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
1. 개요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는 독산성이라고도 불리며, 경기도 오산에 위치한 산성 및 세마대 전설과 관련된 장소이다. 백제가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주둔하여 왜군을 물리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성 둘레는 1,100m이며, 물이 부족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권율 장군이 흰 쌀로 말을 씻는 시늉을 하여 왜군을 속였다는 세마대 전설이 전해진다. 독산성 동문 안에 위치한 보적사는 백제 아신왕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여러 차례 중건과 재건을 거쳐 현재 대웅전과 3층 석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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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표기 | 독산성 (禿山城) |
|---|---|
| 로마자 표기 | Doksanseong |
| 유형 | 산성 |
| 위치 | 오산시 |
| 면적 | 75,254m2 |
| 축조 시기 | 373년 이전 (백제 시대) |
|---|---|
| 재건 | 1602년 (석성으로) |
| 복원 | 1950년대, 1980년대 |
| 축조 목적 | 방어 |
| 지정 종류 | 대한민국의 사적 |
|---|---|
| 지정 명칭 |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 (烏山 禿山城과 洗馬臺址) |
| 지정 번호 | 140호 |
| 지정일 | 1964년 8월 29일 |
| 추가 지정 고시일 | 2018년 7월 12일 |
| 문화재청 ID | 13,01400000,31 |
| 지정 종류 2 | 화성시 향토유적 |
| 지정 명칭 2 | 부젝사 (扶赤寺) |
| 지정 번호 2 | 8호 |
| 지정일 2 | 1986년 5월 20일 |
| 해제일 2 | 1989년 1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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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성 -
청주 상당산성
청주 상당산성은 청주시 시가지에 인접한 산 정상에 축조된 둘레 약 4.2km의 산성으로, 통일신라 시대에 축성되었으며 조선 시대 수축과 개축을 거쳐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
백제의 성 -
익산 토성
익산 토성은 오금산 정상에 흙과 돌로 쌓은 산성으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에 축조되었으며 백제, 통일신라, 고려 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
경기도의 사적 -
연천 전곡리 유적
연천 전곡리 유적은 1978년 발견된 구석기 시대 유적으로, 아슐리안 석기를 포함한 다양한 석기가 출토되었으며 전곡선사박물관이 건립되어 운영되고 구석기축제가 개최된다. -
경기도의 사적 -
서오릉
서오릉은 조선 왕실의 왕릉군으로, 경릉, 창릉, 익릉, 명릉, 홍릉 등 5기의 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순창원, 수경원, 대빈묘도 포함되어 있다. -
고려의 성 -
백마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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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성 -
장성 입암산성
장성 입암산성은 전라남도 장성군 입암산에 위치한 산성으로, 1256년 송군비가 축조한 것으로 전해지며 조선 시대 개축과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중요한 방어 시설로 활용되었고, 15km에 달하는 성벽과 남문, 북문, 장기간 방어를 위한 물 확보 설계가 특징이며 주변 관광 명소와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다.
2. 역사
독산성은 독성산성(禿城山城)이라고도 불린다.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백제 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남북국 시대와 고려 시대를 거치며 군사적 요충지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선조 대 임진왜란 중에는 권율 장군이 주둔하여 왜군을 물리쳤으며, 이때 물 부족 문제를 지혜롭게 극복했다는 세마대(洗馬臺) 전설이 내려온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백성들에 의해 개축되고, 부사 변응성의 보수, 정조 대의 추가 공사 등을 통해 유지되었다.
2.1. 삼국시대 (백제)
독산성(禿山城) 동문 안에는 보적사(寶積寺)가 자리하고 있다. 정확한 창건 기록은 없으나, 백제 아신왕 10년인 401년에 전승(戰勝)을 기원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2.2. 조선시대
독산성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백제가 쌓은 성으로 추정되며 남북국 시대나 고려 시대에도 군사적 요충지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선조 25년(1592) 12월, 임진왜란 중에 권율 장군이 전라도 병사 2만여 명을 이끌고 이곳에 주둔하여 왜병 수만 명을 격파하고 성을 지켜내면서 적의 진로를 차단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성 둘레는 1100m이고 문도 4개였지만, 성 안에 물이 부족하다는 큰 약점이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세마대(洗馬臺) 전설이 전해지는데, 권율 장군이 산 위로 흰 말을 끌어다가 쌀로 말을 씻기는 시늉을 하여 성 안에 물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게 하자, 이에 속은 왜군이 물러났다는 이야기이다.
임진왜란 중인 선조 27년(1594)에는 백성들이 산성을 쌓았으며, 전쟁이 끝난 후 선조 35년(1602)에는 당시 부사였던 변응성이 성을 돌로 다시 쌓아(석성, 石城) 보수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변응성(邊應星, 1552~1616)은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의 추천으로 경기방어사가 되었고, 광해군 때에는 훈련대장을 거쳐 판윤에 오른 인물이다.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선정비가 세워졌는데, 높이 143cm, 폭 62cm, 두께 22cm 크기의 화강암 비석이다. 비석 앞면에는 '방어사 변응성 선정비(防禦使邊應星善政碑)'라고 새겨져 있으나, 세워진 정확한 연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 비석은 원래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사적 제140호) 밖 서쪽 주차장 근처에 있었으나, 몇 차례 위치를 옮겨 현재는 서문 주차장 인근(경기도 오산시 양산동 산19-89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이후 정조 16년(1792)과 20년(1796)에도 추가적인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다.
3.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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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세마대
독산성 안에는 물이 부족하다는 약점이 있었다. 이 약점과 관련하여 세마대(洗馬臺)의 전설이 전해진다. 임진왜란 중 권율 장군이 산성 위에서 말을 씻기는 척하여 왜군을 속였다는 이야기이다. 구체적으로는, 말을 세워두고 흰 쌀을 부어 멀리서 보면 마치 물로 말을 씻기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고 한다. 이를 본 왜군은 성 안에 물이 풍부하다고 오인하여 포위를 풀고 물러났다고 전해진다.
4. 보적사
독산성 동문 안에 위치한 사찰이다. 백제 아신왕 10년(401년)에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이름에는 가난한 노부부의 공양과 관련된 유래가 전해진다. 여러 차례의 전란 속에서 중건과 재건을 거듭하여 현재는 대웅전과 3층 석탑 등이 남아있다. 1986년 향토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으나, 1989년 오산시로 행정구역이 변경되면서 해제되었다.
4.1. 역사
보적사(寶積寺)는 현재 독산성 동문 안에 위치하고 있다. 창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백제 아신왕 10년(401년)에 전승(戰勝)을 기원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보적사'라는 명칭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해진다. 옛날 삶이 궁핍한 노부부가 쌀 두 되만 남게 되자, 이를 부처님께 공양하고 집에 돌아오니 곳간에 쌀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이후 열심히 공양하면 보화(寶貨)가 쌓이는 사찰이라 하여 보적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보적사는 여러 차례 전란을 겪으면서 중건과 재건을 거듭하였고, 현재는 대웅전과 3층 석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1986년 5월 20일 화성시의 향토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으나, 오산시로 행정구역이 개편됨에 따라 1989년 1월 1일 해제되었다.
4.2. 문화재
보적사(寶積寺)는 현재 독산성 동문 안에 위치한다. 창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백제 아신왕 10년(401년)에 전승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보적사'라는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옛날 가난한 노부부가 마지막 남은 쌀 두 되를 부처님께 공양하고 집에 돌아오니 쌀이 곳간에 가득 차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후 공양하면 보화가 쌓이는 절이라 하여 보적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보적사는 여러 차례 전란을 겪으며 중건과 재건을 반복했고, 현재는 대웅전과 3층 석탑 등이 남아 있다.
1986년 5월 20일 화성시의 향토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으나, 1989년 1월 1일 오산시로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해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