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2세
1. 개요
유리 2세는 프세볼로트 3세의 아들로, 1212년부터 1216년, 1218년부터 1238년까지 블라디미르 대공국의 대공이었다. 그는 형제들과의 권력 다툼을 겪었으며, 1214년에는 형과의 싸움에서 벨리키 소리를 빼앗았다. 몽골의 루스 침공 중 1238년 시트 강 전투에서 바투가 이끄는 몽골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 칭호 | 블라디미르 대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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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위 기간 | 1212년–1216년, 1218년–1238년 |
|---|---|
| 선임 | 프세볼로트 큰 둥지 |
| 후임 | (불명) |
| 아버지 | 프세볼로트 큰 둥지 |
| 어머니 | 마리야 시바르노브나 |
| 왕가 | 유리예비치 가문 |
| 배우자 | 아가타 (키예프의 프세볼로트 4세의 딸) |
| 자녀 | 프세볼로트 블라디미르 |
| 출생일 | 1188년 11월 26일 |
| 사망일 | 1238년 3월 4일 |
| 사망 장소 | 시트 강 전투 |
| 러시아어 | Юрий II Всеволодович |
|---|---|
| 로마자 표기 | 유리 II 프세볼로도비치 |
| 참고 | 바딤 카르갈로프 겔리안 프로호로프 프세볼로트 유리예비치 블라디미르의 순교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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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즈달 출신 -
알렉세이 가스테프
알렉세이 가스테프는 러시아의 혁명가이자 과학적 관리 전문가로, 중앙노동연구소를 설립하여 노동의 과학적 조직 연구를 주도하며 효율적인 작업 방식 개발과 노동자 훈련에 힘썼으나, 노동자를 '인간 로봇'처럼 취급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
1238년 사망 -
헨리크 1세
헨리크 1세는 실레시아 공작으로, 내정을 중시하며 실롱스크 공국의 문화와 경제 발전에 기여했고, 폴란드 공국 정치에 개입하여 폴란드 왕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했으며, 몽골의 침략으로 그의 유산이 파괴되었음에도 뛰어난 공작으로 평가받는다. -
1238년 사망 -
알카밀
알 카밀은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으로서 제5차 십자군을 격퇴하고 프리드리히 2세와 교류하며 평화를 유지했으나, 제6차 십자군 침공으로 예루살렘을 십자군에게 양도하고 1238년에 사망했다. -
러시아 민속 -
예르마크 티모페예비치
예르마크 티모페예비치는 16세기 후반 시베리아 칸국을 정복한 코사크 지도자로, 스트로가노프 가문의 지원을 받아 시베리아 원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러시아의 동방 확장에 기여했으나, 이르티시 강 전투에서 전사했고 정복 과정에서의 폭력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
러시아 민속 -
마슬레니차
마슬레니차는 슬라브족의 태양 숭배에서 비롯된 러시아 전통 축제로, 겨울의 끝을 기념하며 블리니를 먹고 민속놀이를 즐기며, 소련 시대 억압 후 부활하여 현대에는 전통과 현대적 요소가 결합된 형태로 기념되고, 러시아 정교 사순절 직전 치즈 주간에 열려 '용서의 일요일'에는 서로 용서를 구한다.
2.1. 초기 생애
유리 2세는 프세볼로트 3세 대공과 그의 아내인 마리아 시바르노브나러시아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208년에는 자신의 형인 콘스탄틴 프세볼로도비치와 함께 랴잔 공국을 공격했다.
프세볼로트 3세는 유리에게 로스토프 공작위를, 콘스탄틴에게 블라디미르 공작위를 물려주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콘스탄틴은 자신이 로스토프와 블라디미르 공작이 되기를 원했다. 프세볼로트 3세는 유리에게 블라디미르 공작위를 넘겨줬지만 콘스탄틴과 유리는 블라디미르 공작위를 놓고 분쟁을 빚게 된다.
1211년에는 키예프의 프세볼로트의 딸 아가피야와 결혼했다.
2.2. 권력 투쟁
프세볼로트 3세 대공과 그의 아내인 마리아 시바르노브나러시아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208년에는 자신의 형인 콘스탄틴 프세볼로도비치와 함께 랴잔 공국을 공격했다.
프세볼로트 3세는 유리에게 로스토프 공작위를, 콘스탄틴에게 블라디미르 공작위를 물려주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콘스탄틴은 자신이 로스토프 공작, 블라디미르 공작이 되기를 원했다. 프세볼로트 3세는 유리에게 블라디미르 공작위를 넘겨줬지만 콘스탄틴과 유리는 블라디미르 공작위를 놓고 분쟁을 빚게 된다.
1212년부터 1216년까지, 1218년부터 1238년까지 블라디미르 대공국의 대공을 역임했다. 1238년 3월 4일 시트강 전투러시아어에서 몽골 제국군의 공격을 받고 전사했다.
* 1209년 형 콘스탄틴, 동생 야로슬라프와 함께 토르조크로 군대를 진격시켰다.
* 1211년에 키예프의 프세볼로트의 딸 아가피야를 아내로 맞이했다.
* 1214년에는 형과 싸워 벨리키 소리를 빼앗겼다.
* 몽골의 루스 침공 중 1238년에 바투가 이끄는 몽골 군대와 시티 강에서 전투를 벌이다 전사했다.
2.3. 블라디미르 대공
프세볼로트 3세와 그의 아내 마리아 시바르노브나러시아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208년 형 콘스탄틴 프세볼로도비치와 함께 랴잔 공국을 공격했다.
프세볼로트 3세는 유리에게 로스토프 공작위를, 콘스탄틴에게 블라디미르 공작위를 물려주려 했으나 콘스탄틴은 로스토프와 블라디미르 모두 자신이 다스리기를 원했다. 결국 프세볼로트 3세는 유리에게 블라디미르 공작위를 넘겨주었지만, 이후 콘스탄틴과 유리는 블라디미르 공작위를 놓고 분쟁을 벌였다.
1212년부터 1216년까지, 그리고 1218년부터 1238년까지 블라디미르 대공국의 대공을 역임했다. 1238년 3월 4일 시트강 전투러시아어에서 바투가 이끄는 몽골 제국군의 공격을 받고 전사했다.
* 1209년 형 콘스탄틴, 동생 야로슬라프와 함께 토르조크로 군대를 진격시켰다.
* 1211년 키예프의 프세볼로트의 딸 아가피야와 결혼했다.
* 1214년 형과 싸워 벨리키 소리를 빼앗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