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미번
1. 개요
이즈미번은 1634년 나이토 마사하루가 영지를 받아 성립되었으며, 이후 나이토 가문, 이타쿠라 가문, 혼다 가문이 번주를 역임했다. 2대 번주 혼다 다다카즈는 재정 개혁을 통해 번의 재정을 안정시켰고, 5대 번주 혼다 다다노리는 번교를 설립하여 문무를 장려했다. 보신 전쟁에서 막부군에 가담한 6대 번주 혼다 다다토시는 관직을 삭탈당하고 영지가 삭감되었으며, 1871년 폐번치현으로 폐지되었다. 이즈미번은 무쓰국, 고즈케국, 무사시국에 영지를 두었다.
| 이름 | 이즈미 번 (泉藩) |
|---|---|
| 로마자 표기 | Izumi-han |
| 위치 | 후쿠시마현의 일부 |
| 시대 | 에도 시대 |
| 성립 | 1634년, 이와키타이라 번에서 분할 |
|---|---|
| 폐지 | 1871년 |
| 사건 | 1634년: 나이토 씨 입봉 1702년: 이타쿠라 씨 입봉 1746년: 혼다 씨 입봉 |
| 정치 체제 | 다이묘 영지 번 |
|---|---|
| 다이묘 가문 | 나이토 씨( 이타쿠라 씨( 혼다 씨( |
| 진야 | 이즈미 진야(泉陣屋) |
| 좌표 | 36°57′03.04″N 140°51′19.47″E |
| 현재 위치 | 후쿠시마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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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시국의 번 -
돗토리번
돗토리 번은 1600년 이케다 가문이 호키국을 영지로 하사받아 시작되어, 영지 교환 후 이케다 가문이 에도 시대 말까지 다스렸으며, 메이지 정부군에 가담 후 폐번치현으로 돗토리현의 일부가 되었고, 이후 이케다 가문은 후작 작위를 받았다. -
무사시국의 번 -
히코네번
히코네번은 에도 시대 이이 가문이 다스린 번으로, 에도 막부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막부 말기에는 신정부 지지로 전환하여 보신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폐번치현 이후 시가현에 편입되었다. -
이와키국의 번 -
아사카와번
아사카와번은 1662년 혼다 다다모치가 1만 석을 분봉받아 성립되었으나, 2대 번주 혼다 다다하루가 이봉되면서 폐번된 혼다 가문의 후다이 다이묘였다. -
이와키국의 번 -
모리야마번
모리야마번은 미토번에서 분가되어 히타치국 누카다에서 시작하여 무쓰국 모리야마로 영지를 옮겼으며, 막말에는 덴구토의 난에 연루되고 보신 전쟁에서 항복한 후 마쓰카와번으로 개칭되었다. -
나이토씨 -
나이토 기요카즈
나이토 기요카즈는 에도 시대 다이묘이자 시나노 다카토 번의 초대 번주로서, 번의 재정 안정과 법도 정비에 힘썼으며 나이토 신주쿠 개설과 관련이 있고 에도 막부 요직을 역임한 예술가이다. -
나이토씨 -
나이토 마사아쓰
에도 시대 다이묘인 나이토 마사아쓰는 유나가야 번의 4대 번주로서 "충효·검약·부조"를 으뜸으로 하는 번법을 제정했으며, 영화 《초고속! 참근교대》 시리즈에서 사사키 쿠라노스케가 연기하기도 했다.
2. 역사
1622년 나이토 마사나가가 이와키 다이라 번의 번주가 되었을 때, 마사나가의 아들 다다오키는 이즈미 2만 석 영지를 분할받았다. 1634년 마사나가가 사망하고 다다오키가 그 뒤를 이었으나, 다다오키는 마사나가의 유언에 따라 막내동생 마사하루에게 영지를 물려주었다. 이로써 이즈미 번이 성립되었다.
이후 번주들은 안나카 번, 사가라 번 등으로 이봉되거나 영지가 교환되는 과정을 거쳤다.
1871년, 폐번치현으로 번은 폐지되었다.
2.1. 번의 성립과 초기 (나이토 가문)
1634년 나이토 마사나가의 막내아들 나이토 마사하루가 2만 석의 영지를 상속받아 이즈미 번이 성립되었다. 나이토 마사치카는 2대 번주로, 번 영내에 성과 조카마치를 건설하여 번의 기틀을 다졌다. 나이토 마사모리는 3대 번주로, 1702년 안나카 번으로 이봉되었다.
2.2. 이타쿠라 가문 통치 시기
1702년, 이타쿠라 시게아쓰가 1만 5천 석으로 이즈미에 들어왔다. 시게아쓰의 아들 이타쿠라 가쓰키요는 로주를 역임했고, 1746년 사가라번의 혼다 다다유키와 영지를 교환하여 사가라 번으로 옮겨갔다.
2.3. 혼다 가문 통치 시기
1746년, 혼다 다다유키가 1만 5천 석으로 이즈미 번의 번주가 되었다. 2대 번주 혼다 다다카즈는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각종 개혁을 실시하여 번의 재정을 재건하였고, 당시 로주였던 마쓰다이라 사다노부에게 그 실력을 인정받아 와카도시요리, 소바요닌으로 막부에서 일하였으며, 간세이 개혁 때에는 로주가 되어 막부 정치에 참여하였다. 이때 5천 석을 추가하여 영지 2만 석의 다이묘가 되었다.
5대 번주 혼다 다다노리는 번교 급심관(汲深館일본어)을 세워 문무를 장려했고, 6대 번주 혼다 다다토시는 지샤부교, 소자반 등의 자리에 올라 막부 정치에 참여했다. 보신 전쟁 때는 막부군의 편에 서서 신정부군과 대립했고, 그로 인해 다다토시는 관직을 삭탈당하고 영지 2천 석 삭감과 강제은거 조치를 받았다. 그 뒤를 이은 혼다 다다노부는 1869년 판적봉환으로 이즈미 번지사가 되었다.
2.4. 보신 전쟁과 폐번
보신 전쟁 때 혼다 다다토시는 막부군에 가담하여 신정부군과 대립하였고, 그 결과 다다토시는 관직을 삭탈당하고 영지 2천 석 삭감 및 강제 은거 조치를 받았다. 그 뒤를 이은 혼다 다다노부는 1869년 판적봉환으로 이즈미 번지사가 되었다. 1871년 폐번치현으로 이즈미 번은 폐지되었다.
3. 역대 번주
이즈미 번은 나이토 가문(内藤家), 이타쿠라 가문(板倉家), 혼다 가문(本多家) 순으로 번주가 교체되었다.
나이토 가문은 2만 석의 후다이 다이묘였다. 이타쿠라 가문은 1702년부터 1746년까지, 혼다 가문은 1746년부터 1871년 폐번치현까지 이즈미 번을 다스렸다.
3.1. 나이토 가문 (内藤家)
内藤家일본어는 2만 석의 후다이 다이묘였다.
| | 이름 || 재임 기간 || 관위 || 조정 관직 || 석고 | |||||
|---|---|---|---|---|---|
| 1 | 内藤政晴일본어 | 1634년 ~ 1645년 | 兵部少輔일본어 | 종5위하(従五位下) | 20,000 석 |
| 2 | 内藤政親일본어 | 1646년 ~ 1696년 | 丹波守일본어 | 종5위하(従五位下) | 20,000 석 |
| 3 | 内藤政森일본어 | 1696년 ~ 1702년 | 丹波守일본어 | 종5위하(従五位下) | 20,000 석 |
3.3. 혼다 가문 (本多家)
| # | 이름 | 재임 기간 | 관위 | 조정 관직 | 석고(石高) |
|---|---|---|---|---|---|
| 1 | 다다유키(本多忠如일본어) | 1746년 ~ 1754년 | 엣추노카미(越中守일본어) | 종5위하(従五位下) | 15,000 석 |
| 2 | 타다카즈(本多忠籌일본어) | 1754년 ~ 1800년 | 단조다이히쓰(弾正大弼일본어) ; 지주(侍従일본어) | 종4위하(従四位下) | 15,000 → 20,000 석 |
| 3 | 타다시게(本多忠誠일본어) | 1800년 ~ 1815년 | 가와치노카미(河内守일본어) | 종5위하(従五位下) | 20,000 석 |
| 4 | 타다토모(本多忠知일본어) | 1815년 ~ 1836년 | 가와치노카미(河内守일본어) | 종5위하(従五位下) | 20,000 석 |
| 5 | 타다노리(本多忠徳일본어) | 1836년 ~ 1860년 | 엣추노카미(越中守일본어) | 종5위하(従五位下) | 20,000 → 18,000 석 |
| 6 | 타다토시(本多忠紀일본어) | 1860년 ~ 1868년 | 노토노카미(能登守일본어) | 종5위하(従五位下) | 18,000 석 |
| 7 | 타다노부(本多忠伸일본어) | 1868년 ~ 1871년 | 효부노스케(兵庫助일본어) | 종5위하(従五位下) | 18,000 석 |
혼다 다다유키(1711년 ~ 1773년 11월 28일)는 도토미국 사가라 번의 3대 다이묘이자, 무쓰국 이즈미 번의 초대 혼다 가문 다이묘였다. 그는 야마토고리야마 번의 다이묘 혼다 타다나오의 셋째 아들이었으며, 1746년 도쿠가와 막부의 명으로 이즈미 번으로 이전했다.
혼다 다다카즈(1740년 ~ 1813년 1월 17일)는 이즈미 번의 2대 혼다 다이묘였다. 마쓰다이라 사다노부 등과 함께 간세이 시대의 중심 인물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그는 경제학의 저명한 학자이자 신가쿠 운동의 지지자였으며, 기근 대비와 낙태 금지 정책으로 유명하다. 또한 러시아 제국의 남하에 맞서 일본의 방어력 강화에 힘썼다.
혼다 다다시게(1761년 ~ 1832년 4월 8일)는 이즈미 번의 3대 혼다 다이묘였다. 그는 아버지의 재정 정책을 이어갔다.
혼다 다다토모(1787년 ~ 1839년 4월 27일)는 이즈미 번의 4대 다이묘였다.
혼다 다다노리(1818년 10월 17일 ~ 1860년 7월 29일)는 이즈미 번의 5대 다이묘였다. 그는 번교를 세웠으며, 와카도시요리로 재직했다.
혼다 다다토시(1820년 1월 12일 ~ 1883년 2월 16일)는 이즈미 번의 6대 다이묘였다. 보신 전쟁에서 메이지 정부에 항복하고 가택 연금에 처해졌으나, 후에 사면되었다.
혼다 다다노부(1852년 2월 11일 ~ 1903년 3월 5일)는 이즈미 번의 7대이자 마지막 다이묘였다. 폐번치현으로 번이 폐지된 후에는 제국 지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