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초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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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교(楚元王)는 전한의 제후왕으로, 유방의 이복동생이다. 어려서 학문을 좋아하여 순자의 제자인 부구백에게서 시경을 배우고, 진나라 멸망 후 유방을 따라 종군했다. 고조 6년, 한신이 모반 혐의로 강등된 후 초왕에 봉해졌다. 유교는 유학을 장려하고 학자들을 중용했으며, 그의 후손으로는 유향, 유흠 등이 있다. 재위 23년 만에 사망했으며, 아들 유영객이 뒤를 이었다.

유교 (초원왕)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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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초원왕 부임도
유(劉)
이름교(交)
시호원(元)
작위초원왕(楚元王)
봉국초나라
생몰년기원전 202년 ~ 기원전 151년 (향년 51세)
아버지유태공
어머니유온
고황제 유방
아들유의
손자유무
생애
가족 관계
유태공
유온
고황제 유방
자녀
아들유의
손자
손자유무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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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유교는 젊어서 글을 좋아하고 재주가 있어, 목생(穆生), 백생(白生), 신공과 함께 순자의 제자인 부구백에게서 《시경》을 배웠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이후 이들은 각자 흩어졌다. 유방을 따라 진나라에 대항하는 반란에 가담했으며, 노관과 함께 유방의 측근을 맡았다. 고조가 황제에 즉위하자 노관과 함께 항상 고조를 시위했다. 고조 6년(기원전 201년), 한신이 모반 혐의로 회음로 격하되자, 한신의 봉국 중 화이허 서쪽의 설군, 동해, 팽성의 36현을 받아 초왕이 되었다. 회남왕 영포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유교는 영포와 싸워 패했다.

유교는 유학을 배운 덕에 유학자들을 중용했다. 초나라에 와서 목생, 백생, 신공을 모두 자신의 중대부로 삼았고, 고황후 시절에는 아들 유영객을 부구백에게 보내 배우게 했다. 시경을 좋아해 아들들에게 모두 시를 읽게 했으며, 신공은 《시경》에 전(傳)을 짓기 시작해 노시(魯詩)를 만들었고, 유교도 전을 지어 원왕시(元王詩)를 만들었다.

재위 23년 만에 죽었고, 맏아들 유벽비(劉辟非)가 일찍 죽었으므로 유영객이 뒤를 이었다. 유교의 자손으로는 전한 말기의 석학으로 알려진 유향, 유흠 부자, 위의 낙랑군 태수인 유무, 유무의 자손으로 동진의 정치가 유회와 유뢰지, 그리고 의 유지기 등이 있으며, 남조 송의 유유(고조·무제)도 유교의 후손이라고 자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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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초기 생애와 학문

유교는 젊어서 글을 좋아하고 재주가 있어, 목생(穆生)·백생(白生)·신공과 함께 순자의 제자인 부구백에게서 《시경》을 배웠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이후 이들은 각자 흩어졌다. 그는 어린 시절 진나라의 수도 함양에서 공부한 학자였다.

2.2. 유방과의 동행과 초왕 책봉

진나라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 형 유방을 따라 종군했으며, 노관과 함께 유방의 측근을 맡았다. 고조황제에 즉위하자 노관과 함께 항상 고조를 시위했다. 고조 6년(기원전 201년), 한신이 모반 혐의로 회음후로 강등된 후, 고조는 한신의 옛 영토를 남북으로 분할하여 북부에 유교를 초왕으로 봉했다. 이때, 한신의 봉국 중 화이허 서쪽의 설군·동해·팽성의 36현을 받아 초왕이 되었으며, 화이허 동쪽은 종형 유고가 받아 형나라를 이루었다.

2.3. 영포의 난과 패배

고조 11년(기원전 196년), 회남왕 영포가 반란을 일으켜 형왕 유가를 죽이고 형나라 군사까지 아울러 초나라로 쳐들어왔다. 초나라에서는 서현과 동현 사이에서 영포를 막으려 했고, 군사를 셋으로 나누어 서로 돕게 했다. 그러나 군사를 나누면 한 군데가 패할 경우 나머지도 흩어져 서로 돕지 못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초나라 장수는 이를 듣지 않았다. 결국 영포의 공격에 한 군데가 무너지자 나머지도 흩어져 달아났고, 유교는 설(薛)로 도망쳤다.

2.4. 유학 진흥과 사망

초원왕 유교는 초나라에 와서 목생, 백생, 신공을 모두 자신의 중대부로 삼았다. 고황후 시절에는 아들 유영객을 부구백에게 보내 배우게 했다. 유교는 시경을 좋아하여 아들들에게 모두 시를 읽게 했으며, 신공은 《시경》에 전(傳)을 짓기 시작해 노시(魯詩)를 만들었고, 유교도 전을 지어 원왕시(元王詩)를 만들었다.

재위 23년 만에 죽었고, 맏아들 유벽비(劉辟非)가 일찍 죽었으므로 유영객이 뒤를 이었다.

3. 가계 및 후손

劉交중국어유방과는 달리 유학(시경)을 배웠다. 진나라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 유방을 따라 종군했으며, 노관과 함께 유방의 측근을 맡았고, 유가와 함께 별동대가 되었다. 고조 6년(기원전 201년), 모반죄로 실각하여 초왕에서 회음후로 강등된 한신의 후임으로, 그 구 영토를 남북으로 분할한 북부에 초왕으로 봉해졌다. 고조 11년(기원전 196년), 회남왕 영포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형왕 유가를 꺾은 영포와 싸워 패했다.

젊은 시절 유학을 배운 탓에 유자를 중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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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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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이름
아버지유태공
무애왕 유백
대경왕 유희
고제 유방
아들유벽비
아들초이왕 유영객
아들초문왕 유례
아들홍의후 유부
아들심유이후 유세
아들완구후 유예
아들극락경후 유조

3.2. 주요 후손

劉交중국어의 후손으로는 전한 말기 석학 유향·유흠 부자, 위의 낙랑군 태수 유무, 유무의 자손으로 동진의 정치가 유회와 유뢰지, 의 유지기 등이 있으며, 남조 송의 유유(고조·무제)도 유교의 후손이라고 자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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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로 밀어서 보기
이름비고
유벽비세자였으나 요절
유영객이왕
유례문왕, 조카인 초왕 유무의 뒤를 이음
유부홍의후
유세심유이후
유예완구후
유조극락경후