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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루이스 (피아노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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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존 루이스는 미국의 피아노 연주자이자 작곡가이다.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나 뉴멕시코주에서 성장했으며, 디지 길레스피 악단에서 데뷔하여 찰리 파커, 마일스 데이비스 등과 협연했다. 1952년에는 모던 재즈 콰르텟(MJQ)을 결성하여 평생 리더로 활동하며 비밥에 클래식 실내악을 융합한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영화 '대운하'의 음악을 담당하여 누벨바그와 재즈의 관계에 기여했으며, 재즈와 클래식의 융합을 시도하는 '서드 스트림' 운동을 펼쳤다. 2001년 전립선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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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루이스 (피아노 연주자)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본명John Aaron Lewis
1977년 존 루이스
직업음악가
작곡가
편곡가
음악 활동
장르재즈
악기피아노
활동 기간1940년대–1990년대
이전 소속 그룹모던 재즈 쿼텟
출생 및 사망
출생일1920년 5월 3일
출생지미국 일리노이주 라그레인지
사망일2001년 3월 29일
사망지미국 뉴욕주 뉴욕

2. 생애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나 뉴멕시코주에서 성장했다.

디지 길레스피의 악단에서 데뷔했다. 이후 찰리 파커마일스 데이비스 등과 함께 연주했다.

1952년에 길레스피 악단 출신들을 모아 모던 재즈 콰르텟(MJQ)을 결성했다. 이후 평생 MJQ의 리더로서 활동하며 비밥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클래식 실내악을 연상시키는 단정하고 독특한 음악성을 확립했다.

1957년, 프랑스 영화 『대운하』(감독: 로제 바딤)의 음악을 담당했다. 누벨바그와 재즈의 관계에서 선구적인 존재가 되었다.

한편, 군터 슐러 등과 함께 재즈와 클래식의 융합을 목표로 한 "서드 스트림"을 추구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60세를 넘어서는 J.S. 바흐 작곡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1권·전주곡과 푸가 전곡에 도전, 원곡에 즉흥 연주를 섞은 그 연주는 화제가 되었다. 또한 작편곡가로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아내 미랴나 부르바니치(브르바니치/Vrbanichr)는 크로아티아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하프시코드 연주자이다. 미랴나 루이스 명의로도 활동했다. 남편 존 루이스와 함께 연주한 앨범도 있다.

2. 1. 초기 생애 (1920-1945)

존 루이스는 일리노이 라그레인지에서 태어났으며, 부모의 이혼 후 2개월 된 나이에 훈련된 가수였던 어머니와 함께 뉴멕시코 앨버커키로 이사했다.[1][2][3] 어머니가 복막염으로 사망한 후, 그는 할머니와 증조할머니 밑에서 자랐다.[1][2][3] 그는 일곱 살에 클래식 음악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가족은 음악적이었고, 가족 밴드와 보이스카우트 음악 그룹에서 활동했다.[4] 그는 클래식을 연주하며 피아노를 배웠지만, 이모가 연주하는 음악을 통해 어린 나이부터 재즈에 노출되었다.[4] 앨버커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5] 뉴멕시코 대학교에서 인류학과 음악을 복수 전공하고, 자신이 결성한 작은 댄스 밴드를 이끌었다.[6][4] 대학교에서 그의 피아노 교사는 월터 켈러였으며, 그는 1974년 모던 재즈 쿼텟의 앨범 ''In Memoriam''의 타이틀 곡으로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7][8] 그는 인류학 학위로는 직업 전망이 좋지 않다는 조언을 듣고 인류학을 전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4] 1942년 루이스는 육군에 입대하여 케니 클라크와 함께 피아노를 연주했으며, 클라크는 그가 군 복무를 마친 후 뉴욕으로 이주하도록 영향을 미쳤다.[9] 루이스는 1945년 뉴욕으로 이주하여[9] 맨해튼 음악 학교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2. 2. 재즈 경력의 시작과 모던 재즈 콰르텟 결성 (1945-1952)

루이스는 뉴욕으로 이주한 후, 디지 길레스피의 밥 스타일 빅 밴드에 클라크에 의해 소개되었다. 그는 자신이 클라크와 함께 군대에서 연주했던 밴드를 위해 작곡한 "Bright Lights"라는 곡을 연주하여 오디션에 성공했다. 그가 길레스피를 위해 처음 연주했던 곡은 "Two Bass Hit"로 개명되어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다.[10] 루이스는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이 밴드를 위해 작곡, 편곡, 피아노 연주를 했으며, 밴드는 유럽 콘서트 투어를 진행했다. 루이스는 길레스피 밴드와 함께 투어를 마치고 돌아와 개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찰리 파커의 반주자였으며, "Parker's Mood"(1948)와 "Blues for Alice"(1951)와 같은 파커의 유명한 음반에 참여했으며, 레스터 영, 엘라 피츠제럴드, 일리노이 재키와 같은 다른 저명한 재즈 아티스트들과도 협력했다. 또한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의 ''Birth of the Cool'' 세션에도 참여했다. 유럽에 있는 동안 루이스는 데이비스로부터 미국으로 돌아와 길 에반스, 제리 멀리건 등과 함께 ''Birth of the Cool''의 두 번째 세션에 참여해 달라는 편지를 받았다.[11] 1948년부터 1949년까지 미국으로 돌아온 루이스는 데이비스의 노넷에 합류했으며, "1949년 마일스 데이비스 노넷의 가장 다작의 편곡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12] ''Birth of the Cool'' 세션을 위해 루이스는 "S'il Vous Plait", "Rouge", "Move", "Budo"를 편곡했다.

루이스 (1946–1948)


루이스, 비브라폰 연주자 밀트 잭슨, 드러머 클라크, 베이시스트 레이 브라운은 길레스피 빅 밴드 내의 소규모 그룹이었으며,[13] 금관악기와 리드가 휴식을 취해야 할 때나 길레스피 밴드가 연주하지 않을 때 자주 짧은 세트를 연주했다.[14] 이 소규모 밴드는 많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며, 네 사람은 풀타임 활동 그룹을 결성하게 되었는데, 1951년에는 밀트 잭슨 콰르텟이라고 불렀지만, 1952년에 모던 재즈 콰르텟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2. 3. 모던 재즈 콰르텟 (MJQ) 활동 (1952-1974, 1981-1997)

루이스는 디지 길레스피의 밥 스타일 빅 밴드에서 활동하다가, 밀트 잭슨, 레이 브라운, 케니 클라크와 함께 모던 재즈 콰르텟(MJQ)을 결성했다. 1951년에는 밀트 잭슨 콰르텟이라고 불렸지만, 1952년에 모던 재즈 콰르텟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모던 재즈 콰르텟은 길레스피(Gillespie)의 빅 밴드가 댄스를 위한 사운드를 허용했기 때문에 4인조가 더 많은 자유와 복잡성을 필요로 하여 결성되었다.[15] 루이스는 MJQ가 더 많은 즉흥 연주의 자유를 갖기를 원하면서도 자신의 작곡에 몇 가지 클래식 요소와 편곡을 통합하기를 원했다.[12] 비밥 스타일이 모든 초점을 솔로 연주자에게로 돌리는 것을 알아차렸고, MJQ를 위한 작곡에서 즉흥 연주 기간을 뚜렷하게 편곡된 기간과 균등하게 하려고 시도했다.[16] 그는 그룹에 리더가 없다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음악 감독 역할을 맡았다.

암스테르담에서 밀트 잭슨과 루이스


루이스는 1940년대의 엄격한 비밥 스타일에서 점차적으로 그룹을 변화시켰고, 이는 개인 아티스트의 즉흥 연주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대신 더욱 세련되고, 다듬어지고, 실내악 스타일의 음악으로 방향을 잡았다.[18] 루이스의 작곡은 비밥 스타일과 "20년대와 30년대 재즈의 특징인 역동적인 음영 처리와 극적인 멈춤"을 결합한 재즈의 "신고전주의 스타일"을 개발했다.[12] 프랜시스 데이비스는 그의 저서 ''In the Moment: Jazz in the 1980s''에서 "즉흥 연주 코러스와 그 주변의 모든 것이 동등하게 중요하게 만드는 그룹 음악을 만들면서, 루이스는 듀크 엘링턴과 젤리 롤 모턴을 포함한 소수의 재즈 작가만이 해낼 수 있었던 마법을 부렸다. 그는 작곡가의 예정된 믿음과 즉흥 연주자의 자유 의지에 대한 열망을 조화시켰다."라고 썼다.[16]

군터 슐러는 ''하이 피델리티 매거진''에 다음과 같이 썼다.

루이스는 또한 밴드가 항상 흠 잡을 데 없이 옷을 입도록 했다.[19] 그는 그들이 음악에서 표현하는 방식, 즉 세련되고, 우아하며, 독특한 방식으로 옷을 입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19] ''다운 비트''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제 모델은 듀크 엘링턴이었습니다. [그의 밴드]는 제가 본 가장 우아한 밴드였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1952년부터 1974년까지 그는 콰르텟과 함께, 그리고 콰르텟을 위해 작곡하고 연주했다. 루이스의 작곡은 MJQ가 재즈에 스윙을 잃지 않으면서도 세련되게 만드는 데 성공하여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데 매우 중요했다.[20]

MJQ는 1974년에 잭슨이 밴드가 음악계에서 콰르텟의 명성에 비해 충분한 돈을 받지 못한다고 느껴 해체되었다.[25] 1981년, 모던 재즈 콰르텟은 일본과 미국 투어를 위해 재결성되었지만, 그룹은 다시 정기적으로 함께 공연할 계획은 없었다.[25] 1997년 그룹이 영구적으로 해체될 때까지 루이스는 MJQ와 함께 산발적으로 계속 연주했다.[29]

2. 4. 서드 스트림과 후기 활동 (1955-2001)

루이스는 디지 길레스피의 밥 스타일 빅 밴드에 케니 클라크의 소개로 합류했다. 그는 클라크와 군 복무 시절 함께 연주했던 곡 "Bright Lights"를 연주하여 오디션에 합격했다. 길레스피를 위해 처음 연주했던 곡은 "Two Bass Hit"로 개명되어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다.[10] 1946년부터 1948년까지 밴드에서 작곡, 편곡, 피아노 연주를 담당했으며, 밴드는 유럽 콘서트 투어를 진행했다. 투어를 마치고 돌아와 개인 활동을 시작, 찰리 파커의 반주자로 활동하며 "Parker's Mood"(1948), "Blues for Alice"(1951) 등 유명 음반에 참여했다. 레스터 영, 엘라 피츠제럴드, 일리노이 재키 등 저명한 재즈 아티스트들과도 협력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Birth of the Cool'' 세션에도 참여했다. 유럽에 머물던 중 데이비스로부터 미국으로 돌아와 길 에반스, 제리 멀리건 등과 함께 ''Birth of the Cool''의 두 번째 세션에 참여해 달라는 편지를 받았다.[11] 1948년부터 1949년까지 미국으로 돌아온 루이스는 데이비스의 노넷에 합류, "1949년 마일스 데이비스 노넷의 가장 다작의 편곡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12] ''Birth of the Cool'' 세션을 위해 "S'il Vous Plait", "Rouge", "Move", "Budo"를 편곡했다.

루이스, 비브라폰 연주자 밀트 잭슨, 드러머 클라크, 베이시스트 레이 브라운은 길레스피 빅 밴드 내 소규모 그룹이었다.[13] 이들은 금관악기와 리드가 휴식을 취할 때나 밴드가 연주하지 않을 때 짧은 세트를 연주했다.[14]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이들은 풀타임 그룹을 결성, 1951년 밀트 잭슨 콰르텟으로 불렸으나 1952년 모던 재즈 콰르텟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1952년에는 길레스피 악단 출신들을 모아 모던 재즈 콰르텟(MJQ)을 결성했다. 이후 평생 MJQ의 리더로서 활동하며 비밥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클래식 실내악을 연상시키는 단정하고 독특한 음악성을 확립했다.

1957년에는 프랑스 영화 『대운하』(감독: 로제 바딤)의 음악을 담당하여 누벨바그와 재즈의 관계에서 선구적인 존재가 되었다. 군터 슐러 등과 함께 재즈와 클래식의 융합을 목표로 한 "서드 스트림"을 추구했다. 60세를 넘어서는 J.S. 바흐 작곡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1권·전주곡과 푸가 전곡에 도전, 원곡에 즉흥 연주를 섞은 연주로 화제가 되었다. 작편곡가로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아내 미랴나 부르바니치(Mirjana Vrbanic)는 크로아티아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미랴나 루이스 명의로도 활동했다. 남편 존 루이스와 함께 연주한 앨범도 있다.

2. 5. 사망

존 루이스는 2001년 3월 29일 뉴욕에서 전립선암으로 사망했다.[1] 그는 하프시코드 연주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미르야나 (브르바니치/Vrbanićhr; 1936–2010)와 39년 동안 결혼 생활을 했으며, 슬하에 아들 1명과 딸 1명을 두었다.[31][32]

3. 음악 스타일과 영향

레너드 페더는 루이스의 작품에 대해 "완전히 자급자족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그는 자신의 음악가, 작곡, 경력에서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으며, 비범할 정도로 조용한 확고함과 겸손함, 그리고 비평가들의 반응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으로 이를 달성한다"라고 평했다. 루이스는 자신의 음악뿐만 아니라 그의 성격 또한 이러한 특성을 보여주었다.

루이스는 카운트 베이시의 편곡 스타일과 태도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모든 음표가 신중하게 연주되는 듯한 음색으로 연주하여 청취자와 평론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슐러는 루이스의 추도식에서 "그는 음악의 본질적인 모든 세부 사항, 모든 뉘앙스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라고 회고했다. 루이스는 현대화된 베이시 스타일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 잡았으며, 넓고 강력하면서도 세련된 음악을 만드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잡지 ''메트로놈''과의 인터뷰에서 루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제 이상은 30년대와 40년대에 카운트 베이시 악단을 이끌었던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그룹은 앙상블 연주를 통합하여 각 악단의 멤버들이 작곡가나 편곡자가 아닌 개인적인 표현으로 아이디어를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악단은 최고의 재즈 솔리스트들이 앙상블 및 리듬 섹션과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즉흥 연주를 하는가 하면, 전체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정도로 발전된 민속 블루스 요소가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일이 계획되거나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산물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향해 도달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루이스는 그의 편곡과 작곡에서 그가 존경했던 이 능력을 성공적으로 보여주었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클래식 훈련과 비밥에 대한 경험 덕분에, 루이스는 이질적인 두 음악 스타일을 결합하여 재즈를 다듬어 "콘서트홀의 존경을 얻기 위해 비밥의 날카로운 분노를 덮어씌웠다".

루이스는 또한 색소폰 연주자 레스터 영의 즉흥 연주에도 영향을 받았다. 루이스가 호른 연주자에게 영향을 받은 최초의 재즈 피아니스트는 아니었다. 얼 하인스는 초기에 루이 암스트롱의 즉흥 연주에서 영감을 얻었고, 버드 파웰은 찰리 파커를 참고했다. 루이스 또한 하인스 자신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루이스는 유럽 클래식 음악의 영향도 크게 받았다. MJQ를 위한 그의 많은 작곡과 개인적인 작곡에는 푸가대위법과 같은 다양한 유럽 클래식 기법이 포함되었으며, 때로는 현악 오케스트라를 포함하는 악기 편성을 선택하기도 했다.

1980년대 초, 루이스는 아트 테이텀, 행크 존스, 오스카 피터슨과 같이 그가 즐겨 듣던 피아니스트들의 영향을 받았다.

3. 1. 피아노 스타일

렌 라이언스는 그의 저서 『위대한 재즈 피아니스트』에서 루이스를 소개하며 루이스의 피아노 연주, 작곡, 그리고 개인적인 스타일에 대해 언급한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턱을 꼿꼿이 한 채, 그랜드 피아노의 하얀 건반을 지배하는 존 루이스는 그의 연주에서 어떠한 헛소리도 용납하지 않고, 즉흥적인 경박함도 즐기지 않으며, 규율 위반이나 형식적으로 부적절하다고 해석될 수 있는 구절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루이스는 스윙을 할 수 있고, 소울풀한 블루스를 연주하며, 그의 악기를 통해 감정을 표현할 수 있지만, 그것은 연기와 소음으로 가득한 나이트클럽이 아닌, 콘서트홀의 스윙과 열정이다." 루이스는 비밥 피아니스트로 여겨지지만, 보수적인 연주자 중 한 명으로도 평가받는다. 빠르고 강렬한 템포의 비밥 스타일을 강조하기보다는, 그의 피아노 스타일은 재즈를 "조용한 갈등의 표현"으로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의 피아노 스타일은 클래식, 밥, 스트라이드, 블루스 사이의 간극을 메웠고, 그로 인해 "그가 모턴, 엘링턴, 몽크와 같은 반열에서 언급되는 것을 듣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41] 피아노 연주에서 그의 즉흥 연주 스타일은 주로 조용하고 부드러우며 절제되었다. 루이스는 자신의 오리지널 작곡 중 하나를 즉흥 연주하는 세 명의 색소폰 연주자에게 "당신은 멜로디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당신의 솔로는 멜로디를 확장하거나 축소해야 합니다."라고 조언했다.[42] 이것이 그가 자신의 솔로에 접근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솔로 연주에서 "단순하고 직설적인... 멜로디에 대한 접근 방식이... [음악가들을] 복잡한 감정에 접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42] 청중은 음악가들만큼이나 이를 높이 평가했다.[42]

다른 음악가들의 솔로에 대한 그의 반주는 그만큼 섬세했다. 토마스 오웬스는 그의 반주 스타일에 대해 "불규칙하게 배치된 코드[화음]로 멜로디를 강조하는 컴핑 대신, 그는 종종 솔로와 베이스 파트와 결합하여 다성적인 질감을 형성하는 옥타브로 된 단순한 대선율을 연주했다"고 언급한다.

3. 2. 작곡 및 편곡 스타일

존 루이스는 개인적인 피아노 연주 스타일처럼 작곡에서도 미니멀리즘과 단순함을 추구했다.[35] 그의 많은 작품들은 모티프를 기반으로 했으며, 몇 개의 화성 진행에 의존했다.[43] 프랜시스 데이비스는 루이스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끌리는 것과 같은 보수적인 단순성 추구가 그를 필연적으로 블루스로 이끌었다고 언급했다.[44]

그의 작곡은 18세기 멜로디와 화성에 영향을 받았지만, 초기 스윙 시대의 베이시와 엘링턴의 고전적인 편곡을 연상시키는 "긴장과 이완의 비밀, 다이내믹한 음영 처리 및 극적인 휴지의 원칙"에 대한 진보된 이해를 보여주었다.[42] 이러한 기술의 결합은 루이스가 클래식, 유럽의 기법을 재즈의 즉흥 연주 및 빅 밴드 특징과 결합한 제3의 흐름 재즈의 선구자가 되도록 이끌었다.

루이스는 작곡에서 푸가[45]를 쓰고, 클래식 악기를 통합하는 실험을 했다.[15] ''뉴욕 타임스''는 "그의 새로운 작품과 오래된 작품의 재작업은 현악 오케스트라와 재즈 4중주단을 동등하게 엮어내도록 설계되었다"고 썼다. ''하이 피델리티'' 잡지는 그의 "작품은 작곡 매체에 대한 확고한 통제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작곡된 틀 내에서 즉흥 연주의 복잡한 문제를 새롭게 다룬다"고 썼다.[21]

토마스 오언은 "[루이스]의 MJQ를 위한 최고의 작품은 '장고', 발레 모음곡 ''코미디''(1962, Atl.), 특히 '베르사유', '세 개의 창', '방돔', '콩코드'의 네 곡으로, 푸가의 모방과 비모방적인 다성 재즈를 매우 효과적인 방식으로 결합한다"고 생각한다.

3. 3. 서드 스트림 (Third Stream)

존 루이스는 작곡에서도 미니멀리즘과 단순함을 추구했다.[35] 그의 많은 작품들은 모티프를 기반으로 했으며, 몇 개의 화성 진행에 의존했다.[43] 프랜시스 데이비스는 루이스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끌리는 것과 같은 보수적인 단순성 추구가 그를 블루스로 이끌었다고 언급했다.[44]

그의 작곡은 18세기 멜로디와 화성에 영향을 받았지만, 초기 스윙 시대의 베이시와 엘링턴의 고전적인 편곡을 연상시키는 "긴장과 이완의 비밀, 다이내믹한 음영 처리 및 극적인 휴지의 원칙"에 대한 진보된 이해를 보여주었다.[42] 이러한 기술의 결합은 루이스가 클래식, 유럽의 기법을 재즈의 즉흥 연주 및 빅 밴드 특징과 결합한 서드 스트림 재즈의 선구자가 되도록 이끌었다.

루이스는 작곡에서 푸가[45]를 쓰고, 클래식 악기를 통합하는 실험을 했다.[15] ''뉴욕 타임스''는 "그의 새로운 작품과 오래된 작품의 재작업은 현악 오케스트라와 재즈 4중주단을 동등하게 엮어내도록 설계되었다"고 썼다. ''하이 피델리티'' 잡지는 그의 "작품은 작곡 매체에 대한 확고한 통제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작곡된 틀 내에서 즉흥 연주의 복잡한 문제를 새롭게 다룬다"고 썼다.[21]

토마스 오언은 "[루이스]의 MJQ를 위한 최고의 작품은 '장고', 발레 모음곡 ''코미디''(1962, Atl.), 특히 '베르사유', '세 개의 창', '방돔', '콩코드'의 네 곡으로, 푸가의 모방과 비모방적인 다성 재즈를 매우 효과적인 방식으로 결합한다"고 생각한다.

4. 유산

5. 대표작


  • 콩코드
  • 장고
  • 피라미드

6. 음반 목록


  • 애프터눈 인 파리 (1956년)
  • 존 루이스 피아노 (1956년)
  • 전주곡과 푸가집 (J.S. 바흐 작곡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1권) (1984년)
  • ''The Modern Jazz Society Presents a Concert of Contemporary Music'' (1955년, 노르그란 레코드)[46]
  • ''Grand Encounter'' (1956년 2월, 퍼시픽 재즈) - 빌 퍼킨스, 짐 홀, 퍼시 히스, 치코 해밀턴과 함께[46]
  • ''파리의 오후'' (1956년 12월, 애틀랜틱 레코드) - 사샤 디스텔과 함께[46]
  • ''존 루이스 피아노'' (1956년 7월, 1957년 2월 및 8월, 애틀랜틱)[46]
  • '' 유러피언 윈도우 '' (1958년 2월, RCA 빅터)[46]
  • ''즉흥 명상과 여행'' (1959년 5월, 애틀랜틱) - 퍼시 히스(베이스), 코니 케이(드럼) 트리오[46]
  • ''내일의 위기 (영화 사운드트랙 원본)'' (1959년 7월,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레코드) - 영화 ''내일의 위기''(1959)의 영화 음악[46]
  • ''황금의 스트라이커'' (1960년 2월, 애틀랜틱)[46]
  • ''재즈의 멋진 세상'' (1960년 7월 및 9월, 애틀랜틱)[46]
  • ''재즈 추상'' (1960년 12월, 애틀랜틱) - 에릭 돌피와 로버트 디 도메니카 (플루트), 에디 코스타 (비브라폰), 빌 에반스(피아노), 짐 홀 (기타), 스콧 라파로와 조지 듀비비에(베이스), 스틱스 에반스 (드럼), 찰스 리보브와 롤랜드 바모스 (바이올린), 해리 자라치안과 조셉 테큘라 (첼로)와 함께[46]
  • ''오리지널 신'' (1961년 3월, 애틀랜틱) -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46]
  • ''밀라노 이야기'' 사운드트랙 (1962년, 애틀랜틱) - 바비 재스퍼(플루트), 래브 토마스(기타), 조반니 토마소와 조제프 파라디(베이스), 버스터 스미스(드럼), 줄리오 프란체티와 엔조 포르타(바이올린), 티토 리카르디(비올라), 알프레도 리카르디(첼로) 참여[46]
  • ''유럽의 만남'' (1962년 7월, 애틀랜틱) - 스벤 아스무센과 함께[46]
  • ''동물 춤'' (1962년, 애틀랜틱) - 알베르트 망겔스도르프 (트롬본), 칼 테오도르 가이어(베이스), 실비예 글로야나릭(드럼)과 함께[46]
  • ''본질'' (1960년 9월, 1962년 5월 및 10월, 애틀랜틱) - 게리 맥팔랜드 작곡 및 편곡[46]
  • ''P.O.V.'' (1975년, 컬럼비아) - 해럴드 존스(플루트), 제럴드 타락(바이올린), 포르투나토 아리코(첼로), 리처드 데이비스(베이스), 멜 루이스(드럼, 타악기)와 함께[46]
  • ''개발을 위한 진술과 스케치'' (1976년, CBS/소니) - 솔로 피아노[46]
  • ''헬렌 메릴/존 루이스'' (1976년, 머큐리) - 헬렌 메릴 (보컬), 허버트 로(플루트), 리처드 데이비스(베이스), 코니 케이(드럼)와 함께 (공동 리더)[46]
  • ''민감한 풍경'' (1976년, CBS/소니) - 마이클 무어(베이스), 코니 케이(드럼) 트리오[46]
  • ''미르자나'' (1978년) - 크리스티안 에스쿠데 (기타), 조지 듀비비에(베이스), 올리버 잭슨(드럼)과 함께[46]
  • ''두 대의 그랜드 피아노와 함께하는 저녁'' (1979년, 리틀 데이비드 레코드) - 행크 존스 (피아노) 듀엣[46]
  • ''피아노 놀이터'' (1979년) -행크 존스, 조지 듀비비에(베이스), 셸리 맨(드럼)과 함께[46]
  • ''듀엣'' (1981년) - 르 탭킨과 함께[46]
  • ''캔자스 시티 브레이크'' (1982년, 피네스 레코드)[46]
  • ''슬라브 미소'' (1983년) - 더 뉴 쿼텟 (바비 허처슨 (비브라폰), 마크 존슨(베이스), 코니 케이(드럼))[46]
  • ''J.S.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의 전주곡과 푸가'' (1984년, 필립스 레코드) - 조엘 레스터(바이올린), 로이스 마틴(비올라), 하워드 콜린스(기타), 마크 존슨(베이스)과 함께[46]
  • ''브릿지 게임'' 또는 ''J.S.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Vol. 2'' (1986년, 필립스) - 조엘 레스터(바이올린), 로이스 마틴과 스콧 닉렌즈(비올라), 하워드 콜린스(기타), 마크 존슨(베이스)과 함께[46]
  • ''체스 게임 파트 1''과 ''체스 게임 파트 2'' (1987년, 필립스) - 미르자나 루이스(하프시코드)와 함께, J.S.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기반[46]
  • ''J.S.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Vol. 3'' (1988년, 필립스) - 하워드 콜린스(기타), 마크 존슨(베이스)과 함께[46]
  • ''J.S.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Vol. 4'' (1989년, 필립스) - 아나히드 아제미안(바이올린), 로버트 단(비올라), 하워드 콜린스(기타), 마크 존슨(베이스)과 함께[46]
  • ''개인 콘서트'' (1990년, 엠아르시 레코드) - 솔로 피아노 (콘서트에서)[46]
  • ''진화'' (1999년, 애틀랜틱) - 솔로 피아노[47]
  • ''진화 II'' (2000년, 애틀랜틱) - 하워드 콜린스(기타), 마크 존슨 (베이스), 루이스 내시 (드럼) (6곡 쿼텟), 하워드 올든 (기타), 조지 므라즈 (베이스), 내쉬(드럼) (4곡 쿼텟)[48][49][50]

6. 1. 리더/공동 리더

존 루이스는 1955년 노르그란 레코드에서 ''The Modern Jazz Society Presents a Concert of Contemporary Music''을 발매했다.[46] 1956년 2월에는 빌 퍼킨스, 짐 홀, 퍼시 히스, 치코 해밀턴과 함께 ''Grand Encounter''를 퍼시픽 재즈에서 발매했다.[46] 같은 해 12월, 사샤 디스텔과 함께 ''파리의 오후''를 애틀랜틱에서 발매했다.[46] 1956년 7월, 1957년 2월 및 8월에는 ''존 루이스 피아노''를 애틀랜틱에서 발매했다.[46] 1958년 2월, '' 유러피언 윈도우 ''를 RCA 빅터에서 발매했다.[46]

1959년 5월, 퍼시 히스(베이스), 코니 케이(드럼)와 함께 트리오로 ''즉흥 명상과 여행''을 애틀랜틱에서 발매했다.[46] 같은 해 7월에는 ''내일의 위기 (영화 사운드트랙 원본)''을 유나이티드 아티스츠에서 발매했는데, 이는 영화 ''내일의 위기''(1959)의 영화 음악이다.[46] 1960년 2월에는 ''황금의 스트라이커''를 애틀랜틱에서 발매했고,[46] 같은 해 7월과 9월에는 ''재즈의 멋진 세상''을 애틀랜틱에서 발매했다.[46] 1960년 12월, 에릭 돌피와 로버트 디 도메니카 (플루트), 에디 코스타 (비브라폰), 빌 에반스(피아노), 짐 홀 (기타), 스콧 라파로와 조지 듀비비에(베이스), 스틱스 에반스 (드럼), 찰스 리보브와 롤랜드 바모스 (바이올린), 해리 자라치안과 조셉 테큘라 (첼로)와 함께 ''재즈 추상''을 애틀랜틱에서 발매했다.[46] 1961년 3월에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오리지널 신''을 애틀랜틱에서 발매했다.[46]

1962년에는 ''밀라노 이야기'' 사운드트랙을 애틀랜틱에서 발매했는데, 바비 재스퍼(플루트), 래브 토마스(기타), 조반니 토마소와 조제프 파라디(베이스), 버스터 스미스(드럼), 줄리오 프란체티와 엔조 포르타(바이올린), 티토 리카르디(비올라), 알프레도 리카르디(첼로)가 참여했다.[46] 같은 해 7월, 스벤 아스무센과 함께 ''유럽의 만남''을 애틀랜틱에서 발매했고,[46] 같은 해 알베르트 망겔스도르프 (트롬본), 칼 테오도르 가이어(베이스), 실비예 글로야나릭(드럼)과 함께 ''동물 춤''을 애틀랜틱에서 발매했다.[46] 1960년 9월, 1962년 5월 및 10월에는 게리 맥팔랜드가 작곡 및 편곡한 ''본질''을 애틀랜틱에서 발매했다.[46] 1975년에는 해럴드 존스(플루트), 제럴드 타락(바이올린), 포르투나토 아리코(첼로), 리처드 데이비스(베이스), 멜 루이스(드럼, 타악기)와 함께 ''P.O.V.''를 컬럼비아에서 발매했다.[46]

1976년, 솔로 피아노로 ''개발을 위한 진술과 스케치''를 CBS/소니에서 발매했다.[46] 같은 해 헬렌 메릴 (보컬)과 허버트 로(플루트), 리처드 데이비스(베이스), 코니 케이(드럼)와 함께 ''헬렌 메릴/존 루이스''를 머큐리에서 공동 리더로 발매했고,[46] 마이클 무어(베이스), 코니 케이(드럼)와 함께 트리오로 ''민감한 풍경''을 CBS/소니에서 발매했다.[46] 1978년에는 크리스티안 에스쿠데 (기타), 조지 듀비비에(베이스), 올리버 잭슨(드럼)과 함께 ''미르자나''를 발매했다.[46] 1979년 행크 존스 (피아노)와 함께 듀엣으로 ''두 대의 그랜드 피아노와 함께하는 저녁''을 리틀 데이비드에서 발매했고,[46] 행크 존스, 조지 듀비비에(베이스), 셸리 맨(드럼)과 함께 ''피아노 놀이터''를 발매했다.[46] 1981년 르 탭킨과 함께 ''듀엣''을 발매했다.[46] 1982년 ''캔자스 시티 브레이크''를 피네스에서 발매했다.[46]

1983년, 더 뉴 쿼텟(바비 허처슨 (비브라폰), 마크 존슨(베이스), 코니 케이(드럼))으로 ''슬라브 미소''를 발매했다.[46] 1984년, 조엘 레스터(바이올린), 로이스 마틴(비올라), 하워드 콜린스(기타), 마크 존슨(베이스)과 함께 ''J.S.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의 전주곡과 푸가''를 필립스에서 발매했다.[46] 1986년에는 조엘 레스터(바이올린), 로이스 마틴과 스콧 닉렌즈(비올라), 하워드 콜린스(기타), 마크 존슨(베이스)과 함께 ''브릿지 게임'' 또는 ''J.S.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Vol. 2''를 필립스에서 발매했다.[46] 1987년에는 미르자나 루이스(하프시코드)와 함께 J.S.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기반으로 한 ''체스 게임 파트 1''과 ''체스 게임 파트 2''를 필립스에서 발매했다.[46] 1988년, 하워드 콜린스(기타), 마크 존슨(베이스)과 함께 ''J.S.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Vol. 3''을 필립스에서 발매했다.[46] 1989년, 아나히드 아제미안(바이올린), 로버트 단(비올라), 하워드 콜린스(기타), 마크 존슨(베이스)과 함께 ''J.S.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Vol. 4''를 필립스에서 발매했다.[46]

1990년, 솔로 피아노로 콘서트에서 ''개인 콘서트''를 엠아르시에서 발매했다.[46] 1999년에는 솔로 피아노로 ''진화''를 애틀랜틱에서 발매했고,[47] 2000년에는 하워드 콜린스(기타), 마크 존슨 (베이스), 루이스 내시 (드럼)와 함께 6곡의 쿼텟, 하워드 올든 (기타), 조지 므라즈 (베이스), 내쉬(드럼)와 함께 4곡의 쿼텟으로 ''진화 II''를 애틀랜틱에서 발매했다.[48][49][5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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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John Lewis https://www.encyclop[...] Gale 2018-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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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문서 Ly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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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뉴스 Percy Heath https://www.independ[...] 201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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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웹사이트 Paid Notice: Deaths: Leiis, Mirjana https://archive.nyti[...] 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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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문서 Dav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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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문서 He played with many of the great bebop players such as Charlie Parker, Dizzy Gillespie and Sonny Roll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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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문서 He appreciated fugues for their use of counterpoint in jazz
[46] 웹사이트 John Lewis: Evening with Two Grand Pianos https://www.allmusic[...] 2020-02-11
[47] 웹사이트 John Lewis: Evolution https://www.allmusic[...] 2020-02-10
[48] 간행물 John Lewis: Evolution II https://jazztimes.co[...] 2020-02-11
[49] 웹사이트 John Lewis: Evolution II https://www.allabout[...] 2020-02-11
[50] 웹사이트 John Lewis: Evolution II https://www.allmusic[...] 20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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