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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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공손하는 전한 경제 때 기병으로 종군하여 공을 세우고, 무제의 사인(舍人)이 되었다. 이후 태복으로 승진했으며, 아내 위유가 무사황후의 언니였기에 중용되어 흉노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워 남표후에 봉해졌으나 죄를 지어 박탈되었다. 태초 2년에는 승상이 되었으나 아들 공손경성이 불법 행위로 투옥되자, 주안세를 체포하여 죄를 덮으려 했다. 그러나 주안세의 고발로 공손하 또한 투옥되어 정화 2년에 일족이 주멸되었다. 공손하는 태복으로 33년, 승상으로 13년간 재임하며 전한 역사상 가장 오래 재임한 인물 중 한 명이다.

공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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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공손하는 경제 때 젊어서 기병으로 종군하여 공적을 세웠고, 유철이 태자일 때 사인(舍人)이 되었다. 무제가 즉위하자 태복으로 승진했다. 공손하는 태복과 승상을 합쳐 33년, 승상만 13년간 재임하여 전한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재임하였다.

2.1. 흉노와의 전쟁

공손하는 아내 위유(衛孺)가 무사황후의 언니였기 때문에 중용되었고, 장군으로서 흉노와 싸웠다. 그 공으로 남표(南奅侯)에 봉해졌으나 죄를 지어 박탈되었다. 그는 태복으로 있으면서 경거장군, 거기장군, 좌장군, 부저장군 등을 역임하며 흉노와의 전쟁에서 활약했다.

2.2. 승상 임명과 죽음

태초 2년(기원전 103년), 석경의 뒤를 이어 승상이 되었다. 석경의 전임 승상 세 명(이채, 장청적, 조주)이 모두 죄를 지어 죽었고, 석경은 천수를 누렸지만 위태로운 일이 많았었기 때문에, 공손하는 울면서 사양하였으나 무제가 뜻을 굽히지 않아 취임하였다. 승상 취임 후 갈역후(葛繹侯)에 봉해졌다.

아들 공손경성은 황후의 조카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비리를 저질러 하옥되었다. 공손하는 당대의 유명한 도적 주안세(朱安世)를 잡아들여 공손경성의 죄를 갚으려 하였고, 과연 주안세를 잡는 데 성공하였으나 도리어 주안세는 공손경성이 양석공주와 사통하고 무고로 황제를 저주한 사실을 고발하였다. 결국 공손하 또한 하옥되었고, 정화 2년(기원전 91년) 본인은 물론 일족이 주멸되어 후사가 끊겼다. (무고의 변)

3. 가계

공손곤야는 경제 때 농서 군수가 되었고, 오초칠국의 난 때 장군으로 공을 세워 평곡후가 되었으나, 죄를 지어 후작에서 박탈되었다. 병서를 저술했다.

4. 평가

공손하는 전한 경제 때 기병으로 종군하여 공적을 세웠고, 무제가 태자일 때 태자사인(太子舍人)이 되었다. 무제 즉위 후 태복으로 승진하였다. 무사황후의 언니인 위유(衛孺)와 혼인하여 황실의 인척이 되었고, 이를 배경으로 중용되었다. 장군으로서 흉노와의 전쟁에 참전하여 공을 세워 남표(南奅侯)에 봉해졌으나, 죄를 지어 작위를 잃었다.

태초 2년(기원전 103년), 석경의 뒤를 이어 승상이 되었다. 이전 승상들(이채, 장청적, 조주)이 모두 죄를 지어 죽었고, 석경 또한 위태로운 일이 많았기 때문에, 공손하는 울면서 사양하였으나 무제가 허락하지 않아 승상직을 맡게 되었다. 이후 갈역후(葛繹侯)에 다시 봉해졌다.

그러나 아들 공손경성이 황후의 조카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비리를 저질러 하옥되었고, 공손하는 당대의 유명한 도적 주안세(朱安世)를 잡아들여 아들의 죄를 갚으려 하였다. 주안세를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주안세는 공손경성이 양석공주(陽石公主)와 사통하고 무고로 황제를 저주한 사실을 고발하였다. 결국 공손하는 정화 2년(기원전 91년)에 옥사하였고, 일족이 주멸되어 후사가 끊겼다.

공손하의 태복과 승상 재임기간은 각각 33년·13년으로, 전한 역사상 가장 오래 재임하였다. 특히 승상만의 재임 기간으로는 전한의 승상 중 최장 기록이다.( 소하는 도중에 상국이 되었다)

5. 출전

* 사마천, 《사기》 권22 한흥이래장상명신연표·권111 위장군표기열전
* 반고, 《한서》 권19하 백관공경표 下·권66 공손유전왕양채진정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