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요시시게
1. 개요
요시다 요시시게는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쇼치쿠에서 영화 경력을 시작한 일본의 영화감독, 각본가, 영화 이론가였다. 1960년 감독 데뷔 후, 오시마 나기사, 시노다 마사히로와 함께 "쇼치쿠 누벨바그" 운동을 이끌었다. 1960년부터 2004년까지 배우 오카다 마리코와 함께 20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했으며, 1973년 《계엄령》 이후 공백기를 거쳐 1986년 《인간의 약속》으로 칸 영화제에 진출했다. 1999년에는 저서 『오즈 야스지로의 반영화』로 예술선장 문부대신상을 수상했으며, 2022년 폐렴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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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알 수 없음 |
|---|---|
| 다른 이름 | 요시다 기주 |
| 출생지 | 후쿠이현후쿠이시 |
| 사망지 | 도쿄도시부야구 |
| 국적 | 알 수 없음 |
| 민족 | 알 수 없음 |
| 신장 | 알 수 없음 |
| 혈액형 | 알 수 없음 |
| 생년 | 1933년 |
| 생월 | 2월 |
| 생일 | 16일 |
| 몰년 | 2022년 |
| 몰월 | 12월 |
| 몰일 | 8일 |
| 직업 | 영화 감독 연출가 각본가 |
| 활동 기간 | 1955년 - 2022년 |
| 배우자 | 오카다 마리코 (1964년 - 2022년) |
| 가족 | 알 수 없음 |
| 소속사 | 알 수 없음 |
| 공식 웹사이트 | 알 수 없음 |
| 주요 작품 | 알 수 없음 |
| 블루 리본상 | 알 수 없음 |
| 토니상 | 알 수 없음 |
| 일본 아카데미상 | 알 수 없음 |
| 기타 수상 | 예술선장 문부과학대신상 (1998년, 《오즈 야스지로의 반영화》) |
| 비고 | 알 수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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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문화훈장 수훈자 -
마르셀 마르소
프랑스의 마임 아티스트 마르셀 마르소는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후 '비프'라는 대표 캐릭터를 통해 독창적인 마임 예술을 선보이며, 미모드라마 제작, 영화 출연, 마임 교육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며 마임 발전에 기여했다. -
예술문화훈장 수훈자 -
반젤리스
1943년 그리스에서 태어난 작곡가, 키보디스트, 프로듀서 반젤리스는 포미닉스와 아프로디테스 차일드 활동 후 솔로로 전향하여 다양한 장르의 독창적인 음악을 선보였으며, 특히 영화 '불의 전차'와 '블레이드 러너' 사운드트랙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등 영화 음악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 -
2022년 사망 -
정태인
정태인은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위를 취득하고 참여정부에서 경제 정책에 영향을 미쳤으나 행담도 개발 사업 논란으로 물러난 후, 한미 FTA를 비판하고 진보신당 창당에 참여한 경제학자이자 대학교수, 정치인이다. -
2022년 사망 -
한승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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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대학 동문 -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태어나 소설, 희곡,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일본의 전통과 현대 사이의 갈등을 작품에 담아낸 20세기 일본 문학의 중요한 인물이며, 1970년 자위대에서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할복 자살했다. -
도쿄 대학 동문 -
김상협
김상협은 삼양그룹 창업주의 아들이자 독립운동가의 조카로, 도쿄대 졸업 후 고려대 교수와 총장, 문교부 장관, 국무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교육자이며, 친일 행적 논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요구된다.
2. 생애 및 경력
도쿄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고, 1955년 쇼치쿠에 입사하여 기노시타 게이스케의 조감독으로 활동했다. 1960년 영화 《쓸모없는 녀석》으로 감독 데뷔했으며, 오시마 나기사, 시노다 마사히로와 함께 "쇼치쿠 누벨바그"의 주요 인물로 여겨졌다.
1964년, 쇼치쿠가 자신의 영화 《일본 탈출》을 재편집하자 이에 반발하여 쇼치쿠를 퇴사하고, 1966년 아내 오카다 마리코와 함께 독립 프로덕션 "현대영화사"를 설립했다. 1969년 작품 『에로스+학살』은 프랑스에서 상영되며 해외에서도 주목받았고, 이 작품은 『연옥 에로이카』(1970년), 『계엄령』(1973년)과 함께 "일본 근대 비판 3부작"으로 불린다.
1973년 영화 《계엄령》 이후 긴 공백기를 가졌으나, 1986년 영화 《인간의 약속》으로 복귀하여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진출했다. 2년 후 영화 《폭풍의 언덕》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경쟁 부문에 진출했으며, 2002년 영화 《거울의 여인들》을 발표했다.
요시다는 잉마르 베르히만,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장 르누아르 등 유럽 영화 감독들의 작품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는데, 자신의 영화 작품에 대한 책과 오즈 야스지로 영화 분석 등이 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1933년 후쿠이현 후쿠이시에서 태어났다. 1945년에 쥰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구제 현립 후지시마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같은 해 8월 후쿠이 대공습으로 집이 불탔다. 1947년 봄, 가족과 함께 도쿄로 이주하여 덴엔초후 자택에서 조난 고등학교에 다녔다. 이 무렵,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아테네 프랑세에 다니며 프랑스 영화를 자주 보았다. 또한, NHK 라디오에 시를 투고하여 상금을 받거나, 연극부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자작 연극 각본을 문화제에서 상연하는 등 고등학교 시절부터 영화, 연극에 대한 강한 관심을 보였다.
1951년 도쿄 대학 문학부 불문과에 입학했다. 철학과를 지망했지만, 요시다를 외교관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아버지의 의향에 따라 불문과를 선택했다. 1955년 대학을 졸업하고 쇼치쿠에 입사했다.
2.2. 쇼치쿠 누벨바그
도쿄 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한 후, 1955년 쇼치쿠에 입사하여 기노시타 게이스케의 조수로 일했다. 1960년 영화 《쓸모없는 녀석》으로 감독 데뷔했다. 오시마 나기사, 시노다 마사히로와 함께 "쇼치쿠 누벨바그"의 주요 인물로 여겨진다. 오바 히데오나 기노시타 게이스케 등의 조감독을 거쳐, 1960년에 『무뢰한』으로 감독 데뷔했으나, 사령에 의해 조감독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아키쓰 온천』(1962년)으로 감독 복귀, 『폭풍을 부르는 18인』(1963년) 등의 작품을 제작했다. 오시마 나기사나 시노다 마사히로 등과 함께 쇼치쿠 누벨바그의 기수로 활약했다. 스튜디오 시스템에 제약을 느껴, 영화 《일본 탈출》 재편집 이후 쇼치쿠를 나와 자신의 제작사를 세웠다.
2.3. 독립 제작
쇼치쿠에서 시스템적 제약을 느낀 요시다 요시시게는 1964년 자신의 영화 《일본 탈출》이 재편집된 것에 반발, 쇼치쿠를 나와 1966년에 아내 오카다 마리코와 함께 독립 프로덕션 "현대영화사"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에로스 플러스 학살》 같은 작품을 연출했다.
2.4. 공백기와 복귀
1973년 영화 《계엄령》 이후 긴 공백기를 가졌다. 1986년 영화 《인간의 약속》으로 13년 만에 영화감독으로 복귀하여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진출했으며,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 은조개상을 수상했다.
1988년 영화 《폭풍의 언덕》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경쟁 부문에 진출하여 일부 평론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02년 영화 《거울의 여인들》로 다시 14년 만에 복귀하여 제55회 칸 영화제에서 특별 초청 작품으로 상영되었고, 2003년에는 상파울루 국제 영화제 특별상을 아내 오카다 마리코와 함께 수상했다.
2.5. 후기 활동 및 사망
1970년대부터 요시다 요시시게는 방송문화기금상에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텔레비전 드라마,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 심사위원을 맡았다. 2005년부터 2017년까지는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장을 역임했다.
1979년부터 1982년까지 멕시코에 체류했다. 1986년, 극영화 《인간의 약속》으로 13년 만에 영화감독으로 복귀하여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 은조개상을 수상했다. 1988년, 《폭풍의 언덕》은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되어 일부 평론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99년, 저서 《오즈 야스지로의 반영화》로 예술 선장 문부대신상을 수상했다. 2002년, 14년 만의 감독 작품인 《거울의 여인들》을 발표하여 제55회 칸 영화제에서 특별 초청 작품으로 상영되었다. 2003년, 상파울루 국제 영화제 특별상을 아내 오카다 마리코와 함께 수상했으며, 같은 해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 문화 훈장 오피시에장을 수여받았다. 2008년, 옴니버스 영화 《웰컴 투 상파울루》에 참여했다.
2020년, 10년 이상 집필해온 역사 장편 소설 《속죄 나치 부총통 루돌프 헤스의 전쟁》을 발행했다. 이 소설은 자신과 나치스 부총통 루돌프 헤스의 생애를 허구와 사실을 섞어 소설화한 것으로, 요시다는 이를 "인생 마지막 천직"이라고 표현했다.
2022년 12월 8일, 요시다 요시시게는 도쿄도 시부야구의 한 병원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3. 작품 세계
요시다 요시시게는 멜로드라마 장르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다.
3.1. 오카다 마리코와의 협업
오카다 마리코는 1960년부터 2004년까지 요시다 요시시게의 뮤즈이자 아내였으며, 이들은 스무 편 이상의 작품을 함께했다.
4. 작품 목록
요시다 요시시게의 작품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제목 | 연도 | 비고 |
|---|---|---|
| 쓸모없는 녀석 | 1960년 | |
| 달콤한 밤 | 1961년 | |
| 아키츠 온천 | 1962년 | |
| 폭풍을 부르는 18인 | 1963년 | |
| 일본 탈출 | 1964년 | |
| 물로 쓴 이야기 | 1965년 | |
| 정염 | 1967년 | |
| 불꽃과 여자 | 1967년 | |
| 에로스 + 학살 | 1969년 | |
| 연옥 에로이카 | 1970년 | |
| 계엄령 | 1973년 | |
| 인간의 약속 | 1986년 | |
| 폭풍의 언덕 | 1988년 | |
| 뤼미에르와 친구들 | 1995년 | |
| 거울 속의 여인들 | 2002년 |
단편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의 기타 정보는 하위 섹션에 상세히 나와있다.
4.1. 장편 영화
| 제목 | 연도 | 비고 |
|---|---|---|
| 쓸모없는 녀석 | 1960년 | |
| 피는 마르지 않는다 | 1960년 | |
| 달콤한 밤의 쓴 종말 | 1961년 | |
| 아키츠 온천 | 1962년 | |
| 폭풍을 부르는 18인 | 1963년 | |
| 일본 탈출 | 1964년 | |
| 물로 쓴 이야기 | 1965년 | |
| 호수의 여인 | 1966년 | |
| 정사 | 1967년 | |
| 불꽃과 여자 | 1967년 | |
| 눈 속의 정사 | 1968년 | |
| 여름 빛과의 이별 | 1968년 | |
| 에로스 + 대학살 | 1969년 | |
| 영웅적 연옥 | 1970년 | |
| 여배우들의 고백 | 1971년 | |
| 쿠데타 | 1973년 | |
| 약속 | 1986년 | |
| 폭풍의 언덕 | 1988년 | |
| 뤼미에르와 컴퍼니 | 1995년 | 부분 |
| 거울 속의 여인들 | 2002년 |
4.2. 단편 영화
* 킹 오브 필름/거장들의 60초 Lumière et compagnie (1995년) - 옴니버스 영화이다.
* 지의 개방 지의 모험 지의 축제 도쿄 대학 학문의 과거·현재·미래 (1997년) - 도쿄대학교 창립 12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홍보 영화이다.
* 웨이트리스 (2008년) - 옴니버스 영화 『웰컴 투 상파울루』의 한 편이다 (전 17작).
4.3. 텔레비전 프로그램
* 《요시다 기주에 의한 오즈의 영화》 (1993년)
* 도쿄 12 채널 《아름다움의 미(美の美)》 (1974년 - 1977년)
* 도쿄 12 채널 《그리스 여정(ギリシャ旅情)》 (1976년)
* NHK 교육 텔레비 《요시다 기주가 말하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세계(吉田喜重が語る小津安二郎の映画世界)》 (1993년)
* MX 텔레비 《꿈의 시네마 도쿄의 꿈(夢のシネマ 東京の夢)》 (1995년)
5. 저서
* メキシコ 悦ばしき隠喩일본어 (1984년, 여행과 토포스의 정신사・이와나미 쇼텐)
* 小津安二郎の反映画일본어 (1998년, 이와나미 쇼텐, 2011년, 이와나미 겐다이 분코)
* 贖罪 ナチス副総統ルドルフ・ヘスの戦争일본어 (2020년, 분게이슌주)
* 自己否定の論理・想像力による変身일본어 (1970년, 삼일서방)
* 見ることのアナーキズム 吉田喜重映像論集일본어 (1971년, 가멘샤)
* 후나바시 아츠시와 未だ見ぬ映画言語へ向けて일본어 (2020년, 사쿠힌샤)
* 고바야시 야스오・니시자와 에미코와 宮川淳とともに일본어 (2021년, 스이세이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