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칙
1. 개요
유칙은 전한 문제 연간의 제나라 왕으로, 기원전 179년에 즉위하여 기원전 165년에 사망했다. 유칙은 아버지 유양의 뒤를 이어 제나라 왕이 되었으나, 문제 2년에 영토가 축소되었고, 문제 15년에 후사 없이 사망하여 제나라는 폐지되었다. 그의 죽음에 대해 당시 의사 순우의는 젊은 나이의 비만과 운동 부족, 부적절한 침 치료가 원인이 되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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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65년 사망 -
장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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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65년 사망 -
유복 (하간애왕)
유복은 후한 시대 하간애왕으로, 하간문왕의 뒤를 이었으나 이듬해 사망하여 후사 없이 봉국이 폐지되었다. -
병사한 사람 -
현진건
현진건은 일제강점기의 사실주의 소설가로, 대표작으로는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등이 있으며, 일제강점기 언론 탄압을 받기도 했다. -
병사한 사람 -
김성수 (언론인)
김성수는 인촌이라는 호를 사용한 언론인이자 기업인, 정치인으로, 경성방직 설립, 동아일보 창간, 보성전문학교 인수 및 발전에 기여했으며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으나 친일 논란이 있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劉則중국어은 기원전 179년 아버지 애왕이 죽자 제나라 왕위를 이었다. 전한 문제는 숙부 주허후와 동모후를 왕으로 봉하면서 제나라 영토를 나누어 주었고, 이로 인해 유칙의 영토는 축소되었다. 기원전 165년에 유칙이 사망하자, 시호는 문(文)이라 하였고, 자식이 없어 제나라는 한나라의 직할지가 되었다. 이듬해 도혜왕의 아들들이 제나라를 나누어 왕이 되면서, 유칙의 제나라는 크게 축소되었다.
2.1. 제나라 왕 즉위
劉則중국어은 기원전 179년 아버지 애왕이 사망하자 왕위를 계승했다.
전한 문제 2년(기원전 178년), 전한 문제가 주허후와 동모후를 조나라와 양나라 왕으로 삼기로 한 약속을 깨면서 제나라 영토 중 성양군을 주허후에게, 제북군·제남군을 동모후의 봉토로 헌납해야 했다. 이로써 주허후는 성양왕이, 동모후는 제북왕이 되었다.
2.2. 영토 축소와 제후왕 분봉
문제 2년(기원전 178년), 문제가 숙부 주허후와 동모후를 조나라와 양나라 왕으로 삼으려던 약속을 깨고 제나라 영토 일부를 나누어 주었다. 성양군은 주허후에게 주어 성양왕이 되었고, 제북군과 제남군은 동모후에게 주어 제북왕이 되었다.
2.3. 사망과 후사 단절
유칙은 기원전 165년에 사망하였으며, 자식이 없어 후사가 끊겼다. 시호는 문(文)이다. 그의 죽음으로 제나라는 폐지되어 한나라의 직할지가 되었다.
이듬해 4월 병인(丙寅)일, 도혜왕의 아들 양허후(陽虛侯) 유장려가 제왕에 봉해졌다. 이외에도 도혜왕의 다른 다섯 아들이 함께 제나라를 나누어 왕이 되어, 유장려의 새 제나라는 이전 문왕의 제나라의 임치군 서부로 축소되었다.
전한 문제는 제나라의 태창령을 지낸 의사 순우의에게 문왕이 병사한 까닭을 물어보았고, 순우의는 소문으로 들은 문왕의 증세로 병을 진단해 대답했다. 순우의에 따르면 문왕은 병들었을 때 살이 찌고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해 천식이 생겼고, 나이가 미처 20이 되지 못했으나 달리지 않고 걸어 천도에 순응하지 않았다. 나중에 의원들이 침을 놓아서 더욱 위독해졌는데, 문왕의 질병에는 침을 쓰면 안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