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하우젠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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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버하우젠 영화제는 1954년 힐마 호프만에 의해 설립된 국제 단편 영화제이다. 초기에는 서독 교육 영화제로 시작하여, 동구권 영화 상영 기회를 제공하며 "단편 영화의 메카"로 성장했다. 1962년 오버하우젠 선언을 통해 뉴 저먼 시네마의 시작을 알렸으며, 1991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다양한 형식과 주제의 단편 영화와 비디오를 선보이며, 뮤직비디오 영화제 상인 "MuVi"를 도입하는 등 실험적인 시도를 해왔다. 2020년에는 독일 최초의 전면 디지털 영화제로 개최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영화 배급 및 아카이브를 운영하고 있다. 오버하우젠 영화제는 앤드리아 아놀드, 베르너 헤어초크 등 많은 영화 제작자들의 경력에 중요한 발판이 되었으며, 아카데미상, BAFTA, 유럽 영화상의 예선 영화제로도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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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버하우젠 영화제 | |
|---|---|
| 기본 정보 | |
![]() | |
| 공식 명칭 | 국제 단편 영화제 오버하우젠 |
| 원어 명칭 | Internationale Kurzfilmtage Oberhausen |
| 위치 | 오버하우젠, 독일 |
| 개최 빈도 | 매년 개최 |
| 웹사이트 | www.kurzfilmtage.de |
| 연혁 | |
| 설립 | 1954년 서독 문화 영화의 날 (Westdeutsche Kulturfilmtage) 1959년 서독 단편 영화의 날 (Westdeutsche Kurzfilmtage)로 개칭 1991년 국제 단편 영화제 오버하우젠 (Internationale Kurzfilmtage Oberhausen)으로 개칭 |
| 세부 정보 | |
| 종류 | 단편 영화제 |
| 주최 | IKF gGmbH, 오버하우젠 시 |
2. 역사
오버하우젠 영화제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동안 수많은 영화감독과 예술가들이 이 영화제를 통해 데뷔했다. 앤드리아 아널드, 베라 치틸로바, 밀로스 포만, 베르너 헤어초크, 요리스 이벤스, 미란다 줄라이, 로만 폴란스키, 피필로티 리스트, 마틴 스코세이지, 서보 이슈트반, 아녜스 바르다 등이 오버하우젠에서 초기 작품을 선보였다.[1]
1960년대에는 헬무트 코스타르트의 영화 《특히 가치 있는(Besonders wertvoll)》을 둘러싼 1968년의 스캔들이 있었다. 이 영화는 말하는 남근이 1967년 새로운 영화 지원법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검찰의 이의 제기로 영화제는 공식 프로그램에서 해당 영화를 삭제했고, 이후 많은 독일 영화 제작자들이 작품을 철회했다. 오버하우젠은 독일 영화에 대한 공개 심사 절차를 포함한 수정된 규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1]
1970년에는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가 상영되었고, 1989년에는 비디오 부문이 도입되었다.[1]
오버하우젠 영화제의 연혁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연도 | 주요 내용 |
|---|---|
| 1954년 | 서독 문화 영화제(Westdeutsche Kulturfilmtage)로 설립 |
| 1958년 | "이웃으로 가는 길(Weg zum Nachbarn)"이라는 모토 도입 |
| 1959년 | 서독 단편 영화제(Westdeutsche Kurzfilmtage)로 명칭 변경 |
| 1962년 | 오버하우젠 선언 발표 |
| 1970년 |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 상영 |
| 1989년 | 비디오 부문 도입 |
| 1991년 | 국제 오버하우젠 단편 영화제(Internationale Kurzfilmtage Oberhausen)로 명칭 변경, 독일 최초의 단편 영화 경쟁 부문 신설 |
| 1993년 | 모든 경쟁 부문에 필름과 동등하게 비디오 작품도 출품 가능 |
| 1999년 | 세계 최초의 영화제 뮤직 비디오 상 도입 |
| 2002년 | AG 단편 영화 e.v.의 공동 설립, 독일 단편 영화 로비 단체 |
| 2019년 | AG 영화제(AG Filmfestival)의 공동 설립, 독일 영화제 로비 단체 |
2. 1. 설립 초기 (1954년 ~ 1960년대)
1954년 힐마 호프만 관장과 오버하우젠 영화 클럽의 협력으로 "제1회 서독 교육 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교육 정책에 중점을 두었으며, 첫 번째 영화제의 모토는 "문화 영화 - 교육의 길"이었다. 독일 연방 공화국, 프랑스, 미국에서 온 45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1]1958년 제4회 서독 교육 영화제에서는 "이웃으로 가는 길"이라는 모토가 도입되었고, 1959년에는 "서독 단편 영화제"로 개칭되었다. 오버하우젠은 곧 정치적 명성을 얻었는데, 주로 동구권에서 제작된 많은 영화를 오버하우젠에서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이 영화제가 "단편 영화의 메카"로 빠르게 성장하고 명성을 얻게 했다. 1950년대 초부터 방문객들은 프랑수아 트뤼포, 노먼 맥라렌, 알랭 레네, 베르트 하안스트라, 린제이 앤더슨 등 서구의 젊은 영화 제작자들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었다. 1958년 제4회 영화제에는 이미 29개국에서 190편의 영화가 출품되었다.[1]
1962년 제8회 영화제에서 알렉산더 클루게, 페터 샴모니, 에드가 라이츠 등을 포함한 젊은 독일 영화 제작자들은 오버하우젠 선언을 발표하며 "낡은" 영화의 종말을 선언하고 새로운 종류의 독일 영화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1]

2. 2. 오버하우젠 선언과 뉴 저먼 시네마 (1962년)
1962년 제8회 오버하우젠 영화제에서 알렉산더 클루게를 비롯한 젊은 독일 영화 제작자들은 오버하우젠 선언을 발표했다.[1] 이들은 "낡은" 영화의 종말을 선언하고 새로운 종류의 독일 영화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선언을 통해 뉴 저먼 시네마가 시작되면서, 오버하우젠 영화제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고 영화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2. 3. 1970년대 ~ 1980년대: 변화와 확장
1970년대에는 샹탈 아케르만과 헬마 산더스-브람스 같은 젊은 영화 제작자들이 오버하우젠에서 첫 영화를 선보이면서 여성 운동이 영화제의 시금석이 되었다. 1978년에는 어린이 및 청소년 영화를 위한 새로운 경쟁 부문이 신설되었다. 1970년대는 또한 새로운 영화제의 물결을 목격했는데, 단편 영화는 극장에서 밀려나 영화제라는 새로운 상영 기회를 찾았다.1980년대 후반에 오버하우젠에는 비디오와 뉴 미디어가 점차 등장했다. 영화제의 초창기를 형성했던 동서 갈등이 완화되면서 "동쪽으로 가는 창"으로서의 역할은 점차 퇴색되었다. 이제 단편 영화와 광고 클립, 뮤직 비디오, 산업 영화, 비디오 아트 - 종종 아방가르드라는 일반적인 용어로 포괄됨 - 사이의 중재자이자 선구자로서 영화제의 프로필이 부각되었다.
2. 4. 1990년대 이후: 현재
1991년, 영화제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이름인 오버하우젠 국제 단편 영화제로 개명되었다. 같은 해 오버하우젠은 독일 단편 영화를 위한 최초의 전국 경쟁을 도입했다. 1993년부터 영화제는 영화와 비디오에 동등한 지위를 부여했다. 1999년, 오버하우젠은 세계 최초의 뮤직비디오 영화제 상인 "MuVi"를 도입했는데, 이 상은 오늘날까지도 클립의 시각적 품질을 인정받은 감독에게만 수여된다. 비디오 아트의 부상과 함께, 예술가들이 제작한 영화가 점점 더 많이 영화제 프로그램에 포함되었다.오늘날 오버하우젠은 다양한 형식, 문화 및 사회적 배경의 단편 영화와 비디오를 선보인다. 대규모 특별 프로그램은 매년 다른 주제를 다루는데, 최근에는 "매력의 언어. 광고와 아방가르드 사이의 예고편"(2019), "혼란으로서의 연대"(2021/22) 또는 "무중력에 맞서다. 머시니마의 예술"(2023) 등이 있었다. 또한 이 영화제는 최근 국제 단편 영화를 대거 엄선하여 비디오 라이브러리를 운영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개별 아티스트를 위한 프로필 프로그램 및 아방가르드 영화의 국제 배급사를 위한 시장 상영회를 개최하며, 매년 "포디움"이라는 토론 시리즈를 진행한다.
2020년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인해 영화제는 제66회를 완전히 온라인으로 개최하여 독일 최초의 전면 디지털 영화제가 되었다. 2,500개 이상의 영화제 패스가 판매되고 거의 100개국에서 사용자들이 참여하면서 새로운 형식은 예상보다 훨씬 성공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에도 또 다른 전면 디지털 영화제가 이어졌다. 제67회 오버하우젠 국제 단편 영화제는 5월 1일부터 10일까지 온라인으로 개최되었다. 10일 동안 영화제는 평소보다 거의 두 배의 기간 동안 진행되었으며, 처음으로 3개의 새로운 온라인 경쟁(국제 온라인 경쟁, 독일 온라인 경쟁, Muvi 국제상)을 선보였다. 2022년에는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영화관으로 돌아와 4월 29일부터 5월 3일까지는 온라인으로만, 5월 4일부터 10일까지는 영화관에서 상영했다. 2023년에는 영화관에서만 상영되었다(4월 26일 - 5월 1일).
오버하우젠은 영화제 조직 외에도 비상업적 단편 영화 배급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아카이브에는 70년이 넘는 영화 역사의 단편 영화가 보관되어 있다.
2. 5. 코로나19 팬데믹 (2020년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제66회 영화제는 완전히 온라인으로 개최되었으며, 이는 독일 최초의 전면 디지털 영화제였다. 2,500개 이상의 영화제 패스가 판매되고 거의 100개국에서 사용자들이 참여하여 새로운 형식은 예상보다 훨씬 성공적이었다. 2021년에도 전면 디지털 영화제가 이어졌다. 제67회 오버하우젠 국제 단편 영화제는 5월 1일부터 10일까지 온라인으로 개최되었다. 영화제는 평소보다 거의 두 배의 기간인 10일 동안 진행되었으며, 처음으로 3개의 새로운 온라인 경쟁(국제 온라인 경쟁, 독일 온라인 경쟁, Muvi 국제상)을 선보였다. 2022년에는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복귀하여 4월 29일부터 5월 3일까지는 온라인으로만, 5월 4일부터 10일까지는 영화관에서 상영했다. 2023년에는 4월 26일부터 5월 1일까지 영화관에서만 상영되었다.3. 주요 특징
오버하우젠 국제 단편 영화제는 1954년 힐마 호프만이 주도하여 "제1회 서독 교육 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교육적 목적을 강조했지만, 점차 정치적인 색채를 띠며 동구권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장으로 "단편 영화의 메카"라는 명성을 얻었다.
1962년 젊은 독일 영화 제작자들이 오버하우젠 선언을 발표하며 새로운 독일 영화의 등장을 알렸다. 1960년대 후반에는 헬무트 코스타르트의 영화 《특히 가치 있는》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지만, 수정된 규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1970년대에는 여성주의 영화가 주목받았고, 어린이 및 청소년 영화 경쟁 부문이 신설되었다. 1980년대에는 비디오와 뉴 미디어가 등장했으며, 1991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1999년에는 세계 최초로 뮤직비디오 상인 "MuVi" 상을 제정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으로 개최되었으며, 2022년에는 온·오프라인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3. 1. 국제적인 인정
오버하우젠 영화제는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영화제로 인정받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특징 | 내용 |
|---|---|
| 출품 규모 | 매년 약 90개국에서 7,000편에 가까운 작품 출품 |
| 상영 규모 | 매 영화제마다 약 500편의 영화 상영 |
| 국제 방문객 | 매년 1,000명 이상의 공인된 국제 방문객 |
| 상금 규모 | 총 41000EUR 이상의 상금 |
| 국제 공인 | 1960년부터 FIAPF 공인,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 인정 |
| 후보 선정 |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및 유럽 영화상의 유럽 영화 아카데미 후보 선정 영화제 |
3. 2. 영화 배급 및 아카이브
오버하우젠은 영화제 조직 외에도 비상업적 단편 영화 배급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아카이브에는 70년이 넘는 영화 역사의 단편 영화가 보관되어 있다.4. 역대 영화제 감독
| 기간 | 이름 |
|---|---|
| 1954년 - 1970년 | 힐마르 호프만 |
| 1971년 - 1975년 | 빌 베링 |
| 1975년 - 1985년 | 볼프강 J. 루프 |
| 1985년 - 1990년 | 카롤라 그라만 |
| 1990년 - 1997년 | 안젤라 하르트 |
| 1997년 - 현재 | Lars Henrik Gass|라르스 헨리크 가스de |
5. 주요 수상 및 관련 인물
오버하우젠 영화제의 오랜 역사 동안 많은 영화 경력이 성공적으로 시작되었다. 오버하우젠에서 초기 작품을 선보인 영화 제작자 및 예술가들은 다음과 같다.
- 앤드리아 아널드
- 베라 치틸로바
- 밀로스 포만
- 베르너 헤어초크
- 요리스 이벤스
- 미란다 줄라이
- 로만 폴란스키
- 피필로티 리스트
- 마틴 스코세이지
- 서보 이슈트반
- 아녜스 바르다
- 에이야-리사 아틸라
- 더그 에이튼
- 케네스 앵거
- 위르겐 뵈처
- 스탠 브래키지
- 발리에 엑스포트
- 크리스토프 호흐회슬러
- 헤르미네 훈트게부르트
- 아이작 줄리앙
- 로무알드 카르마카
- 요헨 쿤|요헨 쿤 (감독)de
- 얀 레니카
- 크리스 마르케
- 비요른 멜후스
- 도레 O.de
- 크리스토프 슐링겐지프
- 아돌프 빈켈만
오늘날, 영화제는 단편 영화 아카데미상과 BAFTA의 예선 영화제이다. 또한 유럽 영화상 후보를 지명하는 영화제이기도 하며, 더불어 전문가 심사위원단이 매년 ECFA (유럽 아동 영화 협회) 단편 영화상을 위한 아동 영화를 지명한다.
6. 통계
| 항목 | 내용 |
|---|---|
| 출품작 수 | 매년 약 90개국에서 7,000편 |
| 상영작 수 | 매 영화제마다 약 500편 |
| 국제 방문객 | 매년 1,000명 이상 |
| 총 상금 | 41000EUR 이상 |
| FIAPF 공인 | 1960년부터 |
|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 인정 | O |
| BAFTA 및 유럽 영화상 후보 선정 | 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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