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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헤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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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존 헤론은 1880년대 조선에서 의료 선교사로 활동한 미국인이다.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한 그는 1884년 미국 장로교 선교사로 임명되어 이듬해 조선에 도착했다. 제중원에서 의료 봉사를 시작했으며, 호러스 뉴턴 앨런이 외교관으로 전직한 후 제중원 원장과 고종의 주치의를 역임했다. 1890년 전염성 이질로 사망했으며, 서울 양화진에 묻혔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헤론기념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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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헤론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존 헤론
출생일1856년 6월 30일
출생지더비셔주
사망지한성부
사망일1890년 7월 26일 (34세)
직업의사, 선교사
종교장로교
학력뉴욕 대학교

2. 생애

존 헤론은 1858년 영국 더비셔주에서 태어나, 1870년 5월 가족들과 함께 미국 테네시주 녹스빌로 이주하였다.[2] 메리빌 대학 의학과와 테네시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883년 뉴욕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수학하며 블랙웰 아일랜드 병원에서 실습하면서 의사 자격 시험에 합격하였다.

1884년 봄, 미국 장로교 최초로 조선에 파견될 선교사로 임명되었다.[3] 1885년 4월 23일 해리엇 엘리자베스 깁슨과 결혼 후, 같은 해 5월 1일 미국을 떠나 일본으로 갔다. 그곳에서 조선 관리 이수정을 만나 조선말풍속을 익히고, 6월 20일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제물포(인천)에 도착하였다. 6월 21일 한성부(서울)에 들어가 호러스 뉴턴 앨런의 집을 방문하였다. 1887년 9월 앨런이 외교관으로 전직하면서 제중원에서 의료 선교 봉사를 하던 헤론이 고종의 주치의 및 제2대 제중원 원장이 되었다.[4]

1890년 7월 26일 전염성 이질로 사망하여, 3일 후 개신교 선교사로서는 최초로 양화진에 묻혔다. 향년 33세로, 사망 당시 서울에는 각종 전염병이 돌았고 과중한 업무와 방문 진료로 과로한 가운데 병을 얻었다고 한다.[3] 묘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라고 쓰여 있다.

2019년 5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은 임상의학연구센터 1층에 헤론기념관을 개관했다.[5] 기념관엔 헤론의 묘비석과 일대기, 조선 정부로부터 종2품 가선대부에 임명될 때 받은 교지 등이 전시돼 있다.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1858년 영국 더비셔주에서 태어나, 1870년 5월 가족들과 함께 미국 테네시주 녹스빌로 이주하였다.[2] 메리빌 대학 의학과를 졸업하고, 테네시 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1883년 뉴욕 대학교 의과대학에 들어가, 블랙웰 아일랜드 병원에서 실습하면서 의사 자격 시험에 합격하였다.

2. 2. 조선에서의 의료 선교 활동

1884년 봄, 미국 장로교 최초로 조선에 파견될 선교사로 임명되었다.[3] 1885년 4월 23일 해리엇 엘리자베스 깁슨과 결혼 후, 같은 해 5월 1일 미국을 떠나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에서 조선 관리 이수정을 만나 조선말풍속을 익혔다. 6월 20일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제물포(인천)에 도착하였고, 6월 21일 한성부(서울)에 들어가 다음 날 호러스 뉴턴 앨런의 집을 방문하였다. 제중원에서 의료선교 봉사를 하였고, 1887년 9월 앨런이 외교관으로 전직하면서 고종의 주치의가 됨과 동시에 제2대 제중원 원장으로 취임하였다.[4]

2. 3. 사망과 유산

1890년 7월 26일 전염성 이질로 사망하였다. 3일 후 개신교 선교사로서는 최초로 양화진에 묻혔다. 향년 33세였고 젊은 부인과 두 딸을 남겨둔 상태였다. 사망 당시 서울에는 각종 전염병이 창궐했으며 과중한 업무와 방문 진료 때문에 과로로 지친 가운데 병을 얻었다고 한다.[3]

묘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라고 쓰여 있다.

2019년 5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임상의학연구센터 1층에 헤론기념관을 개관했다.[5] 기념관엔 헤론의 묘비석과 일대기, 조선 정부로부터 종2품 가선대부에 임명될 때 받은 교지 등이 전시돼 있다.

3. 평가 및 기념

1890년 7월 26일 전염성 이질로 사망하였다. 3일 후 개신교 선교사로서는 최초로 양화진에 묻혔다. 향년 33세였고 젊은 부인과 두 딸을 남겨둔 상태였다. 사망 당시 서울에는 각종 전염병이 창궐했으며 과중한 업무와 방문 진료 때문에 과로로 지친 가운데 병을 얻었다고 한다.[3]

묘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라고 쓰여 있다.

제중원 2대 원장으로서, 한국 초기 서양 의학 도입 및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과로와 전염병에도 불구하고 헌신적인 의료 활동을 펼친 인물로 평가받는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및 세브란스병원은 헤론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2019년 5월 연세대 의과대학에서는 임상의학연구센터 1층에 헤론기념관을 개관했다.[5] 기념관엔 헤론의 묘비석과 일대기, 조선 정부로부터 종2품 가선대부에 임명될 때 받은 교지 등이 전시돼 있다.

참조

[1] 서적 한국 기독교회의 역사 (상)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 웹사이트 존 헤론 John W. Heron https://terms.naver.[...]
[3] 서적 한국 기독교회의 역사 (상) 장신대 출판부
[4] 뉴스 양화진에 잠든 헤론을 그리며 https://v.daum.net/v[...] 국민일보 2009-11-16
[5] 뉴스 조선 땅에 잠든 존 헤론 선교사 기념관 개관 https://www.nocutnew[...]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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