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멀록
1. 개요
줄리아 멀록은 1923년 미국에서 태어나 I. M. 페이 건축 회사에서 근무하던 중 영친왕의 차남 이구를 만나 1958년 결혼했다. 1963년 한국으로 건너와 창덕궁 낙선재에서 생활하며 시어머니 이방자의 복지 사업을 도왔으나, 1982년 이구와 이혼했다. 이후 미국 하와이로 이주하여 2017년 94세로 사망했다.
| 한국어 이름 | 이주아 |
|---|---|
| 본명 | 줄리아 멀록 (Julia Mullock), 한국식 이름 이주아(李珠亞) |
| 출생일 | 1927년 3월 18일 |
| 출생지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
| 사망일 | 2017년 11월 26일 |
| 사망지 |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 할레나니 요양병원 |
| 묘지 | 유골은 태평양에 뿌려짐 |
| 국적 | 미국, 대한민국 (귀화) |
|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 |
| 배우자 | 이구, 회은황세손 (1959년 결혼, 1982년 이혼) |
| 자녀 | 이은숙 (Princess Yi Eugenia Eun-suk) |
| 가문 | 이씨 (혼인) |
| 직업 | 황족, 기업인 |
|---|---|
| 근무처 | 아이엠페이건축회사 |
| 대표 | 플라자호텔 켈트공예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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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민황태자 -
이방자
이방자는 일본 왕족 출신으로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가 되어 이은과 결혼 후 한국으로 귀국하여 장애인 복지 사업에 헌신하였으며 사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
의민황태자 -
의민태자
의민태자는 고종과 순헌황귀비 엄씨 사이에서 태어난 대한제국 최후의 황태자로, 영친왕 책봉 후 황태자가 되었으나 일본 유학 및 군 복무, 일본 황족과의 정략결혼, 광복 후 국적 미인정으로 일본에서 생활하다 귀국 후 영원에 안장되었으며 사후 의민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병사한 사람 -
현진건
현진건은 일제강점기의 사실주의 소설가로, 대표작으로는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등이 있으며, 일제강점기 언론 탄압을 받기도 했다. -
병사한 사람 -
김성수 (언론인)
김성수는 인촌이라는 호를 사용한 언론인이자 기업인, 정치인으로, 경성방직 설립, 동아일보 창간, 보성전문학교 인수 및 발전에 기여했으며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으나 친일 논란이 있다. -
미국의 기업인 -
루돌프 줄리아니
루돌프 줄리아니는 뉴욕 시장 재임 시절 범죄율 감소를 이뤘지만 인종차별 논란도 있었고, 9.11 테러 때는 지도력을 발휘했으나 이후 트럼프 대통령 변호사로 활동하며 여러 스캔들에 연루되어 비판받는 미국의 변호사이자 정치인이다. -
미국의 기업인 -
이방카 트럼프
이방카 트럼프는 사업가, 전직 모델, 백악관 선임 고문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딸이자 트럼프 그룹 부사장을 역임했으며, 트럼프 행정부에서 무보수 백악관 선임 고문으로 활동하며 여성 기업가 지원, 경제 정책, 인신매매 방지 등의 분야에서 활동했다.
2. 생애
1955년 I. M. 페이 건축회사에 입사하여 뉴욕 시 맨해튼에서 근무하던 중, 영친왕의 차남 이구를 만나 1958년 10월 25일 뉴욕의 세인트 조지 성당에서 결혼했다.
결혼 후 하와이 등지에서 머물다가 1963년 한국으로 와 서울 창덕궁 낙선재에서 의민황태자비 이방자의 복지 사업을 도왔다.
1979년 한국에서의 사업 부진과 일본으로 떠난 남편과의 관계 악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겪은 종친들과의 갈등과 차별로 인해 1982년 이구와 이혼하였다.
이혼 후에는 플라자 호텔에서 켈트 공예점을 운영하고 장애인 복지 사업에 힘썼으나, 1995년 생활고로 하와이로 떠났다.
2005년 4월, 영화 작업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했다가 7월 이구의 사망 소식을 들었으나, 종친회로부터 장례식 초청을 받지 못하고 종로 거리에서 노제를 지켜보았다.
2017년 11월 26일 미국 하와이 할레나니 요양병원에서 향년 94세로 사망했으며, 사망 소식은 12월 5일에야 알려졌다. 장례는 수양딸이 치렀고, 유해는 태평양 바다에 뿌려졌다.
2.1. 초기 생애와 만남
1923년 3월 1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30년(혹은 1935년) 아버지 사망 후, 어머니가 뉴욕 브루클린 출신 남성과 재혼하여 뉴욕으로 이주하였다. 1944년 해군 복무 후 프랭클린 전문 예술 및 디자인 대학(Franklin School of Professional Art)에서 미술, 건축, 실내 디자인을 공부했다.
1955년 I. M. 페이 건축회사에 입사하여 근무하던 중,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이구를 만났다. 이구는 줄리아 멀록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였고, 1958년 5월 약혼, 10월 25일 뉴욕의 세인트 조지 성당(:en:Saint George Ukrainian Catholic Church)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2.2. 결혼과 한국 생활
1958년 10월 25일 뉴욕의 세인트 조지 성당에서 이구와 결혼했다. 결혼 후 남편의 부임지였던 하와이 등지에서 머물다가 1963년 남편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이주,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이주아'라는 한국 이름을 사용했다.
서울 창덕궁 낙선재에서 거주하며 시어머니 의민황태자비 이방자의 복지 사업을 도왔다. '명휘원' 등 사회복지법인 운영을 지원하고, 장애인 복지 사업에 헌신하며 자선 활동을 펼쳤다.
슬하에 자녀가 없어 1969년에 1959년생 한국인 여자아이 이은숙(유지니아)을 입양하였다.
1979년, 한국에서의 사업은 지지부진했고, 일본으로 떠난 남편과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2.3. 이혼과 말년
1979년, 한국에서의 사업은 지지부진했고, 일본으로 떠난 남편 이구와의 사이는 급격히 악화되었으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종친들과 심한 갈등과 차별을 겪어야 했다. 1982년 황태손 이구와 이혼하였다. 표면적인 이유는 사업 실패와 성격 차이였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종친들과 심한 갈등과 차별을 겪었으며, 후사를 잇지 못한 것도 이혼의 주요 원인이었다. 이혼 과정에서 이씨 종친회 명부에서 제외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혼 후 한국에서 켈트 공예점을 운영하고 장애인 복지 사업을 계속하였다. 1995년,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하와이로 이주하였다.
2005년 4월, 자신의 삶을 소재로 제작되는 영화 작업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하였는데, 7월 황태손 이구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종친회로부터 장례식에 정식으로 초청은 받지 못하고 종로 거리에서 노제를 지내는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며 남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야만 했다.
2017년 11월 26일 미국 하와이 할레나니 요양병원에서 향년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나 타계 소식은 12월 5일에야 알려졌다. 장례는 양녀 이은숙(Eugenia Unsuk Lee)이 치렀으며, 유해는 태평양 바다에 뿌려졌다.
3. 가족 관계
| 아버지 | 바실 멀록 (Wasyl Molock, 1888년 1월 14일 ~ 1935년 9월 30일) |
|---|---|
| 계부 | 이름 미상 |
| 어머니 | 이름 미상 |
| 배우자 | 이구 (1931년 12월 29일 ~ 2005년 7월 16일) - 1982년 이혼 |
| 양녀 | 이은숙 (李恩淑, Eugenia Unsuk, 1959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