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포 (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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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염포는 후한 말 ~ 위나라의 인물로, 장로의 공조였다. 장로가 한녕왕을 칭하려 할 때 이를 반대하고, 조조의 침략에 맞서 싸울 것을 주장했다. 조조에게 항복한 후 열후에 봉해졌으며, 조비에게 황위를 선양할 것을 권했다. 황초 연간에 작위와 영지가 더해졌고, 230년대 초반에 사망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장로의 막료로 등장하며, 역사와는 다른 행적을 보인다.

염포 (조위)
염포
기본 정보
이름염포 (閻圃)
지칙 (志則)
생몰년? ~ 214년
출생지섬서 위남
국적후한
관직 및 직책
소속장로
주요 직책통의주부 (統義主簿)
양평장 (陽平長)
가족 관계
아버지염온 (閻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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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장로
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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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장로가 한중을 지배하고 있을 때 그의 공조(功曹)였다. 한중의 주민이 옥인(玉印)을 바치자 장로는 한녕왕(漢寧王)을 칭하려 하였으나, 염포는 이를 말렸다. 염포는 "지금도 한중에서 독립적인 세력을 유지하고, 재력도 풍부하며 백성들도 우리 지배 하에서 무사히 생활하고 있습니다. 굳이 왕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간했다.

215년,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한중을 침략하여 양평관(陽平關)을 함락시켰다. 장로가 항복하려 하자, 염포와 장위는 맞서 싸울 것을 주장하였다. 단, 이는 승산이 있어서가 아니라 바로 항복하면 조조가 얕잡아 볼 것이라고 판단하여 내린 술책이었다. 장로는 이를 받아들였다.

장로의 동생 장위가 전의를 잃어 항복하고, 남정(南鄭)으로 입성한 조조가 사자를 장로에게 보내자 장로와 염포는 항복하였다. 염포는 조조로부터 공적을 높이 사, 장로와 함께 열후(列侯)에 봉해졌으며, 동시에 마초의 아내 동씨(董氏)를 배필로 얻었다.

연강 원년(220년), 염포는 다른 대신들과 함께 조비에게 황위를 선양받을 것을 권하였다. 이때 염포는 건절장군·평락향후로 '위공경상존호주'에 이름을 올렸다.

황초 연간에 염포는 작위와 영지가 더해져 조정 회의에서 예우를 받는 위치에까지 이르렀고, 10여 년 뒤 병사하였다. 사망 연도는 23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작위는 아들 염박이 이었다.

이후에도 염포의 일족은 번성하여, 염박의 아들 염찬은 서진의 한중 태수가 되었으며, 방현령 등의 『진서』에 열전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에는 재상이자 화가인 염립본을 배출했다.

3. 《삼국지연의》 속 염포

《삼국지연의》에서 염포는 장로의 막료로 등장한다. 그러나 사실과 달리, 염포는 장로에게 촉(蜀)의 유장을 토벌하여 왕위에 오를 것을 진언한다. 조조가 한중을 침공하자 장로에게 방덕을 기용할 것을 간하였으며, 동료 양송의 참언을 들은 장로가 방덕을 죽이려 하자 염포는 방덕을 변호한다. 그 후 조조에게 항복하여 열후에 봉해진다.

4. 평가

염포는 후한 말 한중군을 지배한 장로의 공조였다. 주민들이 장로에게 옥새를 헌상하자, 장로는 한녕왕을 칭하려 했으나, 염포는 "지금도 한중에서 독립적인 세력을 유지하고, 재력도 풍부하며 백성들도 우리 지배 하에서 무사히 생활하고 있습니다. 굳이 왕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간했다.

건안 20년(215년), 조조가 한중을 공격하여 양안관을 함락시켰다. 장로가 당황하여 항복하려 하자, 염포는 항전을 주장했다. 다만 그것은 승산이 있어서가 아니라, 한 번도 싸우지 않고 항복하면 조조에게 가볍게 보일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장로는 이를 받아들여 파중으로 도망쳤고, 그 후, 남정에 입성한 조조가 사자를 파견해오자, 염포와 함께 항복했다. 이러한 염포의 실적은 조조에게 높이 평가받아, 장로의 아들들과 함께 열후에 봉해졌다. 동시에 마초의 첩이었던 동씨를 하사받았다.

연강 원년(220년), 조비의 가신단이 조비에게 후한으로부터 선양을 받도록 권하는 '위공경상존호주'에 염포는 건절장군·평락향후로 이름을 올렸다. 황초 연간에는 더욱 작위와 영지를 더해져, 조정 회의에서 예우받는 신분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10여 년 만에 사망했다고 하므로, 사망 연도는 23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작위는 아들 염박이 이었다.

이후에도 염포의 일족은 번성하여, 염박의 아들 염찬은 서진의 한중 태수가 되었으며, 방현령 등의 『진서』에 열전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에는 재상이자 화가인 염립본을 배출했다.

5. 가계

염포는 아들 염박이 있었으며, 염박 사후에는 염박의 아들 염찬이 뒤를 이었다. 염찬은 서진의 한중 태수를 지냈다. 염포의 일족은 대에 재상이자 화가였던 염립본을 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