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권
1. 개요
장호권은 대한민국의 시민운동가이자 언론인, 정치인이다. 1968년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 복무 중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1973년 신민당 당무위원을 지냈으며, 아버지 장준하의 의문사 이후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했다. 1976년부터 2003년까지 해외에서 도피 생활을 했으며, 귀국 후 월간지 《사상계》를 복간했다. 고구려 문화연구회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 이름 | 장호권 |
|---|---|
| 원어명 | 張豪權 |
| 로마자 표기 | Jang Ho-gwon |
| 직업 | 사회 운동가 |
| 국적 | 대한민국 |
| 출생일 | 1949년 5월 14일 |
| 소속 |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 |
| 경력 | 사회 운동가, 정치인, 언론인, 기업가, 출판인, 시민사회단체인 |
-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 -
정호준
-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 -
김한길
-
새미래민주당 -
이낙연
-
새미래민주당 -
전병헌
-
장준하 -
대한민국 제2공화국
대한민국 제2공화국은 4·19 혁명 이후 수립된 의원내각제 정부이며, 6·15 개헌을 통해 내각제로 전환되었으나, 민주당 내분, 사회 혼란 등으로 인해 5·16 군사정변으로 붕괴되었다. -
장준하 -
김영선 (1918년)
김영선은 일제 강점기 관료로 시작해 해방 후 재무부 장관, 국토통일원 장관, 주일 대사를 역임하고 보령군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대한민국의 관료이자 정치인, 기업인이다.
2. 생애
1968년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같은 해 군에 입대하여 만기 전역하였고, 군 복무 중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기도 하였다. 1973년 신민당 당무위원을 잠시 지냈다가 탈당하였다. 1975년 8월 17일, 아버지 장준하가 사고로 사망하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였다.
1976년 11월부터 27년간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 도피 생활을 하다가 2003년 4월에 귀국하였다. 싱가포르 한인교민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였고, 2005년 3월 1일 월간잡지 인터넷 《사상계》를 복간하여 대표이사에 취임하였다. 2007년 1월 1일에는 《사상계》 종이책을 복간하였다.
2007년 1월 25일 기자회견에서 보수주의를 무시하는 진보주의의 독선적 성향을 비판하며, 아름다운 명분도 독선으로 치달아서는 안 되고, 보수주의도 대안 제시 없이 진보주의를 비판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따뜻한 진보와 따뜻한 보수를 표방해야 한다고 밝혔다. 2007년 11월, 《고구려 문화연구회》 이사장 직에 추대되었다.
2008년 3월,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갑 지역구에 기호 8번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2.1. 초기 생애 및 청년기
1968년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같은 해 군에 입대하여 만기 전역하였다. 군 복무 중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기도 하였다. 1973년 신민당 당무위원을 잠시 지내다가 탈당하였다. 1975년 8월 17일, 아버지 장준하가 사고로 사망하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였다. 당시 신직수는 제4공화국 시대의 중앙정보부 부장이었다. 1976년 4월 19일, 백기완이 운영하는 《백범 사상연구소》에 들러 아버지의 죽음을 밝혀달라는 성명서를 작성했다. 1976년 11월부터 27년간 싱가포르를 비롯한 해외에서 도피 생활을 하였고, 2003년 4월에 귀국하였다.
2.2. 장준하 의문사 사건
1975년 8월 17일, 제4공화국 시대 중앙정보부 부장 신직수 휘하에서 아버지 장준하가 의문사한 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 노력했다. 1976년 4월 19일, 백기완이 운영하는 《백범 사상연구소》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밝혀달라는 성명서를 작성했다. 1976년 11월부터 27년간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 도피 생활을 하다가 2003년 4월에 귀국하였다.
2.3. 귀국 이후 활동
1975년 8월 17일, 아버지 장준하가 사고로 사망하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 1976년 4월 19일, 백기완이 운영하는 《백범 사상연구소》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밝혀달라는 성명서를 작성했다. 1976년 11월부터 27년간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 도피 생활을 했고, 2003년 4월에 귀국했다. 싱가포르 한인교민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2003년 4월 귀국 후, 2005년 3월 1일 인터넷 월간잡지 《사상계》를 복간하여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2007년 1월 1일에는 《사상계》 종이책을 복간했다. 2007년 1월 25일 기자회견에서 보수주의를 무시하는 진보주의의 독선적 성향을 비판하며, 아름다운 명분도 독선으로 치달아서는 안 되고, 보수주의도 대안 제시 없이 진보주의를 비판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따뜻한 진보와 따뜻한 보수를 표방해야 한다고 밝혔다.
2007년 11월, 《고구려 문화연구회》 창립과 함께 이사장으로 추대되었다.
2008년 3월,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갑 지역구에 기호 8번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4. 정계 입문
1968년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군에 입대하여 만기 전역하였다. 군 복무 중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기도 하였다. 1973년 신민당 당무위원을 잠시 지냈으나, 같은 해 탈당하였다. 1975년 8월 17일 아버지 장준하가 제4공화국 시대 중앙정보부 부장 신직수 재임 중 사고사하자, 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1976년 4월 19일 백기완이 운영하는 《백범 사상연구소》에 들러 아버지의 죽음을 밝혀달라는 성명서를 작성했다.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사후, 1976년 11월부터 27년간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 도피 생활을 하다가 2003년 4월 귀국하였다. 싱가포르 한인교민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였고, 귀국 후 2005년 3월 1일 월간잡지 인터넷 《사상계》를 복간하여 대표이사에 취임하였다. 2007년 1월 1일에는 《사상계 종이책》을 복간하였다.
2007년 1월 25일 기자회견에서 "보수주의를 무시한 진보주의의 독선적 성향을 지적하고 아름다운 명분도 독선으로 치달아서는 안 되며 보수주의도 대안 제시 없이 진보주의에 삿대질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며, 따뜻한 진보, 따뜻한 보수를 표방해야 한다고 발표하였다. 2007년 11월, 《고구려 문화연구회》 이사장 직에 추대되었다.
2008년 3월,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갑 지역구에 기호 8번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