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궁주
1. 개요
정신궁주는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과 순비 노씨의 차녀로, 1390년 궁주로 책봉되었다. 단양 우씨 우성범과 혼인했으나, 조선 건국 후 남편이 처형당했다. 이후 1421년 공양왕릉 수호를 청하는 상소를 올린 기록이 있어 그 이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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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사망 -
안드레이 루블료프
15세기 러시아의 이콘 화가이자 수도사인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러시아 정교회 미술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성삼위일체」 이콘은 성삼위일체 묘사의 표준으로 인정받았으며 금욕적인 아름다움과 비잔틴 양식의 조화로 '루블료프파'라는 독자적인 예술 사조를 형성했다. -
15세기 사망 -
경선공주
경선공주는 조선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의 딸로, 1393년 심종에게 하가하여 딸 하나를 두었으며, 남편의 사망 후 1446년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고종 때 공주로 봉해졌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고려의 왕녀 -
정녕원비
정녕원비는 고려 충렬왕과 정신부주의 딸로, 1274년 정녕궁주에 책봉되었고 종실 제안공 왕숙과 혼인한 인물이다. -
고려의 왕녀 -
명순원비
명순원비는 충렬왕과 정신부주의 딸로, 한양공 왕현과 혼인하여 계양후 왕광을 낳았으며, 1320년에 사망한 고려의 왕족이다.
2. 생애
고려 말기인 1390년(공양왕 2년) 음력 윤4월 17일, 아버지 공양왕에 의해 자매들과 함께 정신궁주(貞信宮主)로 봉해졌다. 이후 단양군(丹陽君)에 봉해진 우성범(禹成範)과 혼인하여 딸 하나를 두었다. 우성범은 단양 우씨 우현보(禹玄寶)의 손자이자 우홍수(禹洪壽)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격동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남편 우성범은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 7월 시동생 강회계(姜淮系)와 함께 참수되었고, 시아버지 우홍수 역시 모반 혐의로 같은 해 8월 23일 처형되었다.
2.1. 가계와 혼인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과 순비 노씨의 차녀이며, 생년은 명확하지 않다. 성은 왕, 본관은 개성이다.
아버지 공양왕은 신종의 7대손으로, 1389년(공양왕 원년) 창왕을 폐위시킨 이성계 일파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실권은 이성계에게 있었고, 1392년(공양왕 4년) 이성계가 새 왕조 조선을 세우면서 고려는 멸망하였다. 공양왕은 1394년(조선 태조 3년) 사사되었다. 어머니 순비 노씨는 창성군 노진의 딸로, 1389년(공양왕 원년) 왕비에 책봉되었으며 정신궁주를 포함해 1남 3녀를 낳았다.
정신궁주는 공양왕 즉위 이듬해인 1390년(공양왕 2년) 음력 윤4월 17일, 다른 두 자매와 함께 정신궁주(貞信宮主)로 봉해졌다. 이후 단양군(丹陽君)에 봉해진 우성범(禹成範)과 혼인하였다. 우성범은 단양 우씨(丹陽 禹氏)로, 우홍수(禹洪壽)의 장남이자 우현보(禹玄寶)의 손자이다. 정신궁주는 우성범과의 사이에서 딸 하나를 낳았다.
그러나 1392년(조선 태조 원년) 7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 남편 우성범은 사형 선고를 받고 시동생 강회계(姜淮系)와 함께 참수되었다. 또한 시아버지 우홍수도 모반을 꾀하다 실패하여 같은 해 8월 23일 처형되었다.
정신궁주는 1421년(조선 세종 3년) 음력 1월 13일 공양왕릉을 수호하는 종을 둘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린 기록이 있어, 적어도 1421년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호는 정신궁주(貞信宮主)이다.
2.2. 남편의 죽음과 조선 건국
공양왕 즉위 이듬해인 1390년(공양왕 2년) 음력 윤4월 17일, 다른 두 자매와 함께 궁주로 책봉되어 정신궁주(貞信宮主)가 되었다. 이후 단양군(丹陽君)에 봉해진 단양 우씨 우성범(禹成範)과 혼인하였다. 우성범은 우홍수(禹洪壽)의 아들이자 우현보(禹玄寶)의 손자였으며, 정신궁주는 그와의 사이에서 딸 하나를 낳았다.
그러나 1392년 7월, 이성계가 왕위에 올라 조선을 건국하면서 정신궁주의 삶은 큰 변화를 맞게 된다. 남편 우성범은 조선 태조 원년인 1392년에 시동생 강회계(姜淮系)와 함께 참형을 당했고, 시아버지 우홍수 역시 모반 혐의로 같은 해 8월 23일 처형되었다.
남편 사후 정신궁주의 행적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1421년(세종 3년) 음력 1월 13일 공양왕릉을 수호할 종을 둘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적어도 1421년 이후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호는 정신궁주(貞信宮主)이며, 딸 외에 다른 자녀에 대한 기록은 없다.
2.3. 조선 건국 이후
1392년(이성계가 왕위에 올라 새 왕조를 세운 해) 남편 우성범은 시동생 강회계(姜淮系)와 함께 참형당했다. 우성범은 단양 우씨 우홍수(禹洪壽)의 장남이자 우현보(禹玄寶)의 손자였는데, 그의 아버지 우홍수가 모반을 꾀하다 실패하여 같은 해 8월 23일 태조의 군대에 의해 처형된 사건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 정신궁주는 우성범과의 사이에서 딸 하나를 낳았다.
이후 궁주는 1421년(조선 세종 3년) 음력 1월 13일 공양왕릉을 수호하는 종을 둘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린 기록이 남아 있어, 적어도 1421년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호는 정신궁주(貞信宮主)이며, 딸 외 다른 자녀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