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전한)
1. 개요
진영은 전한 초기의 인물로, 동양의 영사를 지내고 현에서 존경받았다. 항량과 연합하여 초나라 부흥에 기여했으며, 한나라 건국 후에는 예장·절강 일대를 평정하고 열후에 봉해졌다. 초나라 원왕의 재상으로 11년간 재임했으며, 그의 손자 진오는 관도장공주의 부마가 되어 무제의 황후를 배출하는 등 가문이 번성했으나, 이후 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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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84년 사망 -
플라우투스
플라우투스는 로마 희극 작가이자 배우로서 그리스 신희극을 로마 취향에 맞게 각색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며, 구어체 라틴어, 언어유희, 음악적 요소를 결합한 130여 편의 희극을 창작하여 후대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
기원전 184년 사망 -
주정 (전한)
주정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한나라에 들어가 주신후에 봉해지고, 항우를 격파한 공로로 위기후에 봉해졌으며, 고후 4년에 사망하여 시호를 장이라 하였다. -
전한의 귀족 -
장량
장량은 전국시대 말기부터 초한쟁패기를 거쳐 전한 초기에 활약한 한나라 귀족 출신 인물로,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우고 유후에 봉해진 뛰어난 지략가이자 책사이다. -
전한의 귀족 -
소하
소하는 전한 초기의 정치가로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공을 세웠으며, 군수 보급, 내정 담당, 한신 천거, 승상으로서 국가 기틀을 다지는 데 헌신한 인물이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진영은 동양(東陽)의 영사(令史)를 지내고 현에서 장자로 불렸다. 이후 항량과 연합하여 초나라에서 관직을 얻었다. 고제 6년(기원전 201년), 항우 사후 한나라로 귀순하여 예장·절강 일대를 평정하고, 스스로 왕이 된 장식(壯息)을 평정하는 공을 세웠다. 이 공으로 당읍(堂邑) 땅을 받아 열후가 되었고, 고조의 공신 중 86위로 1800호를 받았다. 초나라 원왕의 재상으로 11년간 재임했다. 고후 4년(기원전 184년)에 죽어 시호를 안이라 했고, 아들 진녹이 작위를 이었다.
2.1. 초기 활동과 항량과의 연합
동양(東陽)의 영사(令史)를 지내고 현에서 장자로 불렸다. 동양의 소년들이 현령을 죽이고 수천 명이 모였으나 우두머리를 정하지 못하자, 진영에게 청을 하였다. 진영은 거절했으나 억지로 추대되어 현에서 따르는 사람이 2만 명이었다. 소년들은 진영을 왕으로 세우려 했으나, 귀한 선조를 두지 않고 갑자기 유명해진 것이라는 이유로 어머니의 만류를 받아 사양했다.
마침 이 무렵 회계에서 거병한 항량이 장초 세력의 잔당에게서 상주국으로 임명돼 장강을 건너 서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진영이 동양을 장악했다는 소식을 듣자 항량은 진영에게 함께할 것을 권했다. 진영은 항씨가 명망 있는 초나라의 세족이므로 의지할 만하다고 하고 자신이 거느린 무리를 데리고 항량에게 속했다. 나중에 항량이 의제를 찾아 초회왕으로 세우면서 상주국이 되고 다섯 현을 받았다.
2.2. 한나라 건국에 기여
진영은 동양(東陽)의 영사(令史)를 지냈으며 현에서 장자로 불렸다. 동양의 소년들이 현령을 죽이고 수천 명이 모였으나 우두머리를 정하지 못하자, 진영에게 우두머리가 되어줄 것을 요청했다. 진영은 거절했으나 억지로 추대되어 현에서 따르는 사람이 2만 명에 달했다. 소년들은 진영을 왕으로 세우려 했으나, 귀한 선조를 두지 않고 갑자기 유명해진 것이라는 이유로 어머니의 만류를 받아 사양했다.
이 무렵 회계군에서 거병한 항량이 장초 세력의 잔당에게서 상주국으로 임명돼 장강을 건너 서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진영이 동양을 장악했다는 소식을 들은 항량은 진영에게 함께할 것을 권했다. 진영은 항씨가 명망 있는 초나라의 세족이므로 의지할 만하다고 하고 자신이 거느린 무리를 데리고 항량에게 속했다. 나중에 항량이 의제를 찾아 초회왕으로 세우면서 상주국이 되고 다섯 현을 받았다.
고제 6년(기원전 201년), 항우 사후 한나라로 가서 예장·절강 일대를 평정했고, 스스로 왕이 된 장식(壯息)을 평정했다. 이 공으로 당읍(堂邑) 땅을 받아 열후가 되었으니, 고조의 공신 중에서는 86위였고, 1800호를 받았다. 전한의 제후국이 된 초나라 원왕의 재상으로 11년을 재임했다.
2.3. 초나라 재상 시절
진영은 동양(東陽)의 영사(令史)를 지냈고 현에서 장자로 불렸다. 동양의 소년들이 현령을 죽이고 수천 명이 모였으나 우두머리를 정하지 못하자, 진영에게 우두머리가 되어줄 것을 요청했다. 진영은 거절했으나 억지로 추대되어 현에서 따르는 사람이 2만 명에 달했다. 소년들은 진영을 왕으로 세우려 했으나, 진영은 귀한 선조를 두지 않고 갑자기 유명해진 것이라는 이유로 어머니의 만류를 받아들여 이를 사양했다.
마침 이 무렵 회계에서 거병한 항량이 장초 세력의 잔당에게서 상주국으로 임명되어 장강을 건너 서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진영이 동양을 장악했다는 소식을 들은 항량은 진영에게 함께할 것을 권했다. 진영은 항씨가 명망 있는 초나라의 세족이므로 의지할 만하다고 판단하고 자신이 거느린 무리를 데리고 항량에게 합류했다. 이후 항량이 의제를 찾아 초회왕으로 세우면서 상주국이 되고 다섯 현을 받았다.
고제 6년(기원전 201년), 항우 사후 한나라로 가 예장·절강 일대를 평정했고, 스스로 왕이 된 장식(壯息)을 평정했다. 이 공으로 당읍(堂邑) 땅을 받아 열후가 되었으니, 고조의 공신 중에서는 86위였고, 1800호를 받았다. 이후 초나라 원왕의 재상으로 11년을 재임했다.
2.4. 가문의 번영과 몰락
진영은 동양(東陽)의 영사(令史)를 지냈고 현에서 장자로 불렸다. 동양의 소년들이 현령을 죽이고 수천 명이 모였으나 우두머리를 정하지 못하자, 진영에게 우두머리가 되어줄 것을 요청했다. 진영은 거절했으나 억지로 추대되어 현에서 따르는 사람이 2만 명에 달했다. 소년들은 진영을 왕으로 세우려 했으나, 귀한 선조를 두지 않고 갑자기 유명해진 것이라는 이유로 어머니의 만류를 받아 사양했다.
마침 이 무렵 회계에서 거병한 항량이 장초 세력의 잔당에게서 상주국으로 임명돼 장강을 건너 서쪽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진영이 동양을 장악했다는 소식을 듣자 진영에게 함께할 것을 권했다. 진영은 항씨가 명망 있는 초나라의 세족이므로 의지할 만하다고 하고 자신이 거느린 무리를 데리고 항량에게 속했다. 나중에 항량이 의제를 찾아 초회왕으로 세우면서 상주국이 되고 다섯 현을 받았다.
고제 6년(기원전 201년), 항우 사후 한나라로 가서 예장·절강 일대를 평정했고, 스스로 왕이 된 장식(壯息)을 평정했다. 이 공으로 당읍(堂邑) 땅을 받아 열후가 되었으니, 고조의 공신 중에서는 86위였고, 1800호를 받았다. 전한의 제후국이 된 초나라 원왕의 재상으로 11년을 재임했다. 18년 후, 고후 4년(기원전 184년)에 죽어 시호를 안이라 했고, 아들 진녹이 작위를 이었다. 손자 진오는 관도장공주를 아내로 모셔 황실의 사위가 되었고, 둘은 무제의 첫 황후인 폐황후 진씨를 낳았다.
3. 가계
주어진 원본 소스에 진영(전한)의 가계 정보가 없으므로, 이전 출력은 정확합니다. 따라서 수정할 내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