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 (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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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충은 당 고종의 장남으로, 643년에 태어났다. 652년 태자가 되었으나, 무측천이 고종의 황후가 되면서 폐위되어 양왕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유배 생활을 하던 중 665년 자결했으며, 사후 연왕으로 추존되었다.

이충 (정본)
기본 정보
이름이충
출생643년
사망665년 1월 6일 (21-22세)
작위진왕 (646–652) → 황태자 (652–656) → 양왕 (656–660) → 사후 연왕 추증
시대당나라
가계
아버지당 고종
어머니유씨 부인
양자당 현종
관직
황태자652년 – 656년
전임이지
후임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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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정관 20년(646년) 진왕(陳王)에 봉해졌고, 영휘 원년(650년)에는 옹주 목(雍州牧)에 임명되었다. 영휘 3년(652년) 7월 황태자가 되었으나, 현경 원년(656년) 무측천이 황후가 되면서 폐위되어 양왕(梁王)으로 강등되고 양주도독을 거쳐 방주자사로 좌천되었다.

살해 위협에 대한 두려움으로 여장을 하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다가 현경 5년(660년) 7월, 결국 서민으로 강등되어 겸주로 유배되었고, 과거 백부 이승건이 유폐되었던 곳에 연금되었다. 린더 원년 12월(665년 1월), 겸주에서 2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신룡 초년에 연왕(燕王)으로 추봉되었고, 태위·양주대도독의 관직이 추증되었다.

2.1. 초기 생애와 황태자 책봉

이치가 그의 아버지 이세민 아래에서 황태자가 된 직후인 643년에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신분이 낮은 후궁 유소의였다. 이충은 이치의 장남이었으며, 이치는 그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홍교전(弘教殿)에서 측근들과 잔치를 열었다. 할아버지 당 태종 역시 직접 참석하여 손자의 탄생을 기뻐하며 춤을 추었다고 전해진다.

정관 20년인 646년, 당 태종은 이충을 진왕(陳王)으로 봉했다. 649년 당 태종이 사망하고 아버지 이치가 당 고종으로 즉위하자, 영휘 원년(650년)에 수도의 행정 구역인 옹주(雍州, 현재의 시안 부근)의 명목상 목(牧)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고종의 정실 황후였던 왕황후는 아들이 없었다. 이에 왕황후의 숙부이자 재상이었던 유시는 왕황후에게 이충을 황태자로 삼아 후일의 지지를 확보하라고 조언했다. 왕황후는 이를 받아들였고, 유시는 고종의 강력한 외숙부인 장손무기를 비롯한 다른 재상들에게도 같은 의견을 내도록 설득했다. 결국 당 고종은 이 제안에 동의하여, 영휘 3년(652년) 7월에 이충을 황태자로 책봉했다. 이때 재상 우지녕, 장행성, 고지부가 어린 태자를 보좌하는 고문 역할을 겸하게 되었다.

2.2. 폐위와 유배

652년, 고종의 황후였던 왕황후에게 아들이 없자, 그녀의 숙부인 재상 유시는 왕황후에게 이충을 태자로 삼도록 권유했다. 왕황후가 동의하자 유시는 다른 재상들, 특히 고종의 숙부이자 강력한 권력자였던 장손무기까지 설득하여 이충을 태자로 추천하게 했다. 고종은 이를 받아들여 652년 이충을 황태자로 책봉했으며, 재상 우지녕, 장행성, 고지부 등이 태자의 고문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655년, 왕황후는 고종의 총애를 받던 후궁 무측천(훗날의 측천무후)의 모함으로 폐위되었고, 무측천이 새로운 황후가 되었다. 당시 무측천에게는 이미 이홍을 포함한 두 아들이 있었다. 무측천의 정치적 동맹이었던 허경종은 황후의 아들을 태자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고종은 이를 받아들였다. 결국 656년 봄, 이충은 황태자 자리에서 폐위되어 양왕(梁王)으로 강등되었고, 수도에서 먼 양주(섬서성 한중시 일대) 자사로 좌천되었다. 그의 자리에는 무측천의 아들 이홍이 새로운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이후 이충은 양주에서 다시 방주(후베이성 스옌시 일대) 자사로 옮겨졌다.

유배지에서 이충은 무측천에 의해 살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그는 암살자를 피하기 위해 때때로 여장을 하거나, 점술가를 불러 자신의 운명을 점치기도 했다. 이러한 행동들이 660년 고종에게 보고되자, 고종은 이충을 서민으로 강등시키고 첸저우(충칭시 일대)로 보내 가택 연금시켰다. 그가 갇힌 곳은 과거 그의 숙부이자 역시 폐태자였던 이승건이 유배되었던 집이었다.

664년, 재상 상관의는 무측천의 부도덕함을 이유로 고종에게 그녀를 폐위할 것을 건의했으나 실패했다. 이에 무측천은 허경종을 시켜, 상관의와 환관 왕복승(王伏勝)이 이충과 함께 반역을 모의했다고 거짓으로 고발하게 했다. 상관의와 왕복승은 과거 이충 밑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665년 1월 4일, 상관의와 그의 아들 상관정지(上官庭芝), 그리고 왕복승은 처형당했다. 이틀 뒤인 1월 6일, 고종은 이충에게 자결을 명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2세였다.

이충이 죽은 후, 665년 말에 새로운 태자 이홍의 요청으로 그의 장례가 정식으로 치러졌다. 수십 년이 지난 705년, 무측천이 사망하고 그녀의 아들인 당 중종이 복위한 후, 이충은 연왕(燕王)으로 추봉되고 태위(太尉) 및 양주대도독(揚州大都督)의 관직이 추증되었으나, 황태자의 지위는 회복되지 못했다.

2.3. 죽음과 사후

656년 황태자에서 폐위된 이충은 양왕(梁王)으로 강등되어 양주(梁州, 현재의 산시성 한중시 부근) 도독으로 좌천되었다가, 곧이어 방주(房州, 현재의 후베이성 스옌시 부근) 자사로 다시 옮겨졌다. 나이가 들면서 그는 무후(武后)의 위협을 두려워하여 암살자를 피하기 위해 여장을 하거나 점쟁이를 불러 미래를 점치는 등의 행동을 했다.

이러한 행동은 고종(高宗)에게 보고되었고, 660년 7월 고종은 이충의 신분을 평민으로 강등시키고 첸저우(黔州, 현재의 충칭시 일대)로 유배 보냈다. 그가 갇힌 곳은 과거 그의 백부이자 역시 폐태자였던 이승건이 유폐되었던 집이었다.

664년, 재상 상관의가 무후의 부도덕함을 이유로 고종에게 폐위를 건의했으나 실패하자, 무후는 쉬징쭝(許敬宗)을 시켜 상관의와 환관 왕복승(王伏勝, 무후의 부도덕함을 고종에게 보고했던 인물)이 이충과 함께 반역을 도모했다고 무고하게 했다. 상관의와 왕복승은 과거 이충의 수하로 일한 적이 있었다. 665년 1월 4일(음력 린더 원년 12월), 상관의와 그의 아들 상관정지, 그리고 왕복승이 처형되었다. 이틀 뒤인 1월 6일, 고종은 이충에게 자결을 명했고, 그는 첸저우의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2세였다.

665년 후반, 새로운 황태자 이홍(李弘)의 요청으로 이충의 장례가 정식으로 치러졌다. 이충의 죽음 이후, 무후는 조정의 권력을 더욱 확고히 장악하게 되었다. 수십 년이 지난 705년 무후가 사망하고 중종이 복위한 후, 이충은 연왕(燕王)으로 추봉되었고, 태위와 양주대도독(揚州大都督)의 관직이 추증되었다. 하지만 황태자 신분은 회복되지 못했다.

3. 가족 관계

* 아버지 : 당 고종
* 어머니 : 궁인 유씨

4. 기타

* 구당서, 권 86. [https://web.archive.org/web/20071011103738/http://ef.cdpa.nsysu.edu.tw/ccw/02/tan10.htm 원문]
* 신당서, 권 81. [https://web.archive.org/web/20080219204850/http://ef.cdpa.nsysu.edu.tw/ccw/02/ntan13.htm 원문]
* 자치통감, 권 199, 200, 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