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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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울리치는 런던 남동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템스 강변에 자리 잡고 있다. 철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으며, 16세기 초 헨리 8세에 의해 조선소가 설립되면서 해양, 군사, 산업 중심지로 발전했다. 왕립 병기창과 왕립 육군 사관학교 등의 군사 시설이 들어서면서 군사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세기에는 도시 개발과 인구 증가가 이루어졌으나, 20세기 후반에는 산업 쇠퇴와 함께 침체기를 겪었다. 최근에는 재개발 사업을 통해 주거 및 상업 시설이 확충되고 있으며, 울리치 웍스, 울리치 아스널 DLR역 개통 등 교통 인프라 개선도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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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치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울위치 |
국가 | 잉글랜드 |
지역 | 런던 |
런던 자치구 | 그리니치 구 |
선거구 | 그리니치 및 울위치 |
우편 구역 | SE |
우편 번호 | SE18 |
지역 전화 번호 | 020 |
OS 격자 참조 | TQ435795 |
좌표 | 51.488, 0.063 |
채링 크로스까지 거리 | 8.5 마일 |
채링 크로스 방향 | 서북서 |
인구 | 84,959명 |
인구 출처 | (2011년 인구 조사) |
지리 | |
위치 | 템스 강 남쪽, 런던 남동부 |
인접 지역 | 플럼스테드, 슈터스 힐, 템스미드 |
역사 | |
초기 역사 | 로마 시대부터 정착지 존재 |
군사적 중요성 | 울위치 왕립 무기고 설립으로 성장 |
산업 발전 | 군수 산업 및 관련 산업 발달 |
현대적 변화 | 20세기 후반, 재개발 및 현대화 |
교통 | |
기차역 | 울위치 아스널역 울위치 역 울위치 도크랜드 경전철역 |
버스 노선 | 런던 버스 네트워크의 다양한 노선 운행 |
도로망 | 주요 도로 연결, A206, A205 |
문화 및 명소 | |
주요 명소 | 울위치 왕립 무기고 울위치 박물관 로열 아스널 그리니치 자치구 청사 베레스포드 광장 |
시장 | 베레스포드 광장 시장 운영 |
공원 및 녹지 | 울위치 커먼, 슈터스 힐 |
지역 사회 | |
인구 구성 | 다양한 민족 및 문화 배경 |
커뮤니티 활동 | 지역 축제 및 행사 개최 |
교육 시설 | 다양한 학교 및 교육 기관 위치 |
기타 | |
로마자 표기법 | Wollich |
2. 지리
울리치는 차링 크로스에서 13.7km 떨어져 있다. 남쪽으로는 템스 강 남쪽 제방을 따라 2.5km 길이의 강변을 가지고 있다. 강가에서부터는 슈터스 힐의 북쪽 비탈을 따라 공통지대를 향해 60m 높이까지, 그리고 고대 런던-도버 도로까지 132m 높이까지 빠르게 상승한다. 울리치의 고대 교구는 현재의 구역인 울리치 강변과 울리치 공통지대와 거의 일치하며 297ha의 면적을 차지한다. 여기에는 현재 뉴햄 런던 자치구의 일부인 노스 울리치가 포함되었다.[2] 글린던과 슈터스 힐 구역의 일부는 종종 울리치로 불리지만, 이 정의는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가장 가까운 지역은 애비 우드, 블랙히스, 찰턴, 엘섬, 그리니치, 키드브룩, 루이섬, 노스 울리치, 플럼스테드, 슈터스 힐, 템즈미드, 웰링 그리고 웰 홀이다.
인구 조사 데이터는 자치구와 선거구별로 수집되므로 울리치의 인구를 명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울리치 커먼, 울리치 리버사이드, 글린던 선거구를 울리치 지역으로 간주한다면, 2011년 인구 조사 당시 인구는 54,790명이었다.[3]
울리치는 적어도 철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으로, 런던보다 앞선 중요한 항구였을 가능성이 있다. '울리치'라는 이름은 "양모를 위한 교역 장소"를 의미하는 앵글로색슨족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초기에는 기독교 정착지였으며, 10세기부터 12세기 중반까지 겐트의 성 베드로 수도원 수도원장들이 통치했다.
3. 인구
플럼스테드와 슈터스 힐 선거구까지 포함한다면 2011년 인구 조사 당시 인구는 84,959명으로 증가한다.[4]
4. 역사
중세 시대에는 홍수에 취약했고, 울리치 페리가 운행되었다. 15세기에는 개인 조선소나 수리 시설, 풍차가 있었고, 도자기 생산도 활발했다.
16세기 초부터 울리치는 해양, 군사, 산업 중심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울리치 조선소, 함포 공장, 로프 공장 등이 설립되었고, 왕립 병기창으로 발전했다. 왕립 포병대와 울리치 왕립 군사학교가 설립되면서 울리치 주둔지가 형성되었다.
19세기에는 다양한 사회 계층이 섞여 살았으며, 도시 일부 지역은 과밀했다. 템스강을 이용한 교통이 개선되었고, 철도와 트램이 개통되었다. 울리치 폴리테크닉이 설립되었고, 영국 최초의 무료 유치원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아스널 FC가 창립된 곳이기도 하다.
20세기 후반, 울리치는 왕립무기공장(Royal Ordnance Factory), 지멘스(Siemens) 공장, 왕립병기창(Royal Arsenal)의 폐쇄 및 축소로 쇠퇴했다. 실업률 증가, 인구 구성 변화, 상업 지구 쇠퇴를 겪었으며, 임시 아일랜드 공화군(Provisional IRA) 폭탄 테러, 2011년 영국 폭동(2011 England riots), 리 릭비 살해 사건(murder of Lee Rigby) 등의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 울리치는 왕립 무기고(Royal Arsenal) 재개발과 함께 르네상스를 시작, 런던 계획(London Plan)에서 "기회 지역(opportunity area)"으로 지정되어 발전이 예상된다. 울리치 아스널 DLR 역 개통, 2012년 하계 올림픽(2012 Summer Olympics) 사격 종목 개최 등 변화가 있었다.연도 인구 비고 1500년경 몇 백명 군사 및 해군력 확장 시작 1665년 1,200명 이상 샘유얼 펩이스가 런던 대역병을 피해 체류, 약 300명이 조선소에서 근무 1720년경 6,500명 1801년 약 10,000명 1810년대 17,000명 전시기 호황으로 최고치 기록 1841년 27,785명 1861년 41,695명 주택 4,596채, 건설 공간 부족 1901년 41,625명 19세기 후반 인구 감소 후 40년 전과 같은 수준 2011년 54,790명 울리치 커먼, 울리치 리버사이드, 글린던 선거구 기준[3] 2011년 84,959명 플럼스테드, 슈터스 힐 선거구 포함[4]
4. 1. 초기 역사
울리치는 적어도 철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이다. 기원전 3세기에서 1세기 사이에 건설된 켈트족의 고대 도시(oppidum) 유적이 로마 후기에 요새로 다시 사용된 것이 베레스퍼드 스트리트와 템스강 사이의 현재 워터프론트 개발 현장에서 발견되었다.[5] 런던 조사(Survey of London)에 따르면, "이 방어용 토루는 강변 정착지의 육지 쪽을 둘러싸고 있으며, 런던 지역에서 발견된 유일한 종류로, 런던보다 앞선 중요한 항구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강변 정착지는 왓링가 스트리트(슈터스 힐)와 아마도 철기 시대에 만들어진 길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샌디 힐 로드는 이 초기 길의 잔재일 수 있다.[6]
울리치라는 이름은 일반적으로 "양모를 위한 교역 장소"를 의미하는 앵글로색슨족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초기 중세 시대의 광범위한 수공업 활동의 흔적이 없기 때문에 울리치가 적절한 ''-wich 마을''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2015년 옥스퍼드 고고학은 강변 근처에서 7세기 후반 또는 8세기 초의 유골 76구가 있는 색슨족 매장지를 발견했는데, 부장품이 없는 것으로 보아 초기 기독교 정착지였음을 알 수 있다.[7] 현재 교구 교회 북쪽에 있던 최초의 교회는 거의 확실히 노르망디 정복 이전의 것이며 성 로렌스에게 봉헌되었다. 아마도 1100년경에 돌로 재건되었을 것이다.[8]
10세기부터 12세기 중반까지 울리치는 겐트의 성 베드로 수도원 수도원장들이 통치했다. 이것은 알프리드 대왕의 딸이자 플랑드르 백작부인인 엘프스리스의 918년 기증의 결과였을 수 있으며, 그렇다면 외국 교회 기관에 영국 토지를 처음으로 기증한 기록이다. 이러한 지배권의 결과로 울리치는 대 Domesday Book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Hulviz''[9]로 나열된 63에이커는 당시 무인도였던 노스 울리치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1100년경 겐트의 토지 중 일부는 왕실 영지인 더트퍼드와 엘섬으로 이전되었다. 울리치 영지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완전한 영지가 아니었던 교구의 대부분은 14세기에 엘섬의 속현이 되었다. 올드게이트 성 삼위일체 수도원이 소유한 강변 부두, 사우스워크 성모 수도원이 소유한 부두, 그리고 플럼스테드 주변의 바솔로뮤 드 버거시가 소유한 토지(나중에 버리지 에스테이트로 불림)는 포함되지 않았다.[10]
중세 울리치는 홍수에 취약했다. 1236년 많은 사람들이 홍수로 사망했다. 울리치 페리는 1308년에 처음 언급되었지만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 수도 있다. 벨 워터 게이트 주변에는 15세기에 일부 개인 조선소나 수리 시설이 있었을 수 있다. 1450년경에는 풍차가 언급되었다.[11] 울리치 하이 스트리트와 베레스퍼드 스트리트 북쪽에서 여러 개의 도자기 가마가 발견되어 적어도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도자기 생산의 끊임없는 전통이 있었음을 증명한다.[12]
4. 2. 군사적 확장
울리치는 16세기 초부터 해양, 군사, 산업 중심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512년 헨리 8세가 울리치 조선소를 설립하여 그레이트 해리 등 유명한 배들을 건조했다. 조선소 동쪽에는 함포 공장(1540년대)과 로프 공장(1570년대)이 설립되었다. 울리치 조선소는 1869년에 문을 닫았다.
조선소 설립 후, 마틴 보우스는 강가 토지를 매입하여 타워 플레이스 저택을 지었다.[13] 1650년대, 무기위원회는 이 부지에서 대포 시험을 시작했고, 20년 후 타워 플레이스를 매입했다. 이곳은 1805년 조지 3세에 의해 왕립 병기창으로 명명되었으며, 영국의 군사 및 산업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14]
1716년 왕립 포병대가 설립되었고, 1741년에는 울리치 왕립 군사학교가 설립되어 장교를 양성했다. 1776년 포병대는 왕립 포병대 병영으로 이전했고, 1806년 울리치 왕립 군사학교도 이전했다. 여러 부대와 부서들이 주변에 자리 잡으면서 울리치 주둔지가 형성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에는 대규모 병영, 군사 학교, 병원이 건설되었다. 오늘날에도 왕립 포병대 병영과 네이피어 라인스 병영을 중심으로 울리치 주둔지가 남아 있다.
4. 3. 경제 발전
1512년 헨리 8세가 울리치 조선소(원래 이름은 "The King's Yard")를 설립하면서 울리치는 해양, 군사, 산업 중심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540년대에는 함포와 무기를 보관하고 유지 관리하기 위한 함포 공장이, 1570년대에는 로프 공장이 조선소 동쪽에 설립되었다. 17세기에는 그린위치 출신의 로버트 맨셀 경이 소유한 글래스 야드 근처에서 두 개의 유리 공장이 운영되었고, 벨라민 석기류를 생산하는 가마도 운영되었다. 다른 가마에서는 토기와 점토 파이프를 생산했다. 플럼스테드와 찰턴 근처에는 모래 채취장이 있었고, 1863년에는 독일 회사 지멘스(Siemens & Halske)가 조선소 지역에 해저 케이블 공장을 설립하여 빠르게 확장되었다.[15]
1650년대에 무기위원회는 워렌(Warren)으로 알려진 지역에서 대포 시험을 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고, 20년 후에는 타워 플레이스 자체를 매입했다. 그 후 워렌은 1805년 조지 3세에 의해 왕립 병기창(Royal Arsenal)으로 명명되었다. 1716년 조지 1세의 왕실 명령에 따라 왕립 포병대가 설립되었고, 1741년에는 울리치 왕립 군사학교가 설립되었다. 1776년 포병대는 왕립 포병대 병영으로, 1806년 울리치 왕립 군사학교도 이전했다.
울리치 시장은 1618년에 시장 설립 허가를 받았지만, 그 역사는 그보다 오래되었다. 오랫동안 구 울리치(마켓 힐)의 하이 스트리트에 있던 시장은 점차 로열 아스널의 정문 쪽으로 이동했다. 1879년까지 베레스퍼드 스퀘어의 시장은 불법으로 간주되어 경찰에 의해 정기적으로 해산되었으나, 합법화된 후에는 136개의 노점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36년 플럼스테드 로드에 지붕이 있는 시장이 문을 열었다. 19세기 초에 조성된 파위스 스트리트와 헤어 스트리트는 주요 상점가가 되었다. 1868년 로열 아스널 협동조합이 설립되어 영국에서 가장 큰 소비자협동조합 중 하나로 성장했다.
4. 3. 1. 고용
1512년 헨리 8세가 자신의 기함인 그레이트 해리 건조를 위해 울리치 조선소(원래 이름은 "The King's Yard")를 설립하면서 울리치는 중요한 곳이 되었다. 프린스 로열, 소버린 오브 더 시즈, 로열 찰스, 돌핀, 비글 등 많은 유명한 배들이 이곳에서 건조되었다.[13] 18세기 내내 해군 조선소는 500명에서 1,400명의 남성 노동자가 부두에서 일하며 울리치 마을의 주요 고용주로 남아 있었다.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습지대 때문에 일하기에 인기 있는 곳은 아니었고, 그런 이유로 울리치 조선소 노동자들은 다른 해군 도시보다 3분의 1이나 더 많은 임금을 받았다. 이들은 대부분 읽고 쓸 줄 아는 비국교도이자 조직력이 뛰어난 숙련된 장인들이었다.[18]
조선소 동쪽에는 1540년대에 함포와 무기를 보관하고 유지 관리하기 위한 함포 공장이 설립되었고, 1570년대에는 로프 공장이 세워졌다.[13] 나폴레옹 전쟁이 절정에 달했을 때는 조선소와 로프공장 노동자(2,000명)보다 병사(3,000명)가 더 많았고, 병기창에서는 최대 5,000명을 고용했다. 전쟁이 끝난 후 수천 명이 제대하여 큰 고통을 야기했다. 1840년대에는 증기 공장이 조선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1850년대에는 크림 전쟁 중과 그 이후에 병기창이 크게 확장되었다.[18]
1650년대에 무기위원회는 워렌(Warren)으로 알려진 지역에서 대포 시험을 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고, 20년 후에는 타워 플레이스 자체를 매입했다. 그 후 워렌은 보관 장소에서 군수품 공장, 군수품 창고, 연구 시설의 집합체로 발전했으며, 1805년 조지 3세에 의해 왕립 병기창(Royal Arsenal)으로 명명되었다. 이 단지는 영국의 군사 및 산업 확장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전시에는 수만 명의 노동자가 이곳에서 일자리를 얻었지만, 평시에는 실업이 엄습했다.[14] 포병의 수는 1716년 약 200명에서 1801년 약 1,500명으로 증가했다. 병사들은 일반적으로 경멸의 대상이었으며, 조선소 노동자 임금의 약 4분의 1을 받았다.[18]
1716년 조지 1세의 왕실 명령에 따라 왕립 포병대가 설립되었는데, 이 부대의 본부와 병영은 워렌에 있었고, 1741년에는 장교 양성을 위한 울리치 왕립 군사학교가 설립되었다. 1776년 포병대는 워렌에서 울리치 공원 가장자리에 있는 새로운 왕립 포병대 병영으로 이전했다. 울리치 왕립 군사학교도 1806년 공원의 다른 쪽 끝에 있는 새로운 건물로 이전했다. 그 무렵 여러 다른 부대와 부서들이 그 주변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여 울리치 주둔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에 여러 개의 대규모 병영과 군사 학교, 병원이 건설되었다. 오늘날에도 왕립 포병대 병영과 네이피어 라인스 병영을 중심으로 울리치 주둔지(Woolwich Station으로 알려짐)가 남아 있다.[14]
조선소, 병기창 및 기타 군사 시설의 존재는 상업 활동과 오락 등 다른 분야의 경제 성장을 자극했다. 로프공장은 1570년경에 설립되어 1832년까지 운영되었다. 17세기 내내 그린위치 출신의 로버트 맨셀 경이 소유한 글래스 야드 근처에서 두 개의 유리 공장이 운영되었다. 그는 조선소와 로프공장도 관리했다. 여기 일부 관리자들은 로렌 출신의 위그노였다. 벨라민 석기류를 생산하는 가마도 대륙 도공들이 관리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가마에서는 토기와 점토 파이프를 생산했다. 점토가 풍부한 마을 남쪽 언덕에서도 가마가 활동적이었다. 플럼스테드와 찰턴 근처에는 모래 채취장이 있었고, 모래는 타워 플레이스 근처 부두에서 선적되었다. 1863년 독일 회사 지멘스(Siemens & Halske)는 조선소 지역에 해저 케이블 공장을 설립하여 빠르게 확장되었다.[15]
4. 3. 2. 상업
18세기 내내 해군 조선소는 500명에서 1,400명의 노동자가 부두에서 일하며 울리치 마을의 주요 고용주였다.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습지대였기 때문에 울리치 조선소 노동자들은 다른 해군 도시보다 3분의 1 더 많은 임금을 받았다. 이들은 대부분 읽고 쓸 줄 아는 비국교도이자 조직력이 뛰어난 숙련된 장인들이었다.[18] 1716년 약 200명이던 포병의 수는 1801년 약 1,500명으로 증가했다. 병사들은 조선소 노동자 임금의 약 4분의 1을 받았다.[18] 나폴레옹 전쟁 중에는 병기창에서 최대 5,000명을 고용했다.[18]
조선소, 병기창 및 기타 군사 시설의 존재는 상업 활동과 오락 등 다른 분야의 경제 성장을 자극했다. 1570년경 설립되어 1832년까지 운영된 로프공장이 있었다. 17세기에는 그린위치 출신의 로버트 맨셀 경이 소유한 글래스 야드 근처에서 두 개의 유리 공장이 운영되었다. 그는 조선소와 로프공장도 관리했는데, 일부 관리자들은 로렌 출신의 위그노였다.[15] 벨라민 석기류를 생산하는 가마도 대륙 도공들이 관리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가마에서는 토기와 점토 파이프를 생산했다. 플럼스테드와 찰턴 근처에는 모래 채취장이 있었고, 모래는 타워 플레이스 근처 부두에서 선적되었다.[15] 1863년 독일 회사 지멘스(Siemens & Halske)는 조선소 지역에 해저 케이블 공장을 설립하여 빠르게 확장되었다.[15]
울리치 시장은 1618년에 시장 설립 허가를 받았지만, 그 역사는 그보다 오래되었다. 오랫동안 구 울리치(마켓 힐)의 하이 스트리트에 있던 시장은 점차 로열 아스널의 정문 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당국은 이를 승인하지 않았고, 1810년경 배스웨이 쿼터에 새로운 시장이 설립되었지만 실패했다. 1879년까지 베레스퍼드 스퀘어의 시장은 불법으로 간주되어 경찰에 의해 정기적으로 해산되었다. 합법화된 후에는 136개의 노점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탈로 스베보는 1903년 이곳을 "매우 활기찬" 곳으로 묘사했다.[16] 1936년 플럼스테드 로드에 지붕이 있는 시장이 문을 열었지만, 주요 시장에 대한 위협이 되지는 못했다. 베레스퍼드 스퀘어에는 울리치에서 가장 큰 여러 주점이 있었다.[16] 19세기 초에 조성된 파위스 스트리트와 헤어 스트리트는 주요 상점가가 되었다. 지역 건축가 헨리 허드슨 처치가 설계한 많은 빅토리아 시대 상점 외관이 남아 있다.[17]
1868년 로열 아스널 협동조합이 설립되었는데, 이 조합은 파위스 스트리트에 두 개의 백화점과 남동 런던 지역의 여러 상점, 제조 및 식품 생산 시설, 건축 조합, 장례 서비스 등 많은 기업 분야를 거느린 영국에서 가장 큰 소비자협동조합 중 하나로 성장했다.
4. 4. 도시 개발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울리치는 숙련 기술자, 무숙련 노동자(여성과 어린이 포함), 다수의 군인과 군 장교, 소규모 상업 및 전문 엘리트 계층 등 다양한 사회 계층이 섞여 살던 곳이었다. 도시 일부 지역은 인구가 과밀했고, 강가 근처의 더스홀은 런던에서 가장 악명 높은 빈민가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했다.[18]
템스강은 철도가 들어서기 전까지 울리치와 런던을 잇는 주요 교통 수단이었다. 1834년 울리치 증기선 회사가 설립되어 강을 이용한 교통이 크게 개선되었고, 1889년에는 울리치 무료 페리가 개통되어 노스 울리치(North Woolwich)와 울리치를 오가며 일자리를 구하기가 더 쉬워졌다. 1849년에는 런던에서 그리니치(Greenwich)와 울리치를 거쳐 길링엄까지 이어지는 노스 켄트선(North Kent Line)이 개통되었다. 울리치 역사는 1906년과 1992~1993년에 재건축되었다.[19] 울리치는 1881년부터 1952년까지 운영된 1세대 런던 트램 두 노선의 경로에 위치하기도 했다.[20]
전후 시대에는 도로 확장과 현대식 주택(일부 고층 아파트) 건설을 위해 도시 구조와 기반 시설에 큰 변화가 있었다. 울리치 고가와 베레스퍼드가의 확장으로 옛 마을은 거의 사라졌다. 울리치에는 실험적인 오토 스태커(Auto Stacker) 주차장이 있었으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철거되었다. 1971년에는 몽크가를 따라 주차 빌딩(multi-storey car park)이 건설되었다.
울리치 폴리테크닉은 1891년에 설립되어 고등 교육과 중등 교육 시설을 제공했다.[21] 20세기에 걸쳐 성장하여 배스웨이 쿼터의 거의 한 블록 전체를 차지했고, 1970년에는 다른 지역 대학들과 합병하여 템즈 폴리테크닉이 되었다. 1992년 대학으로 승격되어 그리니치 대학교로 이름이 바뀌었고, 2001년 그리니치의 구 왕립 해군 대학으로 이전했다.[22]
울리치는 영국 최초의 무료 유치원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울리치 선교 유치원은 1900년 뉴 찰턴의 성 트리니티 교회 사제 월터 래지와 그의 여동생 애들레이드 래지에 의해 설립되었다.[23]
18세기에는 울리치 크리켓 클럽이 유명했으며, 크리켓과 다른 스포츠는 주로 왕립 육군사관학교의 군 장교와 학생들이 즐겼다. 아스널 FC는 1886년 왕립 병기창의 노동자들에 의해 창립되었고, 여러 이름을 거쳐 1913년 런던 북부 하이베리의 아스널 스타디움으로 이전했다. 왕립 병기창 공장 FC는 울리치 아스널이 리그에 합류하면서 창설되었지만 몇 년 만에 해체되었다.
울리치에는 여러 개의 극장과 영화관이 있었다. 베레스퍼드 스트리트에 있는 시어터 로열은 엠파이어 극장 또는 울리치 엠파이어로 이름이 바뀌었고, 가장 큰 극장이었다. 1960년에 철거되기 전까지 종합 극장, 영화관, 스트립 바로 운영되었다. 1900년 이후 세 곳의 새로운 극장이 문을 열었다. 베레스퍼드 스퀘어에 위치한 센추리 시네마, 웰링턴 스트리트에 있는 그랜드 극장(울리치 히포드롬), 그라나다 시네마와 오데온은 모두 1930년대 건물로, 현재는 오순절 교회로 사용되고 있다.[24]
1889년 런던 카운티 의회 설립과 함께 울리치는 공식적으로 런던의 일부가 되었다. 1900년 울리치, 엘섬, 플럼스테드 시민구가 합쳐져 울리치 대도시 자치구가 되었고, 1906년 새로운 울리치 구청이 개관했다. 1965년 울리치는 그리니치 런던 자치구에 합병되었고, 2012년부터는 그리니치 왕립 자치구가 되었다. 자치구의 행정 건물은 옛 울리치 구청이 있던 울리치에 위치해 있다.
4. 4. 1. 인구 변화
연도 | 인구 | 비고 |
---|---|---|
1500년경 | 몇 백명 | 군사 및 해군력 확장 시작 |
1665년 | 1,200명 이상 | 샘유얼 펩이스가 런던 대역병을 피해 체류, 약 300명이 조선소에서 근무 |
1720년경 | 6,500명 | |
1801년 | 약 10,000명 | |
1810년대 | 17,000명 | 전시기 호황으로 최고치 기록 |
1841년 | 27,785명 | |
1861년 | 41,695명 | 주택 4,596채, 건설 공간 부족 |
1901년 | 41,625명 | 19세기 후반 인구 감소 후 40년 전과 같은 수준 |
2011년 | 54,790명 | 울리치 커먼, 울리치 리버사이드, 글린던 선거구 기준[3] |
2011년 | 84,959명 | 플럼스테드, 슈터스 힐 선거구 포함[4] |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울리치는 숙련 기술자, 무숙련 노동자(여성과 어린이 포함), 다수의 군인(인구의 10~15%)과 군 장교, 소규모 상업 및 전문 엘리트 계층이 공존하는 다양한 사회적 혼합 지역이었다. 도시의 일부 지역은 과밀했는데, 강가 근처의 더스홀은 런던에서 가장 악명 높은 빈민가 중 하나로 여겨졌다.[18]
4. 4. 2. 기반 시설
철도가 도착하기 전까지 템스강은 울리치를 런던과 연결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1834년 울리치 증기선 회사(Woolwich Steam Packet Company)는 강을 이용한 교통을 크게 개선했고, 1889년에는 울리치 무료 페리가 개통되어 노스 울리치(North Woolwich)에 살면서 무기고(Arsenal)에서 일하거나, 울리치에 살면서 도크랜드에서 일하기가 더욱 편리해졌다. 런던에서 그리니치(Greenwich)와 울리치를 거쳐 길링엄까지 이어지는 노스 켄트선(North Kent Line)은 1849년에 개통되었다. 역사 건물은 1906년에 한 번, 1992년부터 1993년까지 다시 한 번 재건축되었다.[19] 울리치는 또한 1세대 런던 트램(1881~1952) 두 노선의 경로상에 있었다.[20]전후 시대는 마을의 구조와 기반 시설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도로가 넓어지고 현대식 주택(일부는 고층 아파트)을 건설하기 위해 전체 지역이 철거되었다. 울리치 고가(Woolwich High Street)와 베레스퍼드가(Beresford Street)의 확장으로 옛 마을은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울리치에는 실험적인 오토 스태커(Auto Stacker) 주차장이 있었다. 엠파이어 극장 자리에 세워진 이 주차장은 1961년 5월 마가렛 공주(Princess Margaret)에 의해 공식적으로 개장했으나, 실제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1962년에 철거되었다. 1971년에는 몽크가(Monk Street)를 따라 주차 빌딩(multi-storey car park)이 건설되었다.
4. 4. 3. 교육
울리치 폴리테크닉은 1891년에 설립되었다. 고등 교육 시설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현재는 이전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울리치 소년 폴리테크닉 학교를 포함한 중등 학교 시설도 제공했다.[21] 20세기에 폴리테크닉은 꾸준히 성장하여 배스웨이 쿼터의 거의 한 블록 전체를 차지했고, 나중에는 다른 지역으로 확장되었다. 1970년에는 다른 지역 대학들과 합병하여 템즈 폴리테크닉이 되었다. 1992년에는 대학으로 승격되었고, 1년 후 그리니치 대학교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2001년, 대학교는 그리니치의 구 왕립 해군 대학으로 이전하여 울리치에는 소규모 행정 부서만 남았다.[22]울리치는 영국 최초의 무료 유치원이 있던 곳이다. 울리치 선교 유치원은 1900년에 뉴 찰턴의 성 트리니티 교회의 기독교 사회주의 사제인 월터 래지 목사가 제공한 방에서 시작되었다. 블랙히스 유치원 교육대학의 학장이자 프뢰벨 사상의 영향을 받은 그의 여동생 애들레이드 래지가 설립했다.[23]
4. 4. 4. 여가
18세기에는 후에 왕립 포병 크리켓 클럽이 된 울리치 크리켓 클럽이 유명한 크리켓 클럽이었다. 크리켓과 다른 스포츠는 주로 왕립 육군사관학교의 군 장교와 학생들이 즐겼다. 아스널 FC는 1886년 왕립 병기창의 노동자들에 의해 창립되었다. 처음에는 "다이얼 스퀘어"로 알려졌고, 그 후 "왕립 병기창" 그리고 "울리치 아스널"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며, 곧 플럼스테드의 경기장에 많은 관중을 끌어들였다. 1913년에는 런던 북부 하이베리의 아스널 스타디움으로 이전했다. 왕립 병기창 공장 FC는 울리치 아스널이 리그에 합류함에 따라 창설되었지만 몇 년 만에 해체되었다.울리치에는 여러 개의 극장과 영화관이 있었다. 베레스퍼드 스트리트에 있는 시어터 로열은 나중에 엠파이어 극장 또는 울리치 엠파이어로 이름이 바뀌었고, 가장 큰 극장이었다. 1830년대에 지어진 이 극장은 1880년대와 1890년대에 확장되어 약 2,000석을 갖추게 되었다. 이 극장은 종합 극장이자 영화관으로 운영되다가 결국 스트립 바로 바뀌었다. 1960년에 철거되었다. 1900년 이후 곧이어 총 수용 인원 4,430명의 새로운 극장 세 곳이 문을 열었다. 베레스퍼드 스퀘어에 위치한 센추리 시네마는 이전에는 프리미어 시네마와 로열 아스널 시네마로 알려져 있었다. 1913년에 669석 규모로 건설된 이 영화관은 1961년에 문을 닫았고, 1960년대 후반에 재개발을 위해 철거되었다. 웰링턴 스트리트에 있는 그랜드 극장은 1900년에 1,680석 규모의 종합 극장으로 개장했다. 1908년에는 울리치 히포드롬이 되었고 1923년에는 정식 영화관이 되었다. 1955년에 리갈 시네마로 재건축되었고, 1982년에 문을 닫았으며, 그 후 나이트클럽으로 사용되다가 2015년에 철거되었다. 그라나다 시네마와 오데온, 후에 코로넷은 모두 약 2,500석 규모의 1930년대 건물로, 모두 오순절 교회로 개조되었다.[24]
4. 4. 5. 지방 자치
현재 울리치 리버사이드와 울리치 커먼 지역에 해당하는 울리치 시민구(Woolwich (parish))는 예전에는 울리치 세인트 메리(Woolwich Saint Mary)로 알려졌다. 1842년 울리치 구청(Woolwich Town Hall)이 건립되기 전까지는 세인트 메리 매들린 교회의 한 방에서 구청 회의(vestry)가 열렸다. 울리치는 19세기 중반 런던 대도시권의 일부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공식적으로 여전히 켄트주(Kent)에 속해 있었다. 1889년 런던 카운티 의회(London County Council)가 설립되면서 울리치는 공식적으로 런던의 일부가 되었다. 1900년 울리치, 엘섬(Eltham), 플럼스테드(Plumstead) 시민구(civil parish)가 합쳐져 울리치 대도시 자치구(Metropolitan Borough of Woolwich)를 형성했다. 1906년 새로운 울리치 구청이 개관했다. 1965년 4월, 1963년 런던 정부법(London Government Act 1963) 시행에 따라 울리치는 그리니치 런던 자치구(London Borough of Greenwich)에 합병되었고, 2012년부터는 그리니치 왕립 자치구(Royal Borough of Greenwich)가 되었다. 자치구의 행정 건물은 옛 울리치 구청이 있던 울리치에 위치해 있다.4. 5. 전후 역사
1967년 왕립무기공장(Royal Ordnance Factory) 폐쇄와 1968년 지멘스(Siemens) 공장 폐쇄를 시작으로, 왕립병기창(Royal Arsenal)이 축소 운영되다가 1994년에 최종 폐쇄되면서 울리치는 쇠퇴하기 시작했다.[25] 울리치 건축협회와 모건 그램피언 출판사 등 다른 고용주들도 다른 회사에 인수되면서 마을을 떠났다. 주요 고용주가 없어지면서 지역 경제가 타격을 받고 실업률이 급증했다.[25]동시에 마을의 인구 구성이 변화하여, 처음에는 주로 시크교도(Sikh)들이 정착했고, 나중에는 나이지리아(Nigeria) 출신을 포함한 많은 흑인 아프리카인들이 이어서 정착했다. 이민에도 불구하고, 1971년 교구 인구는 1만 7천 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마을의 상업 지구에서는 백화점과 체인점들이 문을 닫았다. 1990년대 초, 마을 중심부는 할인점과 자선 매장이 빈 상점을 사용하고 그리니치 의회가 빈 사무실 건물을 점유하는 등 쇠퇴하는 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다.[26] 1974년, 영국(United Kingdom) 최초의 맥도날드(McDonald's) 지점이 파위스 스트리트(Powis Street)에 문을 열었다.[27]
1974년 임시 아일랜드 공화군(Provisional IRA)이 킹스암스 펍에 폭탄 테러를 감행하여 2명이 사망했다.[29] 2011년 영국 폭동(2011 England riots) 동안 울리치는 피해 지역 중 하나였다. 2013년 5월 22일에는 리 릭비 살해 사건(murder of Lee Rigby)이 발생하여 큰 혼란을 야기했다. 왕립포병대 막사 근처에서 두 명의 이슬람 극단주의자(Islamic extremists)가 영국 군인 리 릭비(Lee Rigby)를 살해했다.[30]
제16왕립포병연대(16th Regiment Royal Artillery)는 2007년 울리치를 떠났지만, 울리치 막사에는 여전히 왕립포병대 군악대 등이 주둔하고 있다.[31]

최근 울리치는 런던 계획(London Plan)에서 "기회 지역(opportunity area)"으로 지정되어 주요 중심지에서 대도시 중심지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32][33]
울리치는 왕립 무기고(Royal Arsenal) 주택 재개발과 함께 르네상스를 시작했다. 역사적 건물들이 아파트로 전환되고, 강변을 중심으로 고급 아파트가 건설되고 있다. 강변 산책로, 공원, 박물관, 상점,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 등이 조성되어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 2017년에는 창작 지구가 조성될 예정이며, 2021년 9월 울리치 웍스(Woolwich Works)로 문을 열었다.[34][35][36]
울리치 아스널 DLR 역은 2009년 개통되었으며,[37] 2012년 하계 올림픽(2012 Summer Olympics) 사격 종목이 왕립 포병 막사(Royal Artillery Barracks)와 울리치 공원(Woolwich Common) 부지에서 개최되었다.[38]

고든 장군 광장 서쪽 지역 재개발이 2011년 시작되었다. 울리치 센터(공공 도서관 및 의회 사무실),[40] 테스코(Tesco) 하이퍼마켓(hypermarket)을 포함한 주택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41] 그러나 이 개발 프로젝트는 디자인 문제로 '카번클 컵(Carbuncle Cup)'을 수상하기도 했다.[42]
울리치 에쿼터블 건물, 울리치 타운 홀(Woolwich Town Hall) 옆 울리치 그랜드 극장은 재개발을 위해 철거되었다.

파위스 스트리트 서쪽 "울리치 삼각형" 주변 재개발도 진행 중이다. 아르데코(art deco) RACS 백화점 건물이 아파트와 소매점으로 전환될 예정이다.[47][48] 헤어 스트리트와 강변을 중심으로 추가적인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4. 5. 1. 쇠퇴
1967년 왕립무기공장(Royal Ordnance Factory) 폐쇄와 1968년 지멘스(Siemens) 공장 폐쇄를 시작으로, 왕립병기창(Royal Arsenal)이 축소 운영되다가 1994년에 최종 폐쇄되면서 울리치는 쇠퇴하기 시작했다.[25] 울리치 건축협회("The Woolwich")와 모건 그램피언 출판사(Morgan Grampian Publishers) 등 다른 고용주들도 다른 회사에 인수되면서 마을을 떠났다. 주요 고용주가 없어지면서 지역 경제가 타격을 받고 실업률이 급증했다.[25]동시에 마을의 인구 구성이 변화하여, 처음에는 주로 시크교도(Sikh)들이 정착했고, 나중에는 나이지리아(Nigeria) 출신을 포함한 많은 흑인 아프리카인들이 이어서 정착했다. 이민에도 불구하고, 1971년 교구 인구는 1만 7천 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울리치는 이전의 활기를 잃었다. 마을의 상업 지구에서는 백화점과 체인점들이 문을 닫았다. 1990년대 초, 마을 중심부는 할인점과 자선 매장이 빈 상점을 사용하고 그리니치 의회(Greenwich Council)가 빈 사무실 건물을 점유하는 등 쇠퇴하는 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다.[26] 1974년, 영국(United Kingdom) 최초의 맥도날드(McDonald's) 지점이 파위스 스트리트(Powis Street)에 문을 열었다.[27] 쇠퇴 속에서도 울리치는 당시 대표적인 영국 마을로 여겨졌다.[28]
1974년 임시 아일랜드 공화군(Provisional IRA)이 마을의 킹스암스 펍에 폭탄 테러를 감행하여 2명이 사망했다. 2011년 영국 폭동(2011 England riots) 동안 울리치는 피해 지역 중 하나였다. 여러 건물이 공격받았고, 일부는 파괴되었다. "그레이트 해리(The Great Harry)" 위더스푼즈 펍(Wetherspoons' Pub)이 방화되었지만,[29] 이후 개조되어 다시 문을 열었다. 2013년 5월 22일 울리치에서 리 릭비 살해 사건(murder of Lee Rigby)이 발생하여 큰 혼란을 야기했다. 왕립포병대(Royal Artillery Barracks)에 주둔한 영국 군인 리 릭비(Lee Rigby)는 왕립포병대 막사 근처에서 두 명의 이슬람 극단주의자(Islamic extremists)에 의해 살해되었다.[30]
제16왕립포병연대(16th Regiment Royal Artillery)는 2007년 울리치를 떠났지만, 울리치 막사에는 여전히 왕립포병대 군악대와 최근에는 웨일스 공주 왕립 연대 제2대대(Second Battalion Princess of Wales' Royal Regiment) 그리고 왕립기병대(King's Troop, Royal Horse Artillery)가 주둔하고 있지만, 이들의 재배치가 2028년으로 발표되었다.[31]
4. 5. 2. 재개발
울리치는 20세기 후반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 1967년 왕립무기공장(Royal Ordnance Factory) 폐쇄, 1968년 지멘스(Siemens) 공장 폐쇄, 그리고 왕립병기창(Royal Arsenal)의 축소 운영과 1994년 최종 폐쇄가 이어지면서 지역 경제가 타격을 받았다. 울리치 건축협회와 모건 그램피언 출판사 등 다른 고용주들도 마을을 떠나면서 실업률이 급증했다.[25]이러한 상황 속에서 마을의 인구 구성도 변화하여, 시크교도(Sikh)와 나이지리아(Nigeria) 출신 흑인 아프리카인들이 정착했다. 이민에도 불구하고 1971년 인구는 최저치를 기록했고, 마을의 상업 지구는 쇠퇴했다.[26] 1974년, 영국(United Kingdom) 최초의 맥도날드(McDonald's) 지점이 파위스 스트리트에 문을 열었다.[27]
1974년 임시 아일랜드 공화군(Provisional IRA)의 킹스암스 펍 폭탄 테러로 2명이 사망했다.[29] 2011년 영국 폭동(2011 England riots) 동안 울리치는 피해 지역 중 하나였으며, 리 릭비 살해 사건(murder of Lee Rigby)이 발생하기도 했다.[30]
제16왕립포병연대(16th Regiment Royal Artillery)는 2007년 울리치를 떠났지만, 울리치 막사에는 여전히 왕립포병대 군악대 등이 주둔하고 있다.[31]
최근 울리치는 런던 계획(London Plan)에서 "기회 지역(opportunity area)"으로 지정되어 주요 중심지에서 대도시 중심지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32][33]
울리치는 왕립 무기고(Royal Arsenal) 주택 재개발과 함께 르네상스를 시작했다. 역사적 건물들이 아파트로 전환되고, 강변을 중심으로 고급 아파트가 건설되고 있다. 강변 산책로, 공원, 박물관, 상점,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 등이 조성되어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 2017년에는 창작 지구가 조성될 예정이며, 2021년 9월 울리치 웍스(Woolwich Works)로 문을 열었다.[34][35][36]
울리치 아스널 DLR 역은 2009년 개통되었으며,[37] 2012년 하계 올림픽(2012 Summer Olympics) 사격 종목이 왕립 포병 막사(Royal Artillery Barracks)와 울리치 공원(Woolwich Common) 부지에서 개최되었다.[38]
고든 장군 광장 서쪽 지역 재개발이 2011년 시작되었다. 울리치 센터(공공 도서관 및 의회 사무실),[40] 테스코(Tesco) 하이퍼마켓(hypermarket)을 포함한 주택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41] 그러나 이 개발 프로젝트는 디자인 문제로 '카번클 컵(Carbuncle Cup)'을 수상하기도 했다.[42]
울리치 에쿼터블 건물, 울리치 타운 홀(Woolwich Town Hall) 옆 울리치 그랜드 극장은 재개발을 위해 철거되었다.
파위스 스트리트 서쪽 "울리치 삼각형" 주변 재개발도 진행 중이다. 아르데코(art deco) RACS 백화점 건물이 아파트와 소매점으로 전환될 예정이다.[47][48] 헤어 스트리트와 강변을 중심으로 추가적인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5. 문화유산
울리치는 수 세기 동안 템스 강과 현재의 A206 도로 사이 지역에 왕립 조선소를 시작으로 부두, 창고, 공장이 들어섰고, 이후 왕립 병기창이 규모와 위엄 면에서 조선소를 압도했다. 18세기에는 왕립 포병 연대, 왕립 공병대가 울리치에 설립되었고, 왕립 육군 사관학교가 그 뒤를 이었다. 19세기 초에는 다른 군사 기관들이 들어서면서 울리치는 주둔 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도시는 독특한 주택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Bathway Quarter에는 독특한 시민 센터가 있다. 여러 번 재건축되었지만, 건축 유산은 그 특이하고 중요한 역사를 반영한다.[51]
5. 1. 왕립 병기창

왕립 무기고(Royal Arsenal)의 오래된 부분은 보존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역사적 가치가 있는 대부분의 건물들은 복원되어 새로운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왕립 황동 주조소(1717년)는 1급 등재 건물이며, 다이얼 아치(1717~1720년), 구 왕립 육군 사관학교(1720년) 및 대형 창고(1806~1813년)는 2급* 등재 건물이다. 다른 등재 건물로는 왕립 무기고 정문, 중앙 정문, 본관 경비실, 템스 강 근처의 작은 경비실 두 채, 쉘 주조소 정문, 베르브뤼헌 하우스 및 실험실 광장에 있는 두 개의 쌍둥이 파빌리온(이 부지에서 가장 오래된 구조물, 1696년)이 있다.[51]
과거에는 울리치 무기 공장과 왕립 육군 사관학교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5. 2. 울리치 조선소와 강변
최근 및 예상되는 지역 재생 사업으로 인해, 울리치는 런던 계획(London Plan)에서 "기회 지역(opportunity area)"으로 지정되었으며, 향후 수십 년 동안 주요 중심지에서 대도시 중심지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32][33]
울리치는 이전 왕립 무기고(Royal Arsenal)의 주택 재개발과 함께 르네상스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부지의 대부분의 역사적 건물은 개조되어 아파트로 전환되었다. 수천 채의 주택이 건설되었거나 건설 중이며, 주로 강 근처 고층 건물(tower block)에 고급 아파트를 중심으로 수천 채가 더 계획되어 있다. 강변 산책로, 여러 공원, 박물관, 다양한 상점, 카페, 펍, 레스토랑 및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도 무기고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 2017년에는 자치구가 1번가 주변의 5개의 역사적 건물을 인수하여 3100만파운드 규모의 창작 지구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이곳에는 콘서트와 행사를 위한 1,200석 규모의 강당, 최대 600석 규모의 공연장, 450석 규모의 블랙박스 극장 및 강변 레스토랑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리니치 유산 센터(Greenwich Heritage Centre)는 새로운 건물로 이전할 것이다. 이 부지에는 아카데미 공연 예술, 대시 아트, 치킨쉐드 극장(Chickenshed Theatre), 프로테인 댄스, 그리니치 댄스 및 그리니치+독랜드 국제 페스티벌(Greenwich+Docklands International Festival)과 같은 거주 회사를 위한 사무실, 스튜디오 및 리허설 공간이 추가로 포함될 예정이다.[34][35] 창작 지구는 2021년 9월 울리치 웍스(Woolwich Works)로 문을 열었다.[36]
울리치 아스널 DLR 역(Woolwich Arsenal DLR station)은 도클랜즈 경전철(Docklands Light Railway)의 런던 시티 공항 지선의 종착역으로 2009년 1월 10일에 개통했다.[37] 2012년 하계 올림픽(2012 Summer Olympics)과 패럴림픽은 사격 종목을 위한 장소로 울리치를 포함했으며, 왕립 포병 막사(Royal Artillery Barracks)와 울리치 공원(Woolwich Common) 부지에 임시 시설을 건설했다.[38]
고든 장군(General Gordon) 광장 서쪽 지역의 대규모 재개발이 2011년에 시작되었다. 광장은 새로운 분수대를 포함하여 재조경되었다. 소위 러브 레인 프로젝트에는 우체국, 크라운 빌딩, ''국장(Director General)'' 여관(public house),[39] 페기 미들턴 하우스 및 토마스 스펜서 기숙사를 포함한 여러 건물의 철거가 포함되었다. 울리치 중심 재개발의 초기 단계에서 새로 지어진 건물에는 웰링턴 스트리트를 따라 있는 울리치 센터(공공 도서관 및 의회 사무실, 2011년 완공),[40] 및 약 7803.86m2 테스코(Tesco) 하이퍼마켓(hypermarket)이 있는 259채의 주택 개발 프로젝트(2014년 완공)가 포함된다.[41] 같은 해, 후자의 개발 프로젝트는 "압도적이고, 방어적이고, 오만하며, 무능하다"고 판사들이 평가한 디자인으로 '카번클 컵(Carbuncle Cup)'을 수상하며 영국 최악의 신축 건물로 선정되었다.[42] 이와 같은 개발은 나중에 테스코가 클래딩 교체를 위해 윌못 딕슨(Willmott Dixon)에 대해 4670만파운드을 청구하는 소송의 대상이 되었고,[44] 윌못 딕슨은 공급망에서 동일한 금액을 회수하려고 했다.[43] 2023년 2월에 사건이 심리되었을 때,[44] 두 공급업체는 윌못 딕슨의 과실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다고 반박했다.[45] 울리치 중심 프로젝트의 재정적 영향은 2024년 7월 윌못 딕슨이 이 계획을 수정하는 데 드는 비용이 4400만파운드에서 4800만파운드로 증가했다고 밝히면서 계속해서 나타났다.[46]
고든 장군 광장 반대편에는 1930년대 울리치 에쿼터블(Woolwich Equitable) 건물이 개조되었다. 웰링턴 스트리트에 있는 울리치 타운 홀(Woolwich Town Hall) 옆에 있는 1950년대 울리치 그랜드 극장(이전에는 ABC 레갈 시네마, 플라밍고 나이트클럽)은 카페가 있는 예술 센터로 잠시 재개장했지만 2015년에 아파트를 위해 철거되었다.
파위스 스트리트 서쪽 끝에 있는 "울리치 삼각형(Woolwich Triangle)" 주변의 재개발이 부분적으로 진행 중이다. 원래 이 지역의 두 개의 인상적인 협동조합(Co-op) 건물 중 하나인 아르데코(art deco) RACS 백화점의 철거를 구상했다.[47] 2012년 9월 그리니치 의회는 건물을 아파트와 소매점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승인했다.[48] 길 건너편에는 빅토리아 시대 후기에 세워진 이전 RACS 중앙 저장소 건물이 개조되어 호텔로 다시 문을 열었다. 추가 재생 사업은 헤어 스트리트와 강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워터프런트 레저 센터를 이전함으로써 울리치의 이 지역에 새로운 개발을 유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재개발 대상 지역에는 트리니티 워크(이전 코노트 에스테이트, 3개 주택 단지에 대한 원 울리치 마스터플랜의 일부), 웰링턴 스트리트를 따라 여러 부지(오길비 부지 및 소위 아일랜드 부지 포함), 스프레이 스트리트 지역(기존 역과 새로운 크로스레일 역 사이), 칼리스 야드 부지(이전 의회 마굿간)가 포함된다.[49] 2018년 스프레이 스트리트 지역 재개발 계획에는 1936년 시장 건물을 철거하는 제안이 포함되었다.[50]
수세기 동안 템스 강과 현재의 A206 도로 사이 지역은 16세기 초 왕립 조선소를 시작으로 부두, 창고 및 공장이 지배해 왔으며, 나중에는 규모와 위엄에서 왕립 병기창에 가려졌다. 18세기에는 왕립 포병 연대와 왕립 공병대가 울리치에 설립되었고, 그 뒤를 이어 왕립 육군 사관학교가 설립되었다. 다른 군사 기관들이 19세기 초 울리치가 된 주둔 도시의 모습을 완성했다. 이 도시는 독특한 주택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Bathway Quarter에는 그에 못지않게 독특한 시민 센터가 있다. 여러 번 재건축되었지만, 건축 유산은 그 특이하고 중요한 역사를 반영한다.[51]
울리치 조선소에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적이 비교적 적게 남아 있다. 주요 기념물 건축물 단지는 18세기 건물들로 이루어진 작은 무리로 구성되어 있다. 입구 문, 초소, 그리고 이른바 시계탑(조선소 사무실)이 그것이다. 16세기 이전 건물의 터에 19세기 건조독 2개가 남아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조선소 개발은 증기 공장과 조선소 굴뚝(랜드마크), 그리고 서쪽의 지멘스 형제 공장 부지에 있는 건물군으로 나타난다.
무기고와 조선소 사이에는 한때 옛 울리치였던 지역이 있다. 이곳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다시 한번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울리치 보행자 터널의 원형 입구 건물은 1912년에 지어졌다. 더 서쪽에는 템스 배리어가 현대 건축과 기술적 성취의 흥미로운 사례이다. 템스 경로는 이러한 장소들을 연결하는 국가 트레일이다.

5. 3. 기타 군사 건물
수세기 동안 템스 강과 현재의 A206 도로 사이 지역은 16세기 초 왕립 조선소를 시작으로 부두, 창고 및 공장이 지배해 왔으며, 나중에는 규모와 위엄에서 왕립 병기창에 가려졌습니다. 18세기에는 왕립 포병 연대와 왕립 공병대가 울리치에 설립되었고, 그 뒤를 이어 왕립 육군 사관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다른 군사 기관들이 19세기 초 울리치가 된 주둔 도시의 모습을 완성했습니다.[51]

울리치의 풍부한 군사 역사를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건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왕립 포병 막사(Royal Artillery Barracks) (제임스 와이엇(James Wyatt), 1776~1802년): 신고전주의 양식의 정면은 런던에서 가장 길며, 울리치 공원(Woolwich Common) 북쪽 끝을 따라 뻗어 있습니다.
- 정부 청사(Government House, 1781년): 울리치 공원(Woolwich Common) 건너편에 있으며, 1855년부터 1995년까지 주둔 사령관의 관저였습니다.
- 세인트 조지 주둔 교회: 인근에 있으며, 제2차 세계 대전(Second World War) 중 폭격을 맞아 외벽만 남았지만, 신로마네스크 양식 건축과 모자이크 잔해는 여전히 인상적입니다.
- 로툰다: 존 내시가 설계한 둥근 벽돌 건물로, 납으로 된 텐트 지붕을 가지고 있습니다. 2001년까지 왕립 포병 박물관(Royal Artillery Museum)을 수용했으며, 현재는 인근 네이피어 라인스 막사(Napier Lines Barracks)에 있는 왕립 기마 포병대(King's Troop, Royal Horse Artillery)의 복싱 링(boxing ring)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52]
- 왕립 육군사관학교: 울리치 공원(Woolwich Common) 남쪽 끝에 있으며, 제임스 와이엇이 설계했고, 모의 튜더 양식(Mock Tudor)으로 거의 같은 길이의 정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코노트 막사(Connaught Barracks, 1780년 왕립 포병 병원으로 건설됨), 그린힐 육군 학교(Green Hill Military School), 슈터스 힐(Shooter's Hill)에 있는 왕립 허버트 병원(Royal Herbert Hospital) 등의 군사 건물들이 남아 있습니다.
왕립 공병대 본부는 1856년 채텀으로 이전했지만, 소규모 부대가 울리치에 남아 울리치 공원(Woolwich Common) 바로 외곽 밀 힐(Mill Hill)에 있는 현재의 엔지니어 하우스(Engineer House)에 주둔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제임스 와이엇의 공병 막사(1803년 왕립 군수병(Royal Military Artificers)을 위해 건설됨), 루이스 와이엇(Lewis Wyatt)의 그랜드 데포 막사(1805~6년 야전 군수 부대를 위해 건설 시작), 캠브리지 막사(1842년, 문지기 건물만 남아 있음), 레드 막사(1858년, 경계벽과 입구만 남아 있음)를 포함한 여러 등록 건축물(listed building)이 철거되었습니다.
프랜시스 스트리트(Frances Street)에 있는 후자의 두 건물은 원래 왕립 해병대(Royal Marines) 울리치 사단을 위한 울리치 왕립 해병 막사(Royal Marine Barracks, Woolwich)로 건설되었으며, 각각 혁신적이고 영향력 있는 설계로 여겨졌습니다. 해군 조선소 폐쇄와 함께 해병대가 떠나자 이 건물들은 다양한 군 부대의 막사로 개조되었습니다. 러시그로브 하우스(Rushgrove House, 1806년)는 1855년부터 해병 막사(후에 캠브리지 막사)의 연대장이 거주했습니다.[53]
5. 4. 울리치 중심
런던 계획(London Plan)에서 "기회 지역(opportunity area)"으로 지정된 울리치는 향후 수십 년 동안 주요 중심지에서 대도시 중심지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32][33]이전 왕립 무기고(Royal Arsenal) 부지의 주택 재개발과 함께 울리치는 르네상스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역사적 건물 대부분이 개조되어 아파트로 전환되었고, 수천 채의 주택이 건설되었거나 건설 중이며, 강 근처 고층 건물(tower block)에 고급 아파트를 중심으로 수천 채가 더 계획되어 있다. 강변 산책로, 공원, 박물관, 상점, 카페, 펍, 레스토랑,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 등이 무기고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 2017년에는 1번가 주변의 5개 역사적 건물을 인수하여 3100만파운드 규모의 창작 지구를 조성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곳에는 콘서트와 행사를 위한 1,200석 규모의 강당, 최대 600석 규모의 공연장, 450석 규모의 블랙박스 극장, 강변 레스토랑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리니치 유산 센터(Greenwich Heritage Centre)는 새로운 건물로 이전하며, 아카데미 공연 예술, 대시 아트, 치킨쉐드 극장(Chickenshed Theatre), 프로테인 댄스, 그리니치 댄스, 그리니치+독랜드 국제 페스티벌(Greenwich+Docklands International Festival)과 같은 단체를 위한 사무실, 스튜디오, 리허설 공간도 마련될 예정이다.[34][35] 창작 지구는 2021년 9월 울리치 웍스(Woolwich Works)로 개장했다.[36]
울리치 아스널 DLR 역(Woolwich Arsenal DLR station)은 도클랜즈 경전철(Docklands Light Railway) 런던 시티 공항 지선의 종착역으로 2009년 1월 10일에 개통했다.[37] 2012년 하계 올림픽(2012 Summer Olympics)과 패럴림픽에서는 왕립 포병 막사(Royal Artillery Barracks)와 울리치 공원(Woolwich Common) 부지에 임시 시설을 건설하여 사격 종목을 개최했다.[38]
2011년에는 고든 장군(General Gordon) 광장 서쪽 지역의 대규모 재개발이 시작되었고, 광장은 새로운 분수대를 포함하여 재조경되었다. 러브 레인 프로젝트에는 우체국, 크라운 빌딩, ''국장(Director General)'' 여관(public house),[39] 페기 미들턴 하우스, 토마스 스펜서 기숙사 등 여러 건물이 철거되었다. 울리치 중심 재개발 초기에는 웰링턴 스트리트를 따라 울리치 센터(공공 도서관 및 의회 사무실, 2011년 완공)[40]와 약 7803.86m2 테스코(Tesco) 하이퍼마켓(hypermarket)을 포함하는 259채 주택 개발 프로젝트(2014년 완공)가 건설되었다.[41] 이 개발 프로젝트는 디자인의 문제로 '카번클 컵(Carbuncle Cup)'을 수상하며 영국 최악의 신축 건물로 선정되기도 했다.[42] 이후 테스코는 클래딩 교체를 위해 윌못 딕슨(Willmott Dixon)에 4670만파운드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44] 윌못 딕슨은 공급망에서 동일한 금액을 회수하려 했다.[43] 2023년 2월 심리에서[44] 두 공급업체는 윌못 딕슨의 과실로 문제가 발생했다고 반박했다.[45] 2024년 7월 윌못 딕슨은 이 계획 수정 비용이 4400만파운드에서 4800만파운드로 증가했다고 밝혔다.[46]
고든 장군 광장 맞은편에는 1930년대 울리치 에쿼터블(Woolwich Equitable) 건물이 개조되었다. 웰링턴 스트리트에 있는 울리치 타운 홀(Woolwich Town Hall) 옆 1950년대 울리치 그랜드 극장(이전 ABC 레갈 시네마, 플라밍고 나이트클럽)은 카페가 있는 예술 센터로 잠시 재개장했지만 2015년에 아파트를 위해 철거되었다.
파위스 스트리트 서쪽 끝 "울리치 삼각형(Woolwich Triangle)" 주변 재개발이 부분적으로 진행 중이다. 이 지역의 두 협동조합(Co-op) 건물 중 하나인 아르데코(art deco) RACS 백화점 철거를 구상했으나,[47] 2012년 9월 그리니치 의회는 건물을 아파트와 소매점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승인했다.[48] 길 건너편에는 빅토리아 시대 후기에 세워진 이전 RACS 중앙 저장소 건물이 개조되어 호텔로 다시 문을 열었다. 추가 재생 사업은 헤어 스트리트와 강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워터프런트 레저 센터를 이전하여 울리치에 새로운 개발을 유치할 계획이다. 재개발 대상 지역에는 트리니티 워크(이전 코노트 에스테이트, 3개 주택 단지에 대한 원 울리치 마스터플랜의 일부), 웰링턴 스트리트를 따라 여러 부지(오길비 부지 및 소위 아일랜드 부지 포함), 스프레이 스트리트 지역(기존 역과 새로운 크로스레일 역 사이), 칼리스 야드 부지(이전 의회 마굿간)가 포함된다.[49] 2018년 스프레이 스트리트 지역 재개발 계획에는 1936년 시장 건물을 철거하는 제안이 포함되었다.[50]

16세기 초 왕립 조선소를 시작으로 템스 강과 현재의 A206 도로 사이 지역은 부두, 창고, 공장이 지배해 왔으며, 왕립 병기창이 규모와 위엄에서 조선소를 가렸다. 18세기에는 왕립 포병 연대, 왕립 공병대, 왕립 육군 사관학교가 울리치에 설립되면서 주둔 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울리치는 독특한 주택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Bathway Quarter에는 독특한 시민 센터가 있다. 여러 번 재건축되었지만, 건축 유산은 그 특이하고 중요한 역사를 반영한다.[51]
울리치 구시가지는 템스 강변의 페리와 교구 교회 근처에 있었으나 거의 남아있지 않다. 19세기 초 상업 및 행정 중심지는 현재의 파위스 스트리트(Powis Street), 베레스퍼드 스퀘어(Beresford Square), 배스웨이 쿼터(Bathway Quarter) 주변으로 남쪽으로 이동했다. 20세기 경제 침체와 사회기반시설 공사의 영향을 받았지만, 울리치 시내에는 여전히 흥미로운 건물들이 있다. 가장 잘 보존된 지역은 배스웨이 쿼터로, 과거 공중 목욕탕, 구 시청과 신 시청, 전 치안 판사 법원과 경찰서, 구 도서관, 울리치 폴리테크닉의 역사적 건물들이 있다.
파위스 스트리트와 헤어 스트리트에는 지역 건축가 헨리 허드슨 처치가 보존한 후기 빅토리아 시대 상점 외관이 있다. 파위스 스트리트 서쪽 끝에는 두 개의 전 RACS 백화점이 있는데, 하나는 후기 빅토리아 시대 스타일이고 다른 하나는 아르데코(Art Deco) 스타일이다. 강 근처에는 1937년에 지어진 두 개의 대형 영화관이 있는데, 모두 오순절 교회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 오데온 시네마(현재 뉴 와인 교회(New Wine Church) 사용)는 아르데코 스타일 극장의 좋은 예이며, 전 그라나다 시네마는 화려한 내부 장식을 가지고 있다.
울리치 공원을 따라 늘어서 있고 슈터스 힐 북쪽 사면에 있던 호화로운 주택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러시그로브 하우스, 슈루즈베리 하우스, 우드힐 코트는 남아 있지만 넓은 정원은 사라졌다. 울리치 교구 교회인 세인트 메리 마달렌은 첨탑이 없는 탑이 있는 1730년대의 평범한 벽돌 건물이다. 그 외에도 흥미로운 종교 건물로는 로마 가톨릭 세인트 피터 교회(퓨진 작)와 두 개의 시크교 구르드와라가 있다. 하나는 옛 감리교 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옛 프리메이슨 홀이다.
6. 교통
철도가 도착하기 전에는 템스강이 울리치를 런던과 연결하는 주요 교통 수단이었다. 1834년 울리치 증기선 회사(Woolwich Steam Packet Company)는 강을 이용한 교통을 크게 개선했고, 1889년에는 울리치 무료 페리가 개통되어 노스 울리치(North Woolwich)와 울리치를 오가는 것이 편리해졌다.[19]
전후 시대에는 도로 확장 및 현대식 주택 건설로 인해 도시 구조와 기반 시설에 큰 변화가 있었다. 울리치 고가(Woolwich High Street)와 베레스퍼드가(Beresford Street)가 확장되면서 옛 마을은 거의 사라졌다. 울리치에는 실험적인 오토 스태커(Auto Stacker) 주차장이 있었으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1962년에 철거되었다. 1971년에는 몽크가(Monk Street)를 따라 주차 빌딩(multi-storey car park)이 건설되었다.
내셔널 레일(National Rail)·울리치 아스널역(Woolwich Arsenal station)
6. 1. 철도
1849년, 런던에서 그리니치(Greenwich), 울리치를 거쳐 길링엄까지 이어지는 노스 켄트선(North Kent Line)이 개통되었다. 역사 건물은 1906년과 1992-1993년에 재건축되었다.[19] 울리치는 1881년부터 1952년까지 운영된 1세대 런던 트램 두 노선의 경로에 포함되기도 했다.[20]울리치 아스널과 울리치 도크야드는 사우스이튼 열차를 통해 런던 캐넌 스트리트(그리니치 경유), 런던 차링 크로스(루이샴 경유), 다트퍼드, 바네허스트(벡슬리히스 경유)와 연결되며, 순환 노선을 통해 런던 캐넌 스트리트로 이어진다. 템즈링크 서비스는 루턴(그리니치, 런던 블랙프라이어스 경유)과 레인험으로 연결된다.
울리치 아스널은 DLR 노선을 통해 뱅크와 스트래트퍼드 인터내셔널과 연결된다.
2022년 5월에는 울리치 역(Woolwich railway station)이 개통되어, 엘리자베스선(Elizabeth line)을 통해 애비 우드 역(Abbey Wood railway station), 캐나리 워프 역(Canary Wharf railway station), 런던 중심부, 레딩(Reading, Berkshire), 히스로 공항(Heathrow Airport) 방면으로 운행된다.
6. 2. 버스
철도가 도착하기 전까지 템스강은 울리치를 런던과 연결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1834년 울리치 증기선 회사(Woolwich Steam Packet Company)는 강을 이용한 교통을 크게 개선했고, 1889년에는 울리치 무료 페리가 개통되어 노스 울리치(North Woolwich)에 살면서 무기고(Arsenal)에서 일하거나, 울리치에 살면서 도크랜드에서 일하기가 더욱 편리해졌다.[19] 런던에서 그리니치(Greenwich)와 울리치를 거쳐 길링엄까지 이어지는 노스 켄트선(North Kent Line)은 1849년에 개통되었다.[19] 울리치는 또한 1세대 런던 트램(1881~1952) 두 노선의 경로상에 있었다.[20]울리치는 런던 버스 여러 노선의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애비 우드, 베켄햄, 벡슬리히스, 블랙펜, 블랙히스, 블루워터, 캣퍼드, 런던 중심부, 찰턴, 치즐허스트, 크레이퍼드, 크리스털 팰리스, 다트퍼드, 뎁트퍼드, 엘리펀트 & 캐슬, 엘머스 엔드, 엘섬, 에리스, 그리니치, 램베스 노스, 루이섬, 키드브룩, 뉴 크로스, 노스 그리니치, 올드 켄트 로드, 오핑턴, 펙험, 플럼스테드, 시드컵, 세인트 메리 크레이, 시든햄, 템즈미드, 웰링 등 여러 지역과 연결된다.
6. 3. 울리치 페리
1889년에 울리치 무료 페리가 개통되어 노스 울리치(North Woolwich)에 살면서 무기고(Arsenal)에서 일하거나, 울리치에 살면서 도크랜드에서 일하기가 더욱 편리해졌다.[19]6. 4. 런던 강 서비스
철도가 도착하기 전까지 템스강은 울리치를 런던과 연결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1834년 울리치 증기선 회사(Woolwich Steam Packet Company)는 강을 이용한 교통을 크게 개선했고, 1889년에는 울리치 무료 페리가 개통되어 노스 울리치(North Woolwich)에 살면서 무기고(Arsenal)에서 일하거나, 울리치에 살면서 도크랜드에서 일하기가 더욱 편리해졌다.[19] 템즈 클리퍼스(Thames Clippers)가 운영하는 런던 강 서비스(London River Services)는 울리치 아스널 부두(Woolwich Arsenal Pier)(로열 아스널 주택 개발 지역 인근)에서 런던 중심가(엠뱅크먼트 부두(Embankment Pier))까지 평일 피크 시간대에 정기적으로 운항한다. 템스 배리어는 터널과 페리에서 상류 약 1.6km 지점에 있다.7. 스포츠 및 레저
18세기에는 후에 왕립 포병 크리켓 클럽이 된 울리치 크리켓 클럽이 유명한 크리켓 클럽이었다. 크리켓과 다른 스포츠는 주로 왕립 육군사관학교의 군 장교와 학생들이 즐겼다.[24] 아스널 FC는 1886년 왕립 병기창의 노동자들에 의해 창립되었다. 처음에는 "다이얼 스퀘어"로 알려졌고, 그 후 "왕립 병기창", "울리치 아스널"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며, 곧 플럼스테드의 경기장에 많은 관중을 끌어들였다. 1913년에는 런던 북부 하이베리의 아스널 스타디움으로 이전했다. 왕립 병기창 공장 FC는 울리치 아스널이 리그에 합류함에 따라 창설되었지만 몇 년 만에 해체되었다.
아스널 FC(Arsenal F.C.)는 원래 울리치 출신이며, 찰턴 애슬레틱 FC(Charlton Athletic F.C.)의 경기장인 더 밸리(The Valley (London))는 울리치에서 서쪽으로 약 2km 떨어져 있다. 이 지역에는 비리그 축구(Non-League football) 클럽인 브리던 로프스 FC(Bridon Ropes F.C.)와 메리디언 FC(Meridian F.C.) 두 곳이 있으며, 두 클럽 모두 메리디언 스포츠 & 소셜 클럽에서 경기를 한다.
왕립 포병 막사의 배럭 필드(Barrack Field)는 18세기에 유명한 크리켓 경기장(cricket ground)이었지만, 현재는 레크리에이션 스포츠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다. 로열 아스널 럭비 클럽은 이곳에서 럭비 유니온(Rugby union)을 한다.
그리니치 의회는 울리치 페리(Woolwich Ferry) 옆에 있는 1980년대 워터프런트 레저 센터를 철거하고 윌마운트 스트리트에 새로운 레저 센터를 건설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도크랜드 지역에는 실내 클라이밍 벽(climbing wall)이 있다.
8. 교육 및 문화
울리치 폴리테크닉은 1891년에 설립되었다. 고등 교육 시설 외에도 울리치 소년 폴리테크닉 학교를 포함한 중등 학교 시설도 제공했다.[21] 1970년 템즈 폴리테크닉이 되었다가 1992년 대학으로 승격되었고, 1년 후 그리니치 대학교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2001년, 대학교는 그리니치의 구 왕립 해군 대학으로 이전했다.[22]
울리치는 영국 최초의 무료 유치원이 있던 곳이다. 울리치 선교 유치원은 1900년 뉴 찰턴의 성 트리니티 교회의 기독교 사회주의 사제인 월터 래지 목사가 제공한 방에서 시작되었으며, 그의 여동생 애들레이드 래지가 설립했다.[23]
18세기에는 후에 왕립 포병 크리켓 클럽이 된 울리치 크리켓 클럽이 유명했다. 아스널 FC는 1886년 왕립 병기창의 노동자들에 의해 창립되었다. 처음에는 "다이얼 스퀘어", "왕립 병기창", "울리치 아스널"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며, 1913년 런던 북부 하이베리의 아스널 스타디움으로 이전했다.[24]
울리치에는 여러 개의 극장과 영화관이 있었다. 베레스퍼드 스트리트에 있는 시어터 로열(이후 엠파이어 극장 또는 울리치 엠파이어)은 가장 큰 극장이었으나 1960년에 철거되었다. 웰링턴 스트리트에 있는 그랜드 극장은 1900년에 개장하여 1908년에는 울리치 히포드롬, 1923년에는 정식 영화관이 되었다. 1955년 리갈 시네마로 재건축되었고, 1982년에 문을 닫은 후 나이트클럽으로 사용되다가 2015년에 철거되었다. 그라나다 시네마와 오데온(후에 코로넷)은 모두 오순절 교회로 개조되었다.[24]
그리니치 대학교의 연극 예술 학과는 울리치 중심부의 유서 깊은 배스웨이 쿼터에 위치해 있다. 1953년까지 자치구의 노면 전차를 위한 변전소였던 트램셰드는 그리니치 왕립 자치구가 운영하는 음악 및 엔터테인먼트 장소이다.[54] 현재 울리치에는 영화관이 없으나, 스프레이 스트리트 쿼터와 아일랜드 부지 계획에는 영화관이 포함되어 있다.[55][56]
울리치에는 로열 아스널에 있는 그리니치 유산 센터라는 박물관이 있다(파이어파워 – 로열 포병 박물관은 2016년에 문을 닫았다). 울리치 도크야드 지역의 세컨드 플로어 스튜디오는 런던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예술가 스튜디오 중 하나이다.[57]
9. 주요 인물
- 빅터 브룩스 (1918–2000), 배우, 울리치 출생.[1]
- 개리 버셸 (1955년생), 언론인이자 정치 활동가, 울리치 출생.[2]
- 톰 크리브 (1848년 사망), 19세기 맨주먹 권투 선수, 브리스톨 출생이나 울리치에서 66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세인트 메리 묘지에 매장됨. 울리치에는 그를 기리는 도로가 있다.[3]
- 스텔라 더피, 소설가이자 극작가, 울리치 출생 후 엘섬으로 이주.[4]
- 버나딘 에바리스토, 작가, 울리치에서 성장.[5]
- 보이 조지, 밴드 컬처 클럽의 작사가이자 리드 싱어, 울리치에서 성장.[6]
- 찰스 조지 고든 (1833–1885), 장군, 울리치 출생.[7]
- 찰스 허턴 그레고리 (1817–1888), 토목기사, 울리치 출생.[8]
- 올린서스 그레고리 (1774–1841), 수학자(찰스 허턴 그레고리의 아버지), 울리치에서 생을 마감.[9]
- 조셉 그리말디 (1778–1837), 팬터마임 광대, 1830년대 초 울리치에 거주하다가 이즐링턴으로 이주.[10]
- 제러미 힐리, DJ이자 헤이시 팬타지 멤버, 울리치 출생.[11]
- 찰스 허턴 (1737–1823), 수학자, 울리치에서 생을 마감.[12]
- 조지 토마스 랜드만 (1779–1854), 군사 및 토목 기사, 울리치 출생 및 성장.[13]
- 조나단 가이 루이스 (1963년생), 배우, 울리치 출생.[14]
- 윌리엄 리빙스톤 로브 (1791–1815), 육군 장교, 울리치 출생.[15]
- 리처드 러벌리스 (1618–1657), 시인, 울리치 출생.[16]
- 포브스 맥비언 FRS (1725–1800), 육군 장교, 울리치에서 생을 마감.[17]
- 칼로 마르텔리 (1935년생), 1960년대 초부터 울리치에 거주.[18]
- 스콧 매슬린 (1971년생), 배우이자 모델, 울리치 출생.[19]
- 키스 밀로우 (1945년생), 화가이자 조각가, 울리치 거주.[20]
- 글렌 모리스 (1983년생), 축구 선수, 울리치 출생.[21]
- 노이지 (1986년생), 알바니아 음악가이자 배우, 울리치 거주.[22]
- 윌리엄 랜웰 (1797–1861), 예술가, 울리치에서 생을 마감.[23]
- 레이 리차드슨 (1964년생), 화가, 울리치 출생 및 거주.[24]
- 프레드릭 로브 (1801–1871), 남호주 주지사, 울리치 출생.[25]
- 윌리엄 로브 (1765–1820), 육군 장교이자 건축가, 울리치 출생 및 사망.[26]
- 존 스콧 (1757–1832), 복음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 울리치 출생.[27]
- 실비아 심스 (1934–2023), 배우, 울리치 출생.[28]
- 존 탭너 (약 1823–1854), 건지 섬에서 마지막으로 사형당한 사람, 울리치 출신.[29]
- 글렌 틸브룩 (1957년생), 기타리스트, 울리치 출생.[30]
- 닐 바르탄 (1962–1994), 크리켓 선수, 울리치 출생.[31]
- 레슬리 비커리지 (1961년생), 배우, 울리치 출생.[32]
- 조지 웨일 (1849–1925), 변호사이자 서적 수집가, 울리치 시장, 1903년 새뮤얼 핍스 클럽 설립.[33]
- 메이비스 휠러 (1908-1970), 1954년 연인 비비안 경을 총으로 쏜 사교계 명사, 울리치 출생.[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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