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석지
1. 개요
여석지는 고황후의 작은오라버니로, 한고제가 거병했을 때부터 종군하여 진나라와 싸웠다. 고제가 한왕으로 봉해진 후에는 고제의 아버지와 장인을 모셨으며, 고제 6년에는 건성후에 봉해졌다. 혜제 시기에 사망하여 강(康)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아들 여칙이 작위를 이었으나 죄를 지어 박탈당했다. 이후 아들 여록이 조나라 왕이 되면서 조소왕으로 추존되었다. 고제가 척부인의 아들 유여의를 태자로 세우려 하자 고황후와 상의하여 장량을 협박해 유영을 위해 계책을 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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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세기 사망 -
폴리비오스
폴리비오스는 아카이아 동맹 귀족 출신 그리스 역사가이자 정치가로, 로마에 인질로 끌려간 후 로마 귀족과 관계를 맺으며 로마 공화정의 흥망성쇠를 다룬 『역사』를 저술했고, 효율적인 통신 방식인 '폴리비오스 정사각형'을 고안했다. -
기원전 2세기 사망 -
히파르코스
히파르코스는 기원전 2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니카이아 출신의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이자 수학자로, 삼각함수표 작성, 별의 밝기 등급 분류, 춘분점 세차 운동 발견, 정밀한 별 목록 편찬 등 천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여 "삼각법의 아버지"라 불린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2. 일대기
여석지는 고황후의 작은오라버니로, 고제가 처음 군사를 일으켰을 때부터 객으로서 함께 종군하여 진나라와 싸웠다. 기원전 206년, 고제가 한왕으로 봉해지면서 풍(豐)·패(沛)로 돌아가 고제의 아버지와 장인 여선왕을 모셨다. 기원전 201년, 고제가 중국을 통일하고 건성후(建成侯)에 봉했다. 혜제 2년(기원전 193년) 혹은 재위 9년 만에(기원전 192년) 죽어 시호를 강(康)이라 했다. 작위는 아들 여칙이 이었으나 죄를 지어 박탈당했다. 이후 아들 여록이 조나라 왕이 되면서 조소왕(趙昭王)으로 추존되었다.
고제가 고황후 소생인 태자 유영을 폐하고 총애하는 척부인 소생의 유여의를 태자로 세우려 하자, 고황후와 상의하고 장량을 협박해 유영을 위해 계책을 내게 했다. 이 사건은 《사기》의 〈유후세가〉와 《한서》의 〈장진왕주전〉에 기록되어 있는데, 직접 언급되는 이름은 형인 여택이지만 작호는 여석지의 작호인 '건성후'로 나온다. 이 때문에 이 부분의 여택은 여석지를 잘못 쓴 것으로 보기도 한다.
2.1. 초기 생애와 군사 활동
고황후의 작은오라버니로, 처음 고제가 거병하였을 때부터 객으로서 종군해 진나라와 싸웠다. 기원전 206년, 고제가 한왕으로 봉해지면서 풍(豐)·패(沛)로 돌아가 고제의 아버지와 장인 여선왕을 모셨다. 고제 6년(기원전 201년), 고제가 중국을 통일하고서 건성후(建成侯)에 봉해졌다.
2.2. 건성후 책봉과 사망
고황후의 작은오라버니로, 처음 고제가 거병하였을 때부터 객으로서 종군해 진나라와 싸웠다. 기원전 206년, 고제가 한왕으로 봉해지면서 풍(豐)·패(沛)로 돌아가 고제의 아버지와 장인 여선왕을 모셨다. 고제 6년(기원전 201년), 고제가 중국을 통일하고서 건성 후(建成侯)에 봉해졌다. 혜제 2년(기원전 193년) 혹은 재위 9년 만에(기원전 192년) 죽어 시호를 강(康)이라 했다. 작위는 아들 여칙이 이었으나, 죄를 지어 작위를 박탈당했다. 이후에 아들 여록이 조나라 왕이 되면서 조소왕(趙昭王)으로 추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