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개
1. 개요
온개는 전한 초기의 인물로, 연왕 장도의 부하였다. 한왕 유방에게 파견되어 소섭도미와 함께 항우의 대사마 조구를 물리쳤다. 이후 장도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기여하여 순후에 봉해졌으며, 순경후 25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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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75년 사망 -
여승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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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75년 사망 -
주설
가계는 생계를 같이하는 사람들의 집단이자 경제 활동의 기본 단위로, 전통적인 가족 구성원 간 협력과 유교적 가치관의 영향을 받아왔으나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며 변화를 겪고 있으며, 최근 저출산 고령화로 규모 축소 및 경제적 부담 가중, 문화 전달 기능 약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
전한의 공신 -
장량
장량은 전국시대 말기부터 초한쟁패기를 거쳐 전한 초기에 활약한 한나라 귀족 출신 인물로,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우고 유후에 봉해진 뛰어난 지략가이자 책사이다. -
전한의 공신 -
소하
소하는 전한 초기의 정치가로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공을 세웠으며, 군수 보급, 내정 담당, 한신 천거, 승상으로서 국가 기틀을 다지는 데 헌신한 인물이다.
2. 생애
온개는 전한 초기의 인물로, 본래 연나라 왕 장도의 부하였으나 한 고조 유방에게 귀순하였다. 그는 항우 세력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며, 특히 장도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그 공으로 순후에 봉해졌다. 이후 순후로서 살다가 기원전 175년에 사망하였다. 자세한 생애는 아래 문단에서 설명한다.
2.1. 초기 생애와 군사 활동
본래 연나라 왕 장도의 부하였다. 한왕 4년인 기원전 203년, 승상 소섭도미와 함께 한왕 유방에게 파견되어, 항우의 대사마 조구를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이듬해,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전한을 건국하여 황제(고제)로 즉위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도가 반란을 일으키자, 당시 연나라 승상이던 온개는 이 사실을 고제에게 보고하였다. 온개는 소섭도미와 함께 연나라를 공격하여 반란 진압에 참여했다.
반란이 진압된 후, 온개는 그 공적을 인정받아 순후(栒侯 또는 郇侯)에 봉해졌다. 봉토는 우부풍 관할의 순읍현(栒邑縣, 현재의 산시성 쉰이현 동북쪽) 또는 하동군의 순성(郇城)이었으며, 식읍으로 1,900호를 받았다.
순경후 25년인 기원전 175년에 사망하였으며, 시호는 경(頃)이다. 그의 아들 온인이 작위를 이어받았다.
2.2. 장도의 반란 진압과 순후 책봉
원래 연나라 왕 장도의 부하였다. 전한이 건국되고 유방이 황제(고제)로 즉위한 후, 장도가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연나라의 승상이었던 온개는 이 사실을 고제에게 보고하였고, 소섭도미와 함께 연나라를 공격하여 반란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반란이 진압된 후, 온개는 그 공적을 인정받아 순후(栒侯/郇侯)에 봉해졌다. 봉토는 우부풍에 속한 순읍현(栒邑縣, 현재의 산시성 쉰이현 동북쪽) 또는 하동군의 순성(郇城)이었으며, 식읍으로 1,900호를 받았다.
순후가 된 지 25년 만인 기원전 175년에 사망하였고, 시호는 경(頃)이다. 그의 아들 온인이 작위를 이어받았다.
2.3. 순후로서의 삶과 죽음
원래 연나라 왕 장도의 부하였다. 한왕 4년인 기원전 203년, 승상 소섭도미와 함께 한왕 유방에게 파견되어 항우의 대사마 조구를 물리치는 데 기여했다.
이듬해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전한을 건국하여 황제(고제)로 즉위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도가 반란을 일으키자, 당시 연나라 승상이었던 온개는 소섭도미와 함께 고제에게 장도의 반란 사실을 알리고 연나라를 공격하여 반란 진압에 참여했다. 반란이 진압된 후, 그 공적을 인정받아 순후(栒侯)에 봉해졌다. 봉토는 우부풍 관할의 순읍현(栒邑縣, 현재의 산시성 쉰이현 동북쪽) 또는 하동군의 순성(郇城)이었으며, 식읍 1,900호를 받았다.
순경후 25년인 기원전 175년에 사망하였으며, 시호는 경(頃)이다. 작위는 아들 온인이 이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