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디마지오
1. 개요
조 디마지오는 1914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미국의 전 야구 선수로,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하며 3번의 MVP를 수상하고 9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1941년에는 56경기 연속 안타라는 메이저 리그 기록을 세웠으며, 통산 타율 0.325, 361홈런, 1537타점을 기록했다. 은퇴 후에는 배우 마릴린 먼로와 결혼했으나 이혼했으며, 1999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등번호 5번은 양키스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언급되며 미국 스포츠의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있다.
| 이름 | 조 디마지오 |
|---|---|
| 본명 | 조지프 폴 디마지오 |
| 로마자 표기 | Joseph Paul DiMaggio |
| 이탈리아어 표기 | Giuseppe Paolo DiMaggio |
| 출생일 | 1914년 11월 25일 |
| 출생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티네즈 |
| 사망일 | 1999년 3월 8일 |
| 사망지 | 미국 플로리다주 할리우드 |
| 신장 | 6피트 2인치 (약 188cm) |
| 체중 | 193파운드 (약 88kg) |
| 포지션 | 중견수 |
| 타격 | 우타 |
| 투구 | 우투 |
| 데뷔 리그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
| 데뷔일 | 1936년 5월 3일 |
| 데뷔팀 | 뉴욕 양키스 |
| 마지막 리그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
| 마지막 경기일 | 1951년 9월 30일 |
| 마지막 팀 | 뉴욕 양키스 |
| 선수 팀 | 뉴욕 양키스 (1936–1942, 1946–1951) |
|---|
| 코치 팀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68–1969) |
|---|
| 올스타 선정 | 13회 (1936–1942, 1946–1951) |
|---|---|
| 월드 시리즈 우승 | 9회 (1936–1939, 1941, 1947, 1949–1951) |
| 아메리칸 리그 MVP | 3회 (1939, 1941, 1947) |
|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 | 2회 (1939, 1940) |
|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 | 2회 (1937, 1948) |
| 아메리칸 리그 타점왕 | 2회 (1941, 1948) |
| 메이저 리그 최다 연속 경기 안타 | 56경기 |
| 영구 결번 | 뉴욕 양키스 5번 |
| 양키 스타디움 기념 공원 헌액 | 기념 공원 |
| 메이저 리그 올 센추리 팀 선정 | 메이저 리그 올센추리 팀 |
| 통산 타율 | 0.325 |
| 통산 안타 | 2,214 |
| 통산 홈런 | 361 |
| 통산 타점 | 1,537 |
| 명예의 전당 헌액 | 국립 야구 명예의 전당 |
|---|---|
| 헌액 연도 | 1955년 |
| 투표율 | 88.8% (4번째 투표) |
| 소속 국가 | 미국 |
|---|---|
| 소속 군 | 미국 육군 항공대 |
| 계급 | 병장 |
| 복무 기간 | 1943년–1945년 |
| 디마지오의 특집 (현역 시절 플레이 영상 포함) | |
| 1995년 디마지오의 SS 스피치 |
| 선수 선출 국가 | 미국 |
|---|---|
| 선수 선출 년도 | 1955년 |
| 선수 선출 득표율 | 88.84% |
| 선수 선출 방법 | 전미 야구 기자 협회 선출 |
-
마릴린 먼로 -
아서 밀러
아서 밀러는 사회악과 인간의 죄의식을 탐구하는 작품을 쓴 20세기 미국의 극작가로, 《세일즈맨의 죽음》, 《시련》 등의 대표작을 통해 명성을 얻었으며, 국제 펜클럽 회장을 역임하고 89세에 사망했다. -
마릴린 먼로 -
마릴린 먼로의 하얀 드레스
마릴린 먼로의 하얀 드레스는 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서 바람에 날리는 장면으로 유명해진 의상으로, 윌리엄 트래빌라가 디자인했으며, 칵테일 드레스 스타일을 따랐고,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되어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영구 결번에 관한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는 1883년 브루클린에서 창단되어 1958년 로스앤젤레스로 연고지를 옮긴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 소속 팀으로, 재키 로빈슨 영입, 샌디 쿠팩스, 클레이튼 커쇼 등 스타 선수 배출, 7회의 월드 시리즈 우승 등으로 메이저리그 최고의 프랜차이즈 중 하나이며 강력한 팬덤과 팀 문화를 가진 팀이다.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영구 결번에 관한 -
톰 글래빈
톰 글래빈은 메이저리그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소속으로 활동하며 뛰어난 투구와 타격 능력으로 다승왕, 실버 슬러거 상 등을 수상하고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 300승을 달성한 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좌완 투수이다.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영구 결번 -
톰 글래빈
톰 글래빈은 메이저리그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소속으로 활동하며 뛰어난 투구와 타격 능력으로 다승왕, 실버 슬러거 상 등을 수상하고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 300승을 달성한 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좌완 투수이다.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영구 결번 -
그레그 매덕스
그레그 매덕스는 뛰어난 제구력과 지략적인 투구로 '정밀 기계'라 불리며 4년 연속 사이 영 상을 수상하고 18시즌 연속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355승을 거둔 전직 투수로서,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생애
주세페 파올로 디마지오(주세페 파올로 디마조/Giuseppe Paolo DiMaggio이탈리아어)는 1914년 11월 25일 캘리포니아주 마티네즈에서 이탈리아(이탈리아 (시칠리아) 이민자) 주세페와 로잘리아 디마지오의 아홉 자녀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부모는 이탈리아 이졸라 델레 페미네 출신이었다. 그의 이탈리아식 이름은 주세페 파올로 디마지오였다. 아버지는 어부였으며, 그의 조상들 또한 여러 세대에 걸쳐 어부였다.
디마지오는 아버지의 배를 청소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무엇이든 했던 것을 기억했다. 죽은 생선 냄새가 그를 멀미나게 했기 때문이다. 주세페는 그를 "게으르다"고, "쓸모없다"고 불렀다. 열 살 때, 그는 야구를 시작하여 집 근처 노스 비치 놀이터에서 3루수로 활약했다. 핸콕 초등학교와 프란시스코 중학교에 다닌 후, 디마지오는 갈릴레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임시직을 했다.
조 디마지오는 어부 주세페 디마지오의 네 번째 아들(9명의 형제자매 중 여덟 번째)로 태어났으며, 5명의 아들 중 조를 포함해 3명이 메이저리거가 되었다.
2.1. 어린 시절
주세페 파올로 디마지오(주세페 파올로 디마조/Giuseppe Paolo DiMaggio이탈리아어)는 1914년 11월 25일 캘리포니아주 마티네즈(마티네즈)에서 이탈리아(이탈리아 (시칠리아) 이민자) 주세페와 로잘리아 디마지오의 아홉 자녀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부모는 이탈리아 이졸라 델레 페미네(이졸라 델레 페미네) 출신이었다. 그의 이탈리아식 이름은 주세페 파올로 디마지오였다. 아버지는 어부였으며, 그의 조상들 또한 여러 세대에 걸쳐 어부였다.
디마지오는 아버지의 배를 청소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무엇이든 했던 것을 기억했다. 죽은 생선 냄새가 그를 멀미나게 했기 때문이다. 주세페는 그를 "게으르다"고, "쓸모없다"고 불렀다. 열 살 때, 그는 야구를 시작하여 집 근처 노스 비치 놀이터에서 3루수로 활약했다. 핸콕 초등학교와 프란시스코 중학교에 다닌 후, 디마지오는 갈릴레오 고등학교(갈릴레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임시직을 했다.
조 디마지오는 어부 주세페 디마지오의 네 번째 아들(9명의 형제자매 중 여덟 번째)로 태어났으며, 5명의 아들 중 조를 포함해 3명이 메이저리거가 되었다.
2.2. 마이너 리그 시절
2.3. 메이저 리그 시절
1936년 뉴욕 양키스에서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여 타율 .323, 29홈런, 125타점으로 베이브 루스의 공백을 메우고도 남는 성적을 남겼고, MVP 후보에 올랐으며, 올스타에도 선정되었다. 1932년 이후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던 양키스는 디마지오의 활약으로 이후 4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1936년 신인으로서 29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프랜차이즈 신기록을 세웠는데, 이 기록은 2017년 애런 저지에게 깨졌다.
1937년 46홈런으로 리그 홈런왕에 등극했다. 메이저 리그에서 46개의 홈런, 151득점, 418루타로 선두를 달렸고, 6월 27일부터 8월 12일까지 44경기 중 43경기에서 안타를 쳤다. MVP는 타율 .371로 타격왕이 된 찰리 게일린저에게 아깝게 밀렸다.
1939년 타율 0.381로 리그 타격왕에 올랐고, 루 게릭이 은퇴한 후 팀내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하며 자신의 첫 MVP를 수상함과 동시에 신시내티 레즈와의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양키스의 중계 방송 해설자 아치 맥도널드는 디마지오의 빠른 발과 넓은 수비 범위를 당시 새로 등장한 팬 아메리칸 항공의 여객기와 비교하며 "양키 클리퍼"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해 8월 디마지오는 53타점을 기록하며 1930년 해크 윌슨의 한 달 최다 타점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1940년 타율 0.350으로 2년 연속 리그 타격왕에 올랐다.
1941년 5월 15일부터 7월 17일까지 56경기 연속 안타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1887년 볼티모어의 윌리 킬러의 44경기 연속안타와 현대 야구가 자리잡기 시작한 이후 최장 기록인 조지 시슬러의 41경기 연속안타 기록을 훨씬 뛰어넘는 메이저 리그 기록이다. 56경기 연속 안타 기간 동안 타율 .408에 15개의 홈런과 55타점을 기록했다. 연속 안타 기록이 끝난 다음 날부터 다시 16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며 73경기 중 72경기에서 안타를 쳤다. 1941년 MVP는 4할 타율을 친 테드 윌리엄스와 접전이 예상되었지만, 기자들에게 좀 더 인기가 있던 디마지오에게 돌아가며 자신의 두 번째 MVP를 수상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으로 1943년, 1944년, 1945년 시즌을 결장했다.
1946년 복귀하여 처음으로 2할대 타율로 추락하였지만, 1947년 다시 3할대로 복귀하여 신인 포수 요기 베라와 함께 팀 공격을 이끌어 나가며 팀을 월드시리즈 정상으로 이끌었고, 개인 성적에서 자신을 모두 앞섰던 테드 윌리엄스를 제치고 세 번째 MVP를 차지했다. 1946년 9월 창간호 스포츠 잡지 표지에 아들과 함께 사진이 실렸다.
1948년 39홈런과 155타점으로 리그 홈런왕과 타점왕을 차지했다.
1949년 발꿈치 부상과 다리 부상으로 시즌 절반을 결장하였다.
1950년 자신의 9번째 100타점을 기록했다. 스포팅 뉴스에 의해 래리 도비에 이어 두 번째로 뛰어난 중견수로 선정되었다.
1951년 미키 맨틀에게 중견수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하였다.
현역 시절 팀의 9차례 월드 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디마지오의 등번호 5는 은퇴와 함께 양키스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뉴욕 양키스의 영구 결번으로 1951년 지정.
* 9 (1936년)
* 5 (1937년 ~ 1942년, 1946년 ~ 1951년)
2.3.1. 뉴욕 양키스 (1936-1942, 1946-1951)
1936년 뉴욕 양키스에서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여 타율 .323, 29홈런, 125타점으로 베이브 루스의 공백을 메우고도 남는 성적을 남겼고, MVP 후보에 올랐으며, 올스타에도 선정되었다. 1932년 이후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던 양키스는 디마지오의 활약으로 이후 4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1936년 신인으로서 29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프랜차이즈 신기록을 세웠는데, 이 기록은 2017년 애런 저지에게 깨졌다.
1937년 46홈런으로 리그 홈런왕에 등극했다. 메이저 리그에서 46개의 홈런, 151득점, 418루타로 선두를 달렸고, 6월 27일부터 8월 12일까지 44경기 중 43경기에서 안타를 쳤다. MVP는 타율 .371로 타격왕이 된 찰리 게일린저에게 아깝게 밀렸다.
1939년 타율 0.381로 리그 타격왕에 올랐고, 루 게릭이 은퇴한 후 팀내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하며 자신의 첫 MVP를 수상함과 동시에 신시내티 레즈와의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양키스의 중계 방송 해설자 아치 맥도널드는 디마지오의 빠른 발과 넓은 수비 범위를 당시 새로 등장한 팬 아메리칸 항공의 여객기와 비교하며 "양키 클리퍼"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해 8월 디마지오는 53타점을 기록하며 1930년 해크 윌슨의 한 달 최다 타점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1940년 타율 0.350으로 2년 연속 리그 타격왕에 올랐다.
1941년 5월 15일부터 7월 17일까지 56경기 연속 안타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1887년 볼티모어의 윌리 킬러의 44경기 연속안타와 현대 야구가 자리잡기 시작한 이후 최장 기록인 조지 시슬러의 41경기 연속안타 기록을 훨씬 뛰어넘는 메이저 리그 기록이다. 56경기 연속 안타 기간 동안 타율 .408에 15개의 홈런과 55타점을 기록했다. 연속 안타 기록이 끝난 다음 날부터 다시 16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며 73경기 중 72경기에서 안타를 쳤다. 1941년 MVP는 4할 타율을 친 테드 윌리엄스와 접전이 예상되었지만, 기자들에게 좀 더 인기가 있던 디마지오에게 돌아가며 자신의 두 번째 MVP를 수상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으로 1943년, 1944년, 1945년 시즌을 결장했다.
1946년 복귀하여 처음으로 2할대 타율로 추락하였지만, 1947년 다시 3할대로 복귀하여 신인 포수 요기 베라와 함께 팀 공격을 이끌어 나가며 팀을 월드시리즈 정상으로 이끌었고, 개인 성적에서 자신을 모두 앞섰던 테드 윌리엄스를 제치고 세 번째 MVP를 차지했다. 1946년 9월 창간호 스포츠 잡지 표지에 아들과 함께 사진이 실렸다.
1948년 39홈런과 155타점으로 리그 홈런왕과 타점왕을 차지했다.
1949년 발꿈치 부상과 다리 부상으로 시즌 절반을 결장하였다.
1950년 자신의 9번째 100타점을 기록했다. 스포팅 뉴스에 의해 래리 도비에 이어 두 번째로 뛰어난 중견수로 선정되었다.
1951년 미키 맨틀에게 중견수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하였다.
현역 시절 팀의 9차례 월드 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디마지오의 등번호 5는 은퇴와 함께 양키스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뉴욕 양키스의 영구 결번으로 1951년 지정.
* 9 (1936년)
* 5 (1937년 ~ 1942년, 1946년 ~ 1951년)
2.3.2. 기록 및 업적
통산 타율 0.325, 361홈런, 1537타점을 기록했다. MVP 3회(1939년, 1941년, 1947년), 월드 시리즈 우승 9회를 달성했다. 특히 1941년에는 5월 15일부터 7월 17일까지 56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는데, 이는 메이저 리그 기록이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56경기 연속 안타 기간 동안 디마지오는 타율 .408, 15홈런, 55타점을 기록했다. 57경기째 3타수 무안타로 기록이 중단된 다음 경기부터 다시 16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다.
그 외에도 올스타 13회 선정, 홈런왕 2회 (1937년, 1948년), 타점왕 2회 (1941년, 1948년), 타격왕 2회 (1939년, 1940년)를 차지했다.
| 항목 | 경기 | 타석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수비율 | 참고자료 |
|---|---|---|---|---|---|---|---|---|---|---|---|---|---|---|---|---|
| 통산 | 1,736 | 6,821 | 1,390 | 2,214 | 389 | 131 | 361 | 1,537 | 790 | 369 | .325 | .398 | .579 | .977 | .978 | [https://baseball-reference.com/players/d/dimagjo01.shtml] |
디마지오는 월드 시리즈에 10번 출전하여 9번 우승을 차지했다. 유일한 패배는 1942년 월드 시리즈였다. 포스트시즌 51경기에서 타율 .271(54타수 199안타), 27득점, 8홈런, 30타점을 기록했다.
뉴욕 양키스의 영구 결번으로 1951년 지정.
2.4. 은퇴 이후
1954년 1월, 조 디마지오는 배우 마릴린 먼로와 결혼했고, 같은 해 2월에는 함께 대한민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고, 같은 해 10월 먼로의 요청으로 이혼했다. 이 과정에서 디마지오의 가정폭력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벤 헤크트(Ben Hecht)와 공동 집필한 자서전 『나의 이야기(My Story)』에 따르면, 먼로는 처음에 디마지오가 거만한 운동선수일 것이라고 우려하여 만남을 꺼렸으나, 로스앤젤레스에서 소개팅으로 만난 후 2년간 교제했다. 샌프란시스코 시청에서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렸고, 자궁내막증을 앓고 있던 먼로와 디마지오는 모두 가족을 갖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디마지오의 질투심, 지배적인 태도, 폭력적인 행동과 먼로의 바쁜 배우 생활로 인해 결혼은 힘들었다. 1954년 9월, 영화 『7년 만의 외출(The Seven Year Itch)』 촬영 중 발생한 먼로의 치마 날리는 장면을 디마지오가 못마땅하게 여겨 두 사람 사이에 폭행을 수반한 격렬한 싸움이 발생했고, 결국 먼로는 결혼 9개월 만에 이혼을 신청했다. 이혼 후, 디마지오는 치료를 받고 술을 끊었으며 야구 이외의 관심사를 넓혔다.
1955년, 디마지오는 88.84%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는 다시는 결혼하지 않았다.
1970년대, 디마지오는 미스터 커피의 대변인이 되었고, 20년 이상 전기식 드립 커피 메이커의 얼굴이 되었다. 1972년에는 보웨리 저축은행의 대변인이 되었고, 1986년에는 플로리다의 활동적인 은퇴자 커뮤니티인 크로스 키스 빌리지의 대변인이 되었다.
은퇴 후에는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애슬레틱스가 고향과 가까운 오클랜드로 이전했을 때 2년간 코치를 역임했다. 이 인연으로 디마지오 사후, 임시 코치 시절 달았던 등번호 5번이 한때 애슬레틱스의 홈구장에 걸리기도 했다. 1968년에는 다이요 웨일스, 1975년에는 롯데 오리온스에서 스프링캠프 임시 코치를 맡았다. 롯데에서는 가고시마현 가모이케 야구장에 도착하자마자 선수들의 타격 연습을 참관하여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유도 통세·야마자키 히로유키 등의 장단점을 지적하며 킨다 마사이치 감독을 감탄시켰다. 사망 전 해까지 고향팀 양키스의 개막전 시구는 디마지오의 몫이었으며, 후배인 요기 베라와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 간의 갈등에서도 중재 역할을 하는 등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1995년 칼 립켄 주니어가 옛 동료 루 게릭의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을 깨는 2131경기째 오리올스전에 귀빈으로 초청되어 기록 경신을 함께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디마지오에 관한 묘사가 있으며, 사이먼 앤 가펑클의 히트곡 『미세스 로빈슨』, 빌리 조엘의 히트곡 『하트에 파이어』에도 디마지오의 이름이 나온다.
3.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조 디마지오는 1943년 2월 17일 미국 육군 항공대에 입대하여 상병으로 복무하였다. 그는 체육 교사로서 캘리포니아주 산타애나, 하와이,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에 배치되었다. 군 생활 동안 야구팀에서 뛰거나 다른 메이저리거 및 마이너리거들과 친선 경기에 출전했고, 전쟁 전 명성 덕분에 특별 대우를 받았다. 운동선수 전용 식단으로 체중이 4.5kg 늘기도 했으며, 하와이에서는 해변에서 일광욕과 술을 즐기기도 했다. 전투 임무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1945년 9월, 만성 위궤양으로 인해 제대했다.
한편, 디마지오의 부모인 주세페와 로살리아 디마지오는 진주만 공격 이후 "적성 외국인"으로 분류되어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을 소지해야 했고, 허가 없이는 집에서 5마일 반경 밖으로 여행할 수 없었다. 주세페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출입이 금지되었고 배가 압류되기도 했다. 로살리아는 1945년, 주세페는 1946년에 미국 시민이 되었다.
4. 개인사
4.1. 마릴린 먼로와의 관계
조 디마지오는 1952년 봄, 마릴린 먼로와 소개팅으로 만났다. 당시 먼로는 할리우드의 신인 여배우였고, 디마지오는 애슬레틱스 구단의 홍보 전략에 따라 먼로와 함께 사진을 찍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만남을 이어갔고, 2년간의 교제 끝에 1954년 1월 14일 샌프란시스코 시청에서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두 사람은 신혼여행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디마지오는 먼로에게 질투심과 지배적인 태도를 보였고, 때로는 폭력적인 행동을 하기도 했다. 먼로의 바쁜 배우 활동과 자유분방한 성격 또한 디마지오와의 불화를 야기했다. 특히 1954년 9월, 영화 『7년 만의 외출』의 촬영 중 먼로의 치마가 날리는 장면을 본 디마지오는 격분하여 먼로와 크게 다투었다. 결국 먼로는 결혼 9개월 만인 1954년 10월, "정신적 학대"를 이유로 디마지오에게 이혼을 신청했다.
이혼 후에도 디마지오는 먼로를 잊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그는 치료를 받고 술을 끊는 등 변화를 시도했지만, 먼로를 향한 마음은 변치 않았다. 1961년, 먼로가 아서 밀러(Arthur Miller)와의 결혼 생활을 끝내고 페인 휘트니 정신병원(Payne Whitney Psychiatric Clinic)에 입원했을 때, 디마지오는 그녀를 퇴원시키고 플로리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재결합설에 휩싸였지만, "그저 친구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1962년 8월 5일, 먼로는 로스앤젤레스 브렌트우드(Brentwood, Los Angeles)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디마지오는 깊은 슬픔에 잠겨 먼로의 장례를 주관했고,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을 포함한 케네디 가족(Kennedy family)과 할리우드 관계자들의 참석을 금지했다. 그는 20년 동안 매주 세 번 먼로의 묘지에 빨간 장미를 바쳤으며, 그녀에 대한 언급을 삼갔다. 디마지오는 먼로가 존 F. 케네디와 로버트 케네디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믿었으며, 케네디 가문을 평생 미워했다.
디마지오는 1999년 3월 8일 폐암으로 사망하기 직전, "죽으면 마릴린 곁으로 갈 수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4.2. 기타
도로시 아놀드와 1939년에 결혼하여 아들 조셉 폴 디마지오 주니어를 낳았으나 1944년에 이혼했다. 디마지오는 1937년 1월 영화 《맨해튼 메리-고-라운드(Manhattan Merry-Go-Round)》 촬영장에서 도로시 아놀드를 만났으며, 1939년 11월 19일 샌프란시스코 성 베드로와 바울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아놀드는 디매지오가 정착하여 아들의 아버지이자 가까이 있는 남편이 되기를 원했지만, 디매지오는 대중의 관심에 더욱 몰두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조의 2살 위 형인 빈스 디마지오(Vince DiMaggio)는 1937년부터 1946년까지 5개 팀에서, 3살 아래 동생인 돔 디마지오(Dom DiMaggio)는 1940년부터 1953년까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활동했다. 세 형제 모두 중견수였지만, 한 팀에서 뛴 적은 없었다.
5. 사망
디마지오는 성인이 된 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담배를 많이 피웠다. 1998년 10월 12일 폐암 수술을 위해 플로리다주 할리우드의 메모리얼 리저널 병원에 입원하여 99일 동안 머물렀다. 1999년 1월 19일 플로리다 주 할리우드에 있는 자택으로 돌아왔고, 3월 8일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디마지오의 변호사 모리스 엥겔버그는 그의 마지막 말이 전처인 마릴린 먼로를 언급하며 "마침내 마릴린을 볼 수 있겠군"이었다고 전했다.
디마지오의 장례식은 1999년 3월 11일 샌프란시스코의 세인츠 피터 앤드 폴 교회에서 거행되었고, 3개월 후 홀리 크로스 묘지(캘리포니아주 콜마)에 안치되었다. 그의 아들도 같은 해 8월 6일 5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6. 한국과의 인연
7.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
조 디마지오는 미국의 아이콘으로서 선수 시절뿐 아니라 은퇴 후에도 수십 년 동안 영화, 텔레비전, 문학, 예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언급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1952년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주인공 산티아고는 디마지오의 열렬한 팬으로 묘사된다. 사이먼 & 가펑클의 노래 "미세스 로빈슨"에는 "조 디마지오, 어디로 갔나요?"라는 가사가 등장하며, 폴 사이먼은 디마지오 사망 한 달 후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 디마지오 데이에 이 노래를 불렀다. 빌리 조엘의 노래 "위 디든트 스타트 더 파이어"에도 디마지오가 언급된다. 조이스 캐롤 오츠의 2000년 소설 《블론드》(Blonde)에서 "전직 운동선수" 캐릭터는 디마지오를 모델로 했다. 2022년 영화 《블론드》에서는 바비 칸나발레가 디마지오를 연기했다.
이 외에도 디마지오는 다음과 같은 예술 작품에 등장하거나 그에게 헌정되었다.
* 피에르 벨로크: 갤러거 스테이크 하우스를 위한 벽화 별들의 캔버스 (2006)
* 로버트 카실라: 위대함의 연속성
* 제노스 프루다키스: 조 디마지오 어린이 병원을 위한 디마지오 청동 조각상
* 레드 그룸스: 설치 작품 조 린틴 조의 스윙 (1985–1988)
일본에서는 디마지오에 관한 다음과 같은 서적이 출간되었다.
* 『조 디마지오 자전: 양키스의 꽃』 (내무라 유지(内村祐之) 역, 베이스볼 매거진사, 1978년)
* 마이클 시델, 『디마지오의 기적』 (시바타 히로유키(柴田裕之) 역, 보물섬사, 1994년)
* 조셉 더소, 『대리거의 사랑과 고독: 조 디마지오와 마릴린 먼로』 (미야가와 타케시(宮川毅) 역, 베이스볼 매거진사, 1997년)
* 모리스 엔겔버그/마브 슈나이더, 『조 디마지오: 먼로를 사랑한 양키스의 영웅』 (이노우에 아츠오(井上篤夫) 역, 네코 퍼블리싱, 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