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복형
1. 개요
유복형은 몽골 제국 시대의 무장으로, 아버지 유통의 뒤를 이어 몽골 제국에 복무했다. 몽케 칸의 남송 원정에 참전하고, 쿠빌라이 칸 치세에는 아릭 부케와의 내전에서 활약하며 무위군 부도지휘사, 좌익 시위친군 부도지휘사 등을 역임했다. 1274년 원나라의 일본 원정 당시 좌부도원수로서 일본을 침공했으나, 하카타 전투에서 부상당했다. 이후 타이핑루 총관 등을 지내다 1283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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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 시대의 외국인 -
홍다구
홍다구는 고려 출신으로 원나라에서 쿠빌라이 칸의 신임을 받아 장군으로 활약하며 삼별초 진압과 일본 원정 등에 참여했으나, 고려에 가혹한 부역을 강요하고 김방경을 모함하려 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
가마쿠라 시대의 외국인 -
훈둔
원나라 인물 훈둔은 봉주경략사로 고려에 파견되어 삼별초의 난을 진압하고 두 차례의 일본 원정에서 동로군을 이끌었으나 실패하여 원나라의 국력을 소모시키고 고려 백성들의 고통을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만화, 소설, 게임 등 다양한 작품의 소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
1283년 사망 -
문천상
남송 말기 문신 문천상은 몽골 침략에 맞서 의용군을 조직하여 항전하다 체포되어 순절했으며, 그의 충절과 정기가는 동아시아 독립운동에 영향을 주었고 민족 저항 정신의 상징으로 추앙받으나 동북공정 관점에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
1283년 사망 -
알렉산더 스튜어트
알렉산더 스튜어트는 스코틀랜드의 궁내관으로, 제7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하고 알렉산더 3세의 섭정으로 활동했으며, 라르그스 전투에서 스코틀랜드 군대를 지휘하여 노르웨이의 침략을 막아 스튜어트 왕조의 기반을 마련하고 스코틀랜드 독립 수호에 기여했다. -
원나라의 정치인 -
주달관
주달관은 원나라 시기 캄보디아를 방문하여 《진랍풍토기》를 저술, 앙코르 시대의 캄보디아 사회, 문화, 종교, 생활상 등을 기록한 인물이다. -
원나라의 정치인 -
남부이 카툰
콩기라트 부족 출신인 남부이 카툰은 쿠빌라이 칸의 제1카툰이자 정비로서, 쿠빌라이 칸 만년에 국정 운영에 참여하여 섭정 역할을 수행했으며, 쿠빌라이 칸과의 사이에서 테메치라는 아들을 두었다.
2. 생애
동평로의 한인 군벌 엄실 휘하 무장 유통의 아들로 태어나 야율초재 밑에서 공부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몽골 제국에 출사하여 몽케 칸의 남송 원정에 참여했으며, 이후 쿠빌라이 칸을 섬겨 그의 친위군인 무위군(시위친군)의 부대장이 되었다. 1260년에는 카라코룸 경비 임무를 수행했고, 1262년 이탄의 난 때는 사재를 털어 군량미를 보충하기도 했다.
1273년 여몽연합군의 제1차 일본 원정(분에이의 역) 당시 정동 좌부도원수(부사령관 격)로 임명되어 군사 4만 명과 전선 900척을 이끌고 참전했다. 하카타에 상륙하여 전투를 벌이던 중 화살에 맞아 부상을 입었고, 이는 원정군이 철수하는 한 원인이 되었다.
원정 실패의 책임을 지고 강등되어 제2차 일본 원정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이후 타이핑루 총관, 진국상장군, 화이시도 선위사 도원수 등을 역임했으며, 1283년 봉국상장군에 오른 해에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와 배경
아버지는 행군천호 유통이다. 아버지 유통은 동평로의 4대 한인 군벌 중 한 명인 엄실 휘하의 무장이었으며, 덕주 군민총관을 지냈다.
유복형은 야율초재의 문인이었다. 야율초재의 문집인 『담연거사문집』에는 「대유수청지공니선주보선사」와 「송문인유복형정촉」이라는 글에서 유복형의 이름이 언급된다. 이 글에서 야율초재는 유복형에 대해 "네가 제자가 된 지 20년이나 되었는데 학문을 좋아하지 않고 싸움만 하고 다녔구나"라고 평가했다.
2.2. 몽골 제국에서의 활약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몽케 칸의 남송 원정에 참여하여, 엄씨의 동평군을 이끌고 공적을 세웠다. 몽케 칸 사후 권력 다툼 과정에서 쿠빌라이 칸은 아릭 부케에 맞서기 위해 한인 군벌의 병력을 자신의 직속 친위군으로 편입하여 무위군(후에 시위친군)을 조직했다. 이때 유복형은 4대 세후 휘하의 유력 무장 중 한 명으로 발탁되어 부대장급 장교로 임명되었다.
중통 원년(1260년)에는 쿠빌라이 칸이 아릭 부케를 물리친 후 카라코룸을 경비하는 임무를 맡았고, 무위군 부도지휘사(부사령관)가 되었다. 중통 3년(1262년) 한인 군벌 이탄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는 부족한 군량미를 보충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내놓았으며, 이에 쿠빌라이 칸이 포상금을 내렸으나 이를 사양하였다.
지원 2년(1265년)에는 좌익 시위친군 부도지휘사로 임명되었고, 지원 9년(1272년)에는 소용대장군·봉주 등처 경략사 직책을 받았다. 지원 10년(1273년)에는 일본 침공을 위한 원정군의 부사령관 격인 정동 좌부도원수에 임명되었다.
2.3.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
지원 11년(1274년), 원나라의 일본 1차 침공(분에이의 역) 당시 좌부도원수로서 참전하였다. 『원사』 유복형전에는 그가 군사 4만, 전선 900척을 통솔하여 일본을 정벌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2.3.1. 하카타 전투와 부상
지원 11년(1274년), 원의 일본 1차 침공(분에이의 역) 당시 좌부도원수로서 참전했다. 『원사』 유복형전에는 "(유복형은) 정동 좌부도원수로 옮겨, 군사 4만, 전선 900척을 통솔하여 일본을 정벌했다. 왜병 10만과 마주쳐 싸워 이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카타에 상륙한 후 벌어진 모모치하마·메이노하마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다. 원나라 측 기록인 『고려사』에 따르면 날아온 화살에 맞았다고 한다. 반면 일본 측 기록인 『하치만구도훈』에는 쇼니 카게스케가 활을 쏘아 적군 대장을 말에서 떨어뜨렸는데, 이후 잡힌 포로가 그 인물이 대장군 유장공(유복형으로 추정됨)이었다고 증언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 지휘관의 부상으로 원나라 군대는 혼란에 빠져 결국 패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