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일
1. 개요
이병일은 일제강점기 함경남도 함흥 출신의 영화 감독으로, 일본 유학 후 명보영화사를 설립하고 1941년 《반도의 봄》으로 데뷔했다. 광복 후 좌익 영화인들과의 갈등 속에서 영화감독구락부에 참여했으며, 1946년에는 한국 영화의 독립성과 "조선색"을 강조하는 글을 발표했다. 1956년 연출한 《시집가는 날》은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되어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국제 영화제에 진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제작자로 활동했으며,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으로 인해 2008년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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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화동맹의 인물 -
문예봉
문예봉은 일제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배우로,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로 데뷔하여 《춘향전》에서 춘향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으며, 월북 후 북한에서 공훈배우로 활동하다 사망했다. -
조선영화동맹의 인물 -
안종화
안종화는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이후까지 활동한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배우로서 한국 영화 초창기 작품들을 연출하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나, 일제강점기 말기 친일 행적과 광복 후 우익 계열 활동으로 논란이 된 인물이다. -
일제강점기의 영화감독 -
안석주
안석주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삽화가, 만화가, 영화감독, 작사가로, 미술, 영화, 문학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시사만화 연재와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알렸으나, 친일 행적과 광복 후 우익 언론 활동, 〈우리의 소원〉 작사 등의 행적을 남겼다. -
일제강점기의 영화감독 -
나운규
나운규는 일제강점기 영화감독이자 배우, 각본가로, 영화 《아리랑》을 통해 조선인의 저항 의식을 고취하며 한국 영화사에 큰 획을 그었으나, 민족주의적 영화 제작 중 조선총독부의 탄압과 건강 악화로 요절한 독립운동가이다. -
유효하지 않은 id가 지정된 IMDb -
호그와트 레거시
호그와트 레거시는 1890년대 호그와트를 배경으로 고대 마법을 다루는 5학년 학생이 되어 마법을 배우고 전투하며 고블린 반란 등 주요 사건을 겪는 3인칭 액션 롤플레잉 게임이다. -
유효하지 않은 id가 지정된 IMDb -
김여진
김여진은 1998년 영화 데뷔 후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고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2000년대 후반부터는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배우이다.
2. 생애
이병일은 일제강점기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함흥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학생 시절 함흥에서 촬영된 영화 《딱한 사람들》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명보영화사를 설립하고, 1941년 《반도의 봄》으로 감독 데뷔했다.
1945년 광복 직후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영화 부문과 조선영화건설본부에 참여했고, 조선영화동맹 중앙집행위원을 맡았다. 그러나 좌익 계열 영화인들이 주도권을 잡자 안석주 등과 함께 영화감독구락부를 결성했다.
1956년 연출한 《시집가는 날》은 베를린 영화제에 진출하여 한국 영화 최초로 국제영화제에 출품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 영화는 오영진의 희곡 《맹진사댁 경사》를 원작으로 한다. 이후 《청춘일기》(1959), 《서울로 가는 길》(1962), 《귀국선》(1963), 《공작부인》(1964) 등을 연출했고,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제작자로 활동했다.
《댁의 부인은 어떠십니까》, 《장군의 수염》 등을 연출한 이성구 감독과는 가까운 인척 관계이다.
2.1. 일제강점기 활동
일제강점기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함흥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영화를 공부했다. 학생 시절 함흥에서 촬영된 영화 《딱한 사람들》에 단역으로 출연한 것이 영화계에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명보영화사를 설립하고 1941년 감독 데뷔작으로 《반도의 봄》을 연출했다. 이 영화는 영화 속에서 영화 《춘향전》 제작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이병일이 설립한 명보영화사가 제작까지 맡았다. 시기적 특성상 조선총독부의 영화 정책을 지지하는 친일색이 포함되어 있으나 노골적인 친일 영화는 아니다. 《반도의 봄》은 당대 조선 영화계의 모습을 생생하게 다룬 작품으로서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점에서 독특한 면이 있었으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1946년 《영화시대》에 〈전향기 조선영화의 진로〉라는 글을 투고하여, 문학계의 영화 매체에 대한 한계 지적을 반박하면서 예술의 독립성과 "조선색"을 강조하여 한국적인 영화 제작만이 한국 영화 발전의 길임을 주장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말기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에 참가한 행적 등으로 인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연극/영화 부문에 포함되었다.
2.2. 광복 후 초기 활동
1945년 8월 18일 결성된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영화 부문과, 이 단체에 참가한 영화인들이 같은 달 말에 조직한 조선영화건설본부에 참가했다. 1945년 12월 조선프롤레타리아영화동맹과의 통합으로 조선영화동맹이 발족했을 때 중앙집행위원을 맡았다. 그러나 조선영화동맹에서 좌익 계열 영화인들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안석주를 중심으로 우익 영화인들이 이탈하여 이듬해 3월에 친목 모임을 표방하는 영화감독구락부가 결성되었고, 이병일도 이 단체에 참여했다.
1946년 이병일은 《영화시대》에 〈전향기 조선영화의 진로〉라는 글을 투고하여, 문학계의 영화 매체에 대한 한계 지적을 반박하면서 예술의 독립성과 "조선색"을 강조하여 한국적인 영화 제작만이 한국 영화 발전의 길임을 주장하고 있다.
2.3. 《시집가는 날》과 국제적 성공
1956년 이병일은 《시집가는 날》을 연출했는데, 이 영화는 이듬해 제7회 베를린 영화제에 진출하여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국제영화제에 출품되는 기록을 세웠다. 오영진의 연극 《맹진사댁 경사》를 영화화한 《시집가는 날》은 욕심 많은 맹진사가 신부를 바꿔치기하는 한국적인 소재를 해학적으로 풀어내면서, 금전적 가치에 대한 부정 또는 대안적 가치를 제시했다. 이 영화는 같은 해 아시아영화제에서 특별희극상을 받았다.
2.4. 이후 작품 활동
미국에 영화 유학을 한 뒤 귀국하여 1956년 연출한 《시집가는 날》이 이듬해 열린 제7회 베를린 영화제에 진출,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국제영화제에 출품되는 기록을 남겼다. 《시집가는 날》은 오영진 원작의 연극 《맹진사댁 경사》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욕심 많은 맹진사의 신부 바꿔치기라는 한국적인 소재를 해학적으로 풀어내면서 금전적 가치에 대한 부정, 또는 대안적 가치를 제시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 영화는 같은 해 아시아영화제에서 특별희극상을 수상했다.
이후 《청춘일기》(1959), 《서울로 가는 길》(1962), 《귀국선》(1963), 《공작부인》(1964)을 연출했으며,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제작자로 더 활발한 활동을 했다.
4. 작품 목록
이병일은 영화 감독으로, 그의 작품 목록은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