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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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란은 기원전 209년 항량의 거병 때부터 항우를 따랐으며, 기원전 204년 형양시, 성고 포위전에 참전했다. 기원전 203년, 한신을 공격하기 위해 용저의 부장으로 참전했다가 유수 전투에서 관영에게 생포되었다. 이후 탈주하여 군세를 재건했으나 다시 관영에게 생포되었고,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명대 이후의 군담에서는 환초와 함께 항우를 따르는 충신으로 묘사되며, 해하 전투에서 항우를 위해 싸우다 전사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주란
인물 정보
이름주란
한자 표기周蘭
시대초한전쟁
소속서초
역할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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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주란은 기원전 209년 항량(항우의 숙부)이 회계군에서 거병했을 때부터 그를 따랐으며, 항우의 주요 전투에 장수로서 종군했다. 한신과의 전투에서 용저의 부장으로 참전했으나 패배하고 관영에게 포로로 잡혔다. 탈출하여 군세를 재건했지만, 다시 사로잡힌 후 행적은 불명이다.

2.1. 초기 활동

기원전 209년, 항량(항우의 숙부)이 회계군에서 거병했을 때부터 그를 따랐다. 기원전 204년, 항우는 형양시를 포위했지만, 틈을 봐서 도망친 유방을 추격하여 성고를 포위할 때 장수로서 종군했다.

기원전 203년, 항우가 진류, 외황, 수양을 공략하여 점령했을 때, 한신나라 왕 전광을 궁지에 몰아넣고 평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항우는 용저에게 20만 명의 군세를 이끌게 했다.

그때 주란도 용저의 아장(부장)으로서 종군했다. 한신은 유수에서 용저와 주란을 맞아 싸웠는데, 겨울 11월의 일이었다. 용저의 설객 중에는 지구전을 제안하는 자도 있었지만, 용저는 한신을 "사타부"라고 얕보며 듣지 않았다.

겨울철이라 강물의 흐름이 완만했지만, 한신은 강의 물을 상류에서 막아두고 있다가, 용저와 주란이 총공격을 시작하자 댐의 밧줄을 끊어 楚(초)나라 군세를 거센 물살에 휩쓸리게 했다. 용저와 주란은 간신히 피했지만, 용저는 한신의 군세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주란은 관영에게 추격당해 생포되었다(『사기』 조상국세가에서는 조참의 무공으로 기록).

이후 주란은 탈주하여 고와 까지 도망쳐 군세를 재건했지만, 곧 한신의 명을 받은 관영의 토벌을 받아 다시 관영에게 생포되었다. 그 후의 행적은 불명이다.

2.2. 한신과의 전투와 최후

기원전 204년 항우가 형양시를 포위했을 때, 주란은 장수로서 종군하여 틈을 봐서 도망친 유방을 추격, 성고를 포위하는 데 참여했다.

기원전 203년, 항우가 진류, 외황, 수양을 점령한 후, 한신나라 왕 전광을 평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용저에게 20만 군세를 이끌게 했다. 주란은 용저의 부장으로서 종군했다. 겨울 11월, 한신은 유수에서 용저와 주란을 맞아 싸웠다. 용저의 설객 중에는 지구전을 제안하는 자도 있었지만, 용저는 한신을 "사타부"라 얕보고 이를 듣지 않았다.

한신은 강의 상류에서 물을 막아두고 있다가, 용저와 주란이 공격하자 댐을 터뜨려 초나라 군세를 물살에 휩쓸리게 했다. 용저는 한신 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주란은 간신히 피했지만 관영에게 추격당해 생포되었다. (사기 조상국세가에서는 조참의 무공으로 기록)

이후 주란은 탈주하여 고와 까지 도망쳐 군세를 재건했지만, 곧 한신의 명을 받은 관영에게 다시 생포되었다. 그 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3. 군담에서의 묘사

명나라 시대 이후의 군담 소설에서 주란은 환초와 함께 항우를 끝까지 따르는 충신으로 묘사된다. 해하 전투에서 항우와 우미인 곁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수로 그려지며, 항우가 오강으로 퇴각할 수 있도록 한군과 싸우다 환초와 함께 전사한 항우의 28기 중 한 명으로 묘사된다.

3.1. 군담 속 주란

명대 이후의 군담에서는 환초와 함께 최후까지 항우를 따르는 무장으로 묘사된다. 해하 전투 장면에서는 막하의 장수로서 항우와 우미인 곁에서 동정의 눈물을 흘린다. 항우 28기 중 한 명으로 주군이 오강으로 퇴각하는 길을 열기 위해 한군과 교전하여 환초와 함께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