 내륙국이지만 파라과이 강과 파라나 강을 통해 대서양으로 진출할 수 있으나, 무역의 대부분(GDP의 38%)을 이웃 국가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와의 교역에 의존하고 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와의 협정에 따라 파라과이는 각국에 자유항을 보유하고 있다.

파라과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인에 의한 국경 지역 토지 매입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외국인의 토지 소유가 자유롭다. 하지만 규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에너지: 수력발전 99.9%(2002년 기준) - 이타이푸 댐(브라질과 공동 개발), 야시레타 댐(아르헨티나와 공동 개발)

2008년 8월 출범한 루고 정부는 2010년 7월 12일, 민간 부문의 월별 법정 최저임금을 7% 인상하여 317달러로 하는 법령을 발표했다. 당시 노동조합은 최저임금 10% 인상을 요구하며 정부와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기업 단체들은 임금 인상이 생산 비용을 증가시켜 고용을 어렵게 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 산업 ===

파라과이는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대두 생산국이며,[75] 두 번째로 큰 스테비아 생산국이자 아홉 번째로 큰 쇠고기 수출국이다.[76][77] 2018년에는 대두 외에도 옥수수사탕수수를 대량 생산하여 세계 21위 생산국에 올랐다. 다른 중요한 농작물로는 카사바, , , 오렌지, 마테차, 그리고 수수가 있다. 축산업에서는 2020년 48만 톤의 쇠고기를 생산하여 세계 26위 생산국이었다.[78]

대두 농업은 주로 브라질 사람들에 의해 도입되었다. 2019년 파라과이 대두 및 쌀 생산자의 거의 70%는 브라질 사람들이거나 브라질 사람들의 후손(소위 브라시구아이오스)이었다. 최초의 브라질 생산자들은 1980년대에 파라과이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브라질 사람들의 유입 이전에는 파라과이의 많은 토지가 경작되지 않았다.[79][80][81][82][83][84][85]

경작 가능한 토지의 80% 이상은 토지 소유자의 2.6%가 소유하고 있다.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너 독재 정권(1954~1989) 시절, 농지법 위반으로 거의 800만 헥타르가 정권 지지자들에게 불법적으로 할당되었고, 국가는 이 불법적인 부의 수혜자를 밝히기 위해 그 이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토지 소유자에는 장군, 사업가, 정치인, 전직 대통령, 니카라과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이예 그리고 심지어 집권당인 콜로라도당까지 포함된다. 1989년 스트로에스너 정권 몰락 이후 130명이 넘는 농민 지도자들이 암살당했다.[86]

세계은행은 생산 총액을 기준으로 매년 최대 생산국을 발표합니다. 2019년 목록에 따르면, 파라과이는 세계에서 79번째로 산업 가치가 높은 국가(69억 달러)였다.[87] 2018년에는 세계 7위의 대두유 생산국이었습니다.[88]

파라과이 광업은 파라과이 국내총생산(GDP)의 약 25%를 차지하고 노동력의 약 31%를 고용하고 있다. 시멘트, 철광석, 강철 생산은 파라과이 산업 전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제약 산업에서 파라과이 기업들은 현재 국내 소비량의 70%를 충족하고 있으며 의약품 수출을 시작했다.[89] 식용유, 의류, 유기농 설탕, 육류 가공, 강철 생산에서도 강력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90]

2003년 제조업은 GDP의 13.6%를 차지했으며, 2000년에는 노동 인구의 약 11%를 고용했다. 파라과이의 주요 제조업은 식품 및 음료이다. 목재 제품, 종이 제품, 가죽 및 모피, 비금속 광물 제품도 제조업 총액에 기여한다. 1990년대 제조업 GDP의 꾸준한 성장은 2002년과 2003년 연간 성장률이 2.5%로 증가하는 기반을 마련했다.[91] 파라과이는 2024년 글로벌 혁신 지수에서 93위를 기록했다.[92]

메르코수르 회원국 중 하나인 파라과이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은 농업이며, 파라과이는 세계 3위의 대두 수출국이다. 주요 수출품은 대두, 밀, 농축산물, 전력이다. 최근에는 감미료, 건강식품, 화장품 원료로 알려진 스테비아 생산에도 힘쓰고 있다.

방목되는 소떼 (그란 차코)


파라과이의 광업은 매우 미개발된 상태이다. 오랫동안 파라과이에는 소규모 철광상을 제외하고는 광물 자원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져 왔다. 철광석 채굴은 삼국동맹 전쟁 이전부터 이어져 왔지만, 1990년에 이르러서도 광업 부문은 파라과이 GDP의 0.5%에 불과했다. 1990년대 남서부 엔카르나시온에서 매장량 3억 톤에 달하는 철광상이 발견되었지만, 광석의 함량이 35%로 낮기 때문에 파라과이 광업을 활성화시키지는 못했다. 최근에는 차코 지방에서 유전 개발 계획이 제기되고 있다.

목재 생산은 농목지 확장과 함께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이용되는 수종은 라파초 등 10종류 정도에 불과하며, 나머지 수종은 소각 처리되고 있다. 이용되는 수종 중에서도 가공용으로 사용되는 것은 3분의 1에 불과하며, 3분의 2는 연료나 농목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임업 관련 가공업체도 몇 개 되지 않으며, 목재 건조 기술이나 제재 기술 등은 육성이 미흡하다.

=== 사회 문제 ===

2002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파라과이 원주민 인구의 읽고 쓰는 능력 비율은 7.1%로, 일반 인구의 51%와 비교하여 매우 낮았다.[93] 파라과이 원주민 인구 중 깨끗한 식수를 이용할 수 있는 비율은 2.5%에 불과했으며,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비율은 9.5%에 불과했다 (2002년 기준).[93]

파라과이는 경제적으로 불평등하고 빈곤한 국가이며, 약 40%의 국민이 빈곤에 시달리는 것으로 추산된다. 농촌 지역에서는 41.2%, 도시 지역에서는 27.6%가 최소한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소득을 얻지 못한다. 상위 10%가 국부의 43%를 차지하는 반면, 하위 10%는 겨우 0.5%에 불과하다. 경기 침체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1995년 0.56이었던 지니계수는 1999년 0.66으로 상승했다. 인구의 10%가 국토의 66%를 소유하는 반면, 농촌 인구의 30%는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다. 이러한 불평등은 엘리트와 무토지 농민 사이에 강한 긴장 상태를 초래하고 있다. 이웃 국가인 브라질아르헨티나로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7. 1. 산업

파라과이는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대두 생산국이며,[75] 두 번째로 큰 스테비아 생산국이자 아홉 번째로 큰 쇠고기 수출국이다.[76][77] 2018년에는 대두 외에도 옥수수사탕수수를 대량 생산하여 세계 21위 생산국에 올랐다. 다른 중요한 농작물로는 카사바, , , 오렌지, 마테차, 그리고 수수가 있다. 축산업에서는 2020년 48만 톤의 쇠고기를 생산하여 세계 26위 생산국이었다.[78]

대두 농업은 주로 브라질 사람들에 의해 도입되었다. 2019년 파라과이 대두 및 쌀 생산자의 거의 70%는 브라질 사람들이거나 브라질 사람들의 후손(소위 브라시구아이오스)이었다. 최초의 브라질 생산자들은 1980년대에 파라과이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브라질 사람들의 유입 이전에는 파라과이의 많은 토지가 경작되지 않았다.[79][80][81][82][83][84][85]

경작 가능한 토지의 80% 이상은 토지 소유자의 2.6%가 소유하고 있다.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너 독재 정권(1954~1989) 시절, 농지법 위반으로 거의 800만 헥타르가 정권 지지자들에게 불법적으로 할당되었고, 국가는 이 불법적인 부의 수혜자를 밝히기 위해 그 이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토지 소유자에는 장군, 사업가, 정치인, 전직 대통령, 니카라과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이예 그리고 심지어 집권당인 콜로라도당까지 포함된다. 1989년 스트로에스너 정권 몰락 이후 130명이 넘는 농민 지도자들이 암살당했다.[86]

세계은행은 생산 총액을 기준으로 매년 최대 생산국을 발표합니다. 2019년 목록에 따르면, 파라과이는 세계에서 79번째로 산업 가치가 높은 국가(69억 달러)였다.[87] 2018년에는 세계 7위의 대두유 생산국이었습니다.[88]

파라과이 광업은 파라과이 국내총생산(GDP)의 약 25%를 차지하고 노동력의 약 31%를 고용하고 있다. 시멘트, 철광석, 강철 생산은 파라과이 산업 전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제약 산업에서 파라과이 기업들은 현재 국내 소비량의 70%를 충족하고 있으며 의약품 수출을 시작했다.[89] 식용유, 의류, 유기농 설탕, 육류 가공, 강철 생산에서도 강력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90]

2003년 제조업은 GDP의 13.6%를 차지했으며, 2000년에는 노동 인구의 약 11%를 고용했다. 파라과이의 주요 제조업은 식품 및 음료이다. 목재 제품, 종이 제품, 가죽 및 모피, 비금속 광물 제품도 제조업 총액에 기여한다. 1990년대 제조업 GDP의 꾸준한 성장은 2002년과 2003년 연간 성장률이 2.5%로 증가하는 기반을 마련했다.[91] 파라과이는 2024년 글로벌 혁신 지수에서 93위를 기록했다.[92]

메르코수르 회원국 중 하나인 파라과이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은 농업이며, 파라과이는 세계 3위의 대두 수출국이다. 주요 수출품은 대두, 밀, 농축산물, 전력이다. 최근에는 감미료, 건강식품, 화장품 원료로 알려진 스테비아 생산에도 힘쓰고 있다.

파라과이의 광업은 매우 미개발된 상태이다. 오랫동안 파라과이에는 소규모 철광상을 제외하고는 광물 자원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져 왔다. 철광석 채굴은 삼국동맹 전쟁 이전부터 이어져 왔지만, 1990년에 이르러서도 광업 부문은 파라과이 GDP의 0.5%에 불과했다. 1990년대 남서부 엔카르나시온에서 매장량 3억 톤에 달하는 철광상이 발견되었지만, 광석의 함량이 35%로 낮기 때문에 파라과이 광업을 활성화시키지는 못했다. 최근에는 차코 지방에서 유전 개발 계획이 제기되고 있다.

목재 생산은 농목지 확장과 함께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이용되는 수종은 라파초 등 10종류 정도에 불과하며, 나머지 수종은 소각 처리되고 있다. 이용되는 수종 중에서도 가공용으로 사용되는 것은 3분의 1에 불과하며, 3분의 2는 연료나 농목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임업 관련 가공업체도 몇 개 되지 않으며, 목재 건조 기술이나 제재 기술 등은 육성이 미흡하다.

7. 2. 사회 문제

2002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파라과이 원주민 인구의 읽고 쓰는 능력 비율은 7.1%로, 일반 인구의 51%와 비교하여 매우 낮았다.[93] 파라과이 원주민 인구 중 깨끗한 식수를 이용할 수 있는 비율은 2.5%에 불과했으며,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비율은 9.5%에 불과했다 (2002년 기준).[93]

파라과이는 경제적으로 불평등하고 빈곤한 국가이며, 약 40%의 국민이 빈곤에 시달리는 것으로 추산된다. 농촌 지역에서는 41.2%, 도시 지역에서는 27.6%가 최소한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소득을 얻지 못한다. 상위 10%가 국부의 43%를 차지하는 반면, 하위 10%는 겨우 0.5%에 불과하다. 경기 침체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1995년 0.56이었던 지니계수는 1999년 0.66으로 상승했다. 인구의 10%가 국토의 66%를 소유하는 반면, 농촌 인구의 30%는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다. 이러한 불평등은 엘리트와 무토지 농민 사이에 강한 긴장 상태를 초래하고 있다. 이웃 국가인 브라질아르헨티나로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8. 사회

## 인구

파라과이인의 90% 이상이 황인종계인 과라니족 등의 인디오와 스페인인 사이의 혼혈(메스티소)이다.[4] 정복 초기 이 지역에 살았던 과라니족은 스페인 정복자들과 동맹을 맺어 다른 인디오들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혼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예수회 선교사들이 과라니족을 교화하는 과정에서 과라니 문화가 계승·보존되었으며, 예수회가 추방된 후에도 파라과이에서는 도시가 발달하지 못하고 다른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와 비교하여 크리오요 지배층이 강력한 존재가 되지 못했다. 1811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주도의 독립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국가로 독립한 후, 파라과이의 초대 국가 원수인 호세 가스파르 로드리게스 데 프란시아(프란시아 박사)가 정책적으로 이종족 간 통혼을 권장·강제하고, 그 과정에서 저항 세력이 될 만한 크리오요들은 거의 추방했다. 그러므로 현재 파라과이 사람들은 "과라니"의 피를 잇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으며, 키가 작고 아시아적인 외모의 사람도 적지 않다.[119]

파라과이 인구 밀도(km2당 인구)


파라과이의 인구는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 않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아순시온 근처 동부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그란 차코 지역(알토 파라과이 주, 보케론 주, 프레시덴테 아예스 주 포함)은 파라과이 영토의 약 60%를 차지하지만 인구는 4% 미만이다. 파라과이 인구의 약 63%가 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파라과이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도시화되지 않은 국가 중 하나이다.

파라과이는 대부분의 역사에서 인구 밀도가 낮았기 때문에, 특히 파라과이 전쟁으로 인한 인구 급감 이후 이민자를 많이 받아들였다. 이민자들은 이탈리아인, 독일인, 스페인인, 영국인, 러시아인, 한국인, 중국인, 아랍인, 일본인,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유대인, 브라질인, 아르헨티나인, 미국인, 볼리비아인, 베네수엘라인, 멕시코인, 칠레인, 타이완인, 아시아인 및 우루과이인 등이 있다.[104][105] 아르헨티나 독일인과 함께 파라과이 독일인은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독일계 사회 중 하나이며, 파라과이 차코 지역에는 약 2만 5천 명의 독일어를 사용하는 메노나이트가 살고 있다.[106][107] 독일 정착민들은 호헤나우, 필라델피아, 노이란트, 오블리가도, 누에바 헤르마니아와 같은 여러 도시를 건설했다.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사이에 파라과이는 아순시온과 파라과이 남부(이타푸아 주, 미시오네스 주, 녜엠부쿠 주) 특히 프람, 코로넬 보가도, 엔카르나시온, 산후안 델 파라나, 산 이그나시오, 필라르와 같은 도시에 정착한 슬라브계 이민자의 유입을 받았다.[113][114] 파라과이는 또한 평화주의적 신념 때문에 1941년 영국을 떠나야 했던 브루더호프와 같이 종교적 신앙 때문에 박해받는 공동체에게 피난처가 되어 왔다.[115][116] 이러한 공동체 중 상당수는 특히 약 40만 명으로 가장 크고 두드러진 이민자 집단인 브라질인을 중심으로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유지해 왔다.[117] 많은 브라질계 파라과이인들은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계 혈통이다.[118] 파라과이에는 약 6만 3천 명의 아프리카계 파라과이인이 있으며, 이는 인구의 1%를 차지한다.

카아쿠페의 모임


파라과이 통계, 조사 및 인구조사부는 인구조사에서 '인종'과 '민족'에 대해 질문하지 않지만 원주민 인구에 대해서는 질문한다. 2022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원주민은 파라과이 총 인구의 2.3%를 차지했다.[4] 전통적으로 파라과이 인구의 대다수는 혼혈(''mestizo'')로 여겨진다.

2022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파라과이는 6,109,944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중 95%가 메스티소/백인이며, 5%는 17개의 서로 다른 민족언어 원주민 그룹 구성원을 포함한 "기타"로 분류된다.[119]

콘셉시온 (파라과이)의 주요 천주교 예배당


도시화율은 2000년도 기준 50.3%이다.

파라과이의 최대 도시[4]
순위도시인구
1아순시온수도구462,241
2시우다드 델 에스테알토 파라나 주325,819
3루케중앙 주259,705
4카피아타중앙 주236,999
5산 로렌소중앙 주225,295
6림피오중앙 주139,652
7페드로 후안 카바예로아맘바이 주127,437
8람바레중앙 주127,150
9녜엠비중앙 주116,383
10페르난도 데 라 모라중앙 주110,255
11엔카르나시온이타푸아 주106,842
12코로넬 오비에도카아구아주 주98,323
13카아구아주카아구아주 주98,200
14이타우구아중앙 주93,213
15프레시덴테 프랑코알토 파라나 주88,744
16마리아노 로케 알론소중앙 주85,133
17에르난다리아스알토 파라나 주83,285
18밍가 과수알토 파라나 주81,072
19콘셉시온콘셉시온 주73,360
20빌라 엘리사중앙 주71,383



## 언어

스페인어과라니어공용어이다. 원주민들은 모헤뇨어도 사용한다.[122] 파라과이는 이중 언어 국가로, 2015년 기준으로 스페인어는 인구의 약 87%가 사용하며, 과라니어는 90% 이상, 즉 580만 명이 넘는 화자가 있다.[123][124][125][126] 과라니어는 남아메리카 원주민 국가 언어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번영하고 있는 언어 중 하나이다.[122] 파라과이 농촌 인구의 52%는 과라니어를 사용하는 이중 언어 사용자이다.[123][124][125][126] 정부, 사업, 언론 및 교육에서는 남아메리카의 링구아 프랑카 중 하나로서 스페인어가 일반적으로 우선적으로 사용된다.[123][124][125][126]

파라과이에서는 약 19개의 다른 원주민 언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그중 과나어, 아요레오어, 이시르어(차마코코어)와 같은 언어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127]

## 종교

파라과이의 주요 종교는 기독교이며, 특히 가톨릭이 지배적이다.[120] 2002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89.61%가 가톨릭 신자였고, 복음주의 개신교는 6.78% 였다.[171] 그 외에도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바하이교등 다양한 종교가 존재한다.[121] 알토 파라나에는 레바논계 이민자를 중심으로 이슬람 공동체가 있으며, 보케론에는 메노나이트 공동체가 있다.[121]

파라과이의 종교(Religions in Paraguay)[171]
종교 Religion2002년도 신도 Number of followers 20022002년 Percentage 20021992년 신도 Number of followers 1992평균 Percentage 19921992년에서 2002년사이의 변화 Change 1992-2002
가톨릭교회 Catholicism3,488,08689.61%2,749,88893.25%-3.64%
독립 가톨릭 교회 Indigenous & Catholic2230.01N/AN/AN/A
정교회 Orthodox25<0.00%N/AN\AN/A
러시아 정교회 Russian (Orthodox)4700.01%N/AN/AN/A
그외 정교회 Other Orthodox9500.02%N/AN/AN/A
성공회 Anglicanism1,8580.05%N/AN/AN/A
토착 성공회 Indigenous & Anglican29<0.01%N/AN/AN/A
루터교회 Lutheran8,8490.23%N/AN/AN/A
장로교 Presbyterian2760.01%N/AN/AN/A
메노나이트 Mennonites8,4450.22%N/AN/AN/A
토착 메노나이트 Indigenous & Mennonite8<0.01%N/AN/AN/A
전통적인 기독교(가톨릭교회 제외)Traditional Christianity* (excl. Catholicism)21,1330.54%14,4970.49%+0.05%
기독교 전도회 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87<0.01%N/AN/AN/A
하나님의 성회(오순절교회)Assemblies of God9,8790.25%N/AN/AN/A
마라나타 침례교회 Maranatha Baptist Church10,3550.27%N/AN/AN/A
Centro familiar de adoración aposent.5130.01%N/AN/AN/A
Comunidad Cristiana1,0460.03%N/AN/AN/A
형제단 교회 Plymouth Brethren - Open Brothers6650.02%N/AN/AN/A
독립 Independent7<0.01%N/AN/AN/A
오순절교회 Church of God (Pentecostal)1,5500.04%N/AN/AN/A
Church of God of Prophecy (Pentecostal)149<0.01%N/AN/AN/A
감리교회 Methodists4510.01%N/AN/AN/A
자유감리교회 Free Methodists156<0.01%N/AN/AN/A
나사렛 교회Church of the Nazarene86<0.01%N/AN/AN/A
침례교Neotestamentaria (Baptist)2760.01%N/AN/AN/A
오순절교회 Pentecostal8,6310.22%N/AN/AN/A
그외 복음주의 교회 Other Evangelical186,1074.78%N/AN/AN/A
안식교회 Seventh Day Adventist7,8040.20%N/AN/AN/A
오순절교회Dios es Amor (Pentecostal)1,2900.03%N/AN/AN/A
Universal Church of the Kingdom of God7140.02%N/AN/AN/A
Unification Church116<0.01%N/AN/AN/A
모른몬교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 Day Saints (Mormons)9,3740.24%N/AN/AN/A
Pueblo de Dios12,1140.31%N/AN/AN/A
여호와의 증인 Jehovah's Witnesses11,8050.30%N/AN/AN/A
시온교회Mount Zion Church2330.01%N/AN/AN/A
Other pseudo-Christian groups8250.02%N/AN/AN/A
16세기이후 기독교 교회들 Post-16th-Century Christian demoninations264,2336.78%138,5734.70%+2.08%
유대교 Judaism1,1000.03%9520.03%-
이슬람 Islam8720.02%1,2000.04%-0.02%
힌두교 Hinduism (Tao)151<0.01%N/AN/AN/A
불교 Buddhism2,0880.05%N/AN/AN/A
Reyukai72<0.01%N/AN/AN/A
신토 Shintoism30<0.01%N/AN/AN/A
바하이 신앙 Bahá'í Faith225[172]0.01%N/AN/AN/A
"Eastern and Cultural Religions" (excl Islam)*25660.07%2,8110.10%-0.03%
Rosacrucis7<0.01%N/AN/AN/A
Spiritualists - E.C.Basilio2890.01%N/AN/AN/A
Umbanda54<0.01%N/AN/AN/A
기타, 영지주의 Other, Spiritualist66<0.01%N/AN/AN/A
Mentalism164<0.01%N/AN/AN/A
Indigenous Religions23,7410.61N/AN/AN/A
기타 종교 Religions not included above1,2080.03%N/AN/AN/A
Unspecified other religion6,1390.16%N/AN/AN/A
Religion not previously mentioned in 1992 Census31,6680.81%8,1520.28%+0.53%
무종교 No religion44,3341.14%23,2360.78%+0.36%
무응답 No response37,2060.96%9,7900.33%+0.63%
전체 조사자 Total no. of participants3,892,603100%2,949,099100%-



## 교육

유네스코의 2008년 교육발전지수에 따르면 읽기 능력은 약 93.6%였으며 파라과이인의 87.7%가 5학년을 마쳤다.[128] 성별에 따른 읽기 능력의 차이는 크지 않다.[129] 최근 연구[129]에 따르면 6세에서 12세 사이 아동의 초등학교 취학률은 약 98%이다. 초등 교육은 무료이며 의무 교육이며 9년 과정이다. 중등 교육은 3년 과정이다.[128] 2005년 순 초등 취학률은 88%였다.[128] 2000년대 초반 교육에 대한 공공 지출은 GDP의 약 4.3%였다.[128] 2003년 추계에 따르면, 15세 이상 국민의 문자해독률은 94%이다.[164]

파라과이의 주요 대학교는 다음과 같다.


  • 아순시온 국립대학교 (국립대학교, 1889년 설립)[130]
  • 아순시온 자치대학교 (사립대학교, 1979년 설립)[131]
  • 아순시온 성모 마리아 가톨릭대학교 (사립대학교, 교회 운영)[132]
  • 아메리카나 대학교 (사립대학교)
  • 파시피코 대학교 (사립대학교, 1991년 설립)


주요 고등교육기관으로는 국립아순시온대학교(1889년) 등이 있다.

## 보건

파라과이의 평균 기대 수명은 빈곤 수준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높은 편이다. 2006년 당시 75세였는데,[133] 이는 훨씬 부유한 아르헨티나와 맞먹는 수준이며,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아메리카 대륙에서 8번째로 높았다. 보건 분야 공공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2.6%를 차지하고, 민간 의료 지출은 5.1%이다.[128] 2005년 영아 사망률은 1,000명당 20명이었다.[128] 2000년 모성 사망률은 10만 명당 150명이었다.[128]

세계은행은 파라과이 정부가 모성 및 영아 사망률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 '모자 기본 보건 보험 프로젝트'는 출산 가능 연령 여성과 6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국가 모자 기본 보건 보험 프로그램(MCBI)에 포함된 특정 생명 구조 서비스 이용률을 높여 사망률 감소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 이 프로젝트는 특정 지역 내 보건 서비스 네트워크의 질과 효율성 개선과 더불어 공공 보건 사회 복지부(MSPandBS)의 관리 역량 강화에도 중점을 두었다.[134]

삼국동맹전쟁 직전 약 52만 명으로 추정되는 파라과이 인구는 전쟁 종결 후 약 21만 명으로 감소했다. 이후 1946년 추계로 약 122만 명, 1962년 인구조사로 185만 1,890명, 1972년 인구조사로 235만 7,955명, 1983년 중반 추계로 약 347만 명이 되었다. 국민의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모체의 생명에 위험이 닥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는 허용되지 않는다.[163] 1995년에서 2000년 사이의 출산율은 31.3‰이다. 사망률은 5.4‰이며 1999년에서 2015년사이의 인구 증가율은 2.3%이다.

파라과이의 기대수명 변화

8. 1. 인구

파라과이인의 90% 이상이 황인종계인 과라니족 등의 인디오와 스페인인 사이의 혼혈(메스티소)이다.[4] 정복 초기 이 지역에 살았던 과라니족은 스페인 정복자들과 동맹을 맺어 다른 인디오들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혼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예수회 선교사들이 과라니족을 교화하는 과정에서 과라니 문화가 계승·보존되었으며, 예수회가 추방된 후에도 파라과이에서는 도시가 발달하지 못하고 다른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와 비교하여 크리오요 지배층이 강력한 존재가 되지 못했다. 1811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주도의 독립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국가로 독립한 후, 파라과이의 초대 국가 원수인 호세 가스파르 로드리게스 데 프란시아(프란시아 박사)가 정책적으로 이종족 간 통혼을 권장·강제하고, 그 과정에서 저항 세력이 될 만한 크리오요들은 거의 추방했다. 그러므로 현재 파라과이 사람들은 "과라니"의 피를 잇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으며, 키가 작고 아시아적인 외모의 사람도 적지 않다.[119]

파라과이의 인구는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 않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아순시온 근처 동부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그란 차코 지역(알토 파라과이 주, 보케론 주, 프레시덴테 아예스 주 포함)은 파라과이 영토의 약 60%를 차지하지만 인구는 4% 미만이다. 파라과이 인구의 약 63%가 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파라과이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도시화되지 않은 국가 중 하나이다.

파라과이는 대부분의 역사에서 인구 밀도가 낮았기 때문에, 특히 파라과이 전쟁으로 인한 인구 급감 이후 이민자를 많이 받아들였다. 이민자들은 이탈리아인, 독일인, 스페인인, 영국인, 러시아인, 한국인, 중국인, 아랍인, 일본인,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유대인, 브라질인, 아르헨티나인, 미국인, 볼리비아인, 베네수엘라인, 멕시코인, 칠레인, 타이완인, 아시아인 및 우루과이인 등이 있다.[104][105] 아르헨티나 독일인과 함께 파라과이 독일인은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독일계 사회 중 하나이며, 파라과이 차코 지역에는 약 2만 5천 명의 독일어를 사용하는 메노나이트가 살고 있다.[106][107] 독일 정착민들은 호헤나우, 필라델피아, 노이란트, 오블리가도, 누에바 헤르마니아와 같은 여러 도시를 건설했다.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사이에 파라과이는 아순시온과 파라과이 남부(이타푸아 주, 미시오네스 주, 녜엠부쿠 주) 특히 프람, 코로넬 보가도, 엔카르나시온, 산후안 델 파라나, 산 이그나시오, 필라르와 같은 도시에 정착한 슬라브계 이민자의 유입을 받았다.[113][114] 파라과이는 또한 평화주의적 신념 때문에 1941년 영국을 떠나야 했던 브루더호프와 같이 종교적 신앙 때문에 박해받는 공동체에게 피난처가 되어 왔다.[115][116] 이러한 공동체 중 상당수는 특히 약 40만 명으로 가장 크고 두드러진 이민자 집단인 브라질인을 중심으로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유지해 왔다.[117] 많은 브라질계 파라과이인들은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계 혈통이다.[118] 파라과이에는 약 6만 3천 명의 아프리카계 파라과이인이 있으며, 이는 인구의 1%를 차지한다.

파라과이 통계, 조사 및 인구조사부는 인구조사에서 '인종'과 '민족'에 대해 질문하지 않지만 원주민 인구에 대해서는 질문한다. 2022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원주민은 파라과이 총 인구의 2.3%를 차지했다.[4] 전통적으로 파라과이 인구의 대다수는 혼혈(''mestizo'')로 여겨진다.

2022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파라과이는 6,109,944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중 95%가 메스티소/백인이며, 5%는 17개의 서로 다른 민족언어 원주민 그룹 구성원을 포함한 "기타"로 분류된다.[119]

도시화율은 2000년도 기준 50.3%이다.

파라과이의 최대 도시[4]
순위도시인구
1아순시온수도구462,241
2시우다드 델 에스테알토 파라나 주325,819
3루케중앙 주259,705
4카피아타중앙 주236,999
5산 로렌소중앙 주225,295
6림피오중앙 주139,652
7페드로 후안 카바예로아맘바이 주127,437
8람바레중앙 주127,150
9녜엠비중앙 주116,383
10페르난도 데 라 모라중앙 주110,255
11엔카르나시온이타푸아 주106,842
12코로넬 오비에도카아구아주 주98,323
13카아구아주카아구아주 주98,200
14이타우구아중앙 주93,213
15프레시덴테 프랑코알토 파라나 주88,744
16마리아노 로케 알론소중앙 주85,133
17에르난다리아스알토 파라나 주83,285
18밍가 과수알토 파라나 주81,072
19콘셉시온콘셉시온 주73,360
20빌라 엘리사중앙 주71,383


8. 2. 언어

스페인어과라니어공용어이다. 원주민들은 모헤뇨어도 사용한다.[122] 파라과이는 이중 언어 국가로, 2015년 기준으로 스페인어는 인구의 약 87%가 사용하며, 과라니어는 90% 이상, 즉 580만 명이 넘는 화자가 있다.[123][124][125][126] 과라니어는 남아메리카 원주민 국가 언어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번영하고 있는 언어 중 하나이다.[122] 파라과이 농촌 인구의 52%는 과라니어를 사용하는 이중 언어 사용자이다.[123][124][125][126] 정부, 사업, 언론 및 교육에서는 남아메리카의 링구아 프랑카 중 하나로서 스페인어가 일반적으로 우선적으로 사용된다.[123][124][125][126]

파라과이에서는 약 19개의 다른 원주민 언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그중 과나어, 아요레오어, 이시르어(차마코코어)와 같은 언어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127]

8. 3. 종교



파라과이의 주요 종교는 기독교이며, 특히 가톨릭이 지배적이다.[120] 2002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89.61%가 가톨릭 신자였고, 복음주의 개신교는 6.78% 였다.[171] 그 외에도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바하이교등 다양한 종교가 존재한다.[121] 알토 파라나에는 레바논계 이민자를 중심으로 이슬람 공동체가 있으며, 보케론에는 메노나이트 공동체가 있다.[121]

파라과이의 종교(Religions in Paraguay)[171]
종교 Religion2002년도 신도 Number of followers 20022002년 Percentage 20021992년 신도 Number of followers 1992평균 Percentage 19921992년에서 2002년사이의 변화 Change 1992-2002
가톨릭교회 Catholicism3,488,08689.61%2,749,88893.25%-3.64%
독립 가톨릭 교회 Indigenous & Catholic2230.01N/AN/AN/A
정교회 Orthodox25<0.00%N/AN\AN/A
러시아 정교회 Russian (Orthodox)4700.01%N/AN/AN/A
그외 정교회 Other Orthodox9500.02%N/AN/AN/A
성공회 Anglicanism1,8580.05%N/AN/AN/A
토착 성공회 Indigenous & Anglican29<0.01%N/AN/AN/A
루터교회 Lutheran8,8490.23%N/AN/AN/A
장로교 Presbyterian2760.01%N/AN/AN/A
메노나이트 Mennonites8,4450.22%N/AN/AN/A
토착 메노나이트 Indigenous & Mennonite8<0.01%N/AN/AN/A
전통적인 기독교(가톨릭교회 제외)Traditional Christianity* (excl. Catholicism)21,1330.54%14,4970.49%+0.05%
기독교 전도회 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87<0.01%N/AN/AN/A
하나님의 성회(오순절교회)Assemblies of God9,8790.25%N/AN/AN/A
마라나타 침례교회 Maranatha Baptist Church10,3550.27%N/AN/AN/A
Centro familiar de adoración aposent.5130.01%N/AN/AN/A
Comunidad Cristiana1,0460.03%N/AN/AN/A
형제단 교회 Plymouth Brethren - Open Brothers6650.02%N/AN/AN/A
독립 Independent7<0.01%N/AN/AN/A
오순절교회 Church of God (Pentecostal)1,5500.04%N/AN/AN/A
Church of God of Prophecy (Pentecostal)149<0.01%N/AN/AN/A
감리교회 Methodists4510.01%N/AN/AN/A
자유감리교회 Free Methodists156<0.01%N/AN/AN/A
나사렛 교회Church of the Nazarene86<0.01%N/AN/AN/A
침례교Neotestamentaria (Baptist)2760.01%N/AN/AN/A
오순절교회 Pentecostal8,6310.22%N/AN/AN/A
그외 복음주의 교회 Other Evangelical186,1074.78%N/AN/AN/A
안식교회 Seventh Day Adventist7,8040.20%N/AN/AN/A
오순절교회Dios es Amor (Pentecostal)1,2900.03%N/AN/AN/A
Universal Church of the Kingdom of God7140.02%N/AN/AN/A
Unification Church116<0.01%N/AN/AN/A
모른몬교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 Day Saints (Mormons)9,3740.24%N/AN/AN/A
Pueblo de Dios12,1140.31%N/AN/AN/A
여호와의 증인 Jehovah's Witnesses11,8050.30%N/AN/AN/A
시온교회Mount Zion Church2330.01%N/AN/AN/A
Other pseudo-Christian groups8250.02%N/AN/AN/A
16세기이후 기독교 교회들 Post-16th-Century Christian demoninations264,2336.78%138,5734.70%+2.08%
유대교 Judaism1,1000.03%9520.03%-
이슬람 Islam8720.02%1,2000.04%-0.02%
힌두교 Hinduism (Tao)151<0.01%N/AN/AN/A
불교 Buddhism2,0880.05%N/AN/AN/A
Reyukai72<0.01%N/AN/AN/A
신토 Shintoism30<0.01%N/AN/AN/A
바하이 신앙 Bahá'í Faith225[172]0.01%N/AN/AN/A
"Eastern and Cultural Religions" (excl Islam)*25660.07%2,8110.10%-0.03%
Rosacrucis7<0.01%N/AN/AN/A
Spiritualists - E.C.Basilio2890.01%N/AN/AN/A
Umbanda54<0.01%N/AN/AN/A
기타, 영지주의 Other, Spiritualist66<0.01%N/AN/AN/A
Mentalism164<0.01%N/AN/AN/A
Indigenous Religions23,7410.61N/AN/AN/A
기타 종교 Religions not included above1,2080.03%N/AN/AN/A
Unspecified other religion6,1390.16%N/AN/AN/A
Religion not previously mentioned in 1992 Census31,6680.81%8,1520.28%+0.53%
무종교 No religion44,3341.14%23,2360.78%+0.36%
무응답 No response37,2060.96%9,7900.33%+0.63%
전체 조사자 Total no. of participants3,892,603100%2,949,099100%-


8. 4. 교육

유네스코의 2008년 교육발전지수에 따르면 읽기 능력은 약 93.6%였으며 파라과이인의 87.7%가 5학년을 마쳤다.[128] 성별에 따른 읽기 능력의 차이는 크지 않다.[129] 최근 연구[129]에 따르면 6세에서 12세 사이 아동의 초등학교 취학률은 약 98%이다. 초등 교육은 무료이며 의무 교육이며 9년 과정이다. 중등 교육은 3년 과정이다.[128] 2005년 순 초등 취학률은 88%였다.[128] 2000년대 초반 교육에 대한 공공 지출은 GDP의 약 4.3%였다.[128] 2003년 추계에 따르면, 15세 이상 국민의 문자해독률은 94%이다.[164]

파라과이의 주요 대학교는 다음과 같다.

  • 아순시온 국립대학교 (국립대학교, 1889년 설립)[130]
  • 아순시온 자치대학교 (사립대학교, 1979년 설립)[131]
  • 아순시온 성모 마리아 가톨릭대학교 (사립대학교, 교회 운영)[132]
  • 아메리카나 대학교 (사립대학교)
  • 파시피코 대학교 (사립대학교, 1991년 설립)


주요 고등교육기관으로는 국립아순시온대학교(1889년) 등이 있다.

8. 5. 보건

파라과이의 평균 기대 수명은 빈곤 수준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높은 편이다. 2006년 당시 75세였는데,[133] 이는 훨씬 부유한 아르헨티나와 맞먹는 수준이며,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아메리카 대륙에서 8번째로 높았다. 보건 분야 공공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2.6%를 차지하고, 민간 의료 지출은 5.1%이다.[128] 2005년 영아 사망률은 1,000명당 20명이었다.[128] 2000년 모성 사망률은 10만 명당 150명이었다.[128]

세계은행은 파라과이 정부가 모성 및 영아 사망률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 '모자 기본 보건 보험 프로젝트'는 출산 가능 연령 여성과 6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국가 모자 기본 보건 보험 프로그램(MCBI)에 포함된 특정 생명 구조 서비스 이용률을 높여 사망률 감소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 이 프로젝트는 특정 지역 내 보건 서비스 네트워크의 질과 효율성 개선과 더불어 공공 보건 사회 복지부(MSPandBS)의 관리 역량 강화에도 중점을 두었다.[134]

삼국동맹전쟁 직전 약 52만 명으로 추정되는 파라과이 인구는 전쟁 종결 후 약 21만 명으로 감소했다. 이후 1946년 추계로 약 122만 명, 1962년 인구조사로 185만 1,890명, 1972년 인구조사로 235만 7,955명, 1983년 중반 추계로 약 347만 명이 되었다. 국민의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모체의 생명에 위험이 닥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는 허용되지 않는다.[163] 1995년에서 2000년 사이의 출산율은 31.3‰이다. 사망률은 5.4‰이며 1999년에서 2015년사이의 인구 증가율은 2.3%이다.

9. 문화

파라과이의 문화 유산은 초기 스페인 남성 정착민들과 원주민 과라니 여성들 사이의 광범위한 혼인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파라과이 문화는 스페인을 포함한 여러 유럽 국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따라서 파라과이 문화는 두 문화와 전통의 융합으로, 하나는 유럽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부 과라니의 것이다. 이는 전국적으로 공통적이지만 아티라, 토바티, 알토스 마을 주변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파라과이인의 93% 이상이 메스티소이며, 이로 인해 파라과이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동질적인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문화 융합의 특징은 오늘날까지도 존재하는 광범위한 이중 언어 사용이다. 파라과이인의 80% 이상이 스페인어와 원주민 언어인 과라니어를 모두 구사한다. 과라니어와 스페인어가 혼합된 호파라도 널리 사용된다.

오베차 라구에 축제


이러한 문화 융합은 자수(''ao po'í'')와 레이스 제작(''ñandutí'')과 같은 예술에서 표현된다. 경쾌한 폴카, 신나는 ''갈로파'', 느린 ''과라니아''로 구성된 파라과이 음악은 전통 하프로 연주된다. 파라과이의 요리 유산 또한 이러한 문화 융합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여러 가지 인기 있는 요리에는 카사바(카사바 뿌리로도 알려짐)와 유사한 지역 주요 작물인 마니옥과 기타 원주민 재료가 포함되어 있다. 인기 있는 요리로는 두꺼운 옥수수빵과 유사한 ''소파 파라과야''가 있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음식은 옥수수가루, 마니옥, 치즈로 만든 베이글과 같은 빵인 ''치파''이다. 다른 많은 요리에는 다양한 종류의 치즈, 양파, 피망, 코티지 치즈, 옥수수가루, 우유, 양념, 버터, 계란, 신선한 옥수수 알갱이가 들어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는 호세 리카르도 마조, 로케 바예호스, 노벨상 후보 아우구스토 로아 바스토스와 같은 새로운 세대의 파라과이 소설가와 시인들이 등장한 시대였다. 여러 파라과이 영화가 제작되었다.

가정 내부에서는 보수적인 가치관이 우세하다. 하층 계급에서는 일반적으로 유리한 사회적 지위 때문에 선택되기 때문에 자녀에게 추가적인 안전을 제공하기 위해 대부모가 가족과 특별한 관계를 갖는다.[135] 그들에게 특별한 존경을 표해야 하며, 그 대가로 가족은 보호와 후원을 기대할 수 있다.

파라과이 음악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악기는 하프와 기타이다. 전통 장르는 파라과이 폴카와 과라니아이며, 1920년대경 호세 아순시온 플로레스가 개발한 느린 노래가 특징이다.[136][137]

예르바 마테


파라과이의 아르파


스페인인 아버지와 과라니인 어머니를 조상으로 둔 사람들이 현재 파라과이 국민의 대다수이며, 따라서 파라과이 문화는 이 두 문화와 전통을 기반으로 한다. 현재 파라과이 인구의 80% 이상이 두 언어의 바이링구알이다.

파라과이 사람들은 이웃 국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마테차를 마시는 습관이 있지만, 특히 테레레를 즐겨 마신다. 육류 섭취 비중이 높은 파라과이 사람들은 혈압을 낮추고 비타민을 보충하며 발한 작용을 위해서도 마테차를 마신다. 마테차는 과라니족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음료이지만, 테레레는 차코 전쟁 무렵에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마니오크라는 고구마와, 마니오크를 원료로 한 치파라는 빵을 먹는 습관이 있다.

파라과이 출신의 저명한 작가로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汝、人の子よ』(1960), 『至高の存在たる余は』(1974)로 1989년 세르반테스 상을 수상한 아우구스토 로아 바스토스가 있다.

과라니아라 불리는 알파를 사용한 포크로레가 성행하며, 다른 라틴 음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프리카적인 요소는 거의 느껴지지 않고, 서정적인 곡조가 특징적이다. 저명한 음악가로는 펠릭스 페레스 카르도소와 아파리시오 곤살레스가 유명하다. 일본에서는 루시아 시오미츠와 우에마츠 미카 등이 프로 알파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파라과이에는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된 문화유산으로, 1993년에 등재된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데 파라나와 헤수스 데 타바랑헤의 예수회 선교지'''가 있다. 2010년 현재 파라과이 유일의 세계유산이다.

파라과이의 공휴일
날짜한국어 표기현지어 표기비고
1월 1일신년Año Nuevo
3월 1일영웅의 날Día de los Héroes
이동절성목요일Jueves Santo2012년은 4월 5일(목)
이동절성금요일Viernes Santo2012년은 4월 6일(금)
5월 1일메이데이Día del Trabajador
5월 14일독립기념일Día de la Independencia2012년 부활
5월 15일독립기념일Día de la Independencia
6월 12일차코 휴전 기념일Dia de la Paz del Chaco
8월 15일아순시온 건설 기념일Fundación de Asunción
9월 29일보케론 전투 승리 기념일Día de la batalla de Boquerón
12월 8일카아쿠페 성모 마리아 기념일Virgen de Caacupe
12월 25일크리스마스Navidad



== 스포츠 ==

파라과이의 스포츠는 국가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이며, 주요 국가 대표팀은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이다.[138]

농구도 매우 인기가 많다. 배구, 핸드볼, 풋살, 수영, 테니스와 같은 다른 스포츠도 인기가 있다.[138] 그 외 파라과이의 스포츠와 여가 활동으로는 럭비 유니온, 체스, 모터스포츠, 골프, 조정이 있다.

데펜소레스 델 차코 경기장(Estadio Defensores del Chaco)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축구가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며, 1906년에 프로 축구 리그인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이 창설되었다. 주요 클럽으로는 올림피아, 세로 포르테뇨, 리베르타드, 과라니 등이 있다. 유명한 선수로는 로케 산타 크루스, 루카스 바리오스, 미겔 알미론 등이 있다.

파라과이 축구 협회(APF)에 의해 구성되는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금까지 FIFA 월드컵에 8번 출전했으며, 2010년 대회에서는 16강에서 일본 대표팀과 맞붙어 스코어레스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하여 사상 처음으로 8강에 진출했다. 또한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1953년 대회와 1979년 대회에서 두 번의 우승 경험을 가지고 있다. 대표팀은 과라니인에 따라 ''Los Guaraníes''(과라니)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 미디어 ==

파라과이의 미디어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파라과이 매체 문서를 참고하라.

9. 1. 스포츠

파라과이의 스포츠는 국가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이며, 주요 국가 대표팀은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이다.[138]

농구도 매우 인기가 많다. 배구, 핸드볼, 풋살, 수영, 테니스와 같은 다른 스포츠도 인기가 있다.[138] 그 외 파라과이의 스포츠와 여가 활동으로는 럭비 유니온, 체스, 모터스포츠, 골프, 조정이 있다.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축구가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며, 1906년에 프로 축구 리그인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이 창설되었다. 주요 클럽으로는 올림피아, 세로 포르테뇨, 리베르타드, 과라니 등이 있다. 유명한 선수로는 로케 산타 크루스, 루카스 바리오스, 미겔 알미론 등이 있다.

파라과이 축구 협회(APF)에 의해 구성되는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금까지 FIFA 월드컵에 8번 출전했으며, 2010년 대회에서는 16강에서 일본 대표팀과 맞붙어 스코어레스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하여 사상 처음으로 8강에 진출했다. 또한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1953년 대회와 1979년 대회에서 두 번의 우승 경험을 가지고 있다. 대표팀은 과라니인에 따라 ''Los Guaraníes''(과라니)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9. 2. 미디어

파라과이의 미디어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파라과이 매체 문서를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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