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벽광
1. 개요
유벽광은 전한 문제 시기에 열후로 봉해졌으며, 이후 제남나라의 왕이 되었다. 그는 오초칠국의 난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여 복주되었고, 제남나라는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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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54년 사망 -
조조 (전한)
조조는 전한 시대에 활동하며 흉노 대책 마련, 중농억상 정책 주장, 삭번 정책 주도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으나 오초칠국의 난으로 처형당한 관료였다. -
기원전 154년 사망 -
유비 (오왕)
유비는 전한 고조 유방의 형 유희의 아들이자 영포 진압에 공을 세워 오왕에 봉해진 황족 제후왕으로, 구리와 소금 생산으로 부를 축적하고 세력을 키웠으나 오초칠국의 난을 일으켜 진압당하고 사망했다. -
자살한 왕족 -
유립
유립은 전한 시대의 제후로, 양왕 유정의 뒤를 이어 양왕이 되었으나, 여러 범죄를 저지르고 봉국을 빼앗긴 뒤 자살했다. -
자살한 왕족 -
알리 레자 팔라비
알리 레자 팔라비는 팔라비 왕조의 왕자로서 이란 혁명 이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학업을 이어갔으며, 하버드 대학교에서 고대 이란학 박사 과정을 밟던 중 2011년 보스턴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유벽광은 전한의 제후왕으로, 문제 때 역후(朸侯) 또는 늑후(扐侯)로 봉해졌다가, 후에 제남나라 왕이 되었다.
전한 경제 시대에 조조의 주도로 제후왕의 영지를 줄이는 정책이 추진되자, 이에 반발한 오초칠국의 난에 가담하였다. 오왕 유비의 편에 서서 교서왕 유앙과 함께 거사를 도모하였고, 다른 제나라 왕들과 함께 제나라 서울 임치를 포위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정의 진압군에 의해 난이 진압되면서, 교서왕은 자살하고 유벽광은 처형되었다. 이후 제남나라는 한나라의 군으로 편입되었다.
2.1. 제후왕 책봉
문제 4년(기원전 176년), 제북왕 유흥거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자살한 이듬해에, 문제에게서 형제들과 함께 열후로 봉해져 역후(朸侯) 혹 늑후(扐侯)가 되었다. 문제 16년(기원전 164년), 전년 제문왕 유칙이 후사 없이 죽어 폐지된 제나라를 일곱으로 나누어 성양공왕과 제도혜왕의 아들들을 봉하면서 제남나라 왕이 되었다. 제남왕은 재위 4년(기원전 161년)과 6년(기원전 159년) 두 차례 입조했다.
2.2. 제남왕 즉위
문제 16년(기원전 164년) 전년 제문왕 유칙이 후사 없이 죽어 폐지된 제나라를 일곱으로 나누어 제도혜왕의 아들들과 성양공왕을 봉하면서 제남나라 왕이 되었다. 제남왕은 재위 4년(기원전 161년)과 6년(기원전 159년) 두 차례 입조했다.
2.3. 오초칠국의 난 가담과 죽음
전한 경제 시대에 조조를 중심으로 조정에서 제후왕의 영지를 줄이는 정책을 펴자, 이에 반발한 오왕 유비가 교서왕 유앙을 한편으로 꼬드겼고, 유앙은 성양나라를 제외한 여섯 제나라에 사람을 보내 거사에 함께하도록 권했다. 제남왕도 이에 가담해, 가담 의사를 철회한 제효왕을 교서왕, 교동왕, 치천왕과 함께 공격해 제나라 서울 임치를 포위했다. 그러나 조정의 진압군이 오나라와 초나라를 무찌르고 난포와 조양을 보내 제나라를 구원하자, 제나라를 포위한 세 나라의 군대는 흩어져 각각 자기 나라로 갔다. 교서왕이 용서를 구했으나 자살하자, 제남왕도 처형되었다. 제남나라는 폐지되어 한나라의 군으로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