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구 (대사마)
1. 개요
조구는 진나라 시기에는 기현의 옥연으로, 항우에게 대사마에 임명된 인물이다. 항우가 유방과 대치할 때 성고를 지키라는 명을 받았으나, 한나라 군의 도발에 넘어가 사수를 건너다가 패배하여 사마흔, 예와 함께 자결했다. 사마천의 사기, 반고의 한서에 기록이 전해진다.
-
기원전 204년 사망 -
전광
전광은 기원전 205년 제나라 왕으로 옹립되었으나 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서 배신과 연합을 반복하다가 한신에게 패하여 살해당했다. -
기원전 204년 사망 -
기신
기신은 초한쟁 당시 유방을 섬긴 인물로, 형양성 포위 때 유방으로 위장하여 항우에게 항복하는 척하며 유방의 탈출을 돕고 화형당했으며, 그의 충성심은 후대에 높이 평가되었고, 사기에 기록된 기신과 한서에 기록된 기성이 동일 인물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
자살한 사람 -
이선장
이선장은 명나라 초 주원장의 참모로, 뛰어난 계략과 법가 사상으로 명나라 건국에 기여했으나, 호유용의 옥에 연루되어 숙청된 인물이다. -
자살한 사람 -
조소앙
조소앙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정치인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삼균주의에 입각한 임시 헌장을 기초하고 임시정부 외무부장, 한국독립당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독립운동을 이끌었으며, 광복 후에는 남북협상에 참여하고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북한에서 사망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진(秦)의 관리였던 조구는 항량을 도운 인연으로 진나라 멸망 후 항우에게 발탁되어 해혼후(海昏侯)에 봉해지고 대사마에 임명되었다. 기원전 203년, 항우의 명으로 성고를 수비하던 중 한의 유방 군에게 패배하였고, 사마흔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1. 진나라 시기
진(秦) 시대에 기현의 옥연(刑獄, 형벌과 감옥 관련 사무를 맡는 관리)으로 일했다. 당시 죄를 짓고 체포된 항량을 비호하였는데, 자신의 상사였던 사마흔에게 부탁하여 항량이 무죄로 풀려나도록 도왔다.
2.2. 초한쟁패기
진나라 시대에 기현의 옥연(獄吏)이었던 조구는 죄를 지은 항량을 비호하고 당시 상사였던 사마흔에게 주선하여 무죄로 풀려나게 도왔다. 이러한 인연으로 진나라 멸망 후 항우에게 발탁되어 해혼후(海昏侯)에 봉해지고 대사마에 임명되었다.
기원전 204년 (한왕 4년) 10월, 항우와 한왕 유방이 광무산에서 대치하던 중, 팽월이 양나라 땅을 평정하고 초나라의 군량 보급로를 차단했다. 이에 항우는 대사마 조구에게 성고(成皋, 현재의 형양시)를 굳게 지키라고 명하며, 한나라가 싸움을 걸어오더라도 절대 응하지 말고 동쪽으로 진군하지 못하게만 하라고 당부했다. 항우 자신은 15일 안에 팽성을 되찾고 양나라를 평정한 뒤 돌아와 합류하겠다고 약속했다.
조구는 사마흔, 장사 예(翳)와 함께 성고 수비에 나섰다. 한나라 군대는 여러 차례 성고를 공격하며 도발했지만, 조구는 항우의 명령대로 싸우지 않고 수비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한나라 군대가 사람들을 시켜 초나라 군사들을 모욕하고 조롱하자, 분노를 참지 못한 조구는 군대를 이끌고 사수(汜水)를 건너 반격에 나섰다.
기원전 203년, 초나라 병사들이 강을 반쯤 건넜을 때, 한나라 군대가 이들을 급습하여 크게 무찔렀고 초나라 군대의 물자를 모두 빼앗았다. 이 전투에서 대패한 조구는 사마흔, 장사 예와 함께 사수 강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