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군 (일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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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3군 (일본군)은 러일 전쟁과 중일 전쟁,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일본 제국 육군의 군(軍)이다. 1904년 5월 29일 러일 전쟁 당시 노기 마레스케 대장의 지휘 하에 편성되어 뤼순항 공방전과 봉천 전투에서 활약하였으며, 1906년 1월 26일 해산되었다. 이후 1938년 만주에서 재창설되어 소련의 침공에 대비, 만주 동부 국경 수비를 담당했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전력이 약화되어 소련군의 만주 침공 당시 옌지, 훈춘에서 항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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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일본 제3군은 러일 전쟁과 중일 전쟁 시기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러일 전쟁에서는 1904년 5월 1일 편성되어 노기 마레스케 장군을 사령관으로 1906년 1월 26일 해산될 때까지 활약했다. 초기에는 뤼순항 공방전을 주요 임무로 수행했고, 이후 봉천 전투에서 일본군 진격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중일 전쟁 시기에는 1938년 1월 13일 만주국에서 주둔군으로 재창설되어 소련 붉은 군대의 침공에 대비해 동쪽 국경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다. 1942년 7월부터는 일본 제1방면군의 지휘를 받으며, 주로 만주 동부와 일제강점기 조선(현재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및 소련과 국경을 접하는 간도성훈춘현 정면을 수비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에서 일본의 전황이 악화되면서 제3군의 숙련된 부대와 장비는 다른 부대로 이전되었다. 소련의 만주 침공 당시에는 훈련과 장비 부족으로 붉은 군대에 밀려 지린성에서 한국 국경으로 후퇴했고, 현재 중국 동북부의 옌볜 조선족 자치주에 속하는 옌지와 훈춘에서 종전을 맞이했다.
2. 1. 러일 전쟁
1904년 5월 1일 노기 마레스케 장군을 사령관으로 하여 편성되었고, 1906년 1월 26일 해산되었다. 러일 전쟁에서 일본 제3군은 노기 마레스케 장군의 지휘 아래 창설되었다. 전쟁 초반에는 뤼순항 공방전을 주요 임무로 수행하였고, 뤼순 요새 함락 후 북쪽으로 이동하여 봉천 전투에서 일본군의 진격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러일 전쟁이 끝날 때 해산되었다.2. 2. 중일 전쟁
1938년 1월 13일, 일본 제3군은 만주국에서 주둔군으로 다시 창설되어 소련 붉은 군대의 침공 가능성에 대비하여 동쪽 국경을 방어했다. 이후 1942년 7월 일본 제1방면군의 지휘를 받았다. 중일 전쟁에서 제3군은 제1방면군의 지휘 하에 주로 만주 동부와 일제강점기 조선 (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및 소련과 국경을 접하는 간도성훈춘현 정면의 수비를 담당했다.동남아시아에서 일본에게 전쟁 상황이 악화되면서, 제3군의 숙련된 부대와 장비 상당수가 다른 부대로 이전되었다. 소련의 만주 침공 당시, 훈련이 부족하고 장비가 부족했던 제3군은 경험이 풍부하고 전투에 단련된 붉은 군대를 상대하기 어려웠고, 지린성의 여러 지역에서 한국 국경으로 후퇴했으며, 현재 중국 동북부의 옌볜 조선족 자치주에 속하는 옌지와 훈춘에서 종전을 맞이했다.
2. 2. 1. 중일 전쟁 시기 지휘관
중일 전쟁 시기 제3군은 제1방면군의 지휘 아래 주로 만주 동부 국경 훈춘 정면의 수비를 맡았다. 다음은 이 시기 제3군의 주요 지휘관 정보이다.
2. 3. 태평양 전쟁 말기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에게 전황이 악화되면서, 제3군은 숙련된 부대와 장비를 다른 지역으로 차출당해 약화되었다. 소련의 만주 침공 당시, 훈련과 장비가 부족했던 제3군은 전투 경험이 풍부한 붉은 군대에 밀려 지린성의 여러 지역에서 한국 국경으로 후퇴했다. 결국 현재 중국 동북부의 옌볜 조선족 자치주에 속하는 옌지와 훈춘에서 종전을 맞이했다. 제3군의 패배는 일본 제국주의의 몰락과 한국의 독립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된다.제3군의 역대 참모장은 다음과 같다.
- 사령관: 무라카미 케이사쿠(村上啓作) 중장
- 참모장: 이케가야 한지로(池谷半二郎) 소장
- 고급 참모: 호소카와 나오토모(細川直知) 중좌
- 고급 부관: 히로세 사부로(広瀬三郎) 중좌
- 병기 부장: 미나미 요시토(南義人) 소장
- 경리 부장: 야노 세이이치(矢野誠一) 주계 소장
- 군의 부장: 닛타 타로(新田太郎) 군의 소장
- 수의 부장: 스기우라 노부시게(杉浦陳重) 수의 중좌
3. 구조
러일 전쟁 당시 1904년 5월 1일에 편성되어 노기 마레스케 장군을 사령관으로 1906년 1월 26일에 해산되었다. 중일 전쟁에서 제3군은 제1방면군의 지휘 아래 주로 만주 동부 국경 훈춘 정면의 수비를 맡았다.
3. 1. 러일 전쟁 시기 편제
1904년 5월 1일에 편성되어 노기 마레스케 장군을 사령관으로 하여 1906년 1월 26일에 해산되었다.- 제1사단
- * 보병 제1여단
- * 보병 제2여단
- 제7사단
- * 보병 제13여단
- * 보병 제14여단
- 제9사단
- * 보병 제6여단
- * 보병 제18여단
- * 기병 제2여단
- * 야전포병 제2여단
- * 후비보병 제15여단
- 뤼순 요새 사령부
3. 2. 중일 전쟁 시기 편제
중일 전쟁 당시 제3군은 제1방면군의 지휘 아래 주로 만주 동부 국경 훈춘 정면의 수비를 맡았다.
4. 주요 지휘관
러일 전쟁 당시 제3군 주요 지휘관으로는 사령관 노기 마레스케 대장, 참모장 이지치 코스케 소장이 있었다. 1905년 1월에는 코이즈미 마사야스 소장이 참모장으로 교체되었고, 이후 마쓰나가 마사토시, 이치노헤 효에 소장이 차례로 참모장을 역임했다.
중일 전쟁 시기에는 제1방면군 예하 부대로서 만주 동부, 조선, 소련과의 국경 수비를 담당했다.
4. 1. 역대 사령관
4. 2. 역대 참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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