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보 요시토
1. 개요
오쿠보 요시토는 일본의 축구 선수로, 포워드, 볼란치, 사이드 하프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세레소 오사카, RCD 마요르카(임대), 비셀 고베, VfL 볼프스부르크, 가와사키 프론탈레, FC 도쿄, 주빌로 이와타, 도쿄 베르디를 거쳐 세레소 오사카에서 은퇴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J리그 득점왕을 3년 연속 수상했으며, J1리그 통산 200골을 돌파하는 등 J리그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일본 국가대표로 60경기에 출전해 6골을 기록했고, 2010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다.
| 이름 | 요시토 오쿠보 |
|---|---|
| 로마자 표기 | Ōkubo Yoshito |
| 일본어 표기 | 大久保 嘉人 |
| 출생일 | 1982년 6월 9일 |
| 출생지 | 후쿠오카현 교토군 간다 |
| 키 | 170cm |
| 몸무게 | 73kg |
| 포지션 | 공격수, 미드필더 |
| 주발 | 오른발 |
| 애칭 | 요시토, 백수의 왕 |
| 유스 클럽 | 1998–2000 구니미 고등학교 |
|---|---|
| 클럽 | 2001–2006 세레소 오사카 2005–2006 → 마요르카 (임대) 2007–2009 비셀 고베 2009 VfL 볼프스부르크 2009–2012 비셀 고베 2013–2016 가와사키 프론탈레 2017 FC 도쿄 2018 가와사키 프론탈레 2018–2019 주빌로 이와타 2020 도쿄 베르디 2021 세레소 오사카 |
| 클럽 출전 | 573 |
| 클럽 득점 | 214 |
| 국가대표팀 | 2004 일본 U-23 2003–2014 일본 |
|---|---|
| 국가대표 출전 | 63 |
| 국가대표 득점 | 8 |
| 팀 | 세레소 오사카 가와사키 프론탈레 |
|---|---|
| 준우승 | 2001 천황배 2003 천황배 2016 천황배 |
| 우승 | 2018 J1리그 |
| 아시안 게임 | 2002 부산 은메달 |
| AFC U-19 선수권 대회 | 2000 이란 은메달 |
| 공식 웹사이트 | J리그 선수 데이터 |
|---|---|
| 일본 축구 대표팀 데이터베이스 | 일본 축구 대표팀 데이터베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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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리가의 일본인 축구 선수 -
나카무라 슌스케
나카무라 슌스케는 일본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J리그 MVP 수상, 유럽 리그 활약, 스코틀랜드 P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A매치 98경기 출전 및 AFC 아시안컵 우승 기여 등의 경력을 가지고 요코하마 FC 코치 및 일본 축구 협회 롤 모델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
라리가의 일본인 축구 선수 -
이에나가 아키히로
이에나가 아키히로는 2004년 감바 오사카에서 프로 데뷔하여 RCD 마요르카, 울산 현대를 거쳐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서 J1리그 우승에 기여하고 2018년 J리그 MVP와 베스트 일레븐을 수상한 일본 축구 선수이다. -
일본의 스페인 진출 축구 선수 -
가가와 신지
가가와 신지는 2006년 세레소 오사카에서 프로 데뷔하여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등 유럽 명문 클럽과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일본의 축구 선수로, 현재 J1리그의 세레소 오사카에서 미드필더로 뛰고 있다. -
일본의 스페인 진출 축구 선수 -
나카무라 슌스케
나카무라 슌스케는 일본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J리그 MVP 수상, 유럽 리그 활약, 스코틀랜드 P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A매치 98경기 출전 및 AFC 아시안컵 우승 기여 등의 경력을 가지고 요코하마 FC 코치 및 일본 축구 협회 롤 모델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
2002년 아시안 게임 참가 선수 -
우에노 마사에
우에노 마사에는 일본의 유도 선수로, 2001년과 2003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우승, 2004년 아테네 올림픽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70kg급 올림픽 2연패 달성자이다. -
2002년 아시안 게임 참가 선수 -
아베 유키
아베 유키는 J리그 최연소 데뷔 기록을 세우고 JEF 유나이티드, 우라와 레즈, 레스터 시티에서 활약한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일본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으며 은퇴 후에는 유스팀 코치 및 롤 모델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2. 클럽 경력
오쿠보 요시토는 1982년 6월 9일 후쿠오카현 칸다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2001년 J1리그 클럽 세레소 오사카에 입단했다.
### 세레소 오사카 (2001-2004)
세레소 오사카 입단 동기로는 모리시마 히로아키가 있었는데, 오쿠보가 세레소 오사카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다. 같은 해 3월 17일, J1리그 1st 스테이지 2절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전에 교체 출전하며 J리그에 데뷔했다. 나비스코컵 1라운드 주빌로 이와타전에서 프로 데뷔 첫 골을 기록했다. 1st 스테이지 5절 이와타 전에서 리그전 첫 골을 넣었지만, 전반 32분에 타나카 마코토와 말다툼 끝에 둘 다 퇴장당했다. 이후 왼쪽 삼각 인대 손상으로 월드 유스 출전을 놓치고, 리그전 대부분이 교체 출전하며 2골에 그쳤다. 팀은 최하위로 J2리그로 강등되었지만, 세레소 오사카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2002년 J2리그 3절 쇼난 벨마레전에서 2골을 넣으며 자신감을 되찾고, 29경기에 출전하여 알비렉스 니가타의 마르쿠스에 이어 득점 순위 2위인 18골을 기록, 팀의 J1리그 승격에 기여했다.
2003년 J1리그에서는 총 24경기에 출전하여 일본인 최다 득점인 16골을 기록했고, 올스타전에 선출되었으며, AFC가 선정한 아시아 올해의 유소년 선수상을 수상했다.
2004년 J1리그는 22경기 출전 15득점을 기록했다. 2nd 스테이지 5절에서는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전에서 프로 데뷔 후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 RCD 마요르카 (2005-2006, 임대)
2004년 11월, 에クトル 쿠퍼 감독의 좋은 평가를 받으며 프리메라 디비시온(리가 에스파뇰라)의 RCD 마요르카(RCD Mallorca)로 임대 이적했다. 선수 등록이 해제된 직후인 2005년 1월 10일, 제18절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Deportivo de La Coruña)전에서 데뷔하여 루이스 가르시아(Luis García)의 득점을 어시스트하고 자신도 1득점을 기록하며 좋은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데뷔전에서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복귀 후에도 출전 기회는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잔류 경쟁이 치열해진 시즌 후반전에는 갈시아를 대신하여 선발 출전했고, 제36절 아틀레틱 빌바오(Athletic Bilbao)전과 제37절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전에서 각각 1득점씩을 올렸다. 2어시스트와 페널티킥 획득 등의 활약으로 마요르카의 1부 리그 잔류에 공헌했다. 시즌 종료 후 UEFA 선정 스페인 리그 유소년 베스트 일레븐을 수상했다.
마요르카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세레소 오사카와의 이적 기간 연장 협상을 거쳐 2005-06 시즌에도 팀에 남았다. 그러나 이 시즌에는 주로 교체 출전했고, 시즌 중 감독에 취임한 그레고리오 만사노 체제 하에서 출전 기회가 더욱 줄어들자 위기감을 느껴 이적을 결심했다. 스페인에서의 통산 성적은 39경기 5득점 6어시스트였다.
### 세레소 오사카 복귀 (2006)
2006년 6월, 오쿠보 요시토는 세레소 오사카로 복귀했다. 당시 세레소 오사카는 2006년 시즌 18개 클럽 중 최하위권에 머물며 13경기에서 단 1승만을 거두고 있었다. 오쿠보는 출전 정지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 포워드로 출전하며 분전했지만, 복귀 후 7번째 경기인 교토 상가 F.C.전에서 2득점을 올리는 등 활약에도 불구하고, 팀은 17위에 그쳐 J2리그로 다시 강등되었다. 개인 기록은 21경기 출전 6득점이었다.
### 비셀 고베 (2007-2008)
2007년 오쿠보 요시토는 J1리그 비셀 고베로 이적했다. 마쓰다 히로시 감독 아래에서 두 시즌 동안 왼쪽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두 시즌 모두 10골 이상을 기록했다. 2007년 리그에서 14득점을 기록하였으며, 2008년에도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였다.
### VfL 볼프스부르크 (2009)
오쿠보 요시토는 2009년 1월, 펠릭스 마가트 감독의 요청으로 분데스리가 VfL 볼프스부르크로 완전 이적했다. 이적료 협상은 난항을 겪었으나, 이적을 원했던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고베 측이 최종적으로 양보, 추정 2억 5천만 엔에 합의했다.
오버헤드 슈팅 시도로 마가트 감독의 눈 밖에 나 벤치 멤버에서 제외되기도 했지만, 독일 축구에 적응하면서 몸싸움에도 밀리지 않고 드리블 돌파가 가능하게 되었다. 오쿠보는 당시 경기에 나가지 못해도 긍정적인 자세로 훈련에 임했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2008-09 시즌, 나가토모 세이와 함께 클럽 역사상 최초로 독일 국내 주요 축구 대회 우승을 경험했다. 그러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 출전 기회가 적었다. 당시 포지션 경쟁자였던 에디나우두 바티스타 리바누(그라피치)와 에딘 제코는 2008-09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 순위 1,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좋은 활약을 펼쳤고, 장신 선수에 맞춘 전술이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마가트 감독의 사퇴와 월드컵 출전을 염두에 두고 1시즌 만에 팀을 떠나 비스셀 고베로 복귀했다. 오쿠보는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일본인 공격수가 되었다.
### 비셀 고베 복귀 (2009-2012)
2009년 6월, 오쿠보는 VfL 볼프스부르크에서 비셀 고베로 복귀했다. 복귀 후 2009 시즌에는 19경기에 모두 포워드로 출전하여 8골을 기록, 팀 내 최다 득점과 동률을 이루었다.
2010년에는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한국전에서 왼쪽 내측 측부 인대 손상으로 전치 6주 진단을 받았으나, 리그 개막전에 출전했다. 이후 나카무라 슈스케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출전을 강행하다 4월에는 비골 골절을 당하는 등 부상으로 인해 출전 기회가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 FIFA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되어 일본 대표팀의 16강 진출에 기여했다. 월드컵 이후 극심한 피로와 번아웃 증후군, 왼쪽 무릎 수술 등으로 장기간 이탈하며 리그 17경기 4골에 그쳤다.
2011년에는 잔부상은 있었지만 큰 부상 없이 리그 30경기에 출전, 9골을 기록하며 J1리그 통산 100골을 달성했다. 2012년에는 등번호를 10번으로 변경하고 득점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나, 팀 전술 문제와 부상 등으로 인해 리그 26경기 4골에 그쳤고, 팀은 J2 리그로 강등되었다.
### 가와사키 프론탈레 (2013-2016)
2013년 비셀 고베의 J2리그 강등 후, 오쿠보 요시토는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이적했다. 가와사키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득점에 특화된 역할을 맡아 불필요한 파울과 체력 소모를 줄이고 본 실력을 발휘했다. 슈팅 정확도도 향상되어 다양한 득점 패턴을 보이며, 16라운드 우라와 레즈전에서 J1 통산 100득점을 달성했다. 이후 시미즈 에스펄스전, 오이타 트리니타전 등 경기 종료 직전 결승골을 넣는 경기가 많아지며 팀을 이끌었다. 그 결과, 자신의 최다 기록인 26골을 기록하며 2013 시즌 득점왕을 차지했다.
2014년에는 전 시즌 득점왕으로서 압박감을 느꼈지만, 꾸준히 득점을 기록했다. 9월 J1 25라운드 오미야 아르디자전에서는 세레소 오사카 시절 이후 10년 만에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시즌 전체 18골을 기록하며 2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는데, 이는 J리그 개막 이후 최초의 기록이었다. 다만, 8월 30일 J1 22라운드 나고야 그램퍼스전에서 광고판을 파손하여 2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FC 도쿄 등의 제의가 있었지만, 2015년에도 가와사키에 잔류했다. 1st 7라운드 반포레 고후전에서 J1 통산 139득점을 기록하며 미우라 카즈요시의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고, 9라운드 FC 도쿄전에서 140득점을 기록하며 단독 4위가 되었다. 골 세레머니로 카즈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9월 2nd 11라운드 나고야전에서는 세 번째 해트트릭과 J리그 역사상 4번째 통산 150득점을 기록했다. 시즌 23골로 J리그 역사상 최초로 3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하며 일본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알렸다.
2016년에도 좋은 득점 감각을 유지하며, 1st 3라운드 나고야전에서 J1 역대 최다 타이인 통산 158득점을 기록했고, 6라운드 사간 도스전에서 J1 신기록 159득점을 기록했다. 시즌 전체로는 리그 33경기에 출전하여 15골을 기록, 4년 연속 득점왕은 놓쳤지만 일본인 선수 최다 득점 타이를 기록했다.
### FC 도쿄 (2017)
2016년 J리그 챔피언십 이후, 오쿠보 요시토는 가와사키 프론탈레를 떠나 2017년에 FC 도쿄와 계약한다고 발표했다. FC 도쿄로부터 2년 만에 다시 제의를 받고 이적했으며, 3월 18일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경기에서 이적 후 첫 득점을 기록했다. 시즌 중반 감독 교체 이후에는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기용되는 기회가 늘었다. 최종적으로 J1리그 28경기에 출전하여 8득점을 기록했다.
### 가와사키 프론탈레 복귀 (2018)
2018년 오쿠보 요시토는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복귀했다. 1년 만에 완전 이적 형태로 복귀하였으나,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하고 주로 교체 출전하는 공격수로 활동했다. 나고야전과 가시마전에서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 주빌로 이와타 (2018-2019)
2018년 6월, 오쿠보 요시토는 주빌로 이와타로 이적했다. 2018 FIFA 월드컵으로 인한 리그 중단 기간 중, 득점력 부족 해소를 위해 나나미 히로시 감독이 오쿠보에게 영입 제안을 했다. 당시 FC 도쿄에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은퇴까지 고려하던 오쿠보는 "다시 한번 빛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적을 결심했다. 등번호는 22번으로 결정되었다.
같은 해 8월 19일, J1리그 23라운드 가시와 레이솔전에서 이적 후 첫 득점을 기록하며 J리그 통산 200득점을 달성했다. 이는 사토 히사토에 이어 역대 두 번째 기록이다. 같은 경기에서 통산 100번째 옐로카드를 받기도 했다. J1리그 34라운드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경기에서는 선제골을 넣었으나 팀은 패배하여 16위로 J1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다.
2019 시즌에는 J1리그 통산 200득점을 목표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감독 교체 등의 상황 속에서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11월 30일 33라운드 나고야전에서 시즌 첫 골이자 결승골을 넣었지만, 팀은 J2리그로 강등되었다. 결국 1득점으로 시즌을 마감하고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 도쿄 베르디 (2020)
2020년, 오쿠보는 J2리그의 도쿄 베르디에 완전 이적했다. 19경기에 출전했지만, 페널티킥을 실축하는 등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고 1년 만에 팀을 떠났다. J리그에서 시즌 무득점을 기록한 것은 처음이었다.
### 세레소 오사카 복귀 (2021)
2021년 1월 9일, 오쿠보 요시토는 15년 만에 세레소 오사카로 복귀했다. 팀 내 최고령 선수였던 그는 개막전에서 마쓰다 리쿠의 크로스를 어깨로 밀어 넣어 팀의 시즌 첫 골을 기록했다. 이는 J1리그 동일 팀 최장 기간만의 득점이었다. 3월 6일 FC東京와의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3경기 연속 골을 기록, 38세 8개월 25일로 J1리그 역사상 일본인 최고령 3경기 연속 득점 기록을 경신했다.
개막 후 5경기에서 5골을 넣으며 스트라이커로서 부활하는 듯했으나, 팀 전술 혼란, 코로나19 확산, 오사카 더비 부상 등으로 득점 기회가 줄었다. 아담 타가트 합류 후에도 출전 기회를 얻었고, 가이나레 도리토리와의 천황배 2차전에서 요도코우 사쿠라 스타디움 첫 골을 기록했다.
11월 19일, 구단의 재계약 제안에도 불구하고 2021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코기쿠 아키오 감독 취임 후에도 출전 기회는 줄지 않았고, 은퇴 발표 후 감독은 그의 기량이 향상되었다고 평가했다. 시미즈 에스펄스와의 J리그 최종전에서는 기요타케 히로시게의 코너킥을 다시 크로스해 상대 자책골을 유도하는 등, 부상 이탈 기간을 제외하고 주전으로 활약했다. 천황배 준결승 우라와 레즈전이 그의 현역 마지막 공식 경기였다. 리그 6득점은 팀 내 2위 기록이었다.
2.1. 세레소 오사카 (2001-2004)
오쿠보 요시토는 1982년 6월 9일 후쿠오카현 칸다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2001년 J1리그 클럽 세레소 오사카에 입단했다. 입단 동기로는 모리시마 히로아키가 있었는데, 오쿠보가 세레소 오사카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다. 같은 해 3월 17일, J1리그 1st 스테이지 2절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전에 교체 출전하며 J리그에 데뷔했다. 나비스코컵 1라운드 주빌로 이와타전에서 프로 데뷔 첫 골을 기록했다. 1st 스테이지 5절 이와타 전에서 리그전 첫 골을 넣었지만, 전반 32분에 타나카 마코토와 말다툼 끝에 둘 다 퇴장당했다. 이후 왼쪽 삼각 인대 손상으로 월드 유스 출전을 놓치고, 리그전 대부분이 교체 출전하며 2골에 그쳤다. 팀은 최하위로 J2리그로 강등되었지만, 세레소 오사카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2002년 J2리그 3절 쇼난 벨마레전에서 2골을 넣으며 자신감을 되찾고, 29경기에 출전하여 알비렉스 니가타의 마르쿠스에 이어 득점 순위 2위인 18골을 기록, 팀의 J1리그 승격에 기여했다.
2003년 J1리그에서는 총 24경기에 출전하여 일본인 최다 득점인 16골을 기록했고, 올스타전에 선출되었으며, AFC가 선정한 아시아 올해의 유소년 선수상을 수상했다.
2004년 J1리그는 22경기 출전 15득점을 기록했다. 2nd 스테이지 5절에서는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전에서 프로 데뷔 후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2.2. RCD 마요르카 (2005-2006, 임대)
2004년 11월, 에クトル 쿠퍼 감독의 좋은 평가를 받으며 프리메라 디비시온(리가 에스파뇰라)의 RCD 마요르카(RCD Mallorca)로 임대 이적했다. 선수 등록이 해제된 직후인 2005년 1월 10일, 제18절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Deportivo de La Coruña)전에서 데뷔하여 루이스 가르시아(Luis García)의 득점을 어시스트하고 자신도 1득점을 기록하며 좋은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데뷔전에서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복귀 후에도 출전 기회는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잔류 경쟁이 치열해진 시즌 후반전에는 갈시아를 대신하여 선발 출전했고, 제36절 아틀레틱 빌바오(Athletic Bilbao)전과 제37절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전에서 각각 1득점씩을 올렸다. 2어시스트와 페널티킥 획득 등의 활약으로 마요르카의 1부 리그 잔류에 공헌했다. 시즌 종료 후 UEFA 선정 스페인 리그 유소년 베스트 일레븐을 수상했다.
마요르카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세레소 오사카와의 이적 기간 연장 협상을 거쳐 2005-06 시즌에도 팀에 남았다. 그러나 이 시즌에는 주로 교체 출전했고, 시즌 중 감독에 취임한 그레고리오 만사노 체제 하에서 출전 기회가 더욱 줄어들자 위기감을 느껴 이적을 결심했다. 스페인에서의 통산 성적은 39경기 5득점 6어시스트였다.
2.3. 세레소 오사카 복귀 (2006)
2006년 6월, 오쿠보 요시토는 세레소 오사카로 복귀했다. 당시 세레소 오사카는 2006년 시즌 18개 클럽 중 최하위권에 머물며 13경기에서 단 1승만을 거두고 있었다. 오쿠보는 출전 정지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 포워드로 출전하며 분전했지만, 복귀 후 7번째 경기인 교토 상가 F.C.전에서 2득점을 올리는 등 활약에도 불구하고, 팀은 17위에 그쳐 J2리그로 다시 강등되었다. 개인 기록은 21경기 출전 6득점이었다.
2.4. 비셀 고베 (2007-2008)
2007년 오쿠보 요시토는 J1리그 비셀 고베로 이적했다. 마쓰다 히로시 감독 아래에서 두 시즌 동안 왼쪽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두 시즌 모두 10골 이상을 기록했다. 2007년 리그에서 14득점을 기록하였으며, 2008년에도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였다.
2.5. VfL 볼프스부르크 (2009)
오쿠보 요시토는 2009년 1월, 펠릭스 마가트 감독의 요청으로 분데스리가 VfL 볼프스부르크로 완전 이적했다. 이적료 협상은 난항을 겪었으나, 이적을 원했던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고베 측이 최종적으로 양보, 추정 2억 5천만 엔에 합의했다.
오버헤드 슈팅 시도로 마가트 감독의 눈 밖에 나 벤치 멤버에서 제외되기도 했지만, 독일 축구에 적응하면서 몸싸움에도 밀리지 않고 드리블 돌파가 가능하게 되었다. 오쿠보는 당시 경기에 나가지 못해도 긍정적인 자세로 훈련에 임했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2008-09 시즌, 나가토모 세이와 함께 클럽 역사상 최초로 독일 국내 주요 축구 대회 우승을 경험했다. 그러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 출전 기회가 적었다. 당시 포지션 경쟁자였던 에디나우두 바티스타 리바누(그라피치)와 에딘 제코는 2008-09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 순위 1,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좋은 활약을 펼쳤고, 장신 선수에 맞춘 전술이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마가트 감독의 사퇴와 월드컵 출전을 염두에 두고 1시즌 만에 팀을 떠나 비스셀 고베로 복귀했다. 오쿠보는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일본인 공격수가 되었다.
2.6. 비셀 고베 복귀 (2009-2012)
2009년 6월, 오쿠보는 VfL 볼프스부르크에서 비셀 고베로 복귀했다. 복귀 후 2009 시즌에는 19경기에 모두 포워드로 출전하여 8골을 기록, 팀 내 최다 득점과 동률을 이루었다.
2010년에는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한국전에서 왼쪽 내측 측부 인대 손상으로 전치 6주 진단을 받았으나, 리그 개막전에 출전했다. 이후 나카무라 슈스케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출전을 강행하다 4월에는 비골 골절을 당하는 등 부상으로 인해 출전 기회가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 FIFA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되어 일본 대표팀의 16강 진출에 기여했다. 월드컵 이후 극심한 피로와 번아웃 증후군, 왼쪽 무릎 수술 등으로 장기간 이탈하며 리그 17경기 4골에 그쳤다.
2011년에는 잔부상은 있었지만 큰 부상 없이 리그 30경기에 출전, 9골을 기록하며 J1리그 통산 100골을 달성했다. 2012년에는 등번호를 10번으로 변경하고 득점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나, 팀 전술 문제와 부상 등으로 인해 리그 26경기 4골에 그쳤고, 팀은 J2 리그로 강등되었다.
2.7. 가와사키 프론탈레 (2013-2016)
2013년 비셀 고베의 J2리그 강등 후, 오쿠보 요시토는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이적했다. 가와사키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득점에 특화된 역할을 맡아 불필요한 파울과 체력 소모를 줄이고 본 실력을 발휘했다. 슈팅 정확도도 향상되어 다양한 득점 패턴을 보이며, 16라운드 우라와 레즈전에서 J1 통산 100득점을 달성했다. 이후 시미즈 에스펄스전, 오이타 트리니타전 등 경기 종료 직전 결승골을 넣는 경기가 많아지며 팀을 이끌었다. 그 결과, 자신의 최다 기록인 26골을 기록하며 2013 시즌 득점왕을 차지했다.
2014년에는 전 시즌 득점왕으로서 압박감을 느꼈지만, 꾸준히 득점을 기록했다. 9월 J1 25라운드 오미야 아르디자전에서는 세레소 오사카 시절 이후 10년 만에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시즌 전체 18골을 기록하며 2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는데, 이는 J리그 개막 이후 최초의 기록이었다. 다만, 8월 30일 J1 22라운드 나고야 그램퍼스전에서 광고판을 파손하여 2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FC 도쿄 등의 제의가 있었지만, 2015년에도 가와사키에 잔류했다. 1st 7라운드 반포레 고후전에서 J1 통산 139득점을 기록하며 미우라 카즈요시의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고, 9라운드 FC 도쿄전에서 140득점을 기록하며 단독 4위가 되었다. 골 세레머니로 카즈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9월 2nd 11라운드 나고야전에서는 세 번째 해트트릭과 J리그 역사상 4번째 통산 150득점을 기록했다. 시즌 23골로 J리그 역사상 최초로 3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하며 일본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알렸다.
2016년에도 좋은 득점 감각을 유지하며, 1st 3라운드 나고야전에서 J1 역대 최다 타이인 통산 158득점을 기록했고, 6라운드 사간 도스전에서 J1 신기록 159득점을 기록했다. 시즌 전체로는 리그 33경기에 출전하여 15골을 기록, 4년 연속 득점왕은 놓쳤지만 일본인 선수 최다 득점 타이를 기록했다.
2.8. FC 도쿄 (2017)
2016년 J리그 챔피언십 이후, 오쿠보 요시토는 가와사키 프론탈레를 떠나 2017년에 FC 도쿄와 계약한다고 발표했다. FC 도쿄로부터 2년 만에 다시 제의를 받고 이적했으며, 3월 18일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경기에서 이적 후 첫 득점을 기록했다. 시즌 중반 감독 교체 이후에는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기용되는 기회가 늘었다. 최종적으로 J1리그 28경기에 출전하여 8득점을 기록했다.
2.9. 가와사키 프론탈레 복귀 (2018)
2018년 오쿠보 요시토는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복귀했다. 1년 만에 완전 이적 형태로 복귀하였으나,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하고 주로 교체 출전하는 공격수로 활동했다. 나고야전과 가시마전에서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2.10. 주빌로 이와타 (2018-2019)
2018년 6월, 오쿠보 요시토는 주빌로 이와타로 이적했다. 2018 FIFA 월드컵으로 인한 리그 중단 기간 중, 득점력 부족 해소를 위해 나나미 히로시 감독이 오쿠보에게 영입 제안을 했다. 당시 FC 도쿄에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은퇴까지 고려하던 오쿠보는 "다시 한번 빛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적을 결심했다. 등번호는 22번으로 결정되었다.
같은 해 8월 19일, J1리그 23라운드 가시와 레이솔전에서 이적 후 첫 득점을 기록하며 J리그 통산 200득점을 달성했다. 이는 사토 히사토에 이어 역대 두 번째 기록이다. 같은 경기에서 통산 100번째 옐로카드를 받기도 했다. J1리그 34라운드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경기에서는 선제골을 넣었으나 팀은 패배하여 16위로 J1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다.
2019 시즌에는 J1리그 통산 200득점을 목표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감독 교체 등의 상황 속에서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11월 30일 33라운드 나고야전에서 시즌 첫 골이자 결승골을 넣었지만, 팀은 J2리그로 강등되었다. 결국 1득점으로 시즌을 마감하고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2.11. 도쿄 베르디 (2020)
2020년, 오쿠보는 J2리그의 도쿄 베르디에 완전 이적했다. 19경기에 출전했지만, 페널티킥을 실축하는 등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고 1년 만에 팀을 떠났다. J리그에서 시즌 무득점을 기록한 것은 처음이었다.
2.12. 세레소 오사카 복귀 (2021)
2021년 1월 9일, 오쿠보 요시토는 15년 만에 세레소 오사카로 복귀했다. 팀 내 최고령 선수였던 그는 개막전에서 마쓰다 리쿠의 크로스를 어깨로 밀어 넣어 팀의 시즌 첫 골을 기록했다. 이는 J1리그 동일 팀 최장 기간만의 득점이었다. 3월 6일 FC東京와의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3경기 연속 골을 기록, 38세 8개월 25일로 J1리그 역사상 일본인 최고령 3경기 연속 득점 기록을 경신했다.
개막 후 5경기에서 5골을 넣으며 스트라이커로서 부활하는 듯했으나, 팀 전술 혼란, 코로나19 확산, 오사카 더비 부상 등으로 득점 기회가 줄었다. 아담 타가트 합류 후에도 출전 기회를 얻었고, 가이나레 도리토리와의 천황배 2차전에서 요도코우 사쿠라 스타디움 첫 골을 기록했다.
11월 19일, 구단의 재계약 제안에도 불구하고 2021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코기쿠 아키오 감독 취임 후에도 출전 기회는 줄지 않았고, 은퇴 발표 후 감독은 그의 기량이 향상되었다고 평가했다. 시미즈 에스펄스와의 J리그 최종전에서는 기요타케 히로시게의 코너킥을 다시 크로스해 상대 자책골을 유도하는 등, 부상 이탈 기간을 제외하고 주전으로 활약했다. 천황배 준결승 우라와 레즈전이 그의 현역 마지막 공식 경기였다. 리그 6득점은 팀 내 2위 기록이었다.
3. 국가대표 경력
오쿠보 요시토는 2003년 지코 감독에 의해 일본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었다. 2003년 5월 31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스즈키 다카유키와 교체 투입되며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지코 감독 체제에서 공격수로 많은 경기에 출전했지만, 득점에 어려움을 겪으며 2004년부터 출전 기회가 줄었다.
2007년 8월, 이비차 오심 감독에 의해 2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했다. 2007년 10월 17일 오사카 나가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집트와의 아프로아시아컵 경기에서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다.
오카다 다케시 감독 체제 하의 2010년, 2010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하는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어 4경기에 모두 왼쪽 미드필더로 출전, 일본의 16강 진출에 기여했다.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이 발표한 2014년 FIFA 월드컵(브라질) 대표팀 명단에 오쿠보가 포함된 것은 큰 놀라움이었다. 그는 그 이전 4년 동안 자케로니 감독 휘하에서 단 한 번만 경기에 출전했었다.
오쿠보 요시토는 A매치 60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했다. (2003년 ~ 2014년)
| 일본 | ||
|---|---|---|
| 2003 | 14 | 0 |
| 2004 | 3 | 0 |
| 2005 | 2 | 0 |
| 2006 | 0 | 0 |
| 2007 | 2 | 2 |
| 2008 | 12 | 3 |
| 2009 | 9 | 0 |
| 2010 | 11 | 0 |
| 2011 | 0 | 0 |
| 2012 | 1 | 0 |
| 2013 | 0 | 0 |
| 2014 | 6 | 1 |
| 총계 | 60 | 6 |
3.1. 청소년 대표팀
오쿠보 요시토는 2004년 하계 올림픽에 일본 U-23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일본은 B조에서 파라과이, 이탈리아, 가나에 이어 4위를 기록하며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오쿠보는 조별 리그 3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3.2. 성인 대표팀
오쿠보 요시토는 2003년 지코 감독에 의해 일본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었다. 2003년 5월 31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스즈키 다카유키와 교체 투입되며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지코 감독 체제에서 공격수로 많은 경기에 출전했지만, 득점에 어려움을 겪으며 2004년부터 출전 기회가 줄었다.
2007년 8월, 이비차 오심 감독에 의해 2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했다. 2007년 10월 17일 오사카 나가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집트와의 아프로아시아컵 경기에서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다.
오카다 다케시 감독 체제 하의 2010년, 2010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하는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어 4경기에 모두 왼쪽 미드필더로 출전, 일본의 16강 진출에 기여했다.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이 발표한 2014년 FIFA 월드컵(브라질) 대표팀 명단에 오쿠보가 포함된 것은 큰 놀라움이었다. 그는 그 이전 4년 동안 자케로니 감독 휘하에서 단 한 번만 경기에 출전했었다.
오쿠보 요시토는 A매치 60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했다. (2003년 ~ 2014년)
| 일본 | ||
|---|---|---|
| 2003 | 14 | 0 |
| 2004 | 3 | 0 |
| 2005 | 2 | 0 |
| 2006 | 0 | 0 |
| 2007 | 2 | 2 |
| 2008 | 12 | 3 |
| 2009 | 9 | 0 |
| 2010 | 11 | 0 |
| 2011 | 0 | 0 |
| 2012 | 1 | 0 |
| 2013 | 0 | 0 |
| 2014 | 6 | 1 |
| 총계 | 60 | 6 |
4. 경기 스타일
오쿠보 요시토는 일본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포워드로서 다재다능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볼란치나 사이드 하프로서도 높은 수준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풍간 야스히로는 "어떤 포지션을 맡겨도 최고의 실력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가와사키 프론탈레 이적 후 슈팅 정확도를 향상시켜 2013년부터 3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다.
프로 1년차 세레소 오사카 입단 당시에는 모리시마 히로아키의 플레이를 목표로 삼고 있었으며, "그 운동량과 공간을 찾아 돌파하여 결정적인 기회를 만드는 능력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습니다. 저도 모리시마 씨처럼 플레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구단으로부터 "능력과 배짱 모두 신인답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30세가 넘어 신인 시절을 돌아보며 "젊은 선수는 그래야 한다. 주저할 필요는 없다. 인생이 걸려 있으니까. 그래서 부끄러워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선수는 그 정도 수준의 선수다. 그런 선수들이 더 많이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페널티 킥을 잘 차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오쿠보 본인은 PK를 "엄청 긴장된다"며 "싫어한다"고 말하지만, 득점으로 승리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서 키커를 맡고 있다. J1 통산 100득점도 나카무라 켄고가 얻어낸 PK를 성공시킨 것이다. PK를 차기 전 편안하게 하는 방법은 "실패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쿠보 타츠히코는 오쿠보에 대해 "고양이랄까, 치타랄까, 몸의 사용법이 능숙합니다."라고 평가했다.
5. 논란 및 사건 사고
5.1. 경기 중 비신사적 행위
5.2. 광고판 파손
6. 기타
두 명의 누나와 함께 3남매이다.
짧은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경기 중 억울하면 욱하는 성격으로 알려져 있으며, 자신감 넘치는 언행으로도 유명하다. 투쟁심의 발로로 불필요한 경고 및 퇴장이 많았다. 프로 데뷔 후 리그 첫 득점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말다툼 끝에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이것이 그의 첫 퇴장이었다. 2년 차에 리그 18득점을 기록하며 활약했고, 3년 차에는 등번호 10번을 달고 대활약했지만, 심판에게 폭언을 해 두 번 퇴장당했다. 성격의 거침이 두드러졌다.
마쓰시타 유키가 J리그 역사상 최초로 통산 100번째 옐로카드를 받았지만, 동시에 오쿠보 요시토의 옐로카드는 99장이었다. 2018년 8월 가시와 경기에서 오쿠보도 통산 100번째 옐로카드를 받았다. 2020년 6월 시점의 옐로카드는 통산 103장으로 J1 역대 1위이며, 은퇴 시점에는 104장으로 J리그 최다 기록을 보유했다. 또한, 레드카드는 동시점에서 12장으로 역대 2위이며, 일본 선수 중에서는 1위이다. 반면, 경기장 밖에서는 수줍은 성격의 소유자이다. 고베 시절 친분이 있던 安達貞至에 따르면, 세간의 인상과는 달리 주변 사람들을 정말 소중히 여기고, 자신은 앞으로 나서지 않지만 조용한 성격이며, 기자가 오쿠보의 발언을 과장해서 보도해도 쓴웃음으로 넘기고, 후배들에게 놀림을 받아도 웃는다고 평가받고 있다.
스페인 시절 레알 마드리드와 경기에서 데이비드 베컴에게 팔꿈치를 쳤는데, 베컴이 "너, 팔꿈치 쓰지 마!"라고 다가와 일촉즉발의 상황이 될 뻔했지만, 로베르토 카를로스가 말렸다. 오쿠보는 "저쪽에서 뭔가 말했으니, 받아쳤다"라고 말했다. 경기 후 팀 동료에게 "베컴에게 팔꿈치를 쓸 수 있는 건 너밖에 없다"라고 말했지만, 오쿠보는 "베컴? 누구?"라고 대답했다. 2023년 8월 21일 방송된 후지TV 'ネプリーグSP'에 운동선수 팀으로 출연했을 때, 原田泰造로부터 "베컴과 싸웠죠?"라는 질문을 받고, 오쿠보가 "제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인정했다.
스페인 데뷔전에서 1골 1어시스트의 화려한 활약을 펼쳤지만 무릎을 다쳐 경기 후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본인은 변명이 될 것 같아서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FC 바르셀로나전에서는 카를레스 푸욜을 가볍게 제치고 지나갔지만, 그 후 강력한 태클의 보복을 당했다.
2004년 12월 고등학교 동기와 결혼했다. 아내의 아버지는 오쿠보의 중학생 시절 축구 은사이다. 2008년 1월 5일 미사키 공원 구기장 내 시설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그때 스타디움 내에서 아내 측 팀과 친선 경기를 치렀다. 2005년에 장남이, 2010년에 차남이, 2012년에 삼남이 태어났다. 2015년 여름에는 아내가 유산했다. 기형태아 후 hcg 지속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같은 해 10월 항암 치료 중인 아내를 격려하기 위해 세 아들과 함께 고등학교 재학 시절 이후 14년 만에 머리를 민머리로 했다. 2017년 3월에는 넷째 아들인 사남이 태어났다.
가와사키 이적 후 고베와의 연습 경기장에 고베 서포터들이 "가토 지금까지 고마웠어. 언젠가 다시 고베에서!"라는 과거의 공헌을 치하하는 현수막을 걸었다.
고등학교, 고베, 가와사키, FC 도쿄, 일본 대표팀에서 달았던 등번호 13번에는 애착이 있으며, 2014년 11월 아내의 고향인 나가사키현 시마바라시에 개교한 학원 부설 축구 학교 "Btrece(베트레세)"도 스페인어를 바탕으로 "빛나는13번"을 의미하는 조어이다. 2015년 1월에는 시마바라시 고향납세 홍보대사로 임명되었다.
올림픽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탈락의 아쉬움 때문에 "다시 한번 나가서 일본을 승리하게 하고 싶다"며 올림픽 대표팀으로 출전에 의욕적이었지만, 실제로 제의가 있었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소속 클럽인 고베가 거부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대해서도 J리그 4년 연속 득점왕 획득보다 올림픽 출전을 더 바랐지만, 가와사키가 차출을 거부했기 때문에, 명단 최상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발되지 못했다. 대회 후, 다시 한번 "큰 압박 속에서 플레이하는 기쁨을 맛보고 싶었다"며 올림픽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2010년 월드컵 예선에서 퇴장당했을 때에는 서포터들에게 비난받을까 봐 들것에 실려 나가는 것을 기다렸다. 실제로는 걸을 수 있었다.
2022년 6월 6일 축구 일본 대표팀이 FIFA 랭킹 1위 브라질과 경기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현역이었다면 절대 나가고 싶었다. 부럽다"고 말했다.
2022년 11월 20일 방송된 후지TV 'なりゆき街道旅'에서 지갑을 분실했지만, 파출소에 제출되어 무사히 찾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 만나면 밥을 살게요. 이름을 알려주세요"라고 말했다.
6.1. 가족
오쿠보 요시토는 2004년 12월 고등학교 동창과 결혼했으며, 슬하에 네 아들을 두고 있다. 2005년에 장남, 2010년에 차남, 2012년에 삼남, 2017년 3월에는 사남이 태어났다. 아내는 오쿠보의 중학교 시절 축구 은사의 딸이다. 2008년 1월 5일 미사키 공원 구기장 내 시설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그때 스타디움 내에서 아내 측 팀과 친선 경기를 치렀다. 2015년 여름에는 아내가 유산 후 기형태아 후 hcg 지속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았다. 오쿠보는 아내를 격려하기 위해 세 아들과 함께 머리를 민머리로 밀기도 했다.
6.2. 등번호
7. 수상 내역
VfL 볼프스부르크
* 분데스리가: 2008-09
개인
* 아시아 올해의 젊은 축구 선수: 2003
* J리그 득점왕: 2013, 2014, 2015
* J리그 베스트 11: 2013, 2014,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