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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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온개는 전한 초기의 인물로, 연왕 장도의 부하였다. 한왕 유방에게 파견되어 소섭도미와 함께 항우의 대사마 조구를 물리쳤다. 이후 장도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기여하여 순후에 봉해졌으며, 순경후 25년에 사망했다.

온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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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온개는 전한 초기의 인물로, 본래 연나라 왕 장도의 부하였으나 한 고조 유방에게 귀순하였다. 그는 항우 세력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며, 특히 장도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그 공으로 순후에 봉해졌다. 이후 순후로서 살다가 기원전 175년에 사망하였다. 자세한 생애는 아래 문단에서 설명한다.

2.1. 초기 생애와 군사 활동

본래 연나라 왕 장도의 부하였다. 한왕 4년인 기원전 203년, 승상 소섭도미와 함께 한왕 유방에게 파견되어, 항우대사마 조구를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이듬해,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전한을 건국하여 황제(고제)로 즉위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도가 반란을 일으키자, 당시 연나라 승상이던 온개는 이 사실을 고제에게 보고하였다. 온개는 소섭도미와 함께 연나라를 공격하여 반란 진압에 참여했다.

반란이 진압된 후, 온개는 그 공적을 인정받아 순후(栒侯 또는 郇侯)에 봉해졌다. 봉토는 우부풍 관할의 순읍현(栒邑縣, 현재의 산시성 쉰이현 동북쪽) 또는 하동군의 순성(郇城)이었으며, 식읍으로 1,900호를 받았다.

순경후 25년인 기원전 175년에 사망하였으며, 시호는 (頃)이다. 그의 아들 온인이 작위를 이어받았다.

2.2. 장도의 반란 진압과 순후 책봉

원래 연나라 왕 장도의 부하였다. 전한이 건국되고 유방이 황제(고제)로 즉위한 후, 장도가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연나라의 승상이었던 온개는 이 사실을 고제에게 보고하였고, 소섭도미와 함께 연나라를 공격하여 반란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반란이 진압된 후, 온개는 그 공적을 인정받아 순후(栒侯/郇侯)에 봉해졌다. 봉토는 우부풍에 속한 순읍현(栒邑縣, 현재의 산시성 쉰이현 동북쪽) 또는 하동군의 순성(郇城)이었으며, 식읍으로 1,900호를 받았다.

순후가 된 지 25년 만인 기원전 175년에 사망하였고, 시호는 (頃)이다. 그의 아들 온인이 작위를 이어받았다.

2.3. 순후로서의 삶과 죽음

원래 연나라 왕 장도의 부하였다. 한왕 4년인 기원전 203년, 승상 소섭도미와 함께 한왕 유방에게 파견되어 항우대사마 조구를 물리치는 데 기여했다.

이듬해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전한을 건국하여 황제(고제)로 즉위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도가 반란을 일으키자, 당시 연나라 승상이었던 온개는 소섭도미와 함께 고제에게 장도의 반란 사실을 알리고 연나라를 공격하여 반란 진압에 참여했다. 반란이 진압된 후, 그 공적을 인정받아 순후(栒侯)에 봉해졌다. 봉토는 우부풍 관할의 순읍현(栒邑縣, 현재의 산시성 쉰이현 동북쪽) 또는 하동군의 순성(郇城)이었으며, 식읍 1,900호를 받았다.

순경후 25년인 기원전 175년에 사망하였으며, 시호는 (頃)이다. 작위는 아들 온인이 이어받았다.

3. 전한 고조 공신 서열

온개는 전한 고조 유방의 공신 중 한 명으로, 공신 서열 91위에 해당한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 고조공신후자연표와 반고의 《한서》 고혜고후문공신표에 기록된 바에 따른 것이다. 봉작명은 순후(郇侯)이며, 시호는 경(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