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 로쿠이치로
1. 개요
오노 로쿠이치로는 1887년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나 도쿄제국대학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내무성에 들어갔다. 아키타현 서무과장, 가가와현 권업과장, 도쿠시마현 지사, 기후현 지사를 거쳐 1932년 경시총감, 1936년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을 역임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을 적극 추진하여 비판받았다. 1942년 귀족원 의원이 되었으나 1946년 사임하고 공직 추방되었다가 1951년 복귀하여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1985년 9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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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어 이름 | 大野 緑一郎 (오노 로쿠이치로) |
|---|---|
| 출생지 | 사이타마현 우라와시 |
| 사망 원인 | 알 수 없음 |
| 국적 | 일본 |
| 직업 | 내무 관료, 변호사 |
| 학력 |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 |
| 가족 | 하시모토 류타로(외손) 하시모토 가쿠(증손) |
| 수상 | 훈1등 욱일대수장 |
| 주요 직책 | 내무성 관료, 변호사 역임 |
|---|
| 콜사인 | 알 수 없음 |
|---|---|
| 서명 | 알 수 없음 |
| 공식 웹사이트 | 알 수 없음 |
| 보충 | 알 수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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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시마현지사 -
와타나베 구니타케
와타나베 구니타케는 메이지 시대에 대장대신을 지낸 일본의 정치인이자 관료로, 긴축 재정을 추진하고 자유민권운동 진압에 관여했으며 독신으로 형의 아들을 양자로 들였다. -
도쿠시마현지사 -
야마가타 이사부로
야마가타 이사부로는 일본 제국의 정치인으로,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양자이자 한국통감부 부통감,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중추원 의장을 지내며 일제강점기 식민 통치에 협력했다. -
관동주 사람 -
오타 마사히로
오타 마사히로는 야마가타현 출신으로 도쿄제국대학 법과대학을 졸업한 일본의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내무성 관료 생활을 시작하여 여러 현 지사, 경시총감, 귀족원 칙선의원, 관동 장관, 대만 총독 등을 지냈으나 태평양 전쟁 이후 공직에서 추방되었고 사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
관동주 사람 -
시라니 다케시
시라니 다케시는 일본의 관료이자 기업인으로, 내무성 입부 후 군마현 현지사, 토목국장 등을 역임하며 아시오 광독 사건 관련 와타라세 유수지 건설을 추진했고, 제철소장관과 일본우선 사장을 지내며 철강 산업 발전과 해운업 경영 정상화에 기여했다. -
일본 귀족원 의원 -
가가와 도요히코
가가와 도요히코는 일본의 기독교 사회주의자이자 사회운동가, 소설가로서, 빈민 구제, 노동 운동, 농민 운동, 협동조합 운동 등 사회 개혁에 헌신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나, 전시에는 제국주의에 협력적인 태도를 보여 비판을 받았고, 전후에는 정치 활동과 세계 평화 운동에 힘썼다. -
일본 귀족원 의원 -
아베 요시시게
아베 요시시게는 일본의 철학자이자 교육자로, 칸트 철학 연구와 한국 문화 연구에 기여했으며, 전후 일본 교육 제도 개혁을 이끌고 가쿠슈인대학 총장으로 재임하며 교육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1887년 10월 1일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시(옛 우라와시)에서 태어나, 1912년 도쿄제국대학 법과대학(독일 법학)을 졸업하고 내무성에 들어갔다. 이후 1914년 아키타현 서무과장, 1916년 가가와현 권업과장, 1926년 도쿠시마현 지사, 1927년 기후현 지사, 1928년 사회국 사회부장 겸 중앙직업소개 사무국장, 1931년 내무성 지방국장, 1932년 경시총감을 역임했다.
1936년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에 취임하여 창씨개명을 추진했다.
1942년 귀족원 의원을 지냈으며, 1946년 공직 추방 이후 변호사로 활동하다 1985년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 및 관료 경력
1887년 10월 1일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시(옛 우라와시)에서 아버지 오노 야스노스케(大野安之助)의 4남으로 태어났다. 1912년 7월 도쿄제국대학 법과대학(독일 법학)을 졸업하고 내무성에 들어갔다.
이후 관료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2.3. 정무총감 이후의 삶
1942년 5월 29일 귀족원 의원이 되었다.(~1946년 3월 8일)
1946년 9월, 공직 추방을 당했다.(~1951년 8월) 이후 변호사를 개업했다.
1985년 9월 2일, 향년 97세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