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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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창연은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자는 경진, 호는 수죽이며, 좌의정 정유길의 아들이다.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임진왜란 당시 광해군을 따라 분조에서 활동하며 세자 좌빈객을 지냈다. 이후 예조판서, 대사헌, 좌참찬, 이조판서, 형조판서 등을 두루 역임하고 광해군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인조 즉위 후 다시 좌의정에 올랐다. 광해군 때 폐모론에 반대하는 등, 여러 차례 요직을 두루 거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정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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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정창연은 선조 때인 1579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자는 경진, 호는 수죽이며, 아버지는 좌의정 정유길, 어머니는 원주 원씨로 원계채의 딸이다.

이조좌랑, 집의, 좌부승지를 거쳐 부제학, 이조참판, 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했다. 임진왜란 때는 광해군을 보좌하여 세자좌빈객에 올랐다.

1593년 예조판서 겸 세자좌빈객, 대사헌을 거쳐 지돈녕부사로 있다가 다시 대사헌이 되었다. 이후 지중추부사, 예조판서, 사헌부대사헌, 의정부좌참찬을 두루 지냈다. 좌참찬을 지내다 사헌부대사헌으로 동지춘추관사를 하고, 동지성균관사를 거쳐 대사헌이 되었다.

이후 동지중추부사와 사헌부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 형조판서, 동지중추부사, 지경연사, 사헌부대사헌, 동지성균관사, 조지서 제조, 좌참찬, 혜민서 제조, 지의금부사, 병조판서, 우찬성 등을 역임했다.

광해군 때 폐모론에 반대한 중신이었음에도 우의정, 좌의정이 되었다가 인조반정 후 다시 좌의정에 올랐다.

2.1. 가계

정창연의 자는 경진, 호는 수죽이며, 아버지는 좌의정 정유길이다. 어머니는 원주 원씨황해도 관찰사, 부제학 등을 지낸 원계채의 딸이다.

2.2. 관직 생활

1579년 (선조 12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좌랑, 집의, 좌부승지, 부제학, 이조참판, 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했다. 임진왜란 당시 분조에서 광해군을 보좌하며 세자좌빈객에 올랐다. 1593년 예조판서 겸 세자좌빈객, 대사헌, 지돈녕부사, 지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이후 좌참찬, 대사헌, 동지춘추관사, 동지성균관사, 이조판서, 형조판서, 지경연사, 조지서 제조, 혜민서 제조, 지의금부사, 병조판서, 우찬성 등을 거쳤다. 광해군 때 폐모론에 반대한 중신이었음에도 우의정, 좌의정에 올랐고, 인조반정 후에도 다시 좌의정에 등용되었다.

2.2.1. [[조선 선조|선조]] 대

1579년 식년 문과에 급제해 이조좌랑, 집의를 거쳐 좌부승지, 부제학, 이조참판, 지돈녕부사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당시 분조에 배속되어 광해군을 따라 활동하였고 세자좌빈객에 올랐다. 1593년 8월 예조판서로 세자좌빈객을 겸하고 대사헌을 거쳐 지돈녕부사, 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이후 예조판서, 사헌부대사헌, 의정부좌참찬을 두루 거쳤다. 좌참찬을 지내다 사헌부대사헌으로 동지춘추관사를 하고 이후 동지성균관사를 거쳐 대사헌이 되었다. 동지중추부사와 사헌부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 형조판서, 지경연사, 동지성균관사를 겸한 뒤 조지서 제조, 좌참찬을 하였다. 동지중추부사와 지중추부사를 거쳐 좌참찬으로 혜민서 제조를 겸하고 지의금부사, 동지성균관사를 겸한 뒤 좌참찬, 예조판서, 병조판서, 우찬성, 병조판서를 역임했다.

2.2.2. [[광해군|광해군]] 대

임진왜란 당시 분조에 배속되어 광해군을 따라 활동하였고 세자좌빈객에 올랐다. 1593년 예조판서 겸 세자좌빈객, 대사헌, 지돈녕부사를 거쳐 다시 대사헌, 지중추부사, 예조판서, 사헌부대사헌, 의정부좌참찬을 역임했다. 좌참찬 재직 중 사헌부대사헌으로 동지춘추관사를 겸임하고, 이후 동지성균관사, 대사헌, 동지중추부사, 사헌부대사헌, 이조판서, 형조판서, 동지중추부사, 지경연사를 거쳐 다시 사헌부대사헌이 되었다. 동지성균관사를 겸한 뒤 조지서 제조, 좌참찬, 동지중추부사, 지중추부사, 좌참찬 겸 혜민서 제조, 지의금부사 겸 동지성균관사, 좌참찬, 예조판서, 병조판서, 우찬성, 병조판서를 역임했다. 광해군 때 폐모론에 반대한 중신으로, 이후 우참찬 겸 지경연사를 거쳐 광해군 치하에서 우의정, 좌의정에 이르렀다.

2.2.3. [[조선 인조|인조]] 대

광해군우의정좌의정을 지냈으나 인조반정 이후 다시 등용되어 좌의정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