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무도인)
1. 개요
이준구는 1932년 일제강점기 아산에서 태어난 무술가로, 1956년 미국으로 건너가 태권도를 보급했다. 1960년대 이소룡과 교류하며 무술 기술을 공유했고, 무하마드 알리에게 압큐펀치를 시연하며 그의 수석 코치를 맡기도 했다. 1962년 워싱턴 D.C.에 도장을 열고 11개로 확장했으며, 영화 제작 및 출연, 태권도 명예의 전당 헌액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2000년 미국 내 가장 인정받는 이민자로 선정되었으며, 2018년 사망했다.
| 본명 | 이준구 |
|---|---|
| 로마자 표기 | Yi Jun-gu |
| 한글 | 이준구 |
| 한자 | 李俊九 |
| 출생일 | 1932년 1월 7일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조선 충청남도 아산군 (현재 대한민국 충청남도 아산시) |
| 사망일 | 2018년 4월 30일 |
| 사망지 |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군 |
| 국적 | 대한민국 → 미국 |
| 신장 | 165cm |
| 체중 | 64kg |
| 웹사이트 | Jhoon Rhee 공식 웹사이트 |
| 무술 | 태권도 가라데 쿵푸 |
|---|---|
| 스타일 | 태권도, Jhoon-Rhee-style (창시자) 태권도 (ITF-Style), 당수도 (Chung Do Kwan), Jun Fan Gung Fu |
| 사범 | 남태희, 브루스 리 |
| 단 | 태권도 10단 (사후 추서) |
| 제자 | 앨런 R. 스틴, 로드니 바티스테, 마리나 김, 존 정, 브루스 리 |
-
인물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
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이순재
이순재는 함경북도 회령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전직 국회의원으로, 1956년 연극으로 데뷔하여 60년 이상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고, 드라마 '거침없이 하이킥',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등에 출연했으며 국회의원과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고 예능 출연 및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
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양동근
양동근은 1987년 아역 배우로 데뷔하여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동하며 YDG aka Madman이라는 예명으로 힙합 가수로도 데뷔하여 독특한 스타일과 개성 있는 음악으로 입지를 다진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힙합 래퍼이다. -
미국으로 귀화한 사람 -
일론 머스크
일론 머스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으로 스페이스X, 테슬라, 뉴럴링크, 오픈AI 등 여러 회사를 설립하거나 운영하며 인터넷, 우주, 청정에너지, 인공지능 분야에서 혁신적인 사업을 추진하는 미국 기업인이자 투자자이다. -
미국으로 귀화한 사람 -
댄 슈나이더
댄 슈나이더는 1966년생 미국의 배우, 작가, 프로듀서로, 니켈로디언에서 다수의 인기 어린이 프로그램을 제작했으며 2018년 계약 종료 후 아동 성 학대 의혹으로 논란이 일었다.
2. 생애
이준구는 1932년 1월 7일 일제강점기 아산에서 태어났다. 13세에 아버지 몰래 무술 훈련을 시작했고, 남태희에게 무술을 배워 청도관을 졸업했다.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복무하던 중, 1956년 사우스웨스트 텍사스 주립 칼리지에 입학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이후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에서 공학 학위를 받았다.
1956년 텍사스에서 공부하면서 팻 벌레슨에게 미국 최초의 흑띠를 수여했고, 미국에서 훈련받은 첫 제자는 앨런 스틴이었다. 이 둘은 사우스웨스트 블랙 벨트 협회(나중에 아메리칸 블랙 벨트 협회)를 설립하여 많은 챔피언을 배출했다. 대학 졸업 후 동부 해안으로 이주하여 1962년 미국 워싱턴 D.C.에 첫 도장을 열었고, 워싱턴 수도권 지역에 11개 도장으로 확장했다.
1973년 유일한 무술 영화인 당수 권법을 제작했으며, 정무문에도 출연했다. 1975년 조 프레이저와의 마닐라의 일전을 앞두고 무하마드 알리를 만나 알리에게 압큐펀치를 시연했고, 리차드 던 (복서)과 안토니오 이노키와 싸울 때 알리의 수석 코치를 맡았다.
1980년대 중반 워싱턴 D.C. 지역에 11개 무술 도장 네트워크를 운영했다. 닐스 로프그렌이 만든 노래와 이준구의 딸과 아들이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아"라는 문구를 외치는 TV 광고로 워싱턴 D.C. 지역에서 유명했다. 2000년 미국 내 가장 인정받는 이민자 203명 중 유일한 한국계 미국인으로 선정되었다.
2007년 태권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미국 태권도와 러시아 태권도의 개척자로 등재되었다. 최창근의 태권도 개척자 목록에서 미국 개척자로 등재되어 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1932~1956)
이준구는 1932년 1월 7일 일제강점기 아산에서 태어났다. 1945년, 13세의 나이에 아버지 몰래 무술 훈련을 시작했다. 남태희로부터 무술을 사사받았으며, 청도관을 졸업했다.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복무하던 중, 1956년 사우스웨스트 텍사스 주립 칼리지에 입학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에서 공학 학위를 받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2.2. 미국 정착과 태권도 보급 (1956~2018)
1956년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에서 공학 학위를 취득했다. 텍사스에서 공부하는 동안, 팻 벌레슨에게 미국 최초의 흑띠를 수여했고, 미국에서 훈련받은 첫 제자는 앨런 스틴이었다. 이 둘은 힘을 합쳐 영향력 있는 사우스웨스트 블랙 벨트 협회(나중에 아메리칸 블랙 벨트 협회)를 설립하여 많은 챔피언을 배출했다. 대학 졸업 후, 동부 해안으로 이주하여 1962년 미국 워싱턴 D.C.에 첫 번째 도장을 열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워싱턴 수도권 지역에 11개의 도장으로 확장했다.
1973년에는 유일한 무술 영화인 당수 권법을 제작했으며, 정무문에도 작은 배역으로 출연했다. 1975년에는 조 프레이저와의 마닐라의 일전을 앞두고 무하마드 알리를 만났다. 이준구는 알리에게 압큐펀치를 시연했고, 알리는 이를 막지 못하고 가르쳐달라고 요청했다. 이준구는 알리가 리차드 던 (복서)과 안토니오 이노키와 싸울 때 알리의 수석 코치였다.
1980년대 중반, 워싱턴 D.C. 지역에 11개의 무술 도장 네트워크를 운영했다. 닐스 로프그렌이 만든 노래와 이준구의 딸이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아"라는 문구를 외치고, 그의 아들이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아"라고 말하는 TV 광고로 워싱턴 D.C. 지역에서 유명했다. 2000년, 전국 이민자 포럼 및 이민 귀화 서비스에서 선정한 미국 내 가장 인정받는 이민자 203명 중 유일한 한국계 미국인으로 선정되었다.
2007년 태권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미국 태권도와 러시아 태권도의 개척자로 등재되었다. 최창근의 태권도 개척자 목록에서 미국 개척자(1950년대, 60년대 및 70년대)로 등재되어 있다.
3. 이소룡과의 관계
1960년대, 이준구는 이소룡과 친분을 맺었다. 이소룡은 이준구에게 거의 막을 수 없는 매우 빠른 펀치 기술을 가르쳤고, 이준구는 이를 "압큐펀치"라고 명명했다. 1975년, 무하마드 알리가 조 프레이저와의 마닐라의 일전을 앞두고 있을때 이준구는 알리를 만났다. 이준구는 알리에게 압큐펀치를 시연했고, 알리는 이를 막지 못하고 가르쳐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이준구는 알리가 리차드 던과 안토니오 이노키와 싸울 때 알리의 수석 코치를 맡았다.
4. 무하마드 알리와의 관계
1975년, 이준구는 조 프레이저와의 마닐라의 일전을 앞두고 있던 무하마드 알리를 만났다. 이준구는 알리에게 압큐펀치를 시연했고, 알리는 이를 막지 못하고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이준구는 알리가 리차드 던 (복서)과 안토니오 이노키와 싸울 때 알리의 수석 코치였다.
5. 영화 활동
이준구는 1973년 영화 《당수 권법》을 제작하고 주연을 맡았으며, 《정무문》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그 외에도 《돌아온 용쟁호투》(1981년), 《태권진구주》(1973년) 등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6. 기타 활동 및 업적
1980년대 중반, 이준구는 워싱턴 D.C. 지역에서 11개의 무술 도장 네트워크를 운영했다. 그는 닐스 로프그렌이 만든 노래와 그의 딸이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아"라는 문구를 외치고, 그의 아들이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아"라고 말하는 TV 광고로 워싱턴 D.C. 지역에서 유명해졌다. 2000년, 이준구는 전국 이민자 포럼 및 이민 귀화 서비스에서 선정한 미국 내 가장 인정받는 이민자 203명 중 유일한 한국계 미국인으로 선정되었다.
2007년 태권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미국 태권도와 러시아 태권도의 개척자로 등재되었다. 최창근의 태권도 개척자 목록에서 미국 개척자(1950년대, 60년대 및 70년대)로 등재되어 있다.
8. 출연 작품
이준구는 여러 영화에 출연하였다. 하위 섹션에 자세한 내용이 나와있다.
8.1. 영화
* 돌아온 용쟁호투 (1981년) - 주연
* 태권진구주 (1973년) - 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