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 (19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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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상철(1924년)은 시베리아에서 고려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만주에서 성장했으며 기독교로 개종했다. 대한민국, 스위스, 캐나다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54년 캐나다 연합 교회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65년 캐나다로 이민하여 밴쿠버와 토론토에서 사역하며 아시아 이민자 공동체를 위해 헌신했으며, 캐나다 연합 교회 총회장과 토론토 대학교 빅토리아 칼리지 총장을 역임했다. 그는 동성애자 안수, 인종 평등, 원주민 인권 등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높였으며, 2017년 9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상철 (1924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존칭아주 존경하는
이름이상철
직위캐나다 연합교회 총회장
재임 시작1988년
재임 종료1990년
전임자앤 M. 스콰이어
후임자월터 H. 파콰르손
서품1954년
출생일1924년 2월 29일
출생지시베리아
사망일2017년 1월 28일
사망지온타리오주뉴마켓
배우자없음
자녀딸 3명
모교없음
웹사이트캐나다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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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기 생애와 교육

이상철은 1924년 요셉 스탈린 치하의 시베리아에서 고려인 이민자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대한민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만주와 한국에서 경험한 잔혹함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며, 특히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대한민국, 스위스, 캐나다에서 신학 교육을 받았다.

2.1. 캐나다 연합 교회와의 인연

이상철은 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일본이 점령한 만주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캐나다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미션 고등학교에 다녔다. 독실한 무속 신앙 신자였던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독교로 개종했다.

캐나다 연합 교회는 1893년 창립 교단으로부터 아시아 지역의 해외 선교를 물려받았으며, 1925년 교회 연합 이후에도 이 선교를 유지하면서 활기차고 성장하는 신앙 공동체로 발전했다. 이것이 이상철이 기독교를 접하게 된 계기였으며, 그는 1954년 캐나다 연합 교회 목사 안수를 받고, 그곳의 해외 선교를 위해 대한민국에 머물렀다.

3. 캐나다에서의 삶과 사역

이상철은 1965년 가족과 함께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에 있는 일본인 교회의 초청을 받아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이 교회는 주로 이민자들로 구성되었으며, 이상철은 캐나다로 이민 온 새로운 아시아 이민자들을 위한 신앙 공동체를 만드는 데 힘썼다. 당시 캐나다 이민 정책 변화로 아시아인들이 영주권자로 캐나다에 정착하기가 더 쉬워졌다. 이상철은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캐나다에 정착하여 연합 교회의 새로운 이민자들을 위한 사역을 강화할 수 있었다. 밴쿠버에서 4년간 사역한 후, 1969년에는 토론토로 이주하여 한국인 교회를 시작했고, 그곳에서 20년 동안 사역했다.

3.1. 캐나다 연합 교회 총회장

이상이 1965년 가족과 함께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에 있는 일본인 교회의 초청을 받아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이곳은 주로 이민자들로 구성된 교회였으며, 이상철 목사는 캐나다로 이민 온 새로운 아시아 이민자들을 위한 신앙 공동체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당시 캐나다 이민 정책이 변화하면서 아시아인들이 영주권자로 캐나다에 이민을 오고 정착하는 것이 더 쉬워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상철 목사도 캐나다에 정착하여 연합 교회의 새로운 이민자들을 위한 사역을 강화할 수 있었다. 밴쿠버에서 4년간 사역한 후, 1969년에는 토론토로 이주하여 자신만의 한국인 교회를 시작했다. 그곳에서 20년 동안 사역했다.

총회장으로서 이상철 목사는 동성애자 안수, 인종 평등, 원주민 및 기타 인권 문제와 같은 문제에 대해 발언했다. 그는 또한 교회와 캐나다의 한국 및 기타 이민자 커뮤니티 간의 다리를 놓기 위해 계속 노력했다. 이상철 목사가 직접 주례한 그의 딸의 결혼은 캐나다 연합 교회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진 인종 간 결혼이었으며, 캐나다 기독교 공동체에서 인종 간 결혼의 수용을 열었다. 1989년, 이상철 목사는 전 원주민 원탁 회의의 레인보우 추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연합 교회가 세상에서 특별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종교 공동체는 절망과 파괴가 아닌 꿈과 비전, 희망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유일한 곳입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때로는 우리의 꿈이 너무 작습니다. 하나님의 꿈은 우리보다 훨씬 더 큽니다."

총회장 임기가 끝난 후 이상철 목사는 토론토 대학교의 빅토리아 칼리지 총장이 되어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3.2. 빅토리아 대학교 총장

총회장 임기가 끝난 뒤, 이상철은 토론토 대학교 빅토리아 칼리지 총장으로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재직하였다.

4. 사망과 유산

이철 목사는 2017년 1월 28일, 온타리오주 뉴마켓 자택에서 9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총회장이었던 고 조던 캔트웰 목사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그는 교회 내에 큰 분열과 악의가 만연했던 시기에 교회를 이끌었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그가 그처럼 힘든 시기에 교회를 이끄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점령, 혁명, 죽음의 위험을 겪었기에 교회의 논쟁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고 답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