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미 (삼국지)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우미는 삼국 시대 유요를 섬긴 인물이다. 194년 유요가 원술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번능과 함께 횡강진에 주둔하여 1년여를 막아냈으나, 195년 손책에게 패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손책에게 생포되었다가 죽는 것으로 묘사된다.

우미 (삼국지)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유요와 주변 인물 - 장영 (삼국지)
    장영은 후한 시대의 인물로, 양주 자사 유요를 섬기며 194년 원술에 대항하여 방어전을 펼쳤으나 손책에게 패배하고, 《삼국지연의》에서는 손책과의 전투에서 사망한다.
  • 유요와 주변 인물 - 태사자
    태사자는 후한 말기의 무장으로, 자는 자의이며, 젊어서 학문을 좋아하고 뛰어난 무예와 용맹을 떨쳤으며, 공융을 구원하고 손책에게 귀순하여 그의 휘하에서 활약하다 손책 사후에는 손권 밑에서 오나라의 장수로 공을 세웠다.
  • 인물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후한 말의 장수로, 양주 자사 유요를 섬겼다. 194년(흥평 원년), 유요의 명령으로 번능과 함께 장강의 횡강진(橫江津)에 주둔하며, 당리구(當利口)의 장영과 연계하여 세력 확장을 노리던 원술에 맞섰다. 우미는 번능 등과 함께 원술이 파견한 오경, 손분 등의 공격을 1년 이상 성공적으로 방어하였다.

그러나 195년, 원술의 지원 요청을 받고 참전한 손책에게 연이어 패배하였다. 손책은 우미 등이 지키던 방어선을 돌파하고 장강을 건너 유요의 거점인 우저(牛渚)를 점령했다. 우미는 번능, 설례 등과 함께 손책이 비운 우저를 잠시 탈환하기도 했으나, 곧바로 돌아온 손책에게 다시 패배하고 많은 병력을 잃었다. 이 전투 이후 우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2.1. 유요 휘하 활동

양주 자사 유요를 섬겼다. 194년(흥평 원년), 유요는 원술이 임명한 단양태수 오경과 단양도위(丹陽都尉) 손분을 축출하였다. 오경과 손분이 구강군 역양현(歷陽縣)으로 물러나자, 유요는 이들에 대항하기 위해 횡강진(橫江津)에 번능과 우미를, 당리구(當利口)에는 장영을 주둔시켰다. 원술은 낭야국 사람 혜구(惠衢)를 새로운 양주자사로, 오경을 독군중랑장(督軍中郞將)으로 삼아 손분과 함께 반격을 명했다. 우미는 번능, 장영 등과 함께 1년여 동안 원술군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그러나 195년, 손책이 원술군에 합류하면서 전황이 급변했다. 손책은 이전까지 교착 상태였던 전선을 단숨에 돌파하여 우미 등을 격파하고 장강을 건너 우저(牛渚) 요새를 점령했다. 이후 말릉(秣陵)으로 진격했는데, 이때 말릉을 수비하던 설례는 번능, 우미 등과 함께 비어있는 우저를 공격하여 일시적으로 탈환했다. 하지만 곧바로 회군한 손책에게 다시 패배하였고, 이 전투에서 만여 명의 병사가 사로잡혔다. 이 패배 이후 우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2.2. 손책과의 전투 및 최후

양주 자사 유요를 섬겼다. 194년 (흥평 원년), 유요는 원술이 임명한 단양 태수 오경과 단양도위(丹陽都尉) 손분을 쫓아냈다. 오경과 손분이 구강군 역양현(歷陽縣)으로 물러나자, 유요는 원술에 대항하기 위해 횡강진(橫江津)에 번능과 우미를, 당리구(當利口)에는 장영을 주둔시켰다.

원술은 낭야국 사람 혜구(惠衢)를 양주자사로, 오경을 독군중랑장(督軍中郞將)으로 삼아 손분과 함께 장영 등을 공격하게 했다. 우미는 번능, 장영 등 유요의 부하 장수들과 함께 굳건히 방어하여 원술의 공세를 1년 넘게 막아냈다.

그러나 195년, 원술의 지원 요청을 받은 손책이 오경과 손분 군에 합류하면서 전황이 급변했다. 손책은 수년 동안 함락되지 않던 우미 등을 순식간에 격파하고 장강을 건너 우저(牛渚) 요새를 점령한 뒤 말릉성(秣陵城)으로 진격했다. 이에 말릉을 지키던 설례는 번능, 우미 등과 함께 손책이 비운 우저를 기습하여 탈환하려 했으나, 곧바로 회군한 손책에게 다시 패배하였고 이 과정에서 남녀 만여 명이 사로잡혔다. 이 전투 이후 우미에 대한 기록은 사서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3.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제15회에 손책에게 소패왕(小霸王)이라는 별명을 부여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손책이 말릉으로 진격하자 유요와 착융이 우저를 수복한다. 이에 회군한 손책에 맞서 우미가 출전하지만, 손책과의 일기토에서 3합을 겨루지 못하고 생포당한다.

손책은 우미를 데리고 진영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그를 구출하려던 번능이 뒤를 쫓는다. 그러나 번능은 손책이 크게 외친 한마디(대갈일성(大喝一聲))에 놀라 말에서 떨어져 머리가 깨져 죽는다. 손책이 진영으로 돌아와서 확인해보니, 우미 역시 손책의 겨드랑이에 끼인 채 이미 질식사한 상태였다. 순식간에 한 장수는 조여 죽이고, 다른 장수는 고함으로 죽인 이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은 손책을 소패왕이라 부르게 되었다.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 《삼국지》에서는 '간미'(かん び)로 표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