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기
1. 개요
조이기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흉노 정벌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원삭 6년(기원전 123년) 대장군 위청과 함께 흉노를 정벌하여 수급 660개를 취득했으며, 원수 3년(기원전 120년) 관내후에 봉해졌다. 이듬해 우장군으로 정양에서 출진했으나 길을 잃어 참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였고, 속죄금을 내고 관작을 박탈당했다. 그의 행적은 반고의 《한서》 위청곽거병전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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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의 관료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전한의 관료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
전한의 관내후 -
병창
병창은 전한 시대에 관내후를 계승하고 중랑장, 박양후, 태상을 지냈으나 동군태수로 좌천되어 사망한 인물로, 그의 행적은 《한서》에 기록되어 있다. -
전한의 관내후 -
이저
이저는 전한 시대 경제를 섬긴 인물로, 무제 시기 강노장군으로서 흉노 정벌에 공을 세워 관내후에 봉해졌으며, 이후 여러 전투에서 흉노를 무찌르고 좌풍익을 지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2. 생애
전한 무제 시대의 장수로 활동하였다. 대장군 위청을 따라 흉노 정벌에 나서 공을 세워 관내후에 봉해지기도 하였으나, 이후 다른 원정에서 길을 잃는 실책을 범하여 참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였다가 속죄금을 내고 관작을 박탈당했다.
2.1. 흉노 정벌 참전
원삭 6년(기원전 123년), 대장군 위청과 함께 흉노 정벌에 나서 수급 660개를 취하였다. 이는 당시 전한의 적극적인 북방 정책에 따른 군사 활동의 일환이었다.
원수 3년(기원전 120년)에는 관내후에 봉해지고 황금 100근을 받았다.
이듬해인 기원전 119년, 우장군이 되어 조양, 이광, 공손하와 함께 다시 위청을 따라 정양에서 출진하였다. 그러나 이 원정에서 길을 잃는 실책을 저질러 참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였고, 결국 속죄금을 내고 목숨을 부지하는 대신 모든 관작을 박탈당했다.
2.2. 관내후 책봉과 몰락
원수 3년(기원전 120년)에 관내후에 봉해지고 황금 100근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우장군에 임명되어 조양, 이광, 공손하와 함께 대장군 위청을 따라 정양에서 흉노 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원정 중 길을 잃어 제때 합류하지 못하는 실책을 범했고, 이로 인해 참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였다. 결국 속죄금을 내고 목숨을 건졌으나, 모든 관작을 박탈당하고 평민으로 강등되었다.
3. 출전
* 반고, 《한서》 권55 위청곽거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