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영
1. 개요
정해영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울산에서 태어나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사업가로 활동하며 대동연탄주식회사 사장 등을 역임하며 '석탄왕'으로 불렸고,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공천으로 당선되어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후 총 7선의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민정당, 신한당, 신민당 등에서 활동하며 국회 부의장, 부총재 등을 역임했다. 국회의원 은퇴 후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아시아문제연구소를 수료하고 중국문화대학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00년에는 트루먼-레이건 자유기업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 9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 이름 | 정해영 |
|---|---|
| 한자 | 鄭海永 |
| 본관 | 迎日 鄭氏 |
| 출생일 | 1915년 9월 19일 |
| 사망일 | 2005년 11월 11일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조선 경상남도 |
| 의원 선수 | 7 |
|---|---|
| 의원 대수 | 3·5·6·7·8·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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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상업고등학교 동문 -
신영복
신영복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사회운동가, 대학교수, 저술가로서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수감 생활 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집필하여 반향을 일으켰고, 출소 후 관계론을 중심으로 사상을 발전시키며 독특한 서체로 민중과 소통했으며,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
부산상업고등학교 동문 -
김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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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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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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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정씨 -
정지용
정지용은 충청북도 옥천 출생으로 모더니즘 문학을 선도했으며, 시문학 동인과 구인회 활동을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으나 한국 전쟁 중 행방불명되었다. -
연일 정씨 -
정희택
정희택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으로 검사, 중앙수사국장 등 요직을 거쳐 제11대 국회의원, 감사원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언론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권위주의 정권과의 협력에 대한 비판도 있다.
2. 학력
*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
3. 생애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울산군(현 울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부산상업고등학교(현 개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54년 5월 20일 실시된 제3대 총선에 자유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당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1955년 서울 성북동에 동천학사를 설립하여 최형우, 김대호 등 부산·울산 출신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서울 유학생들의 생활을 지원했다.
이후 총 7선의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국회의원 은퇴 후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아시아문제연구소를 수료하고, 1982년에는 중국문화대학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외에도 한영의회협회 회장, 아시아의원연맹회의 한국측 의장, 한미의회안보회의 대표, 원불교 중앙교회 회장, 국토통일고문, 보은사상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2000년 미국 공산주의 희생자 기념 재단의 “트루먼-레이건 자유기업상”을 수상했다. 2005년 11월 11일,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3.2. 정치 활동
정해영은 7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1963년 민정당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 사무총장, 1966년 신한당 정책위원회 의장, 1969년 신민당 원내총무·정무위원을 역임했다. 1971년에는 제8대 국회 부의장을 지냈고, 1973년에는 신민당 부총재를 역임했다.
3.2.1. 초기 정치 경력 (자유당, 무소속)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울산군(현 울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부산상업고등학교(현 개성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창업하여 1943년에 부산대양산업, 1949년에 대동연탄주식회사 사장을 역임하며 19공 연탄을 개발, “석탄왕”으로 불렸다.
1954년 5월 20일 실시된 제3대 총선에 자유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당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1955년 서울 성북동에 동천학사를 설립하여 최형우, 김대호 등 부산·울산 출신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서울 유학생들의 생활을 지원했다.
3.2.2. 야당 정치인 (민정당, 신한당, 신민당)
1963년 민정당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 사무총장을 맡았다. 1966년 신한당 정책위원회 의장, 1969년 신민당 원내총무·정무위원을 역임했고, 1971년 제8대 국회 부의장, 1973년 신민당 부총재를 지냈다.
3.2.3. 은퇴 후 활동
1963년 민정당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 사무총장, 1966년 신한당 정책위원회 의장, 1971년 제8대 국회 부의장, 1973년 신민당 부총재를 역임했다. 국회의원 은퇴 후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아시아문제연구소를 수료하고, 1982년에는 중국문화대학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외에도 한영의회협회 회장, 아시아의원연맹회의 한국측 의장, 한미의회안보회의 대표, 원불교 중앙교회 회장, 국토통일고문, 보은사상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