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시오 코르타바리아
1. 개요
이나시오 코르타바리아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로, 레알 소시에다드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다. 그는 레알 소시에다드의 주장을 맡아 팀의 라리가 2연패를 이끌었으며, 1982년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을 차지했다. 1984-85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4경기에 출전했다. 정치적인 활동도 병행하여 바스크 국기를 들고 나와 바스크 민족주의를 지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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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이나시오 코르타바리아 아바라테기 |
|---|---|
| 출생일 | 1950년 7월 31일 |
| 출생지 | 몬드라곤, 스페인 |
| 키 | 1.82m |
| 포지션 | 센터 백 |
| 유소년 클럽 | 레알 소시에다드 |
|---|---|
| 클럽 경력 | "1968–1971: 산 세바스티안 (77경기, 1골)" "1971–1985: 레알 소시에다드 (355경기, 16골)" |
| 총 출장 및 득점 | 432경기, 17골 |
| 국가대표 경력 | "1974–1976: 스페인 아마추어 (4경기, 0골)" "1976–1977: 스페인 (4경기, 0골)" "1979: 바스크 국가 (2경기, 0골)" |
| 감독 경력 | 1995–1996: 레알 소시에다드 B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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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사테 출신 -
미켈 곤살레스 마르티네스
미켈 곤살레스 마르티네스는 레알 소시에다드 유소년 팀에서 성장하여 1군 주전으로 활약하며 팀의 라 리가 승격과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기여했고, 레알 사라고사와 AEK 라르나카를 거쳐 AEK 라르나카 소속으로 키프로스 슈퍼컵에서 우승한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다. -
아라사테 출신 -
루이스 로페스 레카르테
루이스 로페스 레카르테는 육상 선수로 시작하여 프로 축구 선수로 활동하며 레알 소시에다드, FC 바르셀로나 등에서 활약했고,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4경기에 출전한 후 은퇴하여 등산을 즐겼다. -
남자 축구 수비수 -
마루야마 요시아키
마루야마 요시아키는 일본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J리그와 태국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J리그 아시아 앰배서더로 활동했다. -
남자 축구 수비수 -
미겔 앙헬 나달
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
바스크주 출신 축구 선수 -
훌렌 로페테기
훌렌 로페테기는 스페인 출신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감독으로, 선수 시절에는 골키퍼로 활약했으며, 지도자로서 스페인 연령별 대표팀과 여러 클럽을 거쳐 현재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감독을 맡고 있으며, 세비야 FC 감독 시절 UEFA 유로파리그에서 우승했다. -
바스크주 출신 축구 선수 -
빅상트 리자라쥐
빅상트 리자라쥐는 프랑스 바스크 출신의 전 축구 선수로,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다수의 주요 대회에서 우승했고, FC 바이에른 뮌헨과 아틀레틱 빌바오에서도 활약했으며 은퇴 후에는 축구 해설가 및 브라질리언 주짓수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2. 클럽 경력
코르타바리아는 선수 생활 전체를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보냈다. 레알 소시에다드 유소년팀 출신으로, B팀인 산 세바스티안 CF를 거쳐 1970-1971 시즌에 1군으로 승격되었으며, 이후 은퇴할 때까지 14시즌 동안 레알 소시에다드에서만 활약했다.
2.1. 레알 소시에다드
코르타바리아는 기푸스코아 도 아라사테-몬드라곤 출신이다. 현역 시절에는 레알 소시에다드에서만 활약했는데, 1971년 9월 19일 데포르티보와의 경기에서 1군이자 라 리가 첫 경기를 뛰었고, 첫 시즌에 14경기에 출전했다.
이후 코르타바리아는 거의 결장하지 않았고, 바스크 연고 구단이 2년 연속 우승할 당시에는 선수단 주장을 맡아 각각 30경기, 31경기에 출전해 (개인 역대 최고인) 5골, 6골씩 각각 기록했다. 그는 스포르팅 히혼과의 1980-81 시즌 최종전 원정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해 2-2 무승부에 일조하였고, 레알 소시에다드는 골득실차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앞서며 리그 정상에 올랐다.
이후 코르타바리아는 아구스틴 가하테, 알베르토 고리스, 후안 안토니오 라라냐가 등 구단 유소년부 출신 차세대 선수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1984-85 시즌이 끝나고 35세 생일을 앞두고 은퇴했다. 그는 스페인 1부 리그 경기에 총 355번 출전했고, 모든 대회를 통틀어 442경기에 출전해 레알 소시에다드 역대 최다 출장 8위를 기록했다.
레알 소시에다드 유소년 팀에서 성장하여 수년간 B팀인 산 세바스티안 CF에서 활약한 후 1970-1971 시즌에 1군으로 승격했다. 이후 은퇴할 때까지 14시즌 동안 프리메라 디비시온 355경기 16골, 산 세바스티안 CF를 포함한 모든 공식 경기에서 총 442경기 22골을 기록했다.
유연한 체격을 가진 센터백으로, 수비 안정감이 뛰어났다. 또한 세트 플레이에서의 공격 가담으로 항상 상대를 위협했다. 그는 레알 소시에다드 역사상 최고의 주장이자, 루이스 미겔 아르코나다, 헤수스 마리아 사모라, 로베르토 로페스 우파르테, 헤수스 마리아 사투루스테기, 페리코 알론소 등 클럽 최강 세대 선수들 중 한 명이었다.
코르타바리아는 소시에다드가 라리가에 정착했던 시대와 이후 황금 시대를 열었던 시기를 모두 경험했다. 1979-80 시즌에는 2위를 차지하며 당시 최장 무패 기간 신기록을 세웠고, 1980-81 시즌과 1981-82 시즌에는 라리가를 제패했다. 그리고 1982년 제1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를 획득하고, UEFA 챔피언스 리그 1982-83에서는 준결승에 진출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코르타바리아는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스페인 국가대표팀에 4차례 차출되었다. 첫 국가대표팀 경기는 1976년 5월 22일 뮌헨에서 열린 UEFA 유로 1976 예선 서독전으로, 스페인은 0-2로 패했다. 이 경기로 스페인은 유고슬라비아에서 열린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는 1977년 3월 27일 알리칸테에서 열린 헝가리와의 친선 경기로, 1-1 무승부로 끝났다. 코르타바리아는 당시 스페인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지 않았다. 그는 바스크 대표팀 소속으로도 2번의 친선 경기에 출전했다.
4. 정치 활동
1976년 12월 5일,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경기를 앞두고, 코르타바리아는 상대 선수단 주장인 호세 앙헬 이리바르와 함께 바스크 국기인 이쿠리냐를 들고 나와 경기장 중앙 원에 놓았다. 이 사건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사후 공공장소에 바스크 국기를 선보인 것으로, 당시에는 여전히 불법이었다.
코르타바리아는 바스크 독립이라는 정치적 이념을 이유로 스페인 대표팀에서 뛰는 것을 명백히 포기한, 바스크인 선수 중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같은 날 에스타디오 데 아토차에서 열린 바스크 더비에서 코르타바리아는 호세 앙헬 이리바르와 함께 이쿠리냐 깃발을 들고 경기장에 입장했다. 두 사람은 깃발을 센터 서클까지 옮겨 놓았는데, 이는 프란시스코 프랑코 사망 이후에도 여전히 법적으로 금지된 행위였다. 하지만 양 팀 주장이 함께 바스크 민족주의의 상징을 내건 이 사진은 바스크 지방이 스페인 민주화라는 중요한 변혁기를 맞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5. 수상 내역
| 주요 기록 | |
|---|---|
| 프리메라리가 | 2회 우승 (1980-81, 1981-82) |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 1회 우승 (1982) |
5.1. 레알 소시에다드
코르타바리아는 기푸스코아 도 아라사테-몬드라곤 출신으로, 현역 시절 레알 소시에다드에서만 활약했다. 1971년 9월 19일 데포르티보와의 경기에서 1군이자 라 리가 첫 경기를 뛰었고, 첫 시즌에 14경기에 출전했다.
그 후, 코르타바리아는 거의 결장하지 않았고, 바스크 연고 구단이 2년 연속 우승할 당시에는 선수단 주장을 맡아 각각 30경기, 31경기에 출전해 (개인 역대 최고인) 5골, 6골씩 각각 기록했다. 그는 스포르팅 히혼과의 1980-81 시즌 최종전 원정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해 2-2로 비기는 데 일조하였고, 레알 소시에다드는 골득실차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앞서며 리그 정상에 올랐다.
이후 코르타바리아는 아구스틴 가하테, 알베르토 고리스, 그리고 후안 안토니오 라라냐가 등의 구단 내 유소년부를 졸업한 차세대 선수들에게 자리를 내준 후, 1984-85 시즌이 끝나고 35번째 생일을 앞두고 은퇴했다. 그는 스페인 1부 리그 경기에 총 355번 출전(모든 대회 통틀어 442경기 출전, 레알 소시에다드 역대 최다 출장 8위)하였다.
레알 소시에다드의 유소년 팀에서 성장하여, 수년간 B팀인 산 세바스티안 CF에서 활약한 후 1970-1971 시즌에 1군으로 승격했다. 유연한 체격을 가진 센터백으로, 수비의 안정감이 뛰어났으며, 세트 플레이에서의 공격 가담으로 항상 상대를 위협했다. 레알 소시에다드 역사상 최고의 주장이자, 루이스 미겔 아르코나다, 헤수스 마리아 사모라, 로베르토 로페스 우파르테, 헤수스 마리아 사투루스테기, 페리코 알론소 등과 함께 이 클럽의 최강 세대 선수들 중 한 명이었다.
코르타바리아는 소시에다드가 라리가에 정착했던 시대, 그리고 후에 황금 시대를 열었던 시기를 모두 경험했다. 1979-1980 시즌에서 2위를 차지하며 당시 최장 무패 기간의 신기록을 세웠고, 1980-81 시즌과 1981-82 시즌에는 라리가를 제패했다. 그리고 1982년 제1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를 획득하고, UEFA 챔피언스 리그 1982-83에서는 준결승에 진출했다.
특히, 코르타바리아는 소시에다드가 역사적인 라리가 첫 우승을 결정지었던 1980-81 시즌 최종전, 스포르팅 데 히혼과의 경기에서 이 경기의 첫 골을 넣었다.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나, 다소 아쉬운 형태의 우승 결정이었지만 만약 이 골이 없었다면, 즉 1-2로 졌다면, 승점 동률에 득실차에서 앞선 레알 마드리드에게 역전 우승을 내주게 되었을 것이다. 2연패를 달성한 1981-1982 시즌에는 커리어 하이인 6골을 기록했다.
1984-1985 시즌 35세가 된 직후 현역에서 은퇴할때까지, 14시즌 동안 프리메라 디비시온 355경기 16골, 산 세바스티안 CF를 포함한 모든 공식 경기에서 총 442경기 22골을 기록했다. 말년에는 1983년경부터 떠오른 8살 연하의 센터백, 아구스틴 가하테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겨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이 외에도 알베르토 고리스, 후안 안토니오 라라냐가 등 같은 포지션의 유소년 출신 젊은 라이벌들이 잇따라 등장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 주요 기록 | |
|---|---|
| 프리메라 디비시온 | 2회 우승 (1980-81, 1981-82) |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 1회 우승 (19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