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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보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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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쥘 보르데는 벨기에의 세균학자이자 면역학자로, 백일해균을 발견하고 보체 결합 반응을 연구하여 면역학 발전에 기여했다. 1892년 자유 브뤼셀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엘리 메치니코프의 실험실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1901년 브뤼셀 파스퇴르 연구소를 설립하고, 1907년 자유 브뤼셀 대학교 세균학 교수로 취임했다. 그는 1919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으며, 1961년 브뤼셀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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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보르데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쥘 장 바티스트 뱅상 보르데
출생1870년 6월 13일, 소니
사망1961년 4월 6일, 브뤼셀
사망 장소브뤼셀
안장 장소익셀 공동묘지, 브뤼셀
국적벨기에, 프랑스
학력
모교브뤼셀 자유 대학교
경력
분야면역학
수상
수상 내역노벨 생리학·의학상 (1919년)
에든버러 대학교 캐머런 치료제 상 (1921년)

2. 생애

벨기에 소와니 출신으로, 자유 브뤼셀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1892년에 졸업했다. 이후 벨기에 정부 장학금으로 파리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일리야 메치니코프 밑에서 면역학을 연구했다. 1901년에는 브뤼셀에 파스퇴르 연구소(Institut Pasteur de Bruxelles프랑스어)를 설립하고 초대 소장을 맡았으며, 1907년에는 자유 브뤼셀 대학교의 세균학 교수가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에는 파괴된 대학 재건을 위해 미국에서 기금을 모으던 중, 면역학 연구 공로를 인정받아 1919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1916년 영국 왕립 학회 외국인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만년에는 박테리오파지 연구에 집중했다. 1961년 브뤼셀에서 사망했다.

2. 1. 어린 시절과 교육

쥘 보르데는 벨기에 소니에에서 태어났다.[1] 아버지가 학교장이었던 덕분에 교육에 대한 이해가 깊은 가정 환경에서 자랐다. 중등 학교를 졸업한 후 자연 과학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여, 집에 작은 실험실을 만들어 다양한 실험을 하기도 했다. 16세가 되면서 의학 분야에 뜻을 두게 되었다.[2]

자유 브뤼셀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1892년에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1][2] 이후 벨기에 정부로부터 7년간의 연구를 보장하는 장학금을 받아, 1894년 프랑스 파리에 있는 파스퇴르 연구소로 유학을 떠났다.[1][2] 연구소에서는 면역학의 권위자이자 막 세균의 탐식작용(세포 면역의 발현)을 발견한 일리야 메치니코프의 실험실에서 연구를 시작했다.[1][2]

2. 2. 파스퇴르 연구소에서의 연구 (1894-1900)

자유 브뤼셀 대학교에서 의학 공부를 마친 보르데는 1892년에 졸업했다. 이후 벨기에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1894년 프랑스 파리에 있는 파스퇴르 연구소로 가서 연구를 시작했다. 이 장학금은 7년간의 연구를 지원하는 좋은 조건이었다. 연구소에서는 면역학의 권위자인 일리야 메치니코프의 연구실에서 연구를 수행할 기회를 얻었다.

1895년, 보르데는 중요한 발견을 했다. 특정 항체세균을 파괴하는(세균 용해) 효과가 혈청 속에 원래 존재하는 선천적인 성분, 즉 당시 '알렉신'이라고 불렸던 성분(현재는 보체로 알려짐)에 의해 크게 강화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4년 뒤인 1899년에는 보체가 관여하는 또 다른 파괴 과정인 '용혈' 현상을 설명했다. 이는 다른 종의 적혈구가 면역 혈청에 노출되었을 때 파열되어 용해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연구들은 보체의 작용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1900년, 보르데는 브뤼셀에 파스퇴르 연구소와 유사한 기관을 설립하기 위해 파리를 떠났다. 그의 연구는 이후 매독 진단을 위한 바서만 반응과 같은 보체 결합 검사법 개발의 기초가 되었으며, 이 기술은 오늘날에도 여러 질병의 혈청학적 검사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2. 3. 브뤼셀 파스퇴르 연구소 설립 및 연구 활동 (1901-1961)

1901년, 보르데는 파리파스퇴르 연구소를 떠나 브뤼셀에 유사한 연구소인 브뤼셀 파스퇴르 연구소(Institut Pasteur de Bruxelles프랑스어)를 설립하고 초대 소장이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보체의 작용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이 연구는 매독에 대한 혈청학적 검사, 특히 아우구스트 파울 폰 바서만이 개발한 바서만 반응의 기초가 된 보체 결합 검사 방법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이 기술은 오늘날에도 여러 질병의 혈청학적 검사에 사용되고 있다.

1906년에는 옥타브 갱구와 함께 백일해의 원인균으로 추정되는 ''보르데텔라 백일해''를 순수 배양으로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1907년에는 자유 브뤼셀 대학교의 세균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파괴된 대학을 재건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기금을 모으기도 했다. 미국 체류 중이던 1919년, 면역학 연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1916년에는 영국 왕립 학회의 외국인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930년에는 같은 학회로부터 클루니언 메달을 받았다. 만년에는 박테리오파지 연구에 몰두했으며, 1961년 브뤼셀에서 사망했다.

쥘 보르데의 묘지, 익셀 묘지

2. 4. 사망

1961년 브뤼셀에서 사망했다.

3. 주요 업적

쥘 보르데는 면역학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혈청항체 작용에 필수적인 열에 약한 성분인 보체(그가 처음 명명한 '알렉신', alexine프랑스어)를 발견했으며, 면역되지 않은 동물에게도 이것이 존재함을 밝혔다.[2] 또한, 보체 결합 반응을 발견하여[2] 매독 진단을 위한 바서만의 바서만 반응 개발에 기초를 제공했다.[1][2] 보르데 자신도 이 원리를 장티푸스돼지 인플루엔자 진단에 활용했다.[2]

1906년에는 동료 옥타브 장구와 함께 백일해의 원인균인 ''보르데텔라 백일해''(Bordetella pertussisla)를 성공적으로 분리 및 배양했다.[1][2] 이 세균의 속명 ''보르데텔라''(Bordetellala)는 그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붙여졌으며, 이후 보르데는 백일해 백신 개발에도 기여했다.[2]

3. 1. 보체(알렉신)의 발견과 면역 기전 연구

1895년, 보르데는 획득된 특이적 항체의 세균 용해 효과가 혈청 내 선천적 성분, 즉 알렉신(alexine)에 의해 강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1] 이 성분은 나중에 에를리히에 의해 보체라고 명명되었고, 현재 이 이름이 널리 사용된다.[2] 1898년, 그는 혈청을 55°C로 가열하면 항체는 남아있지만 세균에 대한 작용이 사라지는 것을 발견하여, 보체가 열에 약하다는 특성을 확인했다.[2] 또한, 면역을 얻지 않은 동물의 혈청에도 보체가 존재함을 확인했다.[2]

1899년, 그는 보체가 관여하는 유사한 파괴 과정인 용혈 현상을 기술했다. 이 과정에서 이종 적혈구는 면역 혈청에 노출되면 파열되어 용해된다.[1] 1900년, 보르데는 파리파스퇴르 연구소를 떠나 브뤼셀에 유사한 연구소를 설립하고 보체의 작용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1] 1905년에는 보체 결합 반응을 발견했다.[2] 이러한 연구는 매독에 대한 혈청학적 검사(특히 바서만의 바서만 반응 개발)를 가능하게 한 보체 결합 검사 방법의 기초가 되었다.[1][2] 동일한 기술은 오늘날 수많은 다른 질병에 대한 혈청학적 검사에 사용된다.[1] 보르데 자신도 장티푸스나 돼지 인플루엔자 진단에 이 방법을 사용했다.[2]

1906년, 동료 옥타브 갱구와 함께 백일해의 원인균으로 추정되는 세균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1][2] 이전에는 일반 배지로 배양이 어려웠으나, 글리세린을 첨가한 감자 혈액 한천 배지 (보르데-장구 배지)를 개발하여 백일해 환자로부터 새로운 세균을 순수 배양할 수 있었다.[2] 이 세균은 후에 ''보르데텔라 백일해''(Bordetella pertussisla)로 명명되었으며, 속명에 보르데의 이름이 남겨졌다.[2] 보르데는 이후 백일해 백신도 개발했다.[2] 1907년, 그는 브뤼셀 자유 대학교세균학 교수가 되었다.[1]

1910년, 항체가 항원과 결합할 때 실제로 보체의 양이 감소하는 현상, 즉 보체 결합 반응을 확인했다.[2] 이 반응은 매우 민감하여 현미경으로는 존재를 알 수 없는 소량의 병원체 존재도 감지할 수 있었다.[2]

현재에는 보체 반응의 민감성이 약 20종의 단백질로 구성된 보체계가 연쇄적인 캐스케이드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임이 밝혀졌다. 초기 반응이 증폭되어 진행되며, 각 보체 단백질은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반응 후반에 나타나는 C9 보체 분자 여러 개가 모여 세균의 세포막에 구멍(막 손상 복합체)을 형성하여 세포질 내용물이 유출되게 함으로써 세균을 사멸시킨다.[2]

3. 2. 보체결합반응 개발

1895년, 보르데는 획득된 특이적 항체의 세균 용해 효과가 선천적인 혈청 성분의 존재에 의해 체내에서 현저하게 강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 성분을 '알렉신'(alexine프랑스어)이라고 불렀으나, 현재는 에를리히가 제안한 보체라는 명칭이 더 널리 사용된다. 1898년, 그는 혈청을 55°C로 가열하면 항체는 남아있지만 세균에 대한 작용은 사라지는 것을 관찰했다. 이를 통해 보체(알렉신)가 항체의 작용에 필수적이지만 열에는 약하다는 특성을 밝혀냈다. 또한, 면역을 얻은 동물뿐만 아니라 아직 면역이 없는 동물의 혈청에도 보체가 존재함을 확인했다.

1899년에는 보체가 관여하는 또 다른 파괴 과정인 용혈 현상을 기술했다. 이는 이종 적혈구가 면역 혈청에 노출되었을 때 파열되거나 "용해"되는 현상이다. 1900년, 보르데는 파리를 떠나 브뤼셀파스퇴르 연구소와 유사한 연구소를 설립하고 보체의 작용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를 이어갔다.

이러한 연구는 1905년 보체 결합 반응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1910년에는 항체가 항원과 결합할 때 실제로 보체의 양이 감소한다는 사실, 즉 보체 결합 반응의 원리를 확인했다. 보체 반응은 매우 민감하여 현미경으로는 존재를 확인하기 어려운 소수의 병원체에 대해서도 일어났다. 이 발견은 매독에 대한 혈청학적 검사법 개발에 중요한 기초를 제공했으며, 독일의 바서만은 이를 바탕으로 바서만 반응을 확립했다. 보르데 자신도 장티푸스돼지 인플루엔자 진단에 보체 결합 반응을 활용했다. 동일한 기술은 오늘날에도 수많은 다른 질병에 대한 혈청학적 검사에 사용되고 있다.

보체 반응이 민감한 이유는 약 20종류의 단백질로 구성된 보체계가 연쇄적인 효소 반응, 즉 캐스케이드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초기의 작은 반응이 증폭되어 진행되며, 각 보체 단백질은 고유한 기능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캐스케이드 반응의 마지막 단계에 나타나는 C9 보체 분자들은 도넛 모양으로 모여 세균의 세포막에 구멍(막 손상 복합체)을 형성하여 세포 내용물이 유출되게 함으로써 세균을 사멸시킨다.

3. 3. 백일해균 발견 및 백신 개발

1906년, 옥타브 장구(Octave Gengou)와 함께 백일해병원체인 ''보르데텔라 백일해''(Bordetella pertussis|보르데텔라 페르투시스la)를 순수 배양으로 분리하여 백일해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보르데와 장구는 이미 1900년에 백일해 환자에게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세균을 현미경으로 관찰했지만, 당시 사용되던 일반적인 배지로는 배양할 수 없었다.

1906년에 그들은 글리세린이 첨가된 감자 혈액 한천 배지인 보르데-장구 배지를 새로 개발했고, 이를 이용해 백일해 환자로부터 해당 세균을 성공적으로 분리하고 배양했다. 이 세균이 백일해의 원인이라고 가정되었다. 후에 이 세균은 ''보르데텔라 백일해''(Bordetella pertussis|보르데텔라 페르투시스la)로 명명되었으며, 분류학상의 속명 Bordetella|보르데텔라la는 발견자인 보르데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붙여졌다. 이후 보르데는 백일해 백신도 개발했다.

4. 수상 경력

연도내용비고
1916년왕립 학회 외국인 회원 선출[2]
1919년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면역 관련 발견
1919년벨기에 왕립 과학 문학 예술 아카데미 회원[5]
1921년에든버러 대학교 캐머런 치료상 수상


5. 기타

1916년 3월, 왕립 학회 외국인 회원으로 선출되었고[2], 1930년에는 이 학회에서 크루니언 강연을 진행했다.[3] 이 강연에서 보르데는 박테리오파지, 즉 펠릭스 데렐이 발견한 박테리아를 죽이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존재하지 않으며, 박테리아가 자기 용해 과정을 통해 스스로 파괴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이론은 1941년 루스카가 박테리오파지의 첫 전자 현미경 사진을 발표하면서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4] 그는 면역과 관련된 연구 업적으로 1919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보르데는 1961년에 사망하여 브뤼셀의 이셀 묘지에 안장되었다.


  • '''1919년''': 벨기에 왕립 과학 문학 예술 아카데미 회원.[5]
  • '''1921년''': 에든버러 대학교의 캐머런 치료상 수상.


브뤼셀의 보르데 기차역과 암 전문 병원인 쥘 보르데 연구소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참조

[1] 웹사이트 The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 1919 https://www.nobelpri[...]
[2] 간행물 Jules Jean Baptiste Vincent Bordet 1870-1961
[3] 웹사이트 Library and Archive Catalogue http://www2.royalsoc[...] Royal society 2010-12-18
[4] 서적 Viruses Vs. Superbugs: A Solution to the Antibiotics Crisis? Palgrave Macmillan
[5] 문서 Index biographique des membres et associés de l'Académie royale de Belgique (1769–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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