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원 (축구인)
1. 개요
정해원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1983년 대우 로얄즈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1986년 K리그 득점왕과 K리그 베스트 11을 수상했으며, 1987년에는 K리그 MVP와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1980년부터 1990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활약하며, 1990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다. 1991년 은퇴 후에는 대우 로얄즈 감독 대행, 전남 드래곤즈 수석 코치, 정해원 축구 교실 운영 등의 활동을 했으며, 2020년 간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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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정해원 |
|---|---|
| 한자 표기 | 丁海遠 |
| 로마자 표기 | Chung Hae-won |
| 출생일 | 1959년 7월 1일 |
| 출생지 | 대한민국 |
| 사망일 | 2020년 5월 1일 |
| 사망지 | 경기도 고양시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
| 신장 | 178cm |
| 포지션 | 은퇴 (선수 시절 공격수·미드필더) |
| 유소년 클럽 | 연세대학교 |
|---|---|
| 유소년 클럽 연도 | 1978-1982 |
| 클럽 | 대우 로얄즈 |
| 클럽 연도 | 1983-1991 |
| 출장 (골) | 154 (34) |
| 클럽팀 정보 업데이트 날짜 | 2009년 5월 1일 |
| 국가대표팀 | 대한민국 U-20, 대한민국 |
|---|---|
| 국가대표팀 연도 | 1978, 1980-1990 |
| 국가대표팀 출장 (골) | 58 (21) |
| 국가대표팀 정보 업데이트 날짜 | 2009년 5월 1일 |
| 감독 | 부산 아이파크 (감독 대행), 전남 드래곤즈 (코치), 정해원 축구 교실, 인천 유나이티드 (스카우트) |
|---|---|
| 감독 연도 | 1994, 1999-2001, 2003-2005, 2008 |
| 메달 기록 | {"caption":"","image_file":""} |
|---|
| 메달 스포츠 | 축구 |
|---|---|
| 메달 국가 | 대한민국 |
| 메달 경기 | AFC 아시안컵 |
| 준우승 | 1980 쿠웨이트 (단체전) |
| 준우승 | 1988 카타르 (단체전) |
| 메달 경기 |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
| 우승 | 1980 대한민국 (단체전) |
-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스카우터 -
김광석 (축구 선수)
김광석은 포항 스틸러스에서 프로 데뷔하여 K리그1 우승 2회, FA컵 우승 3회,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를 기록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한 대한민국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현재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스카우터로 활동하고 있다. -
1982년 축구 -
장외룡
장외룡은 1980년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왼쪽 풀백 출신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K리그 우승과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을 경험했으며, 은퇴 후 K리그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1982년 축구 -
이강조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감독인 이강조는 유공 코끼리 선수와 국가대표팀 선수로 활약했으며, 현재 김천 상무 FC의 감독을 맡고 있다. -
나주 정씨 (丁) -
정래혁
정래혁은 대한민국 육군 장교 출신 정치인으로, 5·16 군사정변에 가담하여 군사혁명위원과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을 지냈고, 상공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을 역임하는 등 군과 정계에서 활동했으나 부정축재 혐의와 실미도 사건 책임 논란이 있는 인물이다. -
나주 정씨 (丁) -
정해창
정해창은 서울대학교 법학과 수석 졸업 후 검사로 임용되어 법무부 장관을 두 차례 역임한 법조인 및 정치인으로, 변호사 활동과 사회 활동을 통해 법조계에 기여했으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2. 클럽 경력
연세대학교 졸업 후 1983년 시즌을 앞두고 대우 로얄즈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대우 로얄즈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1991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1. K리그 기록
1983년 시즌을 앞두고 대우 로얄즈에 입단하면서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1983년 5월 22일에 치러진 국민은행 까치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골을 기록했다.
1986시즌에는 리그 19경기에서 10골을 기록해 K리그 득점왕에 올랐으며, 리그컵 7경기를 포함해 총 26경기에 출전했다. 같은 해 K리그 베스트 11에도 선정되었다.
1987시즌에도 팀의 주전으로 활동하며 28경기에서 6골을 기록했다. 해당 시즌 K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2시즌 연속으로 K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다.
1991시즌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1978년 AFC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20세 이하 대표팀의 우승 멤버였던 정해원은 연세대학교 재학 중이던 1980년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었다. 그는 주로 좌측 윙어 또는 스트라이커로 활약했으며, 1980년 1월 30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같은 해 1980년 AFC 아시안컵에 참가하여 팀의 준우승에 기여했고,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우승에도 힘을 보탰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대표팀에도 선발되었으나, 소련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이후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 1988년 AFC 아시안컵에도 참가했으며, 1990년 FIFA 월드컵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2경기에 출전했다.
정해원은 1980년부터 1990년까지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총 58경기에 출전해 21득점을 기록했다.
주요 참가 대회
* AFC U-19 챔피언십 1978
* 1980년 AFC 아시안컵
* 1988년 AFC 아시안컵
* 1988년 하계 올림픽 축구
* 1990년 FIFA 월드컵
3.1.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
정해원은 1980년 3월 27일에 열린 필리핀과의 1980년 하계 올림픽 아시아 예선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데뷔골을 기록했다. 또한 1980년 AFC 아시안컵 준결승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상대로 2골을 넣어 팀의 2-1 승리와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 # | 날짜 | 개최지 | 상대국 | 결과 | 개요 |
|---|---|---|---|---|---|
| 1 | 1980년 8월 25일 | 춘천 | 인도네시아 | 3-0 | 1980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
| 2 | 1980년 8월 27일 | 대전 | 태국 | 4-0 | |
| 3 | 1980년 8월 29일 | 광주 | 바레인 | 5-0 | |
| 4 | |||||
| 5 | 1980년 9월 2일 | 서울 | 인도네시아 | 2-0 | |
| 6 | 1980년 9월 24일 | 쿠웨이트 시티 | 아랍에미리트 | 4-1 | 1980년 AFC 아시안컵 |
| 7 | 1980년 9월 28일 | 쿠웨이트 시티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2-1 | |
| 8 | |||||
| 9 | 1981년 3월 8일 | 도쿄 | 일본 | 1-0 | 한일 정기전 |
| 10 | 1981년 6월 17일 | 전주 | 말레이시아 | 2-0 | 1981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
| 11 | |||||
| 12 | 1982년 2월 20일 | 콜카타 | 우루과이 | 2-2 | 1982 네루 골드컵 |
| 13 | 1982년 11월 21일 | 뉴델리 | 남예멘 | 3-0 | 1982년 아시안 게임 |
| 14 | 1984년 10월 10일 | 콜카타 | 북예멘 | 6-0 | 1984년 AFC 아시안컵 예선 |
| 15 | |||||
| 16 | 1987년 6월 14일 | 대전 | 태국 | 4-2 | 1987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
| 17 | 1988년 6월 19일 | 수원 | 잠비아 | 4-0 | 1988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
| 18 | |||||
| 19 | 1988년 12월 9일 | 도하 | 카타르 | 3-2 | 1988년 AFC 아시안컵 |
| 20 | |||||
| 21 | 1989년 5월 23일 | 서울 | 싱가포르 | 3-0 | 199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
4. 은퇴 이후
1994년 친정팀인 대우 로얄즈의 감독대행을 맡으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으로 활동했다.
1998년에는 전남 드래곤즈의 수석코치로 부임하여 2001년까지 팀을 이끌었다. 코치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축구계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자신의 이름을 딴 '정해원 축구 교실'을 운영하며 유소년 선수 육성에 힘썼다.
2008년에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스카우터로 활동하며 선수 발굴에 기여했다. 이후에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꾸준히 축구계에 몸담았다.
2020년 5월 1일, 간암으로 투병 중 사망했다.
주요 경력
5. 수상 내역
클럽
* 연세대학교
대한민국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우승 (1980)
* 대우 로얄즈
K리그1: 우승 (1984, 1987, 1991)
대한민국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989)
대한민국 리그컵: 준우승 (1986)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 (1985–86)
아프로-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 (1986)
국가대표팀
* 대한민국 U-20
AFC U-19 챔피언십: 우승 (1978)
* 대한민국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80, 1988)
** 아프로-아시안 네이션스컵: 우승 (1987)
5.1. 클럽
서울화곡초등학교, 안양중학교, 안양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8년 연세대학교에 진학했다.
1983년 시즌을 앞두고 대우 로얄즈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프로 데뷔골은 1983년 5월 22일 국민은행 까치와의 경기에서 기록했다.
1986시즌에는 리그 26경기에 출전하여 10골을 기록하며 K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K리그 베스트 11에도 선정되었다.
1987시즌에도 팀의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28경기에서 6골 4도움을 기록했다. 이 시즌에는 K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2년 연속으로 K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다.
1991시즌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5.2. 국가대표팀
연세대학교 재학 중이던 1980년,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었다. 1980년 1월 30일에 치러진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같은 해 3월 27일에는 필리핀과의 1980년 하계 올림픽 아시아 예선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데뷔골을 기록했다.
1980년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에 참가하여 대회 2차전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와 결승전에서 다시 만난 인도네시아와의 경기에서 각각 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이후 1980년 AFC 아시안컵과 1988년 AFC 아시안컵에 국가대표팀 선수로 참가했으며, 두 대회 모두 준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1987년 아프로-아시안 네이션스컵 우승에도 기여했다. 1988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대회 베스트 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1990년 FIFA 월드컵 본선 엔트리에 포함되어 2경기에 출전했다.
* 대한민국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80, 1988
아프로-아시안 네이션스컵 우승: 1987
5.3. 개인
wikitext
| 수상 연도 | 수상 내역 |
|---|---|
| 1980 | 대한민국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최우수 선수 |
| 대한민국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득점왕 | |
|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베스트 11 | |
| 1981 |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베스트 11 |
| 1982 | AFC 아시안 올스타 |
| 1986 | K리그1 득점왕 |
| K리그1 베스트 11 | |
|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베스트 11 | |
| K리그 특별상 | |
| 1987 | K리그1 최우수선수 (MVP) |
| K리그1 베스트 11 | |
|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베스트 11 | |
| 1988 | AFC 아시안컵 대회 베스트 팀 |
|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베스트 11 | |
| 2003 | K리그 80년대 올스타 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