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 마사에
1. 개요
우에노 마사에는 일본의 유도 선수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2001년과 2003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2006년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9년 선수 생활을 은퇴한 후에는 코치와 애견 미용사로 활동하며, 2020년부터 미쓰이스미토모해상 여자 유도부 감독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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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우에노 마사에 |
|---|---|
| 일본어 이름 | 上野 雅恵 |
| 로마자 표기 | Ueno Masae |
| 출생일 | 1979년 1월 17일 |
| 출생지 |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 |
| 키 | 161cm |
| 성별 | 여자 |
| 체급 | 70kg급 |
| 소속 | 미쓰이스미토모해상화재보험 |
| 단 | 6단 |
| 은퇴 | 2009년 |
| 국가 | 일본 |
|---|---|
| 종목 | 유도 |
| 체급 | 미들급 |
| 올림픽 순위 | 1 |
|---|---|
| 올림픽 연도 | 2004 |
| 올림픽 체급 | 여자 70 kg |
| 올림픽 연도 2 | 2008 |
| 올림픽 체급 2 | 여자 70 kg |
| 세계 랭킹 | 1 |
|---|---|
| 세계 선수권 대회 연도 | 2001 |
| 세계 선수권 대회 체급 | 여자 70 kg |
| 세계 선수권 대회 연도 2 | 2003 |
| 세계 선수권 대회 체급 2 | 여자 70 kg |
| 아시아 경기 대회 종류 | AS |
|---|---|
| 아시아 경기 대회 랭킹 | 1 |
| 아시아 경기 대회 연도 | 2000 |
| 아시아 경기 대회 연도 2 | 2004 |
| 아시아 경기 대회 연도 3 | 2006 |
| 아시아 경기 대회 체급 3 | 여자 70 kg |
| 아시아 경기 대회 연도 4 | 2008 |
| 메달 스포츠 | 여자 유도 |
|---|---|
| 메달 국가 | 일본 |
| 메달 경기 | 올림픽 |
| 메달 금 | 2004 아테네 | 70 kg |
| 메달 금 2 | 2008 베이징 | 70 kg |
| 메달 경기 2 | 세계 선수권 대회 |
| 메달 금 3 | 2001 뮌헨 | 70 kg |
| 메달 금 4 | 2003 오사카 | 70 kg |
| 메달 경기 3 | 아시안 게임 |
| 메달 금 5 | 2006 도하 | 70 kg |
| 메달 동 | 2002 부산 | 70 kg |
| 메달 경기 4 | 아시아 선수권 대회 |
| 메달 금 6 | 2000 오사카 | 70 kg |
| 메달 금 7 | 2004 알마티 | 70 kg |
| 메달 금 8 | 2008 제주 | 70 kg |
-
2002년 아시안 게임 참가 선수 -
아베 유키
아베 유키는 J리그 최연소 데뷔 기록을 세우고 JEF 유나이티드, 우라와 레즈, 레스터 시티에서 활약한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일본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으며 은퇴 후에는 유스팀 코치 및 롤 모델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
2002년 아시안 게임 참가 선수 -
오쿠보 요시토
오쿠보 요시토는 후쿠오카현 출신의 일본 전 축구 선수로, J리그 득점왕 3회 수상, 라리가 RCD 마요르카를 포함한 다수 클럽 활동, J리그 통산 200득점 돌파, 일본 국가대표로 월드컵 2회 출전 등 족적을 남겼으며 은퇴 후 스포츠 해설가 및 방송인으로 활동 중이다. -
아사히카와시 출신 -
미우라 아야코
일본의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는 1964년 《빙점》으로 데뷔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발표하며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했으며, 결핵 투병 중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후 남편의 지원 속에 집필 활동을 이어가 대한민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아사히카와시 출신 -
이가라시 유미코
이가라시 유미코는 1968년 데뷔하여 『캔디캔디』로 고단샤 만화상을 수상하고, 『조지ィ!』, 『무카무카 파라다이스』 등 다양한 작품 활동과 저작권 분쟁, 그리고 『빨강 머리 앤』 삽화 및 애니메이션 캐릭터 디자인 등으로 일본 만화계에 큰 영향을 미친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다. -
아시안 게임 유도 메달리스트 -
계순희
계순희는 평양 출신의 유도 선수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유도 48kg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하며 2체급을 제패한 북한 유도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다. -
아시안 게임 유도 메달리스트 -
추성훈
추성훈은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 격투기 선수이자 방송인으로, 유도 선수로서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획득하고 종합격투기 선수로 전향하여 K-1 HERO'S 라이트 헤비급 그랑프리 우승, UFC 출전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딸 추사랑과 함께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 큰 인기를 얻었다.
2. 선수 경력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에서 태어났으며, 유베쓰정으로 이사를 가면서 그 곳에서 성장했다.
2004년 7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2004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네덜란드의 에딧 보스를 꺾고 우승을 거두었다. 2008년 8월에는 베이징에서 열린 2008년 하계 올림픽에서도 준결승전에서 보스를 다시 꺾은 후에 결승전에서 쿠바의 아나이시 에르난데스를 꺾고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동생인 요시에와 도모에도 유도 선수로 활약했으며, 요시에는 2009년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자이며, 도모에는 2006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 우승자이다.
2.1. 초기 (유년기 ~ 고등학교)
우에노 마사에는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에서 태어났지만, 2세 때 유베쓰정으로 이주하여 부모님이 운영하는 도장에서 6세에 유도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 긴 머리를 짧게 자른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도장에서 아버지에게 엄격한 훈련을 받았지만, 주말에는 가족이나 도장 관계자들과 캠핑을 하며 기분 전환을 했다. 그 후 다시 아사히카와로 돌아왔다.
리쿠고 중학교 시절, 전국중학교유도대회에 출전했으나 예선 리그에서 탈락했다.
아버지의 모교인 아사히카와미나미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유도부에서 활동했다. 유도부에는 동기생이 10명 정도 있었지만, 우에노를 제외하고는 모두 초보였다. 그럼에도 감독 나카노 마사미는 우에노를 특별 대우하지 않고 "너라면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다"며 격려했다. 또한 "마음에 드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강해지지 않는다", "남의 말을 제대로 듣는 순수한 마음을 가져라",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마라"는 세 가지 가르침을 받았다. 유도부 선배로는 애틀랜타 올림픽 61kg급 금메달리스트이자 훗날 회사 선배가 되는 에모토 유코가 있었다.
고교 시절, 전국 고교 선수권 2회전에서 패하고, 국체 소년 여자부에서 3위를 차지했다. 전국 여자 유도 체중별 선수권 대회 3회전에서 패배하기도 했다. 다음 해 3월, 전국 고교 선수권 결승에 진출했지만 츠치우라니혼다이가쿠 고등학교의 이치미 리사에게 패해 2위에 머물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프랑스 주니어 국제 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 세계 주니어 여자 대표 선발전에서 우승했지만, 이 대회에 출전하지 않은 이치게가 대표로 선발되어 세계 주니어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인터하이 단체전에서는 예선 리그에서 패배했지만, 홋카이도 예선에서 우승한 것을 고등학교 시절 최고의 추억으로 꼽았다. 이후 전국 여자 체중별 3회전에서 패배했다. 홋카이도에서 열린 스미토모해상 유도부 합숙에 참가하여 지도를 받고 좋은 분위기에 감명을 받아, 대학 진학 대신 스미토모해상 입사를 결심했다.
2.2. 전성기 (실업 ~ 올림픽)
1997년 4월 미쓰이스미토모해상(三井住友海上)에 입사하여 유도부 소속으로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해 8월 실업유도선수권 결승에서 나카이치 요코(中市陽子)를 판정으로 꺾고 우승했다.
1998년 4월 전일본선수권 준결승에서 마에다 케이코(前田桂子)를 판정으로 이겼지만, 결승에서 니노미야 미호(二宮美穂)에게 패하며 70kg급 선수임에도 19세의 나이로 전일본 결승에 진출했다. 8월 실업유도선수권 결승에서 카이야마 히토미(貝山仁美)에게 유효 3개를 따내며 2연패를 달성했다. 11월 전국 여자 체급별 결승에서 나카무라 토모에(中村友栄)를 허리채기(上四方固)로 한판승을 거두고 우승했다.
1999년 1월 후쿠오카국제 준결승에서 사노 나츠코(佐野奈津子)에게 패했지만, 3위 결정전에서 한국의 최영희를 허리꺾기(縦四方固)로 한판승을 거두고 3위를 차지했다. 10월 영국 버밍햄(バーミンガム)에서 개최된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5위에 머물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シドニーオリンピック) 대표로 선발되었다. 5월 오사카에서 개최된 아시아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몽골의 도르주고토프 체렌항드(ドロジュゴトフ・ツェレンハンド)를 발걸이(出足払)로 한판승을 거두며 우승했다. 9월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3회전에서 패배 후 패자부활전에서도 패하며 9위에 머물렀다.
2001년 7월 뮌헨(München)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케이트 호위(ケイト・ホーウェイ)를 꺾고 우승하며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2002년 10월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 대회 3위 결정전에서 몽골의 무하르샬 엥후츠체그(ムハルシャル・엥후츠체그)를 꺾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3년 9월 오사카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레글라 레이엔(Regla Leyén)을 꺾고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2004년 5월 알마티(Алматы)에서 열린 아시아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령미를 꺾고 우승했다. 8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2004년 하계 올림픽 결승에서 에딧 보스(Edith Bosch)를 소데쓰리코미고시(袖釣込腰)로 한판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5년 9월 카이로(カイロ)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2006년 12월 도하(ドーハ)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 결승에서 배은혜(裵恩惠)를 오우치가리(小外刈)로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2008년 제주도에서 열린 아시아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대한민국의 박가연(朴佳軟)을 꺾고 우승했다. 8월 베이징에서 열린 2008년 하계 올림픽 결승에서 아나이시스 에르난데스(アナイシス・エルナンデス)를 나무 쓰러뜨리기(朽木倒)로 한판승을 거두며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 2004년 하계 올림픽 금메달
* 2008년 하계 올림픽 금메달
* 1999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5위
* 2001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금메달
* 2003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금메달
* 2002년 아시안 게임 동메달
* 2006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
* 2000년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 금메달
* 2004년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 금메달
* 2008년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 금메달
2.2.1. 주요 국제 대회 성적
* 2004년 하계 올림픽 금메달
* 2008년 하계 올림픽 금메달
* 1999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5위
* 2001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금메달
* 2003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금메달
* 2002년 아시안 게임 동메달
* 2006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
* 2000년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 금메달
* 2004년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 금메달
* 2008년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 금메달
2.3. 은퇴 이후
2009년 3월 16일 전일본유도연맹에 강화선수 사퇴서를 제출했다. 기자회견에서는 은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사실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애완동물 관련 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애완동물 미용사, 도그 트레이너, 동물간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2011년부터 미쓰이스미토모해상 유도부 코치로 활동하며, 세계선수권에서 순혜를 지원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전일본 여자 대표팀 특별 코치를 역임했다. 2017년 도쿄도동구류미시에 애견 미용실 "DOG58"을 개업하여 운영하고 있다. 2020년부터 미쓰이스미토모해상 여자 유도부 감독으로 취임하여, 2022년 실업 단체전에서 감독으로서 첫 우승을 달성했다.
3. 유도 스타일
왼손잡이(左組み)로, 오우치 가리(안다리 후리기)와 오오소토 가리(밭다리 후리기)로 한판승을 따내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를 무너뜨린 후 굳히기(寝技)로 연결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2001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후에는 팔 힘뿐만 아니라 복근의 힘을 사용하는 법을 익혀 체간이 안정되어 힘을 더 잘 쓸 수 있게 되었다. 상대방을 잠시 멈추게 하고 즉시 기술을 거는 것이 가장 특기였다고 한다.
상대의 특기를 봉쇄하고 자신의 페이스로 경기를 운영하는 전략적인 면모를 보였다. 70kg급에는 까다롭고 상대하기 어려운 외국 선수들이 많았지만, "상대방에게는 내가 작아서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생각함으로써 외국 선수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노력했다. 또한 외국 선수들은 정면 승부로 맞붙어 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유도 기술 싸움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일본 선수들보다 상대하기 쉬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