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버츠
1. 개요
존 로버츠는 1955년생으로, 미국 연방 대법원장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원 서기와 변호사로 활동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백악관 법률고문을 지냈고, 워싱턴 D.C. 순회항소법원 판사를 거쳐 2005년 9월 29일, 미국 대법원장에 취임했다. 그는 보수적인 법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선거 자금, 수정헌법 제4조, 낙태, 적극적 우대조치 등 다양한 사안에 대해 판결을 내렸다.
| 이름 | 존 글로버 로버츠 주니어 |
|---|---|
| 출생일 | 1955년 1월 27일 |
| 출생지 | 미국 뉴욕주 버펄로 |
| 배우자 | 제인 설리번(1996년 7월 27일 결혼) |
| 자녀 | 2명 (입양) |
| 학력 | 하버드 대학교(문학사), 하버드 로스쿨(법무박사) |
| 수상 | 헨리 J. 프렌들리 메달 (2023) |
| 서명 | John Roberts signature.svg |
| 서명 설명 | 잉크로 쓴 필기체 서명 |
| {"caption":"존 로버츠가 니에베스 대 바틀렛 사건에서 법원의 의견을 전달하는 모습, 2019년 5월 28일 녹음","sound_file":"John_Roberts_delivers_the_opinion_of_the_Court_in_Nieves_v._Bartlett.ogg"} | |
| 직책 | 연방 대법원장 |
|---|---|
| 임명 순서 | 17대 |
| 임명권자 | 조지 W. 부시 |
| 임기 시작 | 2005년 9월 29일 |
| 전임자 | 윌리엄 렌퀴스트 |
| 직책 | 컬럼비아 특별구 연방 항소법원 판사 |
|---|---|
| 임명권자 | 조지 W. 부시 |
| 임기 시작 | 2003년 6월 2일 |
| 임기 종료 | 2005년 9월 29일 |
| 전임자 | 제임스 L. 버클리 |
| 후임자 | 패트리샤 밀렛 |
| 직책 | 미국 법무부 차관 |
|---|---|
| 대통령 | 조지 H. W. 부시 |
| 임기 시작 | 1989년 10월 24일 |
| 임기 종료 | 1993년 1월 20일 |
| 전임자 | 도널드 B. 에이어 |
| 후임자 | 폴 벤더 |
| 직책 | 대통령 법률고문 보좌관 |
|---|---|
| 대통령 | 로널드 레이건 |
| 임기 시작 | 1982년 11월 28일 |
| 임기 종료 | 1986년 4월 11일 |
| 전임자 | J. 마이클 러티그 |
| 후임자 | 로버트 크루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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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연방 대법원장 -
존 마셜
존 마셜은 미국 독립 전쟁 참전, 변호사 활동, 국무장관 역임 후 1801년 미국 대법원 대법원장으로 임명되어 34년간 재임하며 사법 심사 권한을 확립하고 연방 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으며, 노예 소유와 관련된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
미국의 연방 대법원장 -
윌리엄 렌퀴스트
윌리엄 렌퀴스트는 미국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며, 보수주의 성향으로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에 대한 좁은 해석, 연방 정부 권한 축소 및 주 정부 권한 확대를 주장했으며, `부시 대 고어` 사건과 빌 클린턴 탄핵 재판에 관여했다. -
버펄로 (뉴욕주) 출신 -
마크 갱글로프
마크 갱글로프는 미국의 수영 선수이다. -
버펄로 (뉴욕주) 출신 -
카일 챈들러
카일 챈들러는 1965년 뉴욕에서 태어난 미국의 배우로, 1988년 연기를 시작하여 드라마 《프라이데이 나이트 라이츠》에서 에릭 테일러 코치 역으로 에미상을 수상했으며, 영화와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자원봉사 소방관으로도 활동한다. -
체코계 미국인 -
앤드루 존슨
가난한 환경에서 독학으로 정치 경력을 쌓아 대통령이 된 앤드루 존슨은 남북전쟁 이후 온건한 재건 정책으로 의회와 갈등을 겪고 탄핵 소추를 받았으나 부결되었으며, 이후 상원의원으로 활동한 논쟁적인 인물이다. -
체코계 미국인 -
이방카 트럼프
이방카 트럼프는 사업가, 전직 모델, 백악관 선임 고문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딸이자 트럼프 그룹 부사장을 역임했으며, 트럼프 행정부에서 무보수 백악관 선임 고문으로 활동하며 여성 기업가 지원, 경제 정책, 인신매매 방지 등의 분야에서 활동했다.
2. 어린 시절과 교육
존 로버츠는 1955년 1월 27일 뉴욕주 버펄로에서 태어나, 1965년 인디애나주 롱비치로 이사했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했으며, 아버지는 제철소 관리자였다.
1973년 인디애나주 라포트에 있는 가톨릭 기숙학교인 라 루미에르 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에 진학했다. 역사학을 전공하며 학업에 전념했고, 매 여름 제철소에서 일하며 학비를 벌었다. "마르크스주의와 볼셰비즘: 이론과 실제"라는 논문으로 윌리엄 스콧 퍼거슨 상을, 졸업 논문 "유토피아적 보수주의자: 다니엘 웹스터 사상의 연속성과 변화에 대한 연구"는 보우도인 상을 수상했다. 1976년 역사학 학사 학위를 최우등(summa cum laude)으로 받았다.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하여 하버드 로 리뷰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1979년 법학 박사 학위를 최우수 등급(magna cum laude)으로 받았다.
2.1. 출생 및 가정 환경
존 로버츠는 1955년 1월 27일 뉴욕주 버펄로에서 로즈메리(옛 성 포드라스키)와 존 글로버 "잭" 로버츠 1세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일랜드계와 웨일스계 혈통이었고, 어머니는 헝가리 세페스 출신 슬로바키아 이민자의 후손이었다. 두 부모 모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마가렛과 바버라라는 두 여동생과 케이시라는 언니가 있었다. 어린 시절은 뉴욕주 함부르크에서 보냈으며, 아버지는 뉴욕주 라카와나에 있는 베들레헴 스틸 코퍼레이션 공장에서 전기기술자로 일했다.
1965년, 열 살 때 가족과 함께 인디애나주 롱비치로 이사했고, 아버지는 인근 번스 하버에 있는 새로운 제철소의 관리자가 되었다.
2.2. 학창 시절
로버츠는 1973년 인디애나주 라포트에 있는 가톨릭 기숙학교인 라 루미에르 학교를 졸업생 대표로 졸업했으며, 라 루미에르 학교 졸업생 중 처음으로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했다.
로버츠는 학교에서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다. 미식축구 팀 주장이었고, 레슬링 지역 챔피언이었으며, 합창단 및 연극 활동, 학교 신문 공동 편집장을 맡았다. 또한 학생회에도 참여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고, 고등학교 성적을 바탕으로 2학년으로 입학했다. 매 여름 제철소에서 일하며 학비를 마련했다. "마르크스주의와 볼셰비즘: 이론과 실제"라는 논문으로 윌리엄 스콧 퍼거슨 상을 수상했다. 졸업 논문 "유토피아적 보수주의자: 다니엘 웹스터 사상의 연속성과 변화에 대한 연구"는 보우도인 상을 수상했다. 1976년 역사학 학사 학위를 최우등(summa cum laude)으로 받고, 파이 베타 카파 회원이 되었다.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하여 하버드 로 리뷰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1979년 법학 박사 학위를 최우수 등급(magna cum laude)으로 받았다.
3. 초기 법조 경력
로스쿨 졸업 후, 로버츠는 1979년부터 1980년까지 연방 제2순회구 항소법원의 헨리 프렌들리 판사 밑에서 로클럭으로 일했다. 1980년부터 1981년까지는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관의 로클럭으로 근무했다. 1981년부터 1982년까지는 레이건 행정부에서 윌리엄 프렌치 스미스 법무장관의 특별 보좌관을 역임했고,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백악관 법률고문 프레드 F. 필딩의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1986년, 로버츠는 워싱턴 D.C.의 법률회사 호건 앤드 하츠톤(Hogan & Hartson)에 합류했다. 1989년부터 1993년까지는 제1차 부시 행정부에서 법무차관 수석 보좌관으로 일하며 연방 대법원에서 39건의 소송을 맡아 그중 25건에서 승소했다. 미국 대 마이크로소프트 사건에서는 원고인 18개 주를 대리하기도 했다.
1992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콜롬비아 특별구 순회구 연방 항소법원 판사로 지명되었으나 상원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이후 호건 앤드 하츠톤으로 복귀하여 상소 부문 책임자로서 대법원 변론을 맡았고, 조지타운 대학교 로센터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3.1. 법원 서기 (로클럭)
로버츠는 로스쿨 졸업 후 1979년부터 1980년까지 헨리 프렌들리 판사의 법원 서기로 일했다. 1980년부터 1981년까지는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관의 서기로 일했다.
3.2. 레이건 행정부
1980년 대선 이후, 로버츠는 레이건 행정부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다. 윌리엄 레인퀴스트 대법관은 그를 켄 스타에게 추천했는데, 그는 당시 윌리엄 프렌치 스미스 법무장관의 비서실장이었다. 로버츠는 법무장관의 특별 보좌관으로 임명되었다. 워싱턴 D.C. 변호사회에 등록하고 1981년 8월 법무부에 도착한 후, 산드라 데이 오코너가 인준 청문회를 준비하도록 도왔다.
법무장관 보좌관으로서 로버츠는 특히 2조와 5조를 중심으로 1965년 투표권법의 범위에 집중했는데, 로버츠와 다른 레이건 정부의 변호사들은 이 두 조항이 주의 규제에 불필요하게 개입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프렌들리에게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져 온 많은 것들이 심각하게 재고되고 있는 지금, 법무부에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라고 편지를 썼다.
1982년 레이건의 고문이었던 프레드 필딩은 로버츠를 백악관에서 일하도록 영입했다. 로버츠는 1982년부터 1986년까지 백악관 법률고문으로 근무했다.
4. 변호사 활동
1986년, 로버츠는 워싱턴 D.C.에 본사를 둔 로펌인 호건 & 하트슨(Hogan & Hartson, 현 호건 로벨스)에 합류했다. 1989년부터 1993년까지는 조지 H. W. 부시 행정부에서 법무차관 수석 보좌관으로 일했다. 이 기간 동안 로버츠는 미국 정부를 대표하여 연방 대법원에서 39건의 소송을 맡아 그 중 25건에서 승소했다. 미국 대 마이크로소프트 사건에서는 원고인 18개 주를 대리했다.
1992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로버츠를 콜롬비아 특별구 순회구 연방 항소법원 판사로 지명했으나, 상원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이후 로버츠는 호건 & 하트슨으로 복귀하여 회사의 항소 부문 책임자로서 대법원에서 변론을 맡았다. 또한 이 기간 동안 조지타운 대학교 로센터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5. 연방 항소법원 판사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1년 5월 9일 로버츠를 워싱턴 D.C. 순회구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지명했으나, 미국 민주당이 주도하는 상원 사법위원회에서 다른 29명의 후보자들과 함께 부결되었다. 이후 2003년 1월 7일 제임스 벅리 판사의 후임으로 다시 지명되어 사법위원회에서 16대 3으로 승인받고, 상원에서도 만장일치로 승인되었다. 로버츠는 2003년 6월 2일부터 판사직을 수행했다.
6. 미국 연방 대법원장
2005년 9월 3일,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사망하면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 후임으로 지명했던 로버츠를 대법원장으로 다시 지명했다.
로버츠는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포괄적인 법철학은 없으며, 판사를 야구 심판에 비유하며, 볼과 스트라이크를 판정하는 것이 임무"라고 자신의 법철학을 밝혔다. 낙태 문제에 관해서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 작성한 낙태 관련 법률 메모는 당시 자신이 대표했던 행정부의 견해를 반영한 것이며, 반드시 자신의 견해는 아니라고 증언했다. 그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확정된 법이지만, 판례 존중의 원칙의 적용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2005년 9월 22일, 미국 상원 사법위원회는 13대 5로 로버츠의 지명을 승인했다. 9월 29일, 미국 상원 전체는 78대 22로 로버츠를 승인했다. 공화당 의원 전원과 무소속 의원 1명이 찬성했고, 민주당 의원들은 22대 22로 찬반이 갈렸다. 같은 날 존 폴 스티븐스 대법관 앞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미국 대법원장에 취임했다. 당시 50세로, 역대 세 번째로 젊은 대법원장이었다.
로버츠 대법원은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지만, 로버츠 대법원장은 때때로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며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기도 한다.
6.1. 지명 과정
2004년 대통령 선거 당시,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은 치명적인 질병을 앓고 있었고, 칼 로브 휘하의 부시 행정부 고위 자문관들은 그를 대체할 잠재적 후보들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로버츠는 대법원 변호사로서의 경험으로 인해 보수파뿐만 아니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와 같은 진보파의 호의적인 관심을 받았다.
2005년 7월 19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의 퇴임으로 발생할 공석을 채우기 위해 로버츠를 미국 대법원에 지명했다. 로버츠의 지명은 스티븐 브레이어가 1994년 지명된 이후 처음 있는 대법원 지명이었다. 2005년 9월 3일, 로버츠의 상원 인준이 계류 중이던 중 윌리엄 H.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사망했다. 이틀 후, 부시는 오코너의 후임으로 로버츠의 지명을 철회하고 렌퀴스트의 후임 대법원장으로 로버츠를 지명했다.
6.2. 인준 청문회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5년 7월 19일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의 후임으로 로버츠를 지명했다. 그러나 9월 3일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사망하면서, 부시는 로버츠를 대법원장으로 다시 지명했다.
로버츠는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자신의 법철학에 대해 "포괄적인 법철학은 없으며, 판사를 야구 심판에 비유하며, 볼과 스트라이크를 판정하는 것이 임무"라고 밝혔다. 그는 상호간의 무역 조항, 연방주의, 의회 법률 심사, 판례 존중의 원칙(*stare decisis*) 등 다양한 법적 쟁점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 상호간의 무역 조항: 로버츠는 맥컬록 대 메릴랜드 판결을 언급하며 연방 정부의 권한에 대한 광범위한 해석을 인정하면서도, 로페즈 판결 이후 상호간 무역 조항에 새로운 활력이 생겼다고 평가했다.
* 연방주의: 1999년 라디오 인터뷰에서 로버츠는 주마다 상황이 다르므로 주법이 더 적합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 의회 법률 심사: 로버츠는 대법원이 의회 법률의 합헌성을 평가할 의무가 있지만, 입법 정책 판단에 대한 존중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 판례 존중의 원칙: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결을 예로 들며, 잘못된 결정은 뒤집어야 하지만, 이는 사법 활동주의가 아니라 법을 올바르게 적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낙태 문제와 관련하여, 로버츠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 작성한 낙태 관련 법률 메모는 당시 자신이 대표했던 행정부의 견해를 반영한 것이며, 반드시 자신의 견해는 아니라고 증언했다. 그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확정된 법이지만, 판례 존중의 원칙의 적용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또한 항소법원 판사 시절에는 대법원 판례를 존중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9월 29일, 상원은 78대 22로 로버츠의 대법원장 지명을 승인했다.
6.3. 임명 및 취임
2005년 9월 22일, 미국 상원 사법위원회는 13대 5로 로버츠의 지명을 승인했다. 미국 상원 전체는 9월 29일 78대 22로 로버츠를 승인했다. 모든 공화당 의원과 무소속 의원 1명이 로버츠에게 투표했고, 민주당 의원들은 22대 22로 균등하게 나뉘었다. 같은 날 9월 29일 존 폴 스티븐스 대법관 앞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미국 대법원장에 취임했다. 취임 당시 50세로, 역대 세 번째로 젊은 대법원장이었다.
6.4. 주요 판결 및 입장
로버츠 대법원은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지만, 로버츠 대법원장은 때때로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며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기도 한다.
* 선거 자금:
* [[미국 수정 헌법 제4조|수정헌법 제4조]]:
* 낙태:
* 사형: 2019년, 지적 장애를 가진 남성의 사형 집행을 막는 판결에 찬성.
*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
* 언론의 자유:
* 건강보험 개혁: *국가 독립 사업 연합 대 세벨리우스* (2012)에서 환자보호 및 의료비용 저렴화법(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 ACA)의 핵심 조항을 지지.
* [[LGBT]] 권리:
* [[투표권법]]:
* 대통령 권한:
7. 개인 생활
존 로버츠는 1996년 7월 27일 세인트 매슈 사도 대성당에서 제인 설리번(Jane Sullivan)과 결혼했다. J. 마이클 루티그가 들러리였다. 제인 설리번은 변호사이며, 홀리 크로스 대학교를 졸업하고 브라운 대학교에서 수학 석사 학위를, 조지타운 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Juris Doctor) 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법률 채용 담당자로 일했다. 존과 제인 로버츠는 메릴랜드주 체비 체이스에 거주한다. 2000년에 두 자녀 조세핀(조지)과 잭을 입양했다.
로버츠는 1993년과 2007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작을 일으켰다. 2007년에는 메인주 세인트 조지에 있는 별장에서 발작을 일으켜 메인주 로크포트의 병원에 하룻밤 입원했다. 1993년에도 비슷한 발작을 경험했지만, 대법원 공식 성명에 따르면 신경학적 검사 결과 "우려할 만한 원인은 없었다"고 한다. 2020년 6월 21일에는 메릴랜드주의 한 컨트리클럽에서 넘어져 이마에 봉합 수술을 받았고, 탈수 증상으로 인한 어지러움으로 판단되어 관찰을 위해 하룻밤 입원했다.
8. 수상 및 영예
2007년, 로버츠는 홀리 크로스 대학교에서 명예 학위를 받았다. 그는 같은 해 홀리 크로스에서 졸업식 연설을 하기도 했다. 2023년, 로버츠는 미국 법률 연구소의 헨리 J. 프렌들리 메달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