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베컴
1. 개요
데이비드 베컴은 1975년 잉글랜드에서 태어난 은퇴한 축구 선수이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AC 밀란, 파리 생제르맹 등에서 활약했으며,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주장을 역임했다. 탁월한 프리킥 실력과 정확한 크로스로 유명하며, 잉글랜드, 스페인, 미국, 프랑스 4개국에서 리그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잉글랜드 선수이다. 선수 은퇴 후에는 인터 마이애미 CF의 구단주로 활동하고 있다.
| 이름 | 데이비드 베컴 |
|---|---|
| 본명 | 데이비드 로버트 조지프 베컴 |
| 로마자 표기 | David Robert Joseph Beckham |
| 출생일 | 1975년 5월 2일 |
| 출생지 | 런던, 잉글랜드 |
| 키 | 183cm |
| 직업 | 축구 선수 사업가 |
| 배우자 | 빅토리아 애덤스 (1999년 7월 4일 결혼) |
| 자녀 | 4명 (브루클린, 로미오 포함) |
| 친척 | 니콜라 펠츠 (며느리) |
| 웹사이트 | davidbeckham.com |
| 에이전트 | 사이먼 풀러 (XIX 엔터테인먼트) |
| 소속 단체 | 유니세프, 말라리아 노 모어 |
| 유스 클럽 | 리지웨이 로버스 토트넘 홋스퍼 (1987–1991) 브림스다운 로버스 (임대, 1989–199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1–1994) |
|---|---|
| 클럽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2–2003) 프레스턴 노스 엔드 (임대, 1995) 레알 마드리드 (2003–2007) LA 갤럭시 (2007–2012) AC 밀란 (임대, 2009) AC 밀란 (임대, 2010) 파리 생제르맹 (2013) |
| 클럽 출장 (골)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65 (62) 프레스턴 노스 엔드: 5 (2) 레알 마드리드: 116 (13) LA 갤럭시: 98 (18) AC 밀란 (2009): 18 (2) AC 밀란 (2010): 11 (0) 파리 생제르맹: 10 (0) |
| 총 출장 (골) | 523 (97) |
| 국가대표팀 | 잉글랜드 U18 (1992–1993) 잉글랜드 U21 (1994–1996) 잉글랜드 (1996–2009) |
|---|---|
| 국가대표 출장 (골) | 잉글랜드 U18: 3 (0) 잉글랜드 U21: 9 (0) 잉글랜드: 115 (17) |
| 기타 | 프리미어리그 명예의 전당 (2021) |
|---|
| 자산 | 약 4억 5천만 달러 (2017년 기준) |
|---|---|
| 문화적 아이콘 | 해외에서 셰익스피어와 함께 문화적 아이콘으로 여겨짐 |
| 특징 | 정확한 크로스, 프리킥 능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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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 마이애미 CF -
마이애미 프리덤 파크
데이비드 베컴과 호르헤 마스가 마이애미 국제공항 인근에 추진 중인 마이애미 프리덤 파크는 25,000석 규모의 축구 경기장을 중심으로 사무실, 상업 공간, 호텔, 공공 축구장, 공원 등을 포함하는 복합 시설로, 토양 오염 문제와 지역 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26년 개장을 목표로 건설되고 있다. -
레이턴스톤 출신 -
콜린 카즘리처즈
잉글랜드 출신 축구 선수 콜린 카즘리처즈는 2004년 프로 데뷔 후 다양한 국가와 클럽에서 활약했으며, 튀르키예 국가대표로도 활동하며 2008년 UEFA 유로에 출전했다. -
데이비드 베컴 -
빅토리아 베컴
빅토리아 베컴은 잉글랜드 출신의 가수, 패션 디자이너, 모델, 사업가이며, 스파이스 걸스 멤버로 데뷔하여 솔로 활동과 패션 브랜드 런칭을 통해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고,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
데이비드 베컴 -
슈팅 라이크 베컴
슈팅 라이크 베컴은 2002년 개봉한 영국의 코미디 드라마 영화로, 영국계 인도인 소녀가 축구에 대한 열정을 가족과 사회적 편견 속에서 펼쳐나가는 이야기를 다루며, 문화적 다양성과 사회적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2. 유년 시절
데이비드 로버트 조셉 베컴은 1975년 5월 2일 잉글랜드 런던 레이턴스톤의 휩스 크로스 대학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용사 산드라 조지나 웨스트(1949년 출생)와 배관기술자 데이비드 에드워드 앨런 "테드" 베컴(1948년 7월과 9월 사이 런던 에드먼턴에서 출생)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는 1969년 런던 해크니 구에서 결혼했다. 형제로는 누나 린 조지나와 여동생 조안 루이즈가 있다.
그의 부모는 열광적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으로, 런던에서 올드 트래퍼드까지 자주 왕복해 선수단의 홈경기를 관람했다. 데이비드는 부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한 애정을 물려받았고, 가장 열광한 스포츠 종목은 축구였다. 보비 찰튼이 설립한 맨체스터의 축구 학교에 다녔고, 재능 대회를 통해 바르셀로나 훈련 참가 기회를 얻었다. 그는 아버지 스튜어트 언더우드와 스티브 커비가 공동 감독을 맡은 지역 유소년 구단 리지웨이 로버스에서 축구를 했다. 1982년, 리지웨이 로버스에서 3시즌 동안 115경기에 출전해 101득점을 기록했다.
유년 시절 칭포드의 리지웨이 파크에서 축구를 했고, 체이스 레인 초등학교와 칭포드 군 고등학교를 다녔다. 2007년 인터뷰에서 "학창 시절 선생님이 '나중에 성장해서 무엇을 하고 싶니?'라고 질문했을 때 '저는 축구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답했고, 선생님은 '아니, 생계로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야?'라고 다시 질문했지만, 그것만이 제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베컴의 외할아버지는 유대인이며, 베컴은 자신을 "반 유대인"이라고 칭했고, 자서전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유대교에 조예가 깊은 것 같습니다."라고 적었다. 자서전 경기장 위에 양발을에서 소속팀에서 축구를 하기 위해 매주 부모와 교회를 다녔다고 밝혔다.
1986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마스코트를 맡았다. 어린 시절 레이턴 오리엔트와 노리치 시티에서 시험 훈련을 받았고, 토트넘 홋스퍼 유소년 학교를 다녔다. 2년 동안 브림스던 로버스 유소년부 소속으로 1990년 U-15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브래든턴 대입 준비학원에도 다녔지만, 14세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학생 전형으로 입단, 1991년 7월 8일 청소년 직업 훈련 계획에 따라 계약을 맺었다.
3. 클럽 경력
데이비드 베컴은 1992년 FA 유스컵 우승 멤버였으며, 같은 해 리그컵 브라이턴전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1993년 1월 23일 프로 계약을 맺었고, 1994년 UEFA 챔피언스리그 갈라타사라이전에서 1군 데뷔골을 기록했다.
1994-95 시즌에는 프레스턴 노스 엔드로 임대되어 5경기에서 프리킥과 코너킥 등으로 2골을 기록했다. 임대 복귀 후, 1995년 4월 2일 리즈전에서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3.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데이비드 베컴은 1991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 연습생으로 입단하여 라이언 긱스, 게리 네빌, 필 네빌, 니키 버트, 폴 스콜스 등과 함께 성장했다. 이들은 1992년 FA 유스컵 우승을 이끌었다. 베컴은 1992년 9월 23일 브라이턴 & 호브 알비온과의 리그컵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어 1군 데뷔전을 치렀고, 1993년 1월 23일 프로 계약을 맺었다.
1994-95 시즌을 앞두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베테랑 선수들을 내보내고 유소년 팀 출신 선수들을 기용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베컴은 아스톤 빌라와의 데뷔전에서 1-3으로 패하며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팀은 6연승을 거두며 반등했다. 베컴은 오른쪽 미드필더로 자리 잡으며 FA컵 준결승 첼시전 득점, 결승전 에릭 칸토나의 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맹활약하며 팀의 리그와 FA컵 더블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1996-97 시즌 베컴은 윔블던과의 경기에서 중앙선에서 골을 넣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골은 2002년 채널 4가 실시한 영국 여론 조사에서 100대 스포츠 명장면 중 18위에 선정되었고 2016년 스카이 스포츠 여론 조사에서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고의 개막전 골로 선정되었다. 베컴은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프리미어리그 2연패를 이끌었고, PFA 올해의 영플레이어 상을 수상했다.
1997-98 시즌을 앞두고 베컴은 조지 베스트와 에릭 칸토나가 달았던 등번호 7번을 물려받았다.
1998-99 시즌, 맨유는 프리미어리그, FA컵,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트레블을 달성했다. 베컴은 리그 마지막 경기인 토트넘 홋스퍼전에서 동점골을 넣었고,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주전 선수들의 출전 정지 징계로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하여 추가 시간에 터진 두 골에 모두 코너킥으로 기여하며 역전 우승을 이끌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베컴은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에서 모두 히바우두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FIFA 클럽 월드컵 네칵사와의 경기에서 퇴장당한 후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베컴은 팀에 잔류했다. 그러나 축구 외적인 활동으로 명성을 얻으면서 2000년 초부터 퍼거슨 감독과의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2000년 베컴은 아픈 아들을 간호하기 위해 훈련을 빠졌지만, 같은 날 런던 패션 위크 행사에서 사진 촬영을 한 빅토리아 베컴 때문에 퍼거슨 감독의 분노를 사 리즈와의 중요한 경기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컴은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베컴은 1999-2000 시즌과 2000-01 시즌에도 리그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팀의 리그 3연패를 이끌었다. 2002년 4월 10일,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알도 두셰르에게 왼발 중족골 골절 부상을 당해 남은 시즌을 결장했고, 팀은 리그 우승을 놓쳤다.
2001-02 시즌은 베컴에게 최고의 시즌 중 하나였다. 리그 28경기에서 11골, 공식전 42경기에서 16골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2002-03 시즌에는 올레 군나르 솔샤르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며 입지가 흔들렸다. 2003년 2월 15일 아스널과의 FA컵 경기에서 패배한 후, 분노한 퍼거슨 감독이 찬 축구화에 베컴이 눈 부위를 맞아 꿰매는 사건이 발생하며 둘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팀은 부진한 출발을 했지만, 12월부터 회복하여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베컴은 공식전 52경기에 출전하여 11골을 기록했다.
베컴은 맨유에서 12년 동안 프리미어리그 265경기 61골, 챔피언스리그 81경기 15골을 기록했다. 리그 우승 6회, FA컵 우승 2회, 챔피언스리그, 인터컨티넨털컵, FA 유스컵 우승을 차지했다.
3.1.1. 유소년부 및 초기 경력
1991년 7월 8일, 데이비드 베컴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훈련생으로 입단하여 라이언 긱스, 게리 네빌, 필 네빌, 니키 버트, 폴 스콜스와 함께 에리크 해리슨의 지도를 받았다. 이들은 1992년 5월 FA 유스컵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베컴은 1992년 4월 14일, 크리스털 팰리스와의 1차전에서 30분에 골을 기록하여 3-1 승리에 기여했다. 5월 15일 2차전에서는 90분 모두 출전하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3-2 승리, 합계 6-3 우승을 이끌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베컴은 1992년 9월 23일, 브라이턴 & 호브 앨비언과의 리그컵 경기에서 안드레이 칸첼스키스와 교체 투입되어 1군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1993년 1월 23일, 베컴은 프로 계약을 맺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다시 FA 유스컵 결승전에 진출하여 리즈 유나이티드와 맞붙었다. 1993년 5월 10일 1차전에서 베컴은 선발 출전했지만, 팀은 0-2로 패배하고 로비 새비지와 교체되었다. 1993년 5월 13일 2차전에서 베컴은 90분 모두 뛰었지만, 팀은 1-2로 패배하여 리즈 유나이티드가 합계 4-1로 우승을 차지했다. 베컴은 1994년에 유소년 리그에서 우승을 추가했다.
1994년 9월, 베컴은 포트 베일과의 리그 컵 경기에서 처음으로 1군 경기 풀타임을 소화했다. 1994년 12월 7일, 베컴은 갈라타사라이와의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데뷔전을 치러 득점하며 4-0 승리에 기여했다. 그러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예테보리와 바르셀로나에 이어 조 3위를 기록하며 탈락했다.
3.1.2. 프레스턴 노스 엔드 임대
베컴은 1994-95 시즌 동안 프레스턴 노스 엔드로 임대되어 1군 경험을 쌓았다. 그는 5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넣었는데, 특히 코너킥으로 직접 득점한 골이 인상적이었다. 베컴은 2023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더 이상 나를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왔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방출될 것이기 때문에 늘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불안감을 느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3.1.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복귀
1991년 7월 8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훈련생으로 입단한 베컴은 라이언 긱스, 게리 네빌, 필 네빌, 니키 버트, 폴 스콜스와 함께 에리크 해리슨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했다. 이들은 1992년 5월 구단의 FA 유스컵 우승을 이끌었다. 베컴은 1992년 9월 23일 브라이턴 & 호브 앨비언과의 리그컵 경기에서 안드레이 칸첼스키스와 교체 투입되어 1군 무대에 데뷔했고, 1993년 1월 23일 프로 계약을 체결했다.
1994-95 시즌을 끝으로 폴 인스, 마크 휴즈, 안드레이 칸첼스키스 등 베테랑 선수들이 팀을 떠났지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다른 팀의 유명 선수들을 영입하는 대신 유소년 시스템 출신 선수들을 기용하기로 결정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베컴은 데뷔전에서 아스톤 빌라에 1-3으로 패했고, 앨런 한센의 "어린 선수들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유나이티드의 리그 부진을 예상했지만, 이후 6연승을 거두며 유소년 선수들은 좋은 활약을 보였다.
베컴은 곧바로 오른쪽 미드필더 자리를 차지했고, FA컵 준결승 첼시전에서 골을 넣었으며, 결승전에서는 에릭 칸토나의 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팀의 리그와 FA컵 우승에 기여했다. 베컴이 처음으로 얻은 우승은 10점 차이로 뒤처져 있던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역전하여 이뤄낸 것이었다.
1996-97 시즌 초반, 베컴은 마크 휴스가 가장 최근에 착용했던 10번 유니폼을 받았다. 1996년 8월 17일(프리미어리그 시즌 첫날), 베컴은 윔블던과의 경기에서 중앙선(57야드)에서 슛을 날려 골을 넣으면서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2002년 채널 4가 실시한 영국 여론 조사에서 영국 대중은 이 골을 100대 스포츠 명장면 중 18위로 뽑았다. 2016년 스카이 스포츠 여론 조사에서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고의 개막전 골로 선정되었다. 1996-97 시즌 동안 베컴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고, 동료 선수들로부터 PFA 올해의 영플레이어로 선정되었다.
1997-98 시즌을 앞두고 베컴은 7번 유니폼을 물려받았는데, 이 번호는 이전에 조지 베스트와 에릭 칸토나와 같은 유나이티드의 전설들이 착용했던 번호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시즌 초반 좋은 출발을 보였지만, 시즌 후반 부진한 경기력으로 아스널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베컴은 리그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했고(13개), 그의 프리미어리그 9골에는 18야드 박스 가장자리에서 숙적 리버풀과의 앤필드 경기에서 넣은 프리킥 골이 포함되어 있다.
1997년 5월 18일 에릭 칸토나가 은퇴를 선언하고 테디 셰링엄이 팀에 합류하면서 베컴은 10번을 셰링엄에게 양보하고 칸토나가 달았던 7번을 달게 되었다.
1998-99 시즌, 팀은 프리미어리그, FA컵, 챔피언스리그 트레블을 달성했고, 베컴도 그 일원이었다. 리그 우승을 위해 마지막 경기인 토트넘 홋스퍼와의 홈 경기에서 승리해야 했지만, 경기 초반 토트넘이 리드를 잡았다. 그러나 베컴이 동점골을 넣었고, 팀은 역전승을 거두며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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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컵 결승전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는 주전 선수의 출전 정지로 인해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경기 종료 직전까지 0-1로 뒤처져 있었지만, 로스타임에 2골을 넣으며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두 골 모두 베컴의 코너킥이 기점이 되었다. 이러한 어시스트와 시즌 내내 보여준 활약으로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에서 모두 히바우두에 이어 2위에 선정되었다.
FIFA 클럽 월드컵 네칵사와의 경기에서 고의적인 파울로 퇴장당한 후에도 비판을 받았다. 언론에서는 그의 아내가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베컴을 매각하는 것이 유나이티드에 플러스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감독은 그를 지지했고, 그는 팀에 남았다.
베컴이 축구 외적인 곳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면서 2000년 초부터 퍼거슨 감독과 베컴의 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2000년 베컴은 구토와 설사 증세를 보이는 아들 브루클린을 간병하기 위해 훈련을 빠지겠다는 허락을 받았지만, 퍼거슨 감독은 같은 날 런던 패션 위크 행사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던 빅토리아 베컴이 아이를 돌보면 베컴은 훈련에 참가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격노하여 베컴에게 클럽 최대 벌금(2주치 급여, 베컴의 경우 50000GBP)을 부과하고, 유나이티드의 라이벌인 리즈와의 중요한 경기 명단에서 제외시켰다. 퍼거슨 감독은 나중에 자서전에서 "팀 동료들에게 공정하지 못했다"며 비난하며 베컴을 비판했다. 하지만 유나이티드는 기록적인 격차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베컴도 우승에 기여했다.
베컴은 리그 2연패에 기여했고, 1999-2000 시즌에는 아스널에 18점 차로 우승하며 남은 11경기를 11연승으로 장식하며 선두를 질주했다. 연승 기간 베컴은 5골을 넣었고, 시즌 전체 6골, 공식전 8골을 기록했다.
베컴은 3연패를 달성한 2000-01 시즌 유나이티드의 중심 선수였다. 베컴은 리그에서 9골을 기록했다.
2002년 4월 10일, 챔피언스리그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와의 경기에서 왼발 제2 중족골을 골절했다. 부상을 입힌 선수가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잉글랜드가 맞붙을 아르헨티나의 알도 두셰르였기 때문에 영국 언론에서는 고의적인 부상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었다. 부상으로 베컴은 남은 시즌을 날렸고, 팀도 리그 우승을 놓쳤다.
2001-02 시즌은 유나이티드 선수로서 베컴에게 최고의 시즌이었다. 리그 28경기에 출전하여 11골, 공식전 42경기에 출전하여 16골을 기록했다.
부상에서 회복한 2002-03 시즌이었지만, 올레 군나르 솔샤르가 베컴을 대신하여 오른쪽 측면에서 플레이했고, 이전처럼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했다. 감독과의 관계는 2003년 2월 15일 아스널과의 FA컵 경기 후 악화되었다. 탈락에 분노한 퍼거슨 감독이 축구화를 걷어찼고, 그 축구화가 베컴의 눈 위를 직격하여 봉합이 필요한 상처를 입혔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많은 이적설이 나돌았고, 도박업체들은 베컴과 퍼거슨 중 누가 먼저 팀을 떠날지에 대한 베팅을 시작했다. 팀은 부진한 출발을 했지만, 12월부터 회복하여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베컴은 공식전 52경기에 출전하여 11골을 기록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265경기에 출전하여 61골, 챔피언스리그에서 81경기에 출전하여 15골을 기록했다. 12년 동안 리그 우승 6회, FA컵 우승 2회, 챔피언스리그, 인터컨티넨털컵, FA 유스컵 우승을 차지했다.
3.2. 레알 마드리드
2003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베컴을 바르셀로나에 매각하려 했고, 두 클럽은 이적에 합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컴은 스페인 리그 챔피언 레알 마드리드와 4년 계약을 맺고 합류했다. 베컴은 매년 여름 클럽 회장 플로렌티노 페레스가 영입한 갈락티코스 시대의 최신 영입 선수였다. 이는 베컴 영입을 대선 공약으로 삼았던 호안 라포르타 바르셀로나 회장에게는 쓰라린 결과였다.
레알 마드리드 이적은 6월 중순에 발표되었고, 2003년 7월 1일에 공식적으로 완료되어 베컴은 로리 커닝햄과 스티브 맥마나만에 이어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세 번째 잉글랜드 선수가 되었다. 7월 2일 성공적인 메디컬 테스트를 거친 후, 베컴은 25개국에서 온 500명의 기자들 앞에서 클럽의 농구 시설에서 데뷔식을 가졌으며, 전 레알 마드리드 선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로부터 흰색 유니폼을 받았다. 베컴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잉글랜드에서 7번 유니폼을 입었지만, 마드리드에서는 주장 라울이 이미 7번을 사용하고 있어서 23번을 선택했다. 그는 23번을 선택한 이유로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에 대한 존경심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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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말,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 슈퍼컵에서 마요르카를 상대로 2경기 합계 승리를 거두었고, 베컴은 홈에서 3-0으로 승리한 2차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리그 시즌 시작을 위한 무대를 마련했다.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루이스 피구, 로베르토 카를로스, 라울, 이케르 카시야스 등 스타 선수들이 즐비한 팀에서 베컴은 16경기에서 5골을 넣으며 빠르게 적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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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레알 마드리드는 코파 델 레이에서 준우승, 챔피언스리그 8강 탈락, 리그 4위를 기록하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2004년 7월, 베컴이 스페인에서 프리시즌 훈련을 받고 있을 때, 침입자가 휘발유 통을 들고 베컴의 집 담을 넘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경비원들이 체포했다.
2005-06 시즌에는 루이스 피구의 이적으로 오른쪽 윙어로 자리를 잡았지만, 리그 2위, 챔피언스리그 16강 탈락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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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 시즌 파비오 카펠로 감독 부임 초기에는 주전으로 출전했지만, 베컴이 출전한 첫 9경기에서 레알은 7점을 잃었고,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에게 오른쪽 윙어 자리를 빼앗겼다.
2007년 1월 10일,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 스포츠 디렉터는 베컴이 시즌 종료 후 클럽을 떠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는 오역으로 밝혀졌다. 1월 11일, 베컴은 로스앤젤레스 갤럭시로 이적을 발표했고, 다음 날 MLS 슈퍼드래프트에서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1월 13일, 카펠로는 베컴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마지막 경기를 마쳤다고 말했다.
하지만 베컴의 훈련 태도와 라울, 구티의 출전 간청, 팀 부진으로 카펠로는 2월 10일 레알 소시에다전에 베컴을 포함시켰고, 베컴은 골을 넣으며 팀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 베컴은 좋은 활약을 펼치며 레예스로부터 자리를 되찾았다. 2007년 6월 17일, 베컴은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경기인 마요르카전에 출전하여 팀의 3-1 승리와 함께 라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시즌 종료 후 레알 마드리드는 베컴의 이적을 무효화하려 했지만, 갤럭시 측이 거부했다. 베컴의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활약은 클럽 상품 판매에 크게 기여했으며, 4시즌 동안 600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했다.
3.3.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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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컴은 2007년 7월 11일 LA 갤럭시와 계약을 체결했고, 13일 홈디포 센터에서 갤럭시 입단 발표가 있었다. 베컴은 등번호 23번을 선택했으며, 입단 발표 전에 이미 갤럭시 레플리카 유니폼 판매량이 25만 장 이상을 기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7월 21일 첼시 FC와의 월드 시리즈 경기에서 갤럭시 데뷔전을 치렀으나, 팀은 0-1로 패했다. 베컴은 78분에 교체 투입되었다. 8월 9일 D.C. 유나이티드전에서 교체 출전하며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다음 주 슈퍼리그 준결승 D.C. 유나이티드전에서는 처음으로 선발 출전해 주장을 맡았다. 옐로카드를 받았지만, 전반전에 프리킥으로 첫 골을 넣었고, 후반에는 랜던 도노반의 득점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이 승리로 갤럭시는 8월 29일 파추카와의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 베컴은 오른쪽 무릎을 다쳐 MRI 검사 결과 내측측부인대 손상으로 판명되어 6주간 결장했다. 시즌 최종전인 10월 21일 시카고 파이어전에 교체 출전했으나, 팀은 0-1로 패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데뷔 시즌에 베컴은 리그 5경기를 포함해 총 8경기에 출전했고, 리그에서는 득점을 올리지 못했지만 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08년 1월 4일부터 3주 동안 갤럭시 프리시즌 시작 전까지 아스널에서 훈련했다. 4월 3일 샌호세 어스퀘이크스전에서 전반 9분에 리그 첫 득점을 기록했다. 5월 24일 캔자스시티 위저즈전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 1996년에 넣었던 골과 같은 위치에서 무인의 골문에 슛을 넣어 3-1 승리를 이끌었고, 팀은 서부 컨퍼런스 선두에 올랐다. 하지만 갤럭시는 최종적으로 컨퍼런스 6위에 그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2009 시즌은 AC 밀란과의 임대 계약 연장으로 시즌 전반을 결장했다. 2009년 7월 19일 AC 밀란과의 친선 경기에서 일부 팬들은 베컴에게 "사기꾼"이라고 야유하는 등 복귀를 반기지 않았지만, 갤럭시는 베컴 복귀 후 서부 컨퍼런스 3위에서 선두로 올라서는 등 좋은 시즌을 보냈다. 베컴은 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하며 MLS컵에서 휴스턴 다이나모를 2-0으로 꺾고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2009년 11월 22일 레알 솔트레이크와의 결승전에서 베컴은 풀타임 출전했지만, 연장전까지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승부차기 끝에 4-5로 패했다.
3.3.1. 밀란 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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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베컴은 파비오 카펠로 감독 체제에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FIFA 월드컵 예선전에 대비해 몸 상태를 끌어올리기 위해 유럽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았다. 2008년 10월 30일, 밀란은 베컴이 2009년 1월 7일에 임대로 합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베컴은 메이저 리그 사커를 떠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고, 2009 시즌 개막 시점인 3월에 갤럭시로 복귀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8년 12월 20일, 아드리아노 갈리아니 밀란 구단주는 훈련장에서 베컴을 공개했다. 베컴은 등번호 32번을 선택했다. 의료 검진 후, 구단 의료진은 베컴에게 38세가 되는 5년 후까지도 축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컴은 2009년 1월 11일 로마와의 세리에 A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해 89분을 뛰었고, 밀란은 올림피코에서 2-2로 비겼다. 1월 25일, 볼로냐와의 경기에서 세리에 A 데뷔골을 기록하며 4-1 승리에 기여했다. 베컴은 3월에 로스앤젤레스로 복귀할 예정이었으나, 이탈리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면서 밀란에 남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2010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 밀란으로 완전 이적을 원한다는 베컴의 발표(2월 4일)는 이 소문을 사실로 만들었지만, 갤럭시가 제시한 1000만~1500만 달러의 이적료를 맞추는 데는 실패했다.
3월 2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베컴의 임대 계약이 7월 중순까지 연장되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베컴이 "공동 사용" 계약이라고 밝히면서 확인되었고, 그는 메이저 리그 사커 2009 시즌을 7월 중순부터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11월, 베컴이 2010년 1월부터 다시 AC 밀란에 임대로 합류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2010년 1월 6일, 세리에 A 복귀 후 첫 경기인 제노아와의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75분간 활약했고, 팀은 5-2로 승리했다. 2010년 2월 16일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맞붙어 76분간 활약했지만, 산 시로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팀은 2-3으로 패했다.
2010년 3월 10일, 베컴은 2차전 경기를 위해 밀란 선수로서 올드 트래퍼드로 돌아왔다. 64분부터 교체 출전하여 팬들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팀은 0-4로 패하며 합계 2-7로 16강에서 탈락했다. 이후 키에보 베로나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전했지만, 아킬레스건 파열이라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2010년 3월 15일, 투르쿠에서 오라바 박사에게 수술을 받았다.
3.3.2.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복귀
베컴은 FIFA 월드컵 예선전 경기에 몸상태를 끌어올리기 위해 유럽으로 복귀할 것이란 추측이 있었고, 밀란은 2009년 1월 7일에 베컴이 임대로 합류할 것임을 발표했다. 베컴은 메이저 리그 사커를 떠날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고, 2009 시즌이 개막하는 시점인 3월에 갤럭시로 복귀할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베컴은 처음 4번의 경기에서 2골을 넣고 여러 골을 도우며 이탈리아 구단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고, 이탈리아 구단이 그의 영입에 거액을 제시하며 베컴이 밀란에 잔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는 2009년 2월 4일에 베컴이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2010년 FIFA 월드컵에 다시 참가하기 위해 밀란으로 완전 이적을 요구한다고 밝히면서 사실로 드러났지만, 갤럭시가 제시한 10에서 15 정도의 베컴의 금액을 맞추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 후에도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협상은 계속되었고, 2009년 3월 2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베컴의 임대 계약이 7월 중순까지 연장되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베컴이 특이한 "공동 사용" 계약이라 밝히면서 나중에 확인되었고, 그는 메이저 리그 사커 2009 시즌을 7월 중순부터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3.4. 파리 생제르맹과 은퇴
2013년 1월 31일, 이적 시장 마감일을 앞두고 베컴은 파리 생제르맹과 메디컬 테스트를 받았으며, 리그 1 팀으로 이적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같은 날 오후, 베컴은 파리 생제르맹과 5개월 단기 계약을 체결했고, 파리에서 받는 급여 전액을 현지 아동 자선 단체에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3년 2월 24일, 마르세유와의 리그 1 홈 경기에서 76분에 교체 투입되어 파리 생제르맹 데뷔전을 치렀다. 이로써 베컴은 파리 생제르맹 역사상 400번째 선수가 되었다. 2013년 5월 12일, 파리 생제르맹은 리옹을 1-0으로 꺾고 리그 1 우승을 차지했으며, 베컴은 4개의 다른 리그에서 우승을 경험한 선수가 되었다.
2013년 5월 16일, 베컴은 프랑스 리그 1 시즌이 끝나면 프로 축구 선수 생활을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 은퇴 결정 후, 베컴은 마지막 경기에 착용할 유니언잭 색상의 특별 제작된 축구화를 받았다. 이 축구화에는 그의 아내와 자녀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2013년 5월 18일, 브레스트와의 마지막 홈 경기에서 베컴은 주장으로 선발 출전했다. 이 경기에서 베컴은 코너킥으로 마튀이디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베컴은 80분에 교체되어 동료 선수들과 감독에게 포옹을 받았고, 팬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았다. 파리 생제르맹은 이 경기에서 3-1로 승리했다.
4. 국가대표팀 경력
1996년 9월 1일, 베컴은 몰도바와의 FIFA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1997년 6월, 투르누아 드 프랑스에 참가했다.
베컴은 1998년 FIFA 월드컵 예선 모든 경기에 출전했고, 프랑스에서 열린 본선 23인 엔트리에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글렌 호들은 베컴이 대회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잉글랜드의 첫 두 경기에는 선발로 출전하지 못했다. 세 번째 경기인 콜롬비아전에 출전하여 30야드 거리에서 감아찬 프리킥으로 득점하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이는 그의 잉글랜드 대표팀 데뷔골이었다.
16강전에서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레드 카드를 받았다. 디에고 시메오네에게 파울을 당한 후, 넘어져 있는 시메오네의 종아리를 발로 찼다. 시메오네는 나중에 베컴을 퇴장시키기 위해 과장된 반응을 보였다고 인정했다.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고, 잉글랜드는 승부차기에서 패하며 탈락했다. 많은 팬들과 언론은 잉글랜드의 탈락을 베컴 탓으로 돌렸고, 그는 비난과 욕설의 대상이 되었다. 런던의 한 술집 밖에는 그의 인형이 매달렸고, 데일리 미러는 그의 다트판을 게재하기도 했다. 그는 월드컵 이후 살해 위협까지 받았다.
UEFA 유로 2000에서 잉글랜드가 포르투갈에 3-2로 패한 경기 중 잉글랜드 팬들로부터 베컴이 받던 비난은 정점에 달했다. 베컴은 이 경기에서 두 골을 어시스트했지만, 일부 잉글랜드 팬들은 경기 내내 그를 조롱했다. 베컴은 중지손가락을 치켜들어 응수했고, 이 행동은 일부 비판을 받았지만, 이전에 그를 비난하도록 부추겼던 많은 신문들은 독자들에게 그를 더 이상 비난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2000년 11월 15일, 케빈 키건이 잉글랜드 감독직에서 사임한 후, 베컴은 임시 감독 피터 테일러에 의해 팀 주장으로 승격되었고, 새로운 감독 스벤-예란 에릭손 체제에서도 주장직을 유지했다.
베컴은 뮌헨에서 열린 독일과의 경기에서 인상적인 5-1 승리를 거두는 등 잉글랜드의 2002년 FIFA 월드컵 진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1년 10월 6일 그리스와의 잉글랜드 최종 예선 경기에서 잉글랜드는 월드컵에 직행하기 위해서는 이 경기에서 승리하거나 무승부를 거둬야 했지만, 경기 종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2-1로 뒤지고 있었다. 테디 셰링엄이 그리스 페널티 박스 바깥 8야드 지점에서 파울을 당했을 때, 잉글랜드는 프리킥을 얻었고, 베컴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휘어 감는 슛으로 잉글랜드의 월드컵 진출을 확정지었다. 베컴은 2001년 BBC 올해의 스포츠 인물로 선정되었고, FIFA 올해의 선수상에서는 루이스 피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스웨덴과의 첫 경기에 출전했다. 4년 전 사건 이후, 베컴은 페널티킥으로 결승골을 넣으며 아르헨티나에게 복수했다. 잉글랜드는 2라운드에서 덴마크를 3-0으로 이겼는데, 베컴은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잉글랜드는 8강전에서 결승에 진출한 브라질에게 패했다.
2002 코먼웰스 게임 개막식에서 베컴은 키스티 하워드가 여왕에게 주빌리 배턴을 전달하는 것을 에스코트했다. 베컴은 유로 2004에서 잉글랜드의 모든 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잉글랜드의 첫 경기에서 프랑스에 2-1로 패하며 페널티킥을 실축했고, 포르투갈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또 다른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잉글랜드는 승부차기에서 6-5로 패하며 탈락했다.
2005년 10월, 베컴은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퇴장당하며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으로서는 최초로, 그리고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두 번 퇴장당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그는 다음 달 아르헨티나와의 친선 경기에서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으로 50번째 경기를 치렀다.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잉글랜드의 개막전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베컴의 프리킥이 카를로스 가마라의 자책골로 이어지며 잉글랜드가 1-0으로 승리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와의 경기에서는 83분에 크로스를 올려 피터 크라우치의 골을 어시스트했고, 스티븐 제라드에게 또 다른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잉글랜드는 2-0으로 승리했다. 그는 버드와이저로부터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에콰도르와의 2라운드 경기에서 베컴은 59분 프리킥으로 골을 넣어 세 번의 월드컵에서 득점한 최초의 잉글랜드 선수가 되었다. 이 골로 잉글랜드는 1-0으로 승리하며 8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는 경기 전에 탈수와 질병으로 여러 차례 구토를 할 정도로 아팠다. 8강전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베컴은 전반전 직후 부상으로 교체되었고, 잉글랜드는 승부차기에서 3-1로 패했다. 교체된 후 베컴은 경기에 뛸 수 없다는 사실에 크게 흔들리고 감정적이었으며, 한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잉글랜드가 월드컵에서 탈락한 다음 날, 베컴은 기자회견에서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직에서 물러났다고 발표했다. 그는 "내 나라를 위해 주장을 맡았던 것은 영광이자 특권이었지만, 95경기 중 58경기를 주장으로 뛰었기에 스티브 맥클라렌 감독 하에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지금이 주장직을 내려놓을 적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뒤를 이어 첼시의 주장인 존 테리가 주장직을 이어받았다.
월드컵 이후 주장직에서 물러난 베컴은 2006년 8월 11일 새로운 감독 스티브 맥클라렌에 의해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완전히 제외되었다. 맥클라렌은 팀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자 한다"며 베컴은 "그 안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맥클라렌은 베컴이 나중에 다시 발탁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션 라이트-필립스, 키어런 리차드슨, 그리고 월드컵에서 베컴의 대체 선수였던 애런 레넌 모두 포함되었지만, 맥클라렌은 결국 그 역할에 스티븐 제라드를 기용했다.
2007년 5월 26일, 맥클라렌 감독은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처음으로 베컴을 잉글랜드 대표팀에 다시 선발했다고 발표했다. 베컴은 새로 지어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좋은 활약을 펼쳤다. 후반전에 그는 주장 존 테리의 득점을 어시스트했다. 잉글랜드가 브라질을 꺾는 듯했으나, 디에고가 경기 종료 직전 동점골을 넣었다. 다음 경기인 UEFA 유로 2008 예선 에스토니아와의 경기에서 베컴은 마이클 오언과 피터 크라우치에게 두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잉글랜드의 3-0 승리에 기여했다. 베컴은 이 두 경기에서 잉글랜드의 총 4골 중 3골에 관여했으며, 메이저 리그 사커로 이적한 후에도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계속 뛰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2007년 8월 22일, 베컴은 독일과의 친선 경기에 출전하여 유럽 이외의 클럽 팀 소속으로 잉글랜드 대표팀에 출전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2007년 11월 21일, 베컴은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 A매치 99경기를 기록했고, 피터 크라우치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여 2-2 무승부를 만들었다. 2-3으로 패한 후 잉글랜드는 유로 2008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컴은 국제 경기에서 은퇴할 계획이 없으며, 국가대표팀에서 계속 뛰고 싶다고 말했다. 새로운 잉글랜드 감독이자 베컴의 전 레알 마드리드 감독인 파비오 카펠로가 스위스와의 친선 경기 명단에 베컴을 포함시키지 않자, 베컴은 3개월 동안 공식 경기에 출전하지 않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2008년 3월 20일, 카펠로 감독은 프랑스와의 친선 경기를 위해 베컴을 잉글랜드 대표팀에 다시 발탁했다. 베컴은 잉글랜드 선수로는 다섯 번째로 100경기 출전 기록을 달성했다. 카펠로 감독은 2008년 3월 25일, 2010년 월드컵 예선을 앞두고 베컴이 장기적으로 팀에 남을 것이라는 암시를 했다.
2008년 5월 11일, 카펠로 감독은 미국과의 경기와 트리니다드 토바고와의 원정 경기를 앞두고 31명의 잉글랜드 대표팀 명단에 베컴을 포함시켰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금색 축구화를 신은 베컴은 경기 전에 보비 찰턴으로부터 100번째 출전을 기념하는 명예 금색 모자를 받았고, 관중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그는 좋은 활약을 펼쳤고 존 테리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데이비드 벤틀리와 교체되면서 베컴을 지지하는 관중들은 야유를 보냈다. 놀랍게도 카펠로 감독은 2008년 6월 1일 트리니다드 토바고와의 친선 경기에서 베컴에게 주장 완장을 맡겼다. 이 경기는 2006년 월드컵 이후 베컴이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을 맡은 첫 경기였다.
벨라루스와의 2010년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베컴은 87분에 교체 투입되어 107번째 출전 기록을 세우며 보비 찰턴을 제치고 역대 잉글랜드 선수 중 세 번째로 많은 경기에 출전한 선수가 되었다. 2009년 2월 11일, 베컴은 보비 무어가 가지고 있던 잉글랜드 필드 플레이어 최다 출전 기록인 108경기와 동률을 이루었다. 스튜어트 다우닝을 대신해 스페인과의 친선 경기에 교체 투입된 것이다. 2009년 3월 28일, 베컴은 슬로바키아와의 친선 경기에 교체 투입되어 무어의 기록을 넘어섰고, 웨인 루니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전반적으로 베컴은 카펠로 감독 체제 하에서 20경기 중 16경기에 출전했지만, 2010년 3월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해 2010년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부상 전 그의 마지막 잉글랜드 대표팀 경기는 2009년 10월 14일, 잉글랜드 3-0 벨라루스 경기에서 교체 출전한 것이었다.
월드컵에서 잉글랜드의 부진한 성적 이후, 카펠로 감독은 감독직을 유지했지만 다가오는 UEFA 유로 2012 예선을 위해 잉글랜드 대표팀을 개편해야 하는 압력을 받았다. 그는 2010년 8월 11일 헝가리와의 홈 친선 경기에서 베컴이 여전히 출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팀을 공개했지만 베컴은 다음 달 MLS 복귀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카펠로 감독은 당시 35세였던 베컴이 향후 잉글랜드 대표팀 경기에 출전할 가능성에 대해 "저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데이비드는 훌륭한 선수이지만, 우리는 미래를 위해 새로운 선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베컴의 오른쪽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활약하는 테오 월콧과 아담 존슨을 언급하며 "이것이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나 다른 감독 체제 하에서 팀의 미래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베컴이 마지막 친선 경기에 한 번 더 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그가 건강하다면, 팬들이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웸블리에서 한 경기 더 치르기를 바랍니다." 베컴의 에이전트는 성명을 통해 베컴이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할 의향이 없으며, 건강하고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잉글랜드 대표팀에 출전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베컴은 골키퍼 피터 실턴이 보유한 최다 출전 기록(125경기)보다 10경기 부족했다. 베컴은 2012년 올림픽에 출전할 영국 올림픽 축구팀 예비 명단에 포함되었다. 그는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에 의해 최종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 연도 | 출전 | 득점 |
|---|---|---|
| 1996 | 3 | 0 |
| 1997 | 9 | 0 |
| 1998 | 8 | 1 |
| 1999 | 7 | 0 |
| 2000 | 10 | 0 |
| 2001 | 10 | 5 |
| 2002 | 9 | 3 |
| 2003 | 9 | 4 |
| 2004 | 12 | 2 |
| 2005 | 9 | 1 |
| 2006 | 8 | 1 |
| 2007 | 5 | 0 |
| 2008 | 8 | 0 |
| 2009 | 8 | 0 |
| | 115 || 17 |
5. 행정가 경력
2014년 2월 5일, 메이저 리그 사커(MLS)는 베컴이 2007년 LA 갤럭시와 계약할 때 받았던 25로 MLS 확장팀 구매 옵션을 행사했다고 발표했다. 베컴이 이끄는 구단주 그룹은 원래 마이애미 기반 팀이 2016년이나 2017년에 경기를 시작하기를 희망했다. 경기장 계약이 완료되는 데 지연이 발생하자, MLS는 2018년 1월 팀이 승인되었고 2020년에 경기를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2019년 1월, 베컴은 잉글랜드 비리그 클럽인 살포드 시티의 공동 구단주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이전에 피터 림(Peter Lim)이 소유했던 클럽 지분 10%를 인수했으며, 이 거래는 잉글랜드 축구협회(Football Association)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같은 해 1월 31일, 클럽은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그를 클럽 이사로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5.1. 데이비드 베컴 축구 아카데미
2005년, 베컴은 런던과 로스앤젤레스에서 데이비드 베컴 아카데미(David Beckham Academy) 축구 학교를 설립했다. 그러나 2009년 말, 두 곳 모두 폐쇄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5.2. 인터 마이애미 CF
2014년 2월 5일, MLS는 베컴이 2007년 LA 갤럭시와 계약을 맺으면서 받았던 25로 MLS 확장팀 구매 옵션을 행사했다고 발표했다. 베컴이 이끄는 구단주 그룹은 원래 마이애미 기반 팀이 2016년이나 2017년에 경기를 시작하기를 희망했다. 경기장 계약이 완료되는 데 지연이 발생한 후, MLS는 2018년 1월 팀이 승인되었고 2020년에 경기를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팀 이름과 문장은 2018년 9월 5일에 공개되었다. 클럽 인터나시오날 데 푸트볼 마이애미(Club Internacional de Futbol Miami) – 일반적으로 인터 마이애미(Inter Miami)로 알려짐 – 는 네온 핑크색 테두리와 다리가 "M"(마이애미)을 형성하도록 잡은 백로가 있는 검은색 문장으로 표현된다. 이 클럽은 2020년 3월 1일 로스앤젤레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패하며 MLS에 데뷔했다.
5.3. 살포드 시티 FC
2019년 1월, 베컴은 잉글랜드의 비리그 클럽인 살포드 시티의 공동 구단주가 될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그는 이전에 피터 림(Peter Lim)이 소유했던 클럽 지분 10%를 인수했으며, 이 거래는 잉글랜드 축구협회(Football Association)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1월 31일, 클럽은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그를 클럽 이사로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6. 경기 스타일
데이비드 베컴은 선수 경력 동안 세대를 대표하는 최고이자 가장 인지도 높은 선수 중 한 명으로 여겨졌으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리킥 키커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2023년 9월 기준으로, 베컴은 직접 프리킥으로 득점한 골 수에서 리오넬 메시와 공동 5위(65골)에 올라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베컴을 역대 최고의 측면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평가한다. 주로 오른발잡이인 그는 넓은 패싱 범위, 비전, 크로스 능력, 휘어지는 프리킥 능력을 통해 동료를 위한 기회를 창출하거나 직접 득점할 수 있었다. 이러한 능력 덕분에 그는 상당한 속도가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트 윙어로서 뛰어난 활약을 펼칠 수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동료인 반대편 윙어 라이언 긱스와 달리, 베컴은 공을 직접 드리블하기보다는 움직임과 패스를 통해 상대 선수를 제치는 것을 선호했다. 그는 팀 동료인 풀백 게리 네빌과 오른쪽 측면에서 강력한 파트너십을 형성했는데, 이는 두 선수 간의 이해도가 높았고 네빌이 오버래핑으로 전진하여 베컴의 패스를 받고 크로스를 올릴 수 있는 능력 때문이었다. 특히 베컴이 상대 수비에 밀착되었을 때 더욱 그러했다.
베컴은 주로 오른쪽 측면에서 뛰었지만, 선수 경력 동안 중앙 미드필더로도 활용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가끔, 하지만 특히 레알 마드리드와 AC 밀란에서). 드물게는, 특히 선수 경력 후반에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감소함에 따라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 활용되기도 했다. 베컴은 자신의 최고 포지션은 오른쪽이라고 생각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중앙에서 뛰는 것을 더 선호했다. 패싱, 크로스, 세트피스 능력 외에도, 베컴은 체력과 수비력으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유소년 시절 공격형 미드필더와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가끔은 윙백으로도 배치되었다. 게다가 그는 원거리에서 정확한 슈팅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능숙한 페널티킥 키커이기도 했다. 또한 언론으로부터 볼 컨트롤과 경기장에서 공간을 창출하는 능력에 대해 칭찬을 받았으며, 예측력, 침착성, 결단력, 운동 능력, 헌신, 축구 선수로서의 지능도 인정받았다.
베컴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알렉스 퍼거슨 경의 근면한 접근 방식의 산물이었다. 퍼거슨은 베컴이 "다른 선수들은 신경 쓰지 않는 정확성을 달성하기 위해 훈련에 헌신했다"고 말했다. 베컴은 훈련이 끝난 후에도 몇 시간 동안 프리킥 연습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훈련 루틴을 유지했고, 2007년 초 경영진과의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조차 레알 마드리드 회장 라몬 칼데론과 감독 파비오 카펠로는 베컴의 프로 정신과 클럽에 대한 헌신을 칭찬했다. 베컴의 레알 마드리드 동료 호베르투 카를루스는 베컴을 그가 본 최고의 프리킥 전문가로 여겼다. 그 세대 최고의 프리킥 전문가 중 한 명인 호베르투 카를루스는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프리킥을 얻었을 때 팀이 직면한 딜레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한쪽에 서고 베컴은 다른 쪽에 섰지만, 베컴이 프리킥을 차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공을 차는 방식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밀란에서 베컴과 함께한 감독 카를로 안첼로티는 베컴의 지능과 워크 레이트, 특히 경기의 기술적, 전술적 측면에서 보여준 향상에 대해 칭찬하며, 이를 통해 그가 속도 저하를 만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 잉글랜드 감독 스티브 맥클라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매우 운이 좋게도 훌륭한 선수들과 함께 일했고, 그(베컴)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훌륭한 선수였고,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활용했으며, 그것은 엄청난 노력과 프로 정신, 그리고 항상 훈련장에서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활약으로 동료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승리자였습니다. 그는 리더였고, 사람들은 그를 따랐습니다.
아스널 감독 아르센 벵거는 "기억에 남는 것은 그의 진정한 헌신과 헌신, 그리고 그가 항상 가지고 있던 자연스러운 겸손함이며, 그것은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2013년 5월, 은퇴 후 어떻게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베컴은 "저는 사람들이 저를 근면한 축구 선수, 축구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 그리고 경기장에 나설 때마다 모든 것을 쏟은 사람으로 기억해주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제가 느끼는 방식이고, 제가 되돌아볼 때 그렇게 느끼고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봐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베컴의 초기 경력에서는 성격, 무모한 태클, 불필요한 경고 누적으로 인해 경기 중 기강 문제가 언론에 종종 제기되었다. 베컴은 잉글랜드 선수 최초로 두 번의 퇴장을 당했고, 잉글랜드 주장으로서 퇴장당한 최초의 선수이기도 하다. 베컴의 가장 악명 높은 퇴장은 1998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시메오네에게 파울을 당한 후 일어났다. 베컴은 엎드린 채 아르헨티나 미드필더를 발로 찼고, 시메오네는 과장되게 쓰러졌다. 그는 웨인 루니와 함께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가장 많은 퇴장을 당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의 두 번째 잉글랜드 대표팀 퇴장은 2005년 10월 8일 맨체스터에서 열린 오스트리아와의 2006년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의 유일한 퇴장은 2000년 1월 6일 네카사와의 2000년 FIFA 클럽 월드컵 경기에서였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는 라리가에서 41장의 경고와 4장의 퇴장을 받았고, 2004년 1월 21일 마드리드에서 열린 발렌시아와의 코파 델 레이 경기에서도 퇴장을 당했다. LA 갤럭시에서의 유일한 퇴장은 2009년 8월 15일 MLS 시애틀 사운더스와의 홈 경기에서 0-2로 패한 경기였다. 파리 생제르맹에서는 2013년 4월 28일 에비앙과의 경기에서 한 번의 퇴장을 당했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베컴은 잉글랜드, 밀란, LA 갤럭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 PSG에서 572경기를 뛰었고, 9번의 퇴장을 당했는데, 평균적으로 63~64경기당 한 번꼴이었다.
성공, 인기, 경기력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 베컴에 대한 비평적 평가는 선수 경력 내내 스포츠 관계자들과 팬들 사이에서 엇갈렸다. 이는 부분적으로 Goal의 수반카르 몬달이 지적하듯이, 그가 경기장 밖에서 벌인 활동과 사생활에 대한 광범위한 보도 때문이다.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은 2007년에 베컴의 증가하는 유명세, 특히 미래 아내 빅토리아와의 세간의 이목을 끈 관계가 선수 경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추측했다. 2015년, 그는 26년간 맨유에서 감독 생활을 하는 동안 단 네 명의 세계적인 선수만을 지도했다고 주장하며, 베컴을 그 목록에서 제외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맨유에서 26년간의 감독 생활 동안 저와 함께 뛰었던 위대한 선수들 또는 매우 훌륭한 선수들을 폄하하거나 비판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는 단 네 명뿐이었습니다. 칸토나, 긱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그리고 스콜스."
LA 갤럭시로 이적하자, [[엘 파이스]]스페인어는 베컴의 선수 경력과 경기장 밖에서 누리는 지위의 이중성을 반영하며 그를 "세계 축구의 위대한 역설"이라고 묘사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아이콘이며, 언론과 거리에서 그러한 열광의 원인이자, 최고의 캣워크 모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반(反)디바였습니다. 그는 경기장 밖에서는 가장 은하계적인 갈락티코였지만, 경기장에 들어서면 가장 위대한 지상인이었습니다.베컴의 크로스 능력에 대해, 가디언의 롭 스미스는 2014년에 "그는 위대한 크로서였고, 아마도 역사상 최고였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그는 데드볼 전문가이자 다잉볼 전문가였습니다. [...] 그의 시그니처 크로스는 공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이루어졌는데, 이를 통해 코너킥과 프리킥과 같은 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CBC 스포츠의 나이젤 리드는 베컴의 경력과 유명세에 대해 논평하며, "그의 브랜드는 세계적이며, 그의 매력은 보편적입니다. 그는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여론을 양극화시켰습니다. 그러나 화려함 아래 그는 무엇보다도 매우 훌륭한 축구 선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베컴은 그의 세대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는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경기를 바꿀 능력이 있다고 믿었으며, 그를 "자신의 기술의 대가이자 치명적인 상대"라고 묘사하며, "재능은 열정에 의해서만 능가되었다"고 덧붙였다.
7. 사생활
베컴은 1949년에 태어난 미용사 산드라 조지나 웨스트와 1948년에 태어난 배관기술자 데이비드 에드워드 앨런 "테드" 베컴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1969년 런던 해크니 구에서 결혼했다. 그는 누나 린 조지나와 여동생 조안 루이즈를 두고 있다. 베컴은 잉글랜드 런던 레이턴스톤의 휩스 크로스 대학 병원에서 출생했다. 유년 시절 칭포드의 리지웨이 파크에서 축구를 하곤 했고, 체이스 레인 초등학교와 칭포드 군 고등학교를 다녔다. 2007년 기자 회견에서, "학창 시절에 선생님의 '나중에 성장해서 무엇을 하고 싶니?'라는 질문에 '저는 축구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답하자, '아니, 너가 생계로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야?'라고 다시 질문하셨을 때 그것만이 제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유대인인데, 이로 인해 베컴은 자신을 "유대인 혼혈"로 지칭했고, 자서전에도 "저는 다른 종교보다도 유대교에 조예가 깊은 것 같습니다."라고 적었다. 그의 자서전 경기장 위에 양발을에 자신이 소속단에서 축구를 하기 위해 매주 부모님과 교회를 나갔다고 적었다.
그의 부모님은 열광적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지지자로 런던에서 올드 트래퍼드까지 자주 왕복해 선수단의 안방 경기를 보곤 했다. 데이비드는 부모님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한 애정을 빼닮았고, 그가 가장 열광한 스포츠 종목은 축구였다. 그는 보비 찰튼이 설립한 맨체스터의 축구 학교 한 곳을 다니다가 재능 대회를 위해 바르셀로나와의 훈련 기회를 잡았다. 그는 인근 유소년 구단이자 부친이 스튜어트 언더우드와 스티브 커비가 공동으로 감독을 맡은 리지웨이 로버스에서 축구를 했다.
1997년, 베컴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를 관람한 후 빅토리아 아담스와 데이트를 시작했다. 당시 영국 최고의 팝 그룹 중 하나였던 팝 음악 그룹 스파이스 걸스의 "포시 스파이스"로 유명했던 그녀와 베컴의 팀은 모두 성공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관계는 즉시 많은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이 커플은 언론에 의해 "포시 앤 벡스"라고 불렸다. 그는 1998년 1월 24일 영국 체셔의 한 레스토랑에서 그녀에게 청혼했다.
1999년 7월 4일, 그들은 아일랜드 루트렐스타운 성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베컴의 팀 동료 게리 네빌이 사회를 맡았고, 네 달 된 아들 브루클린이 반지를 들었다. 베컴 부부가 OK! 매거진과 독점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신문들은 그들이 금색 왕좌에 앉아 있는 사진을 입수할 수 있었다. 결혼 피로연에는 437명의 직원이 고용되었으며, 비용은 50만 파운드로 추산되었다.
데이비드와 빅토리아는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
엘튼 존과 데이비드 퍼니시는 브루클린과 로미오 베컴의 대부로 알려져 있으며, 대모는 엘리자베스 헐리이다. 크루즈와 하퍼는 칩핑 노턴의 성 삼위일체 교회에서 가톨릭 세례를 받았으며, 그들의 대부모 중에는 에바 롱고리아와 마크 앤서니가 있었다.
베컴의 세 아들은 모두 아스널 아카데미에서 축구를 했다. 브루클린은 2014-15 시즌 말까지 아스널 U16에서 축구를 했다. 아버지처럼 브루클린과 로미오는 모델 일을 했고 GQ의 베스트 드레서 영국 남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초기에 베컴은 1995년 20세에 부동산 개발업자로부터 직접 구입한 워즐리의 4베드룸 주택에 살았다. 1999년 결혼 직후, 그와 빅토리아는 허트퍼드셔 주 소브리지워스에 있는 부지에 있는 시골집을 샀는데, 언론은 이를 "베킹엄 팰리스"라고 불렀다. 그들은 2014년에 그 부동산을 매각했다.
"골든 볼스"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베컴은 1998년 월드컵 이후 명성을 회복한 것을 칭찬하며 2008년 전국 TV에서 빅토리아가 공개한 이름을 얻었다. 베컴은 강박장애(OCD)를 가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모든 것을 일직선으로 정리하거나 모든 것이 쌍으로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빅토리아는 "우리 냉장고를 열면 양쪽이 모두 조화롭게 정돈되어 있다. 냉장고가 세 개 있는데, 하나는 음식, 다른 하나는 샐러드, 세 번째는 음료를 넣어 둔다. 음료 냉장고에는 모든 것이 대칭적이다. 캔이 세 개 있으면, 짝수가 되도록 하나를 버린다"고 주장했다. 열렬한 군주주의자인 베컴은 2022년 9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영결식에서 웨스트민스터 홀에 안치된 여왕의 관을 보기 위해 12시간 동안 줄을 섰다.
2004년, 여러 신문들이 베컴의 전 비서 레베카 루스의 주장을 보도했는데, 그녀는 베컴과 부정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일주일 후, 말레이시아 출신 호주 모델 사라 마르벡은 베컴과 두 차례 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베컴은 두 주장 모두를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레베카 루스와의 추정된 불륜 사건 20년 후인 2023년 넷플릭스에서 베컴이라는 다큐멘터리가 공개되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베컴은 불륜을 부인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 당시가 그의 결혼 생활에 얼마나 힘든 시기였는지 설명했다.
2010년 9월, 베컴은 자신이 매춘부 이르마 니치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주장을 담은 잡지 인터치의 보도와 관련하여 그녀와 다른 몇몇 사람들을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의 소송은 미국의 언론 자유 법에 따라 기각되었고, 해당 잡지는 나중에 베컴에 대한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인정했다.
2019년 5월 9일, 브롬리 치안 판사 법원에서 베컴은 6개월 동안 운전이 금지되었다. 그는 이전에 2018년 11월 21일 운전 중 휴대전화를 사용한 혐의를 인정했다. 법정에서 그는 "서행하는" 교통 상황에서 운전 중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모습이 일반인에 의해 사진으로 찍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베컴은 기존의 속도 위반으로 받은 6점에 추가로 6점의 벌점을 받았다. 또한 750파운드의 벌금과 100파운드의 검찰 비용, 75파운드의 추가 요금을 지불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2021년 기준으로, 베컴은 손, 목, 머리 등 신체의 상당 부분을 덮는 65개가 넘는 문신을 가지고 있다. 그의 아들 로미오, 크루즈, 브루클린과 아내 빅토리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왼쪽 아랫팔에 새긴 아내의 이름은 영어로 새기는 것이 "촌스럽다"고 생각하여 데바나가리 문자(힌디어와 산스크리트어 등에 사용되는 문자)로 새겼는데, "Vhictoria"로 잘못 쓰였다. 그의 자서전 데이비드 베컴: 나의 이야기에서 그는 아들 브루클린이 태어난 후인 1999년, 멜 B와 당시 남편 지미 굴자와 문신에 대한 대화를 나눈 후 문신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베컴은 이렇게 말했다. "저를 보면 문신을 보게 됩니다. 빅토리아와 아이들에 대한 제 감정 표현입니다. 그것은 저의 일부입니다."
그는 딸 하퍼를 기리는 문신과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문신들을 여러 개 가지고 있다. 2018년에는 머리 왼쪽 부분에 태양계 문신을 추가했다. 베컴의 많은 문신은 맨체스터 출신의 문신 예술가 루이스 몰로이가 작업했다.
8.1. 클럽
| 클럽 | 시즌 | 단계 | 리그 | 컵 | 리그 컵 | 대륙 | 기타 | 기타 | ||||||
|---|---|---|---|---|---|---|---|---|---|---|---|---|---|---|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1992–93 | 프리미어리그 | 0 | 0 | 0 | 0 | 1 | 0 | 0 | 0 | 0 | 0 | 1 | 0 |
| 1993–94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
| 프레스턴 노스 엔드 (임대) | 1994–95 | 서드 디비시온 | 5 | 2 | 0 | 0 | 0 | 0 | – | 0 | 0 | 5 | 2 | |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1994–95 | 프리미어리그 | 4 | 0 | 2 | 0 | 3 | 0 | 1 | 1 | 0 | 0 | 10 | 1 |
| 1995–96 | 33 | 7 | 3 | 1 | 2 | 0 | 2 | 0 | 0 | 0 | 40 | 8 | ||
| 1996–97 | 36 | 8 | 2 | 1 | 0 | 0 | 10 | 2 | 1 | 1 | 49 | 12 | ||
| 1997–98 | 37 | 9 | 4 | 2 | 0 | 0 | 8 | 0 | 1 | 0 | 50 | 11 | ||
| 1998–99 | 34 | 6 | 7 | 1 | 1 | 0 | 12 | 2 | 1 | 0 | 55 | 9 | ||
| 1999–2000 | 31 | 6 | – | 0 | 0 | 12 | 2 | 5 | 0 | 48 | 8 | |||
| 2000–01 | 31 | 9 | 2 | 0 | 0 | 0 | 12 | 0 | 1 | 0 | 46 | 9 | ||
| 2001–02 | 28 | 11 | 1 | 0 | 0 | 0 | 13 | 5 | 1 | 0 | 43 | 16 | ||
| 2002–03 | 31 | 6 | 3 | 1 | 5 | 1 | 13 | 3 | 0 | 0 | 52 | 11 | ||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합계 | 265 | 62 | 24 | 6 | 12 | 1 | 83 | 15 | 10 | 1 | 394 | 85 | ||
| 레알 마드리드 | 2003–04 | 라 리가 | 32 | 3 | 4 | 2 | – | 7 | 1 | 2 | 1 | 45 | 7 | |
| 2004–05 | 30 | 4 | 0 | 0 | – | 8 | 0 | 0 | 0 | 38 | 4 | |||
| 2005–06 | 31 | 3 | 3 | 1 | – | 7 | 1 | 0 | 0 | 41 | 5 | |||
| 2006–07 | 23 | 3 | 2 | 1 | – | 6 | 0 | 0 | 0 | 31 | 4 | |||
| 레알 마드리드 합계 | 116 | 13 | 9 | 4 | – | 28 | 2 | 2 | 1 | 155 | 20 | |||
|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 2007 | 메이저 리그 사커 | 5 | 0 | 0 | 0 | – | – | 2 | 1 | 7 | 1 | ||
| 2008 | 25 | 5 | 0 | 0 | – | – | 0 | 0 | 25 | 5 | ||||
| 밀란 (임대) | 2008–09 | 세리에 A | 18 | 2 | 0 | 0 | – | 2 | 0 | 0 | 0 | 20 | 2 | |
|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 2009 | 메이저 리그 사커 | 11 | 2 | 0 | 0 | – | – | 4 | 0 | 15 | 2 | ||
| 밀란 (임대) | 2009–10 | 세리에 A | 11 | 0 | 0 | 0 | – | 2 | 0 | 0 | 0 | 13 | 0 | |
| 밀란 합계 | 29 | 2 | 0 | 0 | – | 4 | 0 | |0 | 33 | 2 | ||||
|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 2010 | 메이저 리그 사커 | 7 | 2 | 0 | 0 | – | – | 3 | 0 | 10 | 2 | ||
| 2011 | 26 | 2 | 0 | 0 | – | – | 4 | 0 | 30 | 2 | ||||
| 2012 | 24 | 7 | 0 | 0 | – | 1 | 1 | 6 | 0 | 31 | 8 | |||
|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합계 | 98 | 18 | 0 | 0 | – | 1 | 1 | 19 | 1 | 118 | 20 | |||
| 파리 생제르맹 | 2012–13 | 리그 1 | 10 | 0 | 2 | 0 | – | 2 | 0 | 0 | 0 | 14 | 0 | |
| 클럽 경력 통산 | 523 | 97 | 35 | 10 | 12 | 1 | 118 | 18 | 31 | 3 | 719 | 129 | ||
클럽 수상 경력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프리미어리그: 1995–96, 1996–97, 1998–99, 1999–2000, 2000–01, 2002–03
* FA컵: 1995–96, 1998–99
* FA 커뮤니티 실드: 1996, 1997
* FA 유스컵: 1991–92
* UEFA 챔피언스리그: 1998–99
* 인터콘티넨털컵: 1999
* 레알 마드리드
* 라 리가: 2006–07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003
*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 MLS컵: 2011, 2012
* MLS 서포터스 실드: 2010, 2011
* MLS 서부 지구
* 정규시즌: 2009, 2010, 2011
* 플레이오프: 2009, 2011, 2012
* 파리 생제르맹
* 리그 1: 2012–13
2008년, 파비오 카펠로 감독 체제하에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의 베컴의 성공은 그가 2009년 월드컵 예선 경기를 위한 경기 감각 유지를 위해 유럽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2008년 10월 30일, AC 밀란은 베컴이 2009년 1월 7일부터 임대 형식으로 팀에 합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와 다른 추측에도 불구하고, 베컴은 이 이적이 MLS를 떠날 의향을 나타내는 것이 절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며 3월 2009 시즌 시작에 맞춰 갤럭시로 복귀할 의사를 밝혔다. 밀란 구단 내외부의 많은 사람들이 이 이적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으며, 일부 선수들은 이를 단순한 마케팅 수단으로 여겼다.
베컴은 2008년 12월 20일 구단 최고경영자인 아드리아노 갈리아니에 의해 밀란의 훈련 시설에서 공개되었다. 그는 크리스티안 비에리가 이전에 착용했던 32번 유니폼을 선택했는데, 7번과 23번 유니폼은 이미 알렉산드레 파투와 부주장 마시모 암브로시니가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개 후 다음 날, 베컴은 산 시로로 향했고, 우디네세와의 리그 경기 전에 그라운드에 나와 "포르차 밀란"을 외치며 홈 팬들에게 소개되었다. 그 후, 그와 그의 아내 빅토리아는 럭셔리 박스에서 밀란이 5-1로 승리하는 경기를 관람했다.
26세의 슈퍼스타 카카, 28세의 호나우딩요, 29세의 안드레아 피를로 등 전성기 또는 전성기에 가까운 여러 세계적인 선수들, 그리고 파올로 말디니, 클라렌스 세이도르프, 마시모 암브로시니, 주세페 파발리, 잔루카 잠브로타, 필리포 인자기 그리고 안드리 셰우첸코와 같은 베테랑 선수들과 함께 뛰는 베컴은 2009년 1월 11일 세리에 A 로마 원정 경기에서 로쏘네리(밀란의 별칭) 선수로서 선발 출전하여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53,444명의 관중 앞에서 2-2 무승부 경기에서 89분간 활약했다. 거의 3개월 만에 치른 첫 공식 경기에서 베컴은 피를로와 함께 오른쪽 미드필더로서 훌륭한 경기를 보여주었다. 경기 감각이 부족하고 빠른 템포의 경기에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충분히 유용한 크로스와 코너킥을 제공하여 감독 카를로 안첼로티의 선발 출전 결정을 정당화했다. 일주일 후 피오렌티나와의 홈 데뷔전에서 그는 오른쪽 미드필더로서 또 다른 눈에 띄지 않는 활약을 펼쳤지만, 후반전에는 더욱 적극적인 중앙 역할로 이동하여 네덜란드 출신 선수인 세이도르프가 교체된 후 그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대신했다. 밀란은 파투의 골로 1-0으로 승리했지만, 6만 5천 명 이상의 산 시로 관중들은 대부분 카카에게 집중하여 그에게 잔류를 간청했다.
안첼로티 감독이 이끄는 밀란은 눈에 띄게 나이가 많은 팀이었지만, 33세의 베컴에게는 좋은 팀이었다. 그는 1월 25일 볼로냐와의 경기에서 4-1 승리를 거두며 밀란에서 세리에 A 첫 골을 터뜨렸고, 이는 그의 세 번째 출전이었다. 베컴은 3월에 로스앤젤레스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이탈리아 클럽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첫 네 경기에서 두 골을 넣고 여러 차례 어시스트를 기록하자, 베컴이 밀란에 잔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밀란이 수백만 달러의 이적료를 지불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2월 4일, 베컴은 2010 월드컵을 통해 잉글랜드 대표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밀란으로의 완전 이적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며 이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밀란은 갤럭시가 요구한 범위의 베컴의 몸값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 동안 이적설이 계속되었다. 3월 2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베컴의 임대 기간이 7월 중순까지 연장되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나중에 베컴에 의해 확인되었고, 베컴이 7월 중순부터 2009 MLS 시즌 종료까지 LA에서 뛸 것이라는 독특한 "타임셰어" 계약으로 설명되었다.
8.2. 국가대표팀
David Beckham영어은 1996년부터 2009년까지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활약했다. 1998년 FIFA 월드컵에서 콜롬비아를 상대로 득점하여 국가대표팀 첫 골을 기록했다. 2001년 10월 6일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그리스와의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경기 막판 프리킥 동점골을 기록하며 잉글랜드를 2002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켰다. 2002년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와의 조별 리그 경기에서 페널티킥 결승골을 넣어 1998년 FIFA 월드컵 16강전에서 퇴장당했던 아픔을 씻어냈다. 그는 2006년 FIFA 월드컵 에콰도르와의 16강전에서도 프리킥으로 득점하여 3번의 FIFA 월드컵에서 모두 득점을 기록한 최초의 잉글랜드 선수가 되었다.
베컴은 UEFA 유로 2000, UEFA 유로 2004에도 출전했지만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그는 2009년까지 총 115번의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하여 17골을 기록했다.
다음은 베컴의 국가대표팀 경기 출전 및 득점 기록과 득점 목록이다.
| 국가대표팀 | 년도 | 출전 | 득점 |
|---|---|---|---|
| 잉글랜드 | 1996 | 3 | 0 |
| 1997 | 9 | 0 | |
| 1998 | 8 | 1 | |
| 1999 | 7 | 0 | |
| 2000 | 10 | 0 | |
| 2001 | 10 | 5 | |
| 2002 | 9 | 3 | |
| 2003 | 9 | 4 | |
| 2004 | 12 | 2 | |
| 2005 | 9 | 1 | |
| 2006 | 8 | 1 | |
| 2007 | 5 | 0 | |
| 2008 | 8 | 0 | |
| 2009 | 8 | 0 | |
| 총계 | 115 | 17 | |
:득점과 결과는 잉글랜드의 득점을 먼저 표시하며, 득점란은 각 베컴의 득점 이후 점수를 나타냅니다.
| 번호 | 날짜 | 경기장 | 출전 수 | 상대팀 | 점수 | 결과 | 대회 |
|---|---|---|---|---|---|---|---|
| 1 | 1998년 6월 26일 | 스타드 볼라르-델레리스, 랭스, 프랑스 | 17 | 콜롬비아 | 2–0 | 2–0 | 1998년 FIFA 월드컵 |
| 2 | 2001년 3월 24일 | 안필드, 리버풀, 잉글랜드 | 39 | 핀란드 | 2–1 | 2–1 |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
| 3 | 2001년 5월 25일 | 프라이드 파크, 더비, 잉글랜드 | 41 | 멕시코 | 3–0 | 4–0 | 친선 경기 |
| 4 | 2001년 6월 6일 | 올림픽 스타디움, 아테네, 그리스 | 42 | 그리스 | 2–0 | 2–0 |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
| 5 | 2001년 10월 6일 | 올드 트래퍼드, 맨체스터, 잉글랜드 | 46 | 그리스 | 2–2 | 2–2 |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
| 6 | 2001년 11월 10일 | 올드 트래퍼드, 맨체스터, 잉글랜드 | 47 | 스웨덴 | 1–0 | 1–1 | 친선 경기 |
| 7 | 2002년 6월 7일 | 삿포로 돔, 삿포로, 일본 | 51 | 아르헨티나 | 1–0 | 1–0 | 2002년 FIFA 월드컵 |
| 8 | 2002년 10월 12일 | 테헬네 폴레, 브라티슬라바, 슬로바키아 | 55 | 슬로바키아 | 1–1 | 2–1 | UEFA 유로 2004 예선 |
| 9 | 2002년 10월 16일 | 세인트 메리즈 스타디움, 사우샘프턴, 잉글랜드 | 56 | 북마케도니아 | 1–1 | 2–2 | UEFA 유로 2004 예선 |
| 10 | 2003년 3월 29일 | 라인파크 스타디온, 파두츠, 리히텐슈타인 | 58 | 리히텐슈타인 | 2–0 | 2–0 | UEFA 유로 2004 예선 |
| 11 | 2003년 4월 2일 |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선덜랜드, 잉글랜드 | 59 | 튀르키예 | 2–0 | 2–0 | UEFA 유로 2004 예선 |
| 12 | 2003년 8월 20일 | 포트먼 로드, 입스위치, 잉글랜드 | 61 | 크로아티아 | 1–0 | 3–1 | 친선 경기 |
| 13 | 2003년 9월 6일 | 스코피에 시티 스타디움, 스코피예, 마케도니아 | 62 | 북마케도니아 | 2–1 | 2–1 | UEFA 유로 2004 예선 |
| 14 | 2004년 8월 18일 | 세인트 제임스 파크, 뉴캐슬, 잉글랜드 | 73 | 우크라이나 | 1–0 | 3–0 | 친선 경기 |
| 15 | 2004년 10월 9일 | 올드 트래퍼드, 맨체스터, 잉글랜드 | 76 | 웨일스 | 2–0 | 2–0 |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
| 16 | 2005년 3월 30일 | 세인트 제임스 파크, 뉴캐슬, 잉글랜드 | 80 | 아제르바이잔 | 2–0 | 2–0 |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
| 17 | 2006년 6월 25일 | 고틀리프-다임러-슈타디온, 슈투트가르트, 독일 | 93 | 에콰도르 | 1–0 | 1–0 | 2006년 FIFA 월드컵 |
8.3. 개인
* 발롱도르 2위: 1999, 4위: 2001
* FIFA 올해의 선수 2위: 1999, 2001, 4위: 2003
*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상: 1996년 8월
* 프리미어리그 도움왕: 1997-98, 1999-2000, 2000-01
* PFA 올해의 신인 선수: 1996–97
* FWA 공로상: 2008
* 맷 버즈비 경 올해의 선수: 1996–97
* 잉글랜드 올해의 선수: 2003
* ESM 올해의 팀: 1998–99
*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1998–99
* UEFA 올해의 클럽 미드필더: 1998–99
* UEFA 올해의 팀: 2001, 2003
* 프리미어리그 10주년 시상식 (1992-93 시즌부터 2001-02 시즌까지):
국내 및 전체 당년대의 팀
당년대의 골: (1996년 8월 17일, 윔블던 전)
* BBC 올해의 스포츠인: 2001
* BBC 올해의 스포츠인 공로상: 2010
* 레알 마드리드 올해의 선수: 2005–06
* 프리미어리그 PFA 올해의 팀: 1996–97, 1997–98, 1998–99, 1999–2000
* FIFA 100
* ESPY 시상식:
최우수 남자 축구 선수: 2004
최우수 메이저 리그 사커 선수: 2008, 2012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2008
* MLS 올해의 진보 선수: 2011
* PFA 세기의 팀 (1997–2007): 2007
* 2006년 FIFA 월드컵 맨 오브 더 매치 : vs. 트리니다드 토바고 (조별리그)
* UEFA 회장상: 2018
*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수여한 대영 제국 훈장 오피서: 2003
* 유엔아동기금 (UNICEF) 친선대사 (2005년~현재)
* "영국의 최고 대사" – 100 위대한 영국인 시상식
* The Celebrity 100, 15위 – 포브스 2007
* 영국 40세 미만 가장 영향력 있는 남성 목록 1위 – 아레나, 2007
* 타임 100: 2008
* 골드 블루 피터 배지 수상자, 2001
* 두 썸씽 운동선수상, 2011
* AC 밀란 명예의 전당
* 네 개국(잉글랜드, 스페인, 미국, 프랑스)에서 리그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잉글랜드인.
* 세 개의 FIFA 월드컵에서 득점한 최초의 잉글랜드 선수.
* 100경기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 출전한 최초의 영국 축구 선수.
* 프리미어리그 최다 프리킥 득점: 18골.
* 프리미어리그 한 시즌 최다 프리킥 득점: 2000-01 시즌 5골
* PFA 올해의 젊은 선수상: 1997년
* 서 맷 버스비 상: 1997년
* 월드 사커 20세기 위대한 축구 선수 100인: 49위 (19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