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 (1722년)
1. 개요
이은은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1740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759년 정시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수찬, 승지를 거쳐 이조참의, 한성부우윤, 호조참판, 대사간, 대사성, 예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동지경연사, 병조참판, 대사헌 등을 거쳐 강화유수, 삭녕군수를 지냈으며, 형조판서, 예조판서를 거쳐 이조판서, 좌참찬, 한성부판윤을 역임하고 1772년 우의정에 오른 뒤 좌의정이 되었다. 영조 때 상소로 유배되었으나, 이후 판중추부사, 영중추부사를 거쳐 정조 때 좌의정을 다시 지냈다. 최종 관직은 영돈녕부사이며, 시호는 충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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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이조참의 -
심상만
심상만은 조선 시대 명문가 출신으로, 문과 급제 후 고종 시기에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대한제국 시기에 칙임관 3등까지 오른 인물이다. -
조선의 이조참의 -
이광좌
숙종 때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영의정에 오른 소론의 중진 이광좌는 이인좌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우고 영조 초 대리집정을 맡았으나, 사후 노론의 탄핵으로 추탈되었다가 순종 때 복권되었으며, 저서로는 《운곡실기》가 있다. -
조선의 호조참판 -
최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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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호조참판 -
이현보
이현보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으로, 연산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치며 선정(善政)을 베풀었으며, 벼슬에서 물러난 후 자연을 벗 삼아 만년을 보내며 효성이 지극하고 문장에 뛰어난 많은 작품을 남겼다. -
조선의 예조참판 -
서거정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서거정은 문과 급제 후 6조 판서와 좌찬성을 지내며 《경국대전》,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등 국가적인 편찬 사업에 참여하여 조선의 문물 제도 정비에 기여했고, 《동문선》, 《필원잡기》 등의 저술을 통해 조선 초기의 문학을 집대성하여 문충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그의 호는 사가정역명칭의 유래가 되었다. -
조선의 예조참판 -
한효원
2. 생애
한익모는 1740년(영조 16) 진사시에 합격하고, 1759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수찬, 승지, 이조참의, 한성부우윤, 호조참판, 대사간, 대사성, 예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동지경연사를 거쳐 병조참판, 대사헌, 이조참판, 강화유수, 삭녕군수, 형조참판, 형조판서, 예조판서, 이조판서, 좌참찬, 한성부판윤을 지냈다. 1772년 우의정과 좌의정에 올랐으나, 영조에게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당했다. 정조 즉위 후 다시 좌의정에 임명되었고, 영돈녕부사로 물러났다가 사망했다.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2.1. 관직 생활
이은(李垠)은 조선의 왕족으로, 관직 생활에 대한 기록은 없다. 주어진 `title`, `section-title`, `summary`, `source` 정보는 모두 '한익모'에 대한 것이며, '이은 (1722년)'과는 관련이 없다. 따라서 이은(李垠)의 관직 생활에 대한 내용은 작성할 수 없다.
2.2. 가족 관계
| | 이름 || 비고 | ||
|---|---|---|
| 할아버지 | 이집(李㙫) | |
| 아버지 | 이주진(李周鎭) | 병조판서 |
| 어머니 | 민진원(閔鎭遠)의 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