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주한 영연방군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주한 영연방군은 1950년 한국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파견된 영연방 국가들의 연합군을 지칭한다. 1949년 일본에 주둔하던 호주군 부대가 최초로 파견되었으며, 이후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 다양한 국가의 육해공군이 참여했다. 주한 영연방군의 사령관은 호주 육군 장교가 맡았으며, 제1영연방사단이 편성되어 영국군과 캐나다군이 주축을 이루었다. 해군은 항공모함과 다양한 군함을 제공했으며, 공군은 호주 공군 제77비행대가 주력으로 활동했다. 주한 영연방군은 한국 정부와 협정을 통해 관계를 증진시켰으며, 대한민국 가평군에는 참전 기념비가 건립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957년 해체된 단체 - 제8전구지원사령부
    제8전구지원사령부는 주한 미군의 군수 지원을 담당하며, 1956년 창설되어 베트남 전쟁 참전 부대 지원, 한국 지원 사령부 통합 등을 거쳐 2005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 1957년 해체된 단체 - 제7군단지원단
    제7군단지원단은 미국 육군의 전투 지원 부대로, 제2차 세계 대전, 냉전, 걸프 전쟁 등에서 물자 수송, 탄약 보급, 의료 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여러 차례 재창설되었다.
  • 주한 영연방군 - 영연방 한국전 참전 기념비
    영연방 한국전 참전 기념비는 한국 전쟁에 참전한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4개국 참전 용사 21,000명의 용기와 희생을 기리기 위해 부산 UN기념공원에 세워진 3.6m 높이의 검은색 화강암 기념물이다.
  • 주한 영연방군 - 제27보병여단
    제27보병여단은 영국 육군의 여단으로,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등에 참전하여 한국 전쟁에서 부산 교두보 전투와 인천 상륙 작전에 참가하고 가평 전투와 글로스터 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을 저지하는 데 기여했으며, 1951년 4월 27일 제28영연방보병여단으로 개칭되었다.
  • 나라별 6.25 전쟁의 부대 및 편성 - 필리핀 한국 원정군
    필리핀 한국 원정군은 한국 전쟁에 대한민국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필리핀군 부대로, 총 7,420명의 장병이 파병되어 주요 전투에서 활약하며 한-필리핀 양국 간 우호 관계에 기여했고, 그들의 희생을 기리는 기념비가 건립되었다.
  • 나라별 6.25 전쟁의 부대 및 편성 - 제21보병연대 (태국)
    제21보병연대는 한국 전쟁 참전을 위해 창설된 부대로,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으며 시리킷 여왕의 경호 부대로 지정되어 왕실 보호 등의 임무를 수행하지만, 과거 부를 축적하고 쿠데타를 주도했다는 의혹도 있다.
주한 영연방군 - [군대/부대]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인도, 영국, 뉴질랜드, 호주 군인, 한국 1951년
인도, 영국, 뉴질랜드, 호주 군인, 한국, 1951년경
국가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1921
인도
소속유엔
종류신속 대응군
활동 기간1950년–1956년
본부제임스타운 전선
참전한국 전쟁
규모
주둔지제1영연방사단
지휘관

2. 역사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영연방 한국전 참전 기념비


두 명의 오스트레일리아 육군 군인이 1952년 대한민국에서 모래주머니로 방어된 해군, 육군 및 공군 협회(NAAFI)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주한 영연방군(BCFK, British Commonwealth Forces Korea)은 한국 전쟁 당시 유엔사령부 아래에서 활동한 영연방 국가들의 군대를 통칭한다. 여기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캐나다, 인도, 뉴질랜드의 군대가 포함되었다. 그러나 모든 영연방 소속 유엔군이 주한 영연방군에 속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 연방 공군 제2편대는 P-51 머스탱과 F-86 세이버를 운용하며 참전했지만, 미국의 제18비행단 소속으로 활동했다.

1950년, 일본에 주둔하던 영연방 점령군(BCOF) 소속의 오스트레일리아 부대가 대한민국에 처음 파견된 유엔군 병력 중 하나였다. 이후 1950년 11월, 영연방이 한국에 전투 부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하면서 일본 주둔 BCOF가 이들에 대한 행정 지원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때 '주한 영연방군'(BCFK)이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6] 주한 영연방군의 사령관은 항상 오스트레일리아 육군 장교가 맡았으며, 초대 사령관은 호러스 로버트슨 중장이었다. 영연방군 사령부와 유엔 최고사령부 간의 연락은 도쿄에 위치한 예하 본부를 통해 이루어졌다.

주한 영연방군 창설 7개월 후인 1951년 7월, 영연방 지상군은 제1영연방사단을 창설했다. 이 사단은 영국 육군캐나다 육군 병력이 주축을 이루었다. 사령관직은 1951년 10월 로버트슨 중장의 뒤를 이어 윌리엄 브리지퍼드 중장이 맡았고, 이후 헨리 웰스 중장, 1954년 루돌프 비어워스 중장, 1956년 레너드 브루턴 준장 순으로 교체되었다. 주한 영연방군에는 카투사와 유사한 카트콤(KATCOM, Korean Augmentation To the Commonwealth Division) 소속의 대한민국 군인들도 함께 복무했다.

해군력 측면에서는 영국 해군이 전쟁 기간 동안 최소 한 척 이상의 항공모함을 꾸준히 파견했다. HMS ''글로리'', HMS ''오션'', HMS ''테세우스'', HMS ''트라이엄프'' 등 5척의 영국 항공모함과 정비 및 항공기 수송을 담당한 HMS ''유니콘''이 참전했다.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은 항공모함 HMAS ''시드니''를 파견했으며, 캐나다 해군과 뉴질랜드 해군 역시 다수의 군함과 로크급 프리깃을 각각 파견하여 해상 작전을 지원했다.

영국 해군 항공모함은 한국 전쟁에 참전한 유일한 영국 전투기를 운용했다. 특히 1952년 8월 9일, HMS ''오션''에 배치된 제802 비행대대 소속 피터 카마이클 중위가 조종하던 프로펠러 전투기 호커 시 퓨리가 소련제 MiG-15 제트 전투기를 격추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는 프로펠러 항공기가 제트기를 격추한 드문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된다.

공군력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 공군(RAAF) 소속 제77 비행대대가 주한 영연방군 예하의 유일한 최전선 공군 부대였다. 이들은 초기에는 P-51 머스탱 전투기를 운용했으나, 이후 글로스터 미티어 제트 전투기로 기종을 전환했다. 영국과 캐나다 출신 항공 승무원들도 이 부대에 소속되어 함께 임무를 수행했다. 영국 공군의 직접적인 기여는 일본 이와쿠니에 주둔하며 초계 임무를 수행한 쇼트 선더랜드 비행정 1개 비행대대에 한정되었다.

주한 영연방군의 한국 전쟁 참전은 대한민국과 영연방 국가들 간의 관계를 증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7] 대한민국 정부는 영국 및 영연방 국가들과 전쟁 관련 비용 정산을 위한 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8] 또한, 이들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기 위해 1967년 경기도 가평군에 영연방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건립했다.[9]

3. 구성

주한 영연방군은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캐나다, 인도, 뉴질랜드의 군대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영국 연방 소속 국가의 모든 유엔군 파병 부대가 주한 영연방군에 속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 연방에서 파병한 남아프리카 공군 제2편대는 한국 전쟁 당시 P-51 머스탱과 F-86 세이버 전투기를 운용했지만, 주한 영연방군이 아닌 미군 제18전투비행단 소속으로 활동했다.

주한 영연방군은 육군, 해군, 공군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군의 주요 참여 국가는 다음과 같다.


  • 육군: 영국 육군, 캐나다 육군, 오스트레일리아 육군, 뉴질랜드 육군인도 육군 부대(제60낙하산야전구급차대[10])가 참여했다. 초기에는 제27보병여단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이후 제1영연방사단이 창설되어 작전을 수행했다.
  • 해군: 영국 해군, 호주 해군, 캐나다 해군, 뉴질랜드 해군이 함정을 파견했다. 영국과 호주는 항공모함을 포함한 함대를 운용했으며, 뉴질랜드는 주로 프리깃함을 지원했다.
  • 공군: 호주 공군의 제77 비행대대가 주력 전투 부대로 활동했으며, 캐나다 공군은 수송 지원을, 영국 공군은 일본 기지에서 쇼트 선더랜드 비행정을 운용하며 후방 지원 역할을 담당했다.

3. 1. 육군

1950년,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영연방 점령군(BCOF) 소속 오스트레일리아 육군 부대는 한국 전쟁 발발 후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파견된 유엔군 병력 중 하나였다. 1950년 11월, 일본 주둔 BCOF의 한국 내 전투 부대에 대한 행정 지원 역할이 결정되면서 영연방 한국 파견군(BCFK)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BCFK 사령관은 항상 오스트레일리아 육군 장교가 맡았으며, 초대 사령관은 호레이스 로버트슨 중장이었다. 영연방 사령관과 유엔 최고 사령부 간의 연락은 도쿄에 있는 부속 사령부를 통해 이루어졌다.

BCFK 창설 초기에는 제27보병여단이 주축이었으나, 1951년 7월 제1영연방사단이 창설되면서 영국 육군캐나다 육군 병력이 영연방 지상군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다. 윌리엄 브리지포드 중장이 1951년 10월 로버트슨의 뒤를 이어 지휘권을 넘겨받았고, 이후 헨리 웰스 중장, 1954년 루돌프 비어워스 중장, 1956년 레너드 브루턴 준장 순으로 지휘권이 승계되었다.

영연방 육군의 주요 부대는 다음과 같다.

부대활동 기간주요 예하 부대 / 특징
제27보병여단1950년 ~ 1951년 4월프린세스 패트리샤 캐나다 경보병연대 포함
제1영연방사단1951년 7월 ~ 1954년영국 육군, 캐나다 육군 주축


3. 2. 해군

영국 해군은 전쟁 기간 동안 보통 최소 한 척의 항공모함을 배치했다. 참전한 영국 항공모함 5척은 다음과 같다.

  • HMS 글로리
  • HMS 오션
  • HMS 테세우스
  • HMS 트라이엄프
  • HMS 유니콘 (정비 및 항공기 수송 항공모함)


영국 해군 항공모함은 전쟁에 참여한 유일한 영국 전투기를 제공했다. 1952년 8월 9일, HMS 오션에 배치된 제802 비행대대 소속 피터 카마이클 중위가 조종하는 프로펠러식 호커 시 퓨리 전투기가 MiG-15 제트 전투기를 격추하는 기록을 남겼다. 이는 프로펠러 비행기가 제트기를 격추한 드문 사례 중 하나이다.

호주 해군은 항공모함 HMAS 시드니를 파견했다.

영국 해군, 호주 해군, 캐나다 해군은 이들 항공모함 외에도 많은 다른 종류의 군함을 제공했다. 뉴질랜드 해군은 전쟁 기간 동안 다수의 로크급 프리깃을 배치하여 작전을 지원했다.

3. 3. 공군

영연방 조선 파견군(BCFK)의 공군 전력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 호주 공군 (RAAF): 제77 비행대대는 영연방 공군 중 유일하게 최전선 전투 임무를 수행한 부대이다. 초기에는 P-51 머스탱 프로펠러 전투기를 운용했으나, 나중에 글로스터 미티어 제트 전투기로 교체했다. 일부 영국 및 캐나다 항공 승무원도 호주 공군 소속으로 복무했다.
  • 캐나다 공군: 수송대대를 파견했다.
  • 영국 공군: 직접적인 전투 참여보다는 지원 역할에 집중했으며, 일본 이와쿠니 기지에 주둔한 쇼트 선더랜드 비행정 1개 비행대대를 운용하는 것이 주요 활동이었다.

4. 대한민국과의 관계

주한 영연방군의 파견은 대한민국영연방 국가들 간의 관계를 증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7] 한국전쟁 중 대한민국 정부는 영연방군의 원활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영국 정부와 재정 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주한 영연방군에 대한 한화대여금 청산을 위한 대한민국 정부와 대영연합국 정부간의 협정'이 있다.[8]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대한민국을 지원한 영연방군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1967년 경기도 가평군주한 영연방군 참전비를 건립하였다.[9]

특히 가평 전투에서 보여준 영연방군의 활약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가평 전투 60주년을 맞은 2011년 4월 25일에는 가평의 참전 기념비 앞에서 추도식이 거행되었으며, 이 자리에는 호주줄리아 길라드 총리, 뉴질랜드의 웨인 맵 국방장관, 대한민국의 김관진 국방부 장관 등이 참석하여 희생된 장병들의 넋을 기렸다.[5]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에는 영연방군의 한국전쟁 참전과 관련된 각종 장비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 당시의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

한편, 주한 영연방군에는 미군의 카투사(KATUSA) 제도와 유사하게 대한민국 군인들이 배속되어 함께 근무하는 카트콤(KATCOM, Korean Augmentation Troops to the Commonwealth Division) 제도가 운영되었다. 이는 양국 군인 간의 직접적인 교류와 연합 작전 수행의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5. 일본과의 관계

1950년,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영연방 점령군(BCOF) 소속 호주 부대는 대한민국에 파견된 초기 유엔군 중 하나였다. 그 해 11월, 일본 주둔 BCOF가 한국 내 전투 병력에 대한 행정 지원 역할을 맡기로 결정되면서 주한 영연방군(BCFK)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BCFK 사령부는 일본에 기반을 두었으며, 도쿄에 있는 부속 사령부를 통해 영연방 사령관과 유엔 최고 사령부 간의 연락이 이루어졌다.

영국 공군의 유일한 기여는 일본 이와쿠니에 주둔한 쇼트 선더랜드 비행정 1개 비행대대였다.

이전에 영연방 점령군으로 일본에 주둔했던 병사들은 BCFK 소속으로 일본에 계속 머무르면서 일본 시민들과의 교류를 이어갔다. 이들은 음악을 통해 교류하거나 학교 운동회에 참가하여 학생들과 농구 경기를 하는 등, 이전 점령군 시절보다 일본 시민과의 친선을 더욱 강화했다. 이러한 교류는 구레시의 가정에 크리스마스 파티 문화가 퍼지는 등 일본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4]

참조

[3] 웹사이트 駐留軍と県行政 - 広島県- https://www.pref.hir[...] 広島県 2022-11-16
[4] 웹사이트 18日国葬のエリザベス英女王 69年前 呉で戴冠を祝賀 駐留の英連邦軍 https://www.hiroshim[...] 2022-11-16
[5] 웹사이트 朝鮮戦争の加平戦闘から60年、参戦者らが追悼行事(4月25日) https://jp.yna.co.kr[...] 2023-06-09
[6] 서적 The Commonwealth Armies and the Korean War: An Alliance Study Manchester University Press ND
[7] 저널 영국군의 한국전쟁 참전의의와 한ㆍ영 우호관계 증진 방안 https://www.earticle[...] 2018-12
[8] 웹인용 한-영 주요협정 체결현황 상세보기{{!}}영국 정세주영국 대한민국 대사관 겸 주국제해사기구 대한민국 대표부 https://overseas.mof[...] 2023-07-16
[9] 웹인용 영연방 가평전투 65주년 기념식 https://www.korea.kr[...] 2023-07-16
[10] 저널 Foreign Nursing Officers’ Participation in the Korean War https://www.kci.go.k[...] 2018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