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도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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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여도비지》는 1851년부터 1856년 사이에 최성환이 내용을 구성하고 김정호가 지도를 제작하여 완성된 지리지이다. 19세기 조선 사회의 지리학에 대한 관심 증가를 반영하여, 김정호의 《동여도》와 《대동여지도》 제작을 위한 지침서 역할을 했다. 《여도비지》는 총 20권으로 구성되었으나, 5권이 결본되어 현재는 15권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각 도의 지리 정보를 담고 있다. 특히 지도 제작에 필요한 극고표를 수록하고, 《동국여지승람》과 유사하게 항목을 통합하여 제시하는 등 《동여도》, 《대동여지도》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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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도비지 | |
---|---|
지도 | |
서지 정보 | |
제목 | 여도비지 |
한글 | 여도비지 |
한자 | 輿圖備志 |
가타카나 | 요도비지 |
히라가나 | よずびし |
참고 문헌 | |
저자 | 이상태 |
제목 | 한국 고지도 발달사 |
연도 | 1999년 |
출판사 | 혜안 |
출판 위치 | 서울 |
쪽 | 185~242쪽 |
2. 편찬 시기
《여도비지》는 1851년(철종 2년)부터 1856년(철종 7년) 사이에 편찬되었다. 이에 대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 《여도비지》 제1책 경도 묘전(廟典)조에서 헌종을 종묘에 모신 기록(1851년)[1]
- 같은 책 궁묘조의 은언군묘와 전계대원군묘를 “주상 전하가 기유년에 세우다.”라는 기록(1849년)[1]
- 지지에 순조의 묘호를 ‘순종’으로 표기한 일(1857년 이전)[1]
- 순조릉의 인릉(仁陵) 천봉(遷奉) 기사(1856년)[1]
3. 편찬 배경 및 과정
《여도비지》는 최성환이 내용을 종합하고, 김정호가 지도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책은 총 20권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는 15권만이 필사본 형태로 남아있다.
19세기 조선 사회는 여러 변화를 겪으며 서양 학문의 영향을 받아 지리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기존의 지리서와 지도보다 더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김정호와 최성환은 기존 지리서와 지도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지리지와 지도를 만들고자 하였다.
《여도비지》는 동여도의 제작 지침서(사양서)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지도 제작에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각 도의 정보를 도표를 첨부하여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각 주현의 편목은 건치 연혁 등 20여 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3. 1. 최성환과 김정호의 협력
최성환이 《여도비지》의 내용 구성(휘집)을 담당하고, 김정호가 지도 제작(도편)을 담당했다. 《여도비지》는 동여도의 제작 지침서(사양서)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도 제작에 필요한 사항들을 담고 있다. 특히 전국 주요 지점, 즉 행정 구역의 극고표(極高表)를 수록하고 있다.[1]1713년 청나라 사신 하국주(何國柱) 일행이 사상대의(象限大儀)를 이용하여 한양 종가의 위치를 실측했는데, 북위 37도 39분 15초, 베이징 순천부(順天府) 기준 동쪽으로 10도 30분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바탕으로 1791년 정조는 김영(金泳)에게 명하여 한양의 북극 고도와 《여지도(輿地圖)》의 경위선을 기준으로 팔도 관찰사 영의 극고 및 동서 경도를 측정하여 극고표를 만들었다.[1]
《여도비지》에는 정조 때 측정한 값인지, 김정호가 직접 측정한 값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전국 주요 지점의 극고를 기록한 극고표가 있다. 함경도 25지점, 평안도 42지점, 황해도 23지점, 강원도 26지점, 경기도 38지점, 전라도 53지점, 경상도 71지점 등 총 278지점의 경위도가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전국 주현(州縣)의 강역표, 방위표, 도리표 등을 표로 제시하였으며,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경위선 방식의 과학적인 동여도를 제작할 수 있었다.[1]
4. 편찬 체제
《여도비지》는 총 20책으로 구성되었으나, 이 중 5책(권2, 권5, 권9, 권16, 권18)은 현재 전해지지 않아 필사본 15책만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2] 책의 크기는 가로 18.6cm, 세로 30.7cm이다. 경도와 팔도의 지리 정보를 권별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각 권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권 | 내용 |
---|---|
권1 | 경도와 동반 부서 |
권2 | 서반 부서와 한성부 (미전) |
권3 | 경기좌도 |
권4 | 경기우도 |
권5 | 충청좌도 (미전) |
권6 | 충청우도 |
권7, 권8 | 경상좌도 |
권9, 권10 | 경상우도 (권9 미전) |
권11 | 전라좌도 |
권12 | 전라우도 |
권13 | 황해좌도 |
권14 | 황해우도 |
권15 | 강원동도 |
권16 | 강원서도 (미전) |
권17 | 함경남도 |
권18 | 함경북도 (미전) |
권19 | 평안남도 |
권20 | 평안북도 |
4. 1. 내용 구성
《여도비지》는 각 도의 첫머리에 도세(道勢)를 자세히 설명하고 도표를 첨부하였다. 《동여도지》보다 적은 12개 항목[3]으로 구성되었지만, 내용은 더 풍부하며 지도 제작에 필요한 정보 중심으로 작성되었다. 이는 《여도비지》가 《동여도》의 시방서(示方書)로 작성되었다는 근거로 보기도 한다.[2]각 주현(州縣)은 건치 연혁 등 20여 개 항목[4]으로 구성되었다. 호구, 전부(田賦), 강역, 극고(極高), 방위, 양전(量田), 도리(道里) 등은 도표로 처리하여 《동여도지》와 유사한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지도 제작에 필요한 정보를 더 치밀하게 제공한다.
《동국여지승람》과 유사하게 유사 항목을 통합하여 한 항목으로 묶어 제시하였다. 예를 들어 건치 항목에는 연혁·읍호·관원·방면을, 산천 항목에는 산류·수류·도서·형승을 통합하는 방식이다. 반면 인물, 풍속 등 지도 제작에 불필요한 항목은 생략하였다.
5. 극고표(極高表)
1713년 청나라 사신 하국주(何國柱) 일행이 한양에 와서 사상대의(象限大儀)를 이용해 한성부 종가의 극고를 실측하여 북위 37도 39분 15초, 베이징 순천부를 기준으로 한양이 동쪽으로 10도 30분이라는 실측값을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정조는 1791년 감신 김영(金泳)에게 명하여 한양의 북극 고도와 여지도(輿地圖)의 경위선을 참고하여 8도 관찰사영의 극고 및 동서 경도를 측정하여 극고표를 만들었다.[1]
《여도비지》에는 정조 때 측정값인지, 김정호가 실측한 값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전국 주요 지점의 극고를 기록한 극고표가 실려 있다. 함경도 25지점, 평안도 42지점, 황해도 23지점, 강원도 26지점, 경기도 38지점, 전라도 53지점, 경상도 71지점으로, 총 278개 지점의 경위도가 표기되었다. 그 밖에도 전국 주현의 강역표, 방위표, 도리표 등을 도표로 제시하였으며,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경위선식의 과학적인 《동여도》를 제작할 수 있었다.[1]
6. 《여도비지》, 《동여도》, 《대동여지도》의 관계
《여도비지》는 김정호가 제작한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의 제작 배경, 방법, 내용을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세 자료는 내용, 극고 산정 내용, 통계표 등에서 상당 부분 일치하여 유기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 내용 일치: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방면 등의 기재 내용은 《여도비지》에 수록된 내용과 일치한다.
- 극고 산정 내용 일치: 《여도비지》 권1 동반부서 관상감조에 실린 팔도 순여의 북극고를 정한 내용과 《동여도》 13규 여백란에 표기되어 있는 북극고 산정 내용이 같다.
- 통계표 일치: 《대동여지도》 2규 여백란에 수록되어 있는 팔도의 주현수 및 대소영수 등은 《여도비지》 각 도의 도세를 총괄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작성된 각종 통계표와 일치한다.
《여도비지》는 《동여도》의 사양서(지도 제작을 위한 설명서)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지도 제작에 필요한 사항들을 포함하고 있다.[4] 특히 전국 주요 지점, 즉 행정 구역의 극고표(極高表)를 수록하고 있다.
1713년 청나라 사신 하국주(何國柱) 일행이 한양을 방문하여 사상대의(象限大儀)를 이용하여 한성부 종가의 극고를 실측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정조는 1791년 감신 김영(金泳)에게 명하여 한양의 북극 고도와 《여지도(輿地圖)》의 경위선을 기준으로 팔도 관찰사 영의 극고 및 동서 경도를 측정하여 극고표를 만들었다.
《여도비지》에는 정조 때 측정한 값인지, 김정호가 실측한 값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전국 주요 지점의 극고를 기록한 극고표가 기록되어 있다. 함경도 25지점, 평안도 42지점, 황해도 23지점, 강원도 26지점, 경기도 38지점, 전라도 53지점, 경상도 71지점으로, 총 278지점의 경위도가 표기되었다. 그 외에도 전국 주현(州縣)의 강역표, 방위표, 도리표 등을 도표로 제시했으며, 이러한 자료를 근거로 경위선식 과학적인 《동여도》를 제작할 수 있었다.
7. 의의 및 평가
輿圖備志중국어는 조선 후기 지리학의 발전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김정호의 과학적인 지도 제작 방법론과 최성환의 실학적 지리 정보 정리 능력이 결합된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김정호의 업적이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고 국토에 대한 애정을 함양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하며, 그의 과학적 탐구 정신과 실용적인 학문 태도를 높이 평가한다.
참조
[1]
서적
한국 고지도 발달사
혜안
[2]
서적
한국 고지도 발달사
혜안
[3]
문서
[4]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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