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헤론
1. 개요
존 헤론은 1880년대 조선에서 의료 선교사로 활동한 미국인이다.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한 그는 1884년 미국 장로교 선교사로 임명되어 이듬해 조선에 도착했다. 제중원에서 의료 봉사를 시작했으며, 호러스 뉴턴 앨런이 외교관으로 전직한 후 제중원 원장과 고종의 주치의를 역임했다. 1890년 전염성 이질로 사망했으며, 서울 양화진에 묻혔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헤론기념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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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 선교사 -
펄 S. 벅
펄 S. 벅은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중국과 동양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발표하여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소설가이자 작가이며, 펄벅재단을 설립하여 여성 인권, 인종 간 입양, 혼혈아 문제 등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활동했고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
장로교 선교사 -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는 연세대학교 설립자이자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로, 1885년 한국에 입국하여 새문안교회와 경신학교를 설립하고 YMCA 창설, 성서 번역, 한국어 연구, 독립운동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으며, 그의 가족 또한 한국에서 교육 및 의료 사업에 헌신하였다. -
교육에 관한 -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 문서는 박물관의 기원과 초기 발전, 한국 사회에서의 발전, 현황, 주요 쟁점, 영향과 전망 등을 다룬다. -
교육에 관한 -
울산대학교
울산대학교는 1969년 울산공과대학으로 설립되어 1985년 종합대학으로 승격된 사립 대학으로, 공업단지 발전을 위한 기술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현대그룹의 지원을 받아 설립되었으며, 현재 11개의 단과대학과 6개의 대학원을 운영하며 다양한 분야의 학부 및 대학원 과정을 제공하고 산학협력에도 힘쓰고 있다. -
뉴욕 대학교 동문 -
루돌프 줄리아니
루돌프 줄리아니는 뉴욕 시장 재임 시절 범죄율 감소를 이뤘지만 인종차별 논란도 있었고, 9.11 테러 때는 지도력을 발휘했으나 이후 트럼프 대통령 변호사로 활동하며 여러 스캔들에 연루되어 비판받는 미국의 변호사이자 정치인이다. -
뉴욕 대학교 동문 -
재러드 쿠슈너
재러드 쿠슈너는 미국의 사업가, 투자자, 부동산 개발업자, 신문 발행인이자 도널드 트럼프의 사위이며 전 미국 대통령 수석 고문으로, 쿠슈너 컴퍼니즈 CEO로서 부동산 사업을 확장하고 트럼프 행정부에서 다양한 정책 분야에 관여했으며, 현재는 투자 회사 애피니티 파트너스를 설립하여 투자 활동을 하고 있다.
2. 생애
존 헤론은 1858년 영국 더비셔주에서 태어나, 1870년 5월 가족들과 함께 미국 테네시주 녹스빌로 이주하였다. 메리빌 대학 의학과와 테네시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883년 뉴욕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수학하며 블랙웰 아일랜드 병원에서 실습하면서 의사 자격 시험에 합격하였다.
1884년 봄, 미국 장로교 최초로 조선에 파견될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1885년 4월 23일 해리엇 엘리자베스 깁슨과 결혼 후, 같은 해 5월 1일 미국을 떠나 일본으로 갔다. 그곳에서 조선 관리 이수정을 만나 조선말과 풍속을 익히고, 6월 20일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제물포(인천)에 도착하였다. 6월 21일 한성부(서울)에 들어가 호러스 뉴턴 앨런의 집을 방문하였다. 1887년 9월 앨런이 외교관으로 전직하면서 제중원에서 의료 선교 봉사를 하던 헤론이 고종의 주치의 및 제2대 제중원 원장이 되었다.
1890년 7월 26일 전염성 이질로 사망하여, 3일 후 개신교 선교사로서는 최초로 양화진에 묻혔다. 향년 33세로, 사망 당시 서울에는 각종 전염병이 돌았고 과중한 업무와 방문 진료로 과로한 가운데 병을 얻었다고 한다. 묘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라고 쓰여 있다.
2019년 5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은 임상의학연구센터 1층에 헤론기념관을 개관했다. 기념관엔 헤론의 묘비석과 일대기, 조선 정부로부터 종2품 가선대부에 임명될 때 받은 교지 등이 전시돼 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1858년 영국 더비셔주에서 태어나, 1870년 5월 가족들과 함께 미국 테네시주 녹스빌로 이주하였다. 메리빌 대학 의학과를 졸업하고, 테네시 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1883년 뉴욕 대학교 의과대학에 들어가, 블랙웰 아일랜드 병원에서 실습하면서 의사 자격 시험에 합격하였다.
2.2. 조선에서의 의료 선교 활동
1884년 봄, 미국 장로교 최초로 조선에 파견될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1885년 4월 23일 해리엇 엘리자베스 깁슨과 결혼 후, 같은 해 5월 1일 미국을 떠나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에서 조선 관리 이수정을 만나 조선말과 풍속을 익혔다. 6월 20일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제물포(인천)에 도착하였고, 6월 21일 한성부(서울)에 들어가 다음 날 호러스 뉴턴 앨런의 집을 방문하였다. 제중원에서 의료선교 봉사를 하였고, 1887년 9월 앨런이 외교관으로 전직하면서 고종의 주치의가 됨과 동시에 제2대 제중원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2.3. 사망과 유산
1890년 7월 26일 전염성 이질로 사망하였다. 3일 후 개신교 선교사로서는 최초로 양화진에 묻혔다. 향년 33세였고 젊은 부인과 두 딸을 남겨둔 상태였다. 사망 당시 서울에는 각종 전염병이 창궐했으며 과중한 업무와 방문 진료 때문에 과로로 지친 가운데 병을 얻었다고 한다.
묘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라고 쓰여 있다.
2019년 5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임상의학연구센터 1층에 헤론기념관을 개관했다. 기념관엔 헤론의 묘비석과 일대기, 조선 정부로부터 종2품 가선대부에 임명될 때 받은 교지 등이 전시돼 있다.
3. 평가 및 기념
1890년 7월 26일 전염성 이질로 사망하였다. 3일 후 개신교 선교사로서는 최초로 양화진에 묻혔다. 향년 33세였고 젊은 부인과 두 딸을 남겨둔 상태였다. 사망 당시 서울에는 각종 전염병이 창궐했으며 과중한 업무와 방문 진료 때문에 과로로 지친 가운데 병을 얻었다고 한다.
묘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라고 쓰여 있다.
제중원 2대 원장으로서, 한국 초기 서양 의학 도입 및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과로와 전염병에도 불구하고 헌신적인 의료 활동을 펼친 인물로 평가받는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및 세브란스병원은 헤론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2019년 5월 연세대 의과대학에서는 임상의학연구센터 1층에 헤론기념관을 개관했다. 기념관엔 헤론의 묘비석과 일대기, 조선 정부로부터 종2품 가선대부에 임명될 때 받은 교지 등이 전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