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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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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다구는 1244년 몽골에 투항한 홍복원의 아들로, 원나라의 지배 아래에서 고려를 침략하고 삼별초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했다. 그는 몽골의 일본 침략에 참여하여 고려 백성을 가혹하게 착취했으며, 일본 원정 실패 이후 세력이 약화되었다. 말년에는 요양행성의 관리로 재등용되었으나 사망했다.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조국을 배신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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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다구
인물 정보
이름홍다구
한자 표기洪茶丘
로마자 표기Hong Dagu
출생1244년
사망1291년
국적고려 (원나라)
직업원나라의 무장
주요 활동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 참여

2. 생애

홍다구는 원나라 쿠빌라이 휘하의 장군이었다. 1271년 삼별초의 난 진압에 신도 휘하에서 활약했으며, 이때 삼별초가 원에 대항하는 고려 왕으로 옹립했던 승화후 왕온을 살해했다.

쿠빌라이의 일본 원정 계획에 따라, 홍다구는 감독조선관 군민 총관으로 임명되어 고려인들에게 무거운 부역을 강요했다. 1274년 문영의 역에서는 유복형과 함께 원군의 부사령관(우부원수)으로 일본을 침공했으나, 일본군의 저항으로 철수했다.

홍다구는 조국 고려에 가혹한 부역을 강요하고, 김방경을 모함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281년 홍안의 역에서는 동로군 사령관 겸 동정 도원수로 출진했으나, 시가 섬 전투에서 일본군에 대패하여 목숨을 잃을 뻔했다. 1283년 쿠빌라이의 제3차 일본 침공 계획 시 군비 정비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행적으로 인해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홍다구를 조국을 배신한 인물로 비난한다. 반면, 쿠빌라이는 홍다구를 원나라 조정 방면군 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중용했다.

2. 1. 가문

남양 홍씨를 본관으로 하며, 홍복원의 아들이다. 본명은 홍준기(洪俊奇)이고, 몽골식 이름은 차르구(察爾球)이다. '다구'라는 이름은 어릴 적 이름이다.[1] 고려 개국공신 홍은열의 후손으로, 인주도령을 지낸 홍후의 6대손이다. 5대조 유기는 삼중대광, 고조부 홍덕과 증조부 홍제선, 할아버지 홍대순은 모두 인주도령을 역임했다.[1]

아버지는 홍복원으로 몽골에 투항하여 고려 침략을 도왔으며, 홍다구는 몽골에서 태어났다.[1]

2. 2. 초기 생애

남양 홍복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홍준기(洪俊奇), 몽골식 이름은 차르구(察爾球)이며, '다구'는 어릴 적 이름이다.[2] 고려 개국공신 홍은열의 후손으로, 인주도령을 지낸 홍후의 6대손이다. 증조부 홍제선과 할아버지 홍대순은 한때 인주도령을 역임하기도 했다.

아버지를 따라 몽골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나이에 종군하여 쿠빌라이의 총애를 받았다.[2] 1261년(원종 2년) 아버지의 관직인 관령귀부고려군민총관(管領歸附高麗軍民摠管)을 승계하였다.

아버지 홍복원은 1231년 몽골에 항복하고 몽골의 고려 침략에 협력했다. 1258년 고려 왕족 영녕공 왕준의 참언으로 원나라에서 처형되었으나, 1261년 명예가 회복되었다. 하지만, 홍다구는 조국 고려에 대한 증오를 품었다고 전해진다.[2]

2. 3. 삼별초의 난과 일본 원정

1274년 홍다구는 소용대장군안무사고려군민총관(昭勇大將軍安撫使高麗軍民總管)이 되어 일본 원정을 준비했고, 10월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에 출정하였다.[2] 그해 동정우부도원수(東征右副都元帥)가 되어 동료 흔도와 고려인 김방경과 함께 일본 원정에 참여했으나, 실패하고 1275년 원나라로 돌아갔다.[2]

1281년 2차 일본 원정에 나섰으나 태풍으로 실패하고 회군하였다.[2]

2. 4. 말년

1290년, 지병으로 사직했으나 내안의 잔당인 합단이 고려를 침략하자 요양행성의 관리로 재등용되었다. 그러나 1291년에 죽었다.[1]

3. 가족 관계

관계이름비고
아버지홍복원1258년 처형, 1261년 복권
동생홍군상고려-원 외교관 ( ~ 1309년), 고려에 있었으나 후손 미상
아들홍중희(洪重喜)1276년1279년 황제 호위병, 1284년 원나라 사신으로 고려 방문, 씨족원류에 이름만 전함
아들홍충경(洪忠敬)1287년 나얀의 반란 진압, 1306년 요양 평장총사
5촌 조카홍탁홍선의 손자, 평리
6촌화비 홍씨홍탁의 딸, 충혜왕의 후궁
친척홍백수, 홍손( ~ 1380년), 홍탁, 홍수, 홍익, 홍명리화상1356년 공민왕에 의해 숙청[2]


4. 평가

홍다구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나뉜다. 하나는 조국을 배신한 인물이라는 부정적 평가이고, 다른 하나는 원나라에서 중용된 유능한 장군이라는 긍정적 평가이다.

홍다구의 친척 중 일부는 고려에 남아 비교적 높은 지위를 얻었지만, 고려와 원나라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홍다구의 동생 홍군상은 고려와 원나라 사이의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홍복원의 형제 홍백수와 그의 아들 홍손, 손자 홍탁, 홍수, 홍익, 홍명리화상은 1356년 공민왕에 의해 숙청되었다.[2]

4. 1. 부정적 평가

홍다구는 현대 대한민국에서 조국을 배신한 인물로 비난받고 있다. 그의 아버지 홍복원은 고려 북부 국경을 지키는 군인이었으나, 1231년 몽골에 항복하고 몽골의 고려 침략에 협력했다. 이 때문에 1258년 홍복원은 고려 왕족의 참언으로 원나라에서 처형되었다. 홍다구는 아버지의 죽음에 원한을 품고 고려에 대한 증오를 키웠다고 전해진다.[2]

홍다구는 원나라 쿠빌라이 칸 아래에서 장군이 되어, 1271년 삼별초의 난 진압에 참여했다. 이때 삼별초에 의해 옹립된 왕온을 살해했고, 이후 일본 원정을 계획하는 쿠빌라이의 명을 받아 고려인들에게 무거운 부역을 강요했다. 1274년 문영의 역에서는 원나라군의 부사령관으로 일본을 침공했으나 일본군의 저항에 철수했다.[2]

홍다구는 조국인 고려에 가혹한 부역을 강요하는 한편, 고려 출신 장군 김방경을 함정에 빠뜨리려 했다는 기록이 있다. 1281년 홍안의 역에서는 동로군 사령관으로 참전했으나, 시가 섬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대패하고 죽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1283년 쿠빌라이가 제3차 일본 침공을 계획했을 때에도 군비 정비 역할을 맡았다.[2]

홍다구의 두 아들 홍충희와 홍충경 역시 아버지의 고려에 대한 적대감을 물려받았다. 1309년부터 1312년까지 홍씨 형제는 고려를 원나라의 성으로 편입하려 했고, 고려 왕과 심양왕의 지위를 동시에 가진 충선왕을 비판했다. 그러나 1312년 원나라 황제는 이 제안을 거부했고, 홍씨 가문은 대부분의 권력을 잃었다.[2]

4. 2. 긍정적 평가

홍다구는 원나라 쿠빌라이 칸 아래에서 장군으로 활약하며 여러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271년에는 삼별초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하였고, 문영의 역(1274년)과 홍안의 역(1281년) 등 원나라의 일본 원정에도 참전하였다. 특히 홍안의 역에서는 동로군 사령관, 동정 도원수를 맡았으나, 시가 섬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대패하기도 했다.[2]

이러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홍다구를 조국을 배신한 인물로 평가하고 비판한다. 그의 아버지 홍복원1231년 몽골에 항복하고 몽골의 고려 침략에 협력한 점, 1258년 고려 왕족 왕준의 참언으로 원에서 처형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고려에 대해 증오를 품게 된 점 등이 그 배경으로 작용한다. 홍다구는 고려인들에게 무거운 부역을 강요하고, 김방경을 모함하려 했다는 기록도 이러한 부정적 평가를 강화한다.

하지만 원나라 측에서는 홍다구를 중용하여 방면군 장관을 맡기는 등 그의 능력과 공헌을 인정했다는 사실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5. 기타

홍다구의 아들 홍중희(洪重喜)는 씨족원류에 이름만 전하고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1]

홍다구의 동생 홍군상(洪君祥)은 고려에 있었으나 그의 후손들의 존재는 미상이다.[2]

사촌형제 홍선(洪詵)의 손녀이자 5촌 조카인 평리(評理) 홍탁(洪鐸)의 딸이 충혜왕의 후궁 화비 홍씨(和妃洪氏)가 된다.

참조

[1] 논문 Mongol Invasions of Northeast Asia Korea and Japan https://www.asianstu[...]
[2] 논문 Political Trends of Hong Bog Won Clan in the Period of Mongol Domination http://ijkh.khistory[...]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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