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식
1. 개요
조병식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858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강화도 유수, 충청도 관찰사 등을 역임했으며, 흥선대원군의 귀국을 청원하는 사신의 부사로 청나라에 파견되기도 했다. 1888년 함경도 관찰사로 재임하며 흉작으로 인한 식량난을 이유로 곡물 반출을 금지하는 방곡령을 시행했으나, 일본의 압력으로 해임되었다. 갑오개혁 이후에는 여러 부처의 대신과 주일 공사를 역임했으며, 노론에 속했다.
| 한글 이름 | 조병식 |
|---|---|
| 한자 이름 | 趙秉式 |
| 로마자 표기 | Jo Byeong-sik |
| 양주 조씨 | 양주 조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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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의정대신 -
조병세 (1827년)
조병세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을사늑약에 저항하다 자결하였으며 그의 애국 행위는 건국훈장으로 인정받았으나, 일부 기록에 대한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
대한제국의 의정대신 -
심순택
심순택은 심의겸의 11대 손으로, 조선 후기 문신이자 대한제국 의정대신을 역임했으며, 갑신정변 당시 청나라 군대 출동을 요청하고 을사조약에 반대하다가 1906년에 사망했다. -
1832년 출생 -
허드슨 테일러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 내륙 선교회를 설립하고 중국 문화 존중과 믿음 선교 원칙을 통해 51년간 중국 선교에 헌신한 영국의 개신교 선교사이다. -
1832년 출생 -
귀스타브 에펠
프랑스의 토목기사이자 건축가인 귀스타브 에펠은 철골 구조 건축의 선구자로서 에펠탑 건설과 자유의 여신상 내부 구조 설계에 참여했으며, 후기에는 항공학 발전에도 기여했지만 파나마 운하 스캔들에 연루되기도 했다. -
1907년 사망 -
최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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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사망 -
이준 (1859년)
이준은 대한제국의 법조인, 외교관, 독립운동가로서, 독립협회 활동, 민족 계몽 운동, 헤이그 특사 활동을 펼쳤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국하여 일제의 침략을 알리고 독립 의지를 고취했으며 사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2. 생애
조병식은 1858년 과거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붕당 정치에서는 노론에 속했다.
2.1. 관직 생활
1858년 과거 문과에 급제, 1873년 종2품으로 승진했다. 강화도 유수, 충청도 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1885년에는 흥선대원군의 귀국을 청원하는 진주사의 부사로 청나라에 파견되었고, 그해 11월에는 협변(차석) 내무부사가 되었으며, 1886년에는 정2품으로 승진하여 예조, 형조의 각 판서, 독변(수석) 교섭통상사무, 의정부 유사당상을 역임했다.
1880년 개항 이후 원산시에서는 일본 상인에 의한 대두 수출이 성행했지만, 1888년 함경도 관찰사가 된 조병식은 이듬해 흉작으로 인한 식량난을 이유로 곡물의 도외 반출을 금지했다. 방곡령은 전통적인 구황 정책 중 하나로, 조선이 여러 외국과 체결한 조약상으로도 인정되었지만, 일본 측이 강경하게 항의하고 압력을 가하자 조선 정부는 이 법령을 해제했고, 조병식은 해임되었다.
이후 이조 판서를 거쳐 1891년 종1품으로 승진, 독변(수석) 내무부사 등을 거쳐, 갑오개혁 후 외부·법부·탁지부·내부의 각 대신, 의정부 참정, 주일 공사 등을 역임했으며, 1898년 정1품으로 승진했다.
2.2. 방곡령 사건
1880년 개항 이후 원산시에서는 일본 상인에 의한 대두 수출이 성행했지만, 1888년 함경도 관찰사가 된 조병식은 이듬해 흉작으로 인한 식량난을 이유로 곡물의 도외 반출을 금지했다. 방곡령은 전통적인 구황 정책 중 하나로, 조선이 여러 외국과 체결한 조약상으로도 인정되었지만, 일본 측이 강경하게 항의하고 압력을 가하자 조선 정부는 이 법령을 해제했고, 조병식은 해임되었다.
2.3. 갑오개혁 이후
갑오개혁 이후 외부·법부·탁지부·내부의 각 대신, 의정부 참정, 주일 공사 등을 역임했으며, 1898년 정1품으로 승진했다. 붕당 정치에서는 노론에 속했다.
3. 붕당
조병식은 붕당 정치에서 노론에 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