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수 (1857년)
1. 개요
유정수는 1857년에 태어나 친일 행위로 비판받는 인물이다. 1881년 신사유람단 수행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게이오의숙에서 수학했으며, 귀국 후 한성부윤을 역임하며 개화파 관료로 활동했다. 1921년부터 중추원 참의를 지냈으며, 한국병합기념장 등을 받았다. 친일 행적으로 인해 친일파 명단에 포함되었고,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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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8년 사망 -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는 프랑스 출신의 시인이자 식물학자이며, 프로이센 군 복무와 세계 일주 탐험을 거쳐 소설 《페터 슐레미흘의 기이한 이야기》를 대표작으로 남겼고, 식물학 연구와 시 창작으로 명성을 얻었다. -
1838년 사망 -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는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시대, 왕정 복고 시기를 거치며 활약한 정치가이자 외교관으로, 뛰어난 외교 능력으로 프랑스의 국익을 지키고 19세기와 20세기 외교의 기초를 다지는 데 기여했다. -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이원수 (작가)
이원수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로서 1926년 동시 〈고향의 봄〉으로 등단하여 동요, 동시, 동화, 소년소설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했으나, 친일 작품으로 논란이 있다. -
일제강점기의 관료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일제강점기의 관료 -
김창영 (1890년)
김창영은 일제강점기 경찰 및 관료, 만주국 관리로서 항일 무장 세력 탄압과 귀순 공작에 참여하고 금산군수와 전라남도 참여관을 지냈으며, 광복 후 경성부부윤을 역임했으나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처벌받고 친일파 명단에 포함되었다.
2. 생애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어윤중의 수행원으로 유길준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 게이오의숙에서 수학했다. 귀국 후 1894년 한성부윤에 임명되는 등 개화파 관료로 활동했다. 1921년부터 네 차례 중추원 참의를 지냈고, 경학원 대제학과 명륜학원 총재를 지낸 유교계 중심 인물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 다이쇼대례기념장, 쇼와대례기념장 등을 받았으며, 1935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수록된 353인 중 한 명이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광복회와 함께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고,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유정수의 재산에 대해 국가 귀속 결정을 내렸으며,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 유정수를 포함시켰다.
2.1. 개화기 활동
1881년 신사유람단이 파견되었을 때 어윤중의 수행원으로 유길준과 함께 일본에 갔다가 게이오의숙에서 수학했다. 이들은 게이오의숙 최초로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유학생으로 입학한 경우라 일본 사회의 관심을 받았다. 일본 언론에는 조선의 양반 출신이나 관직이 없는 젊은 서생으로 소개되었다.
귀국한 뒤 1894년 한성부윤에 임명 되는 등, 유길준, 윤치호, 박영효, 박정양 등과 함께 친일 성향의 개화파 관료로 활동했다. 1895년 한성부윤으로 재직하면서 한국 최초의 지구단위 도시 정비 지침으로도 평가되는 '도로를 범(犯)하여 가옥을 건축하는 일을 일체 금하는 명령'을 발표한 바 있다.
2.2.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
1921년 중추원 참의에 처음 임명되었고, 1926년, 1931년, 1936년에 연임되어 네 차례 참의직을 지냈다. 경학원 대제학과 명륜학원 총재를 지낸 유교 계열의 중심 인물이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1912년 논공행상을 하면서 수여한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고, 다이쇼와 쇼와의 즉위를 기념하는 다이쇼대례기념장, 쇼와대례기념장도 받았다. 1935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공로자명감》에 기록된 조선인 353명 중 한 명이기도 하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광복회와 함께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2007년 11월 22일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유정수의 재산에 대해 국가 귀속 결정을 내렸고, 12월 6일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 유정수를 포함시켰다.
3.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광복회와 함께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2007년 11월 22일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유정수의 재산에 대해 국가 귀속 결정을 내렸고, 12월 6일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 유정수를 포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