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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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신은 유방을 호위한 장수 중 한 명으로, 팽성 전투에서 항우에게 패한 유방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쳐 희생한 인물이다. 기원전 205년, 형양성이 포위되자 유방을 탈출시키기 위해 유방으로 변장하여 항우에게 거짓 항복을 했고, 결국 항우에게 붙잡혀 화형당했다. 그의 희생으로 유방은 탈출에 성공했고, 이후 전세가 역전되는 계기가 되었다. 기신의 충절은 높이 평가받아 여러 왕조에서 시호를 받았다.

기신
인물 정보
이름기신
한자紀信
생몰년도기원전 3세기
국적진나라
직업장군
활동 시기초한쟁패
상관유방
관련 인물항우, 계포, 주발, 번쾌
생애
초기 생애기신은 원래 이름이 계심(季心)이었으나, 유방을 따른 후 기신으로 이름을 바꿨다.
유방과의 만남기신은 유방을 섬기며 그의 휘하에서 활약했다.
성고 전투유방이 항우에게 포위된 성고 전투에서 기신은 유방을 변장시켜 탈출시키고, 자신이 유방으로 변장하여 항우에게 항복함으로써 유방의 탈출 시간을 벌었다.
죽음항우는 기신의 충의에 감탄했지만, 결국 그를 화형에 처했다.
사후유방은 기신의 충절을 기려 그를 후대했다.
평가
충성심기신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주군을 구한 충신으로 평가받는다.
용기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에게 맞선 용감한 장군으로 여겨진다.
관련 기록
사기사기 항우본기, 사기 유경숙손통열전 등에 기록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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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원전 204년 사망 - 동예 (진나라)
    동예는 춘추 시대 진나라 재상 동호의 후손으로, 진나라 말 도위, 항우에게 적왕에 봉해졌으나 유방에게 패하여 항복하고, 팽성 대전 이후 항우에게 귀순했으나 그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2. 생애

기신은 홍문연에서 유방을 호위한 4명의 장수 중 한 명이었다. 번쾌, 하우영 등 다른 장수들이 유방과 오랜 친분이 있던 인물들임을 감안하면, 기신 역시 패현 시절부터 유방과 가까운 사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205년, 팽성 전투에서 항우에게 대패한 유방은 형양성으로 도망갔다. 군량이 부족해지자 진평의 계책으로 2,000명의 여군을 결성, 기신에게 유방의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군 지휘관으로 삼아 거짓 항복하게 하여 유방이 도망갈 시간을 벌었다. 분노한 항우는 기신을 불에 태워 죽였다. 기신이 처형당하고 휘하 여군들이 강간당하는 동안 유방은 반대쪽 문으로 빠져나갔다.

항우는 기신을 사로잡아 유방이 아님을 알고 "너의 주군은 어디 갔느냐?"라고 물었으나, 기신은 "그 분은 도망가신 지 오래되었는데 나라고 알 수 있겠냐?"라고 답했다. 이에 항우는 기신을 화형에 처했다. 이 사건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오히려 항우가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사기에는 기신, 한서에는 기성으로 기록되어 있어 동일인물로 보기도 하지만, 기신은 형양에서, 기성은 호치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동일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

2.1. 초기 생애 및 홍문연 호위

기신의 초기 기록은 많지 않으나, 홍문연에서 유방을 호위한 네 명의 장수 중 한 명이었다. 번쾌, 하후영 등 다른 장수들이 유방과 오랜 친분이 있던 인물들임을 감안할 때, 기신 역시 패현 시절부터 유방과 가까운 사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기에는 기신, 한서에는 기성으로 기록되어 있어 동일인물로 보기도 하지만, 기신은 형양 전투에서 전사하고 기성은 호치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동일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 기원전 207년 홍문지회에서 유방이 항우에게서 도망칠 때 번쾌, 하후영, 근강 등과 함께 참군으로서 유방을 호위했다.

2.2. 형양 전투와 희생

기원전 205년, 유방팽성 전투에서 항우의 군대에게 대패하고 형양성으로 후퇴했다. 수개월 간의 포위로 군량이 부족해지자, 진평의 계책에 따라 2,000명의 여군을 조직하고 기신을 유방으로 변장시켜 항복하는 척하며 유방의 탈출을 도왔다.

기신은 유방의 옷차림을 하고 여군 지휘관이 되어 동문으로 나가 거짓 항복하여 유방이 도망갈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항우는 기신을 사로잡은 후 유방이 아님을 알고 분노하여 "너의 주군은 어디 갔느냐?"라고 물었다. 기신은 "그 분은 도망가신 지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는데 나라고 알 수 있는 방법이 있겠냐?"라고 답했고, 항우는 기신을 불에 구워 죽였다.

기신이 처형당하고 휘하 여군 2,000명이 항우군에게 강간당하는 동안, 유방은 반대쪽인 서문으로 빠져나가 형양성을 탈출했다. 진평은 유방에게 기신이 유방으로 변장하여 초나라에 항복하는 척하고, 그 틈에 유방이 도망치는 계책(금선탈각)을 제안했고, 기신은 이를 받아들였다. 유방은 진평 등 수십 기와 함께 형양성을 탈출했고, 미끼가 된 기신은 항우에게 화형에 처해졌다.

2.3. 기신과 기성

사마천의 《사기》에는 기신으로, 반고의 《한서》에는 기성으로 기록되어 있어 동일 인물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다. 기신은 형양에서 사망했으나, 기성은 호치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동일인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3. 평가 및 추증

기신은 유방을 구출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원전 204년 여름 6월, 항우가 이끄는 10만 명의 군세가 형양성을 포위했을 때(형양 전투), 식량이 떨어진 한나라 군대는 함락 직전에 놓였다. 이때 진평은 유방에게 기신이 유방으로 변장하여 초나라에 항복하는 척하고, 그 틈에 유방이 도망치는 계책(금선탈각)을 제안했다. 기신은 이 계책을 받아들였고, 유방은 진평 등 수십 기와 함께 형양성을 탈출했다. 미끼가 된 기신은 항우에게 화형에 처해졌다.

이러한 기신의 충절은 후대에 높이 평가받아 송대에는 '충우안한공', 원대에는 '보덕현충제왕', 명대에는 '충렬후'로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