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 모 페냐
1. 개요
윌리 모 페냐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과 일본 프로 야구(NPB)에서 활동한 야구 선수이다. 1998년 뉴욕 메츠와 계약 후 뉴욕 양키스, 신시내티 레즈, 보스턴 레드삭스, 워싱턴 내셔널스 등 여러 MLB 팀에서 뛰었으며, 2011년에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활약했다. NPB에서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오릭스 버펄로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그는 뛰어난 장타력을 지녔으나, 타격 기술과 선구안의 부족으로 삼진이 많은 편이었다. 은퇴 후에는 야구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지도자로 활동하며, 라틴계 사람들을 위한 당뇨병 교육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 이름 | 윌리 모 페냐 |
|---|---|
| 영어 이름 | Wily Mo Peña |
| 스페인어 이름 | Wily Mo Peña Gutierrez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국적 | 도미니카 공화국 |
|---|---|
| 출생지 | 발베르데 주 |
| 생년월일 | 1982년 1월 23일 () |
| 신장 | 190.5 cm |
| 체중 | 117.9 kg |
| 利き腕 | 오른손 |
| 타석 | 오른손 |
| 수비 위치 | 외야수, 1루수 |
| 프로 입단 | 1998년 |
| MLB | 신시내티 레즈 (2002–2005) 보스턴 레드삭스 (2006–2007) 워싱턴 내셔널스 (2007–2008)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11) 시애틀 매리너스 (2011) |
|---|---|
| NPB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2–2013) 오릭스 버펄로스 (2014)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5) 지바 롯데 마린스 (2017) |
| 팀 | 신시내티 레즈 |
|---|---|
| 날짜 | 2002년 9월 10일 |
| 팀 | 시애틀 매리너스 |
|---|---|
| 날짜 | 2011년 9월 25일 |
| 팀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
| 날짜 | 2012년 3월 30일 |
| 팀 | 지바 롯데 마린스 |
|---|---|
| 날짜 | 2017년 10월 4일 |
| 타율 | .250 |
|---|---|
| 홈런 | 84 |
| 타점 | 240 |
| 타율 | .261 |
|---|---|
| 홈런 | 86 |
| 타점 | 260 |
| NPB 올스타 | 2회 (2012년, 2014년) |
|---|---|
| 베스트 나인 | 1회 (2012년) |
| 국가 | 도미니카 공화국 |
|---|---|
| WBC |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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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출생 -
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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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출생 -
이언 소프
이언 소프는 22개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수영계의 전설적인 오스트레일리아 경영 선수로, 은퇴 후에는 방송, 사업, 자선 활동을 하며 사회적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
지바 롯데 마린스 선수 -
사사키 로키
사사키 로키는 2001년 이와테현 출신의 일본 프로 야구 선수로, 고교 시절 최고 구속 163km/h를 기록하고, 2019년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입단하여, 2022년 일본 프로야구 최연소 완봉승 기록을 세웠으며, 202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으로 우승에 기여했고, 2024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도전을 승인받았다. -
지바 롯데 마린스 선수 -
이승엽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이자 현 두산 베어스 감독인 이승엽은 KBO 리그 최초 50홈런 및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우며 '국민 타자'로 활약했고, 일본 프로야구 선수 생활 후 KBO 리그로 복귀하여 은퇴, 이후 방송 해설 및 사회 활동을 거쳐 두산 베어스 감독으로 부임했다. -
보스턴 레드삭스 선수 -
커트 실링
커트 실링은 1988년부터 2009년까지 메이저 리그에서 투수로 활동하며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하고 3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으며, 통산 3,000탈삼진을 달성하고 은퇴 후에는 ESPN 해설가로 활동했으나 해고되었고 사업가로도 활동했다. -
보스턴 레드삭스 선수 -
팀 웨이크필드
팀 웨이크필드는 플로리다 공과대학교 출신으로 MLB에서 19시즌 동안 너클볼 투수로 활약하며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2004년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통산 200승을 기록했으며, 은퇴 후 해설가로 활동하다 2023년 뇌암으로 사망했다.
2. MLB 경력
페냐는 1998년 아마추어 자유 계약 선수로 뉴욕 메츠와 계약했고, 약 1년 후 뉴욕 양키스와 계약했다. 당시 드래프트 외야수 선수 사상 최고 금액인 4년 3700000USD의 메이저 계약을 맺었다. 2001년에는 3루수/지명 타자 드류 헨슨 및 외야수 마이클 콜먼을 상대로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되었다.
신시내티 레즈에서 MLB 데뷔 후, 2004년 26홈런 66타점 타율 .259로 괜찮은 실력을 보였지만, 22볼넷 108삼진으로 선구안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 브론슨 아로요와 트레이드되어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했다. 삼진 90, 볼넷 20으로 선구안이 다소 개선되었고 타율도 .301을 기록했지만, 홈런 11개, 42타점으로 장타율이 하락했다.
2007시즌 중간에 워싱턴 내셔널스로 트레이드되어 타율 .293으로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8년 재계약했으나, 타율이 .205로 다시 하락하며 마이너 리그를 전전하다 뉴욕 메츠 마이너 리그에서도 방출되어 그해 시즌을 쉬었다. 2010시즌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마이너 리그와 계약했다. 마이너 리그에서 타율 .363을 기록하며 6월에 메이저 리그로 복귀했지만, 타율 .196으로 부진했다.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그를 영입했지만, 타율 .209로 다시 방출되었다. 이후 일본 프로 야구로 진출했다.
2.1. 신시내티 레즈 시절
2002년 신시내티 레즈에서 MLB에 입단하였다. 9월에 콜업되어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가졌으며, 첫 타석에서 안타를 기록했다. 메이저 리그 두 번째 경기에서 시카고 컵스의 투수 스티브 스마이스를 상대로 홈런을 쳤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페냐는 레즈의 4번째 외야수로 활동했다. 자주 부상을 당했던 켄 그리피 주니어를 대신하여 중견수로, 우익수에서 오스틴 컨스를 백업하면서 상당한 출전 시간을 보냈다. 신시내티에서의 통산 성적은 302경기에서 타율 .248, 51홈런, 134타점이다.
2003년에는 80경기에 출전했지만 삼진율이 30%에 육박하며 타율 .218, 5홈런, OPS .641로 부진했다.
2004년에는 계약상의 이유로 마이너 강등 없이 110경기에 출전했으며, 켄 그리피 주니어의 부상으로 주전으로 정착했다. 30%에 가까운 삼진율을 기록했지만 336타수에서 25홈런을 기록했다. 2004년 26홈런 66타점 타율 .259로 괜찮은 실력을 보였지만 22볼넷 108삼진으로 선구안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하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5년에는 4월 말부터 6월 초까지 왼쪽 대퇴부 통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99경기에 출전하여 삼진율이 35%에 육박했지만 19홈런을 기록했고, 9월 28일 밀워키 브루어스전 수비 중 펜스에 충돌하여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시즌을 마쳤다.
2.2.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도미니카 공화국 대표로 선출되었다. 시즌 개막 전에 브론슨 아로요와의 트레이드로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했다. 이적 후 299 타석에서 개인 최고 기록인 .349의 출루율과 함께 통산 최고 기록인 .301의 타율을 기록했다. 코코 크리스프의 부상 이후 페냐는 중견수로 투입되었다. 5월 27일, 그는 왼쪽 손목의 부상당한 힘줄 수술이 필요하여 15일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7월 18일, 페냐는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했다. 7월 30일 플래툰 파트너 트로트 닉슨이 이두근을 다치면서 페냐는 우익수에서 더 자주 출전하게 되었다. 다음 날 그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9–8 승리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2루타 하나 차이로 놓쳤다.
2007년영어 시즌에 레드삭스에서 뛴 유일한 활약은 크리스프와 J. D. 드류를 대신하여 중견수와 우익수로 출전한 것이었다. 페냐는 4월 26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마무리 투수 크리스 레이를 상대로 만루 홈런을 쳐내며 레드삭스의 5–2 승리에 기여했다. 시즌 내내 페냐는 트레이드 블록에 오르내렸으며, 트레이드 마감 기한에 거래가 성사되지 못한 적도 있었다.
2.3. 워싱턴 내셔널스 시절
2007년 시즌 중반에 워싱턴 내셔널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부진했으나 트레이드 후 타율 .293을 기록하며 타격이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그해 289타석, 13홈런, .259의 타율, .319의 출루율, .439의 장타율을 기록했고, 12월에는 1년 200만 달러(2009년 상호 옵션 200만 달러 포함)에 계약을 연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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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는 64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205, 2홈런, 10타점, OPS .509를 기록하며 부진에 빠졌다. 2009년 3월 28일, 워싱턴 내셔널스에 의해 지명 할당되었고 웨이버 공시되었으나, 지명받지 못했고 마이너 리그로의 배정을 거부하여 무조건 방출되었다.
2.4. 기타 MLB 팀 경력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방출된 후, 2009년 4월 20일 뉴욕 메츠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었으나 같은 해 6월 22일에 방출되었다. 2010년 5월 30일에는 독립 리그인 브리지포트 블루피쉬에서 뛰다가 7월 19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었다. 그 해 12월 1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하고, 2011년 6월 21일 메이저 리그로 승격되었으나 7월 24일에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2011년 7월 27일 시애틀 매리너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고, 8월 13일 메이저 리그로 승격하여 지명 타자로 22경기에 출전했으나, 10월 30일에 FA가 되었다. 2017년 2월 6일에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1년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했지만, 스프링 트레이닝이 끝날 무렵 방출되었다.
페냐는 여러 팀을 옮겨 다녔지만, 메이저 리그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마이너 리그와 독립 리그를 오가는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3. NPB 경력
페냐는 일본 프로 야구 (NPB)로 눈길을 돌려 2011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계약했다. 2012년 타율 .280, 21홈런, 76타점으로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나, 2013년에는 55경기 출전에 그치며 타율 .233, 1홈런, 16타점으로 부진하여 방출되었다.
이후 오릭스 버펄로스로 이적한 페냐는 2014년 타율 .255, 32홈런(리그 3위), 90타점(리그 2위)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거쳐 2017년에는 지바 롯데 마린스와 계약, 시즌 중 합류했음에도 팀 내 최다인 15홈런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3.1.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2011년 11월 29일, 윌리 모 페냐는 일본 프로 야구(NPB)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2년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해 12월 2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입단이 결정되었고, 등록명은 W.M. 페냐였다. 그는 동일본 대지진 부흥 지원 재단에 홈런 1개당 25000JPY을 기부하고, 40개 이하일 경우에는 1을 기부하기로 공표했다.
2012년에는 13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80, 21홈런, 76타점을 기록하며 리그 4위의 홈런을 기록하는 등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2013년 시즌 개막 전인 1월 9일, 등번호가 "8"에서 "55"로 변경되었다. 5월 9일에 1군 등록이 말소되었고, 2군에서는 타율 0.288, 4홈런을 기록한 뒤 6월 12일에 다시 1군에 등록되었지만, 7월 1일에 또다시 등록이 말소되었다. 9월 12일에 1군 등록 후 시즌 종료 시까지 1군에 있었으나, 55경기 출전에 그치며 1홈런, 타율 0.233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여 시즌 종료 후인 10월 15일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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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오릭스 버펄로스 시절
2013년 12월 11일 오릭스 버펄로스가 계약을 발표했다. 등번호는 42이며, 등록명은 미들 네임을 표기하지 않은 W. 페냐가 되었다. 라쿠텐, 롯데 시절에도 이 표기를 사용했다.
2014년에는 이적 첫해부터 팀의 주포로 활약했다. 14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55, 32홈런(리그 3위), 90타점(리그 2위 타이기록)의 타격 성적을 기록하며, 2013년의 부진에서 벗어났다. 전년도 5위였던 팀을 소프트뱅크와의 리그 우승 경쟁 끝에 2위로 도약시키는 활약을 보였지만, 시즌 종료 후 오릭스 구단에 잔류를 희망했다. 그러나 구단은 페냐의 희망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잔류 협상은 결렬되었으며, 12월 2일에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었다.
3.3.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시절
2015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계약했다. 타율은 .268로 약간 상승했지만, 홈런은 17개로 줄어 장타력이 감소했다. 70볼넷 119삼진으로 선구안은 좋아졌지만, 홈런 수 감소로 인해 재계약에 실패했다.
2015년 3월 9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내야수 계약을 맺고 등번호 42번을 받았다. 3월 29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전에서 심판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해 퇴장당했고, 다음 날 엄중 주의와 함께 100000JPY 벌금을 부과받았다. 많은 볼넷을 얻어 4할에 가까운 출루율을 기록했지만, 득점권 타율이 낮았다. 125경기에 출전했음에도 타율, 홈런, 타점 모두 전년보다 감소했고, 홈런은 17개에 그쳤다. 결국 10월 31일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3.4. 지바 롯데 마린스 시절
2017년 중간에 지바 롯데 마린스와 계약하며 일본 프로 야구에 복귀했다. 6월 6일 지바 롯데와 계약에 합의했고, 등번호는 54번으로 결정되었다. 계약 기간은 시즌 종료까지였으며, 추정 연봉은 300000USD였다.
6월 18일 1군 선수로 등록되었고, 6월 23일 오릭스 버펄로스와의 경기에서 이적 후 첫 안타와 첫 타점을 기록했다. 8월 2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경기에서 77타석 만에 첫 홈런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6회 말에도 홈런을 치는 등 2개의 홈런으로 팀 승리에 기여했다.
시즌 중 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팀 내 최다인 15개의 홈런과 팀 내 3위에 해당하는 38타점을 기록하며 여전한 장타력을 과시했다. 특히 닛폰햄과의 경기에서 15개 홈런 중 7개를 기록했고, 다른 팀과의 경기에서는 타율이 1할대에서 2할 6푼대였던 반면, 닛폰햄과의 경기에서는 타율 .340을 기록하며 강한 면모를 보였다. 시즌 후인 12월 2일,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었다.
4. 선수 특성
페냐는 애덤 던을 뛰어넘는다고 평가받는 엄청난 장타력을 가지고 있어서, 476피트(약 145m)의 초대형 홈런을 날린 적도 있다. 과거에는 '새미 소사 2세'로 장래를 기대받았고, 매니 액타 감독으로부터는 "시즌 35홈런을 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타격 기술이 부족하고, 빠른 공이나 몸쪽 공에는 강한 반면 바깥쪽으로 빠지는 변화구에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메이저 리그 통산 우투수를 상대로는 타율 .237로 약세를 보이지만, 좌투수를 상대로는 타율 .275로 강세를 보였다. 또한 선구안이 좋지 않아, 메이저 리그 통산 삼진율이 30%를 넘는 등 삼진이 많다는 단점도 있었다. 때로는 야수의 글러브를 튕겨낼 정도로 강력한 낮고 빠른 타구를 날리는 것이 특징이다.
메이저 리그에서는 주로 외야수로 뛰었지만, 좌익수 수비는 평균 이하라는 평가를 받았다.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과감하게 다이빙 캐치를 시도하기도 하지만, 타구 판단 능력이 부족하고 송구 정확도도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 프로 야구에서는 주로 지명 타자로 기용되었으며, 2014년에는 1루수를 맡기도 했다. 2015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2017년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는 내야수로 등록되었다.
발도 빠른 편으로, 1루 주자가 1·2루 사이에 협살되는 동안 홈 스틸을 성공시키거나, 좌익수 플라이 때 1루에서 2루로 터치업을 성공시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