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태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이우태는 충청북도 제천 출신의 소설가이자 정치인이다. 국학대학을 졸업하고 언론계에 입문하여, 한국 전쟁 중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지하며 조선중앙통신사 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조선인민유격대에 가담하여 빨치산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전향한 뒤, 제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88년에는 빨치산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남부군》을 출간하여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으며, 허무주의적인 시각으로 유격대 활동을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저서로는 《남부군》 외에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서울신문학원 동문 - 서영훈
서영훈은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방송공사 사장, 대한적십자사 회장을 역임했으며 제16대 국회의원을 지낸 대한민국의 언론인, 정치인, 사회운동가이다. - 국학대학 동문 - 구자춘
구자춘은 5·16 군사정변에 가담한 후 박정희 정부에서 제주도지사, 수산청장, 경상북도지사, 서울특별시장, 내무부 장관을 역임하고 국회의원도 지낸 인물로, 서울시장 시절 서울 지하철 2호선 건설과 강남 개발을 추진했으며 군사정권 협력, 부정축재 혐의에 대한 비판도 존재하지만, 지하철 2호선 건설과 강남 개발은 주요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 국학대학 동문 - 이후락
이후락은 대한민국 군인 출신 정치인으로, 박정희 정권에서 요직을 거치며 권력을 행사했고 7·4 남북공동성명 체결에 기여했으나, 여러 논란과 비판 속에 은퇴 후 은둔 생활을 하다 사망했다. - 빨치산 - 최룡해
최룡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하고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에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 빨치산 - 류락진
류락진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남로당, 통일혁명당, 구국전위 사건 등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었으며, 서예가로 활동하다 2005년에 사망했다.
이우태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본명 | 이우태 |
필명 | 이태 |
출생일 | 1922년 11월 25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제천 |
사망일 | 1997년 3월 6일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 |
직업 | 작가, 前 언론인, 前 정치인 |
장르 | 소설 |
주요 작품 | 남부군 |
2. 생애
이우태는 충청북도 제천군 출신으로, 한국 전쟁 발발 직전 언론계에 입문하여 조선인민유격대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전향한 후, 정계와 문학계에서 활동하였다.
국학대학 국문과와 조선신문학원을 거쳐 합동통신 기자로 언론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 전쟁 초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지하며 조선중앙통신사 기자로 활동했으나, 국제연합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바뀌자 조선로동당 전북도당을 따라 회문산으로 들어가 조선인민유격대에 합류했다. 지리산을 기반으로 한 이현상의 남부군에서 기관지 《승리의 길》 기자로 활동하다가 1952년에 체포되어 전향했다.[1]
전향 후에는 정치인 정해영의 주선으로 민중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지냈다. 1975년부터 지리산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나 유신 체제 하에서는 출판하지 못했다. 6월 항쟁 이후 1988년에 출간한 실화소설 《남부군》은 큰 반향을 일으켜 '빨치산 문학'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1]
조선인민유격대에 대한 이태의 시각은 허무주의적이며, 유격대 활동을 남과 북 모두에게서 버림받은 역사의 미아로 인식하고 있다. 이현상 암살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지시했다는 설이 대표적인 예이다.[1] 《이현상 평전》과 같은 다른 관점에서는 이태의 이러한 시각을 대한민국에 깊숙이 전향한 사람의 인식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상도동계와 교류하며 민추협, 민주산악회 등에서도 활동했다.[2] 저서로는 《한글공문편람》, 《여순병란》, 《천왕봉》, 수필집 《기다림》, 유고집 《시인은 어디로 갔는가》 등이 있다.
2. 1. 초기 생애와 언론 활동
충청북도 제천군 출신이다. 국학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조선신문학원을 수료한 뒤, 한국 전쟁 발발 직전 합동통신 기자가 되어 언론계에 입문했다. 한국 전쟁 개전 초기에 조선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지하여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되었다.[1]2. 2. 조선인민유격대 활동
조선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지하여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되었다. 조선중앙통신사의 파견으로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활동하던 중 국제연합군 참전으로 전세가 변하자, 조선로동당 전북도당을 따라 회문산으로 들어가 조선인민유격대에 입대하여 빨치산이 되었다. 이후 지리산을 기반으로 한 이현상의 남부군에 편입되어 남부군 기관지인 《승리의 길》 기자로 활동하였다.[1]2. 3. 체포, 전향 및 정계 입문
1952년 체포되어 전향하였다. 정치인 정해영을 만난 것을 계기로 정계에 입문하여 민중당 비례대표로 제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1] 1975년부터 지리산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수기 형식의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으나, 유신 체제 하의 냉전적 사회 분위기 때문에 출판하지는 못했다.6월 항쟁 이후 조선인민유격대와 남부군에 대해 언급할 수 있게 되자, 1988년 실화소설 《남부군》을 출간하였다. 이태의 《남부군》은 오랫동안 이념 때문에 금기시되어 온 소재를 다루어 대한민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빨치산 문학'으로 불리는 여러 증언과 기록, 소설이 쏟아져 나왔고, 정지영 감독이 영화 《남부군》으로 만들기도 했다.[1]
1980년대 이후 상도동계 정치인들의 부름을 받아 민추협, 민주산악회 등의 조직에서 활동했다.[2]
2. 4. 작가 활동과 《남부군》 출간
1975년부터 지리산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수기 형식의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으나 유신 체제 하의 냉전적 사회 분위기 때문에 출판은 하지 못했다.[1]6월 항쟁이 성공하면서 조선인민유격대와 남부군에 대해 언급할 수 있는 시기가 오자 1988년에 실화소설 《남부군》을 내놓았다. 이태의 《남부군》은 오랫동안 이념 때문에 금기시되어 온 소재를 다루어 대한민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빨치산 문학'으로 불리는 여러 증언과 기록, 소설이 쏟아져 나왔고, 정지영이 영화 《남부군》에서 이태의 소설을 영화화하기도 했다.[1]
2. 5. 《남부군》 이후 활동 및 평가
이태는 조선인민유격대를 남과 북 모두에게서 버림받은 역사의 미아로 인식하는 허무주의적 시각을 보였다. 이현상 암살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지시했다는 설이 대표적인 예이다.[1] 《이현상 평전》과 같은 다른 관점에서는 이태의 이러한 시각을 대한민국에 깊숙이 전향한 자의 인식으로 비판하기도 한다.1980년대 이후 상도동계 정치인들의 부름을 받아 민추협, 민주산악회 등에서 활동했다.[2] 저서로는 《한글공문편람》, 《여순병란》, 《천왕봉》, 수필집 《기다림》, 유고집 《시인은 어디로 갔는가》 등이 있다.
3. 저서
- 《한글공문편람》
- 《여순병란》
- 《천왕봉》
- 수필집 《기다림》
- 유고집 《시인은 어디로 갔는가》
4. 역대 선거 결과
연도 | 선거명 | 대수 | 직책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1963년 | 대한민국 제6대 국회의원 선거 | 6대 | 국회의원 | 민정당 | 1,870,976표 | 20.1 | 전국구 16번 | 당선 | 초선, 승계 |
1971년 | 대한민국 제8대 국회의원 선거 | 8대 | 국회의원 | 신민당 | 19,490표 | 23.02 | 3위 | 낙선 | 제천군·단양군 |
참조
[1]
뉴스
빨치산 대장 이현상 생애와 투쟁 복원
http://www.hani.co.k[...]
한겨레
2007-03-03
[2]
간행물
“어떻게 일군 정권인데 거꾸로 돌아간단 말이오”
https://web.archive.[...]
2008-06-22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